나는 악령의 목소리를 듣는다 - 소크라테스, 철학적 욕망의 기원에 관하여
백상현 지음 / 에디투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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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너무나 이 두 소회로 집약되어 간다는 고백을 이제는 도저히 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Lacan의 구멍(들)을 거론하자 갑자기 공집합은 언제나 유일무이한 일자일 뿐이라며 얼버무려버리다니..... 

 
당연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의미의 공집합을 '실재(계)'라 부르지 그 공집합을 가리기 위한 환상의 장막에 불과한 ideology들과 지식들에 뚫린, 미처 가리지 못 한 틈들과 균열들까지 공집합 자체와 혼동하며 갯수조차 헷갈리진 않으니까.......

 
 
더구나 원래 Lacan의 Seminar VII과 XI 등을 중심으로 전기 Lacan만 집중검토해 매우 우울증자적으로 해석된 in/ad  nihilo Lacan주의만을 가지고 그 허무와 우울, 고독감을 견디기 위해 (여전히) 예술에만 천착해 오다가 근년에야 Badiou와 여러 국내적 계기들을 경유하며 급격하게 Post-structuralism적, 그러나 실은 Post-modernism적(으로 해석된) 후기 ex nihilo Lacan주의로 급선회해서 급진화, 정치화까지 동반하고 있는 그가 마치 (이제 막 처음) 새롭게 발견해내기라도 한 듯이 열정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그 주장들이 실은 신물나도록 범람하며 한 시대를 풍미할 대로 풍미하다 동시에 많은 문제들도 양산한 채 이제는 위기까지 맞고 내리막길로 접어든 지도 꽤나 되어간다는 사실을 아직 절감하지 못 한 채 그에 대해서는 어떠한 문제의식도 반성/비판의식도 못 갖고 있는 사태와 깊은 관련이 있었으나 매우!! 넌지시 표현되었던 첫번 째 항목에서 그 구멍의 내용들과는 하등 상관도 없는 갯수 문제는 전혀 핵심이 아니었는데도 말꼬리나 잡으며 넘어가는 것도 모자라, 그나마 여건 상 가리고 가려 뽑은 훨씬 중요한 둘째 항목에 대해선 아예 이해조차 못 했다니.....

 
 
(여담으로 덧붙이면, 사실은 이 하등의 관계 없는 갯수 문제도 만일 실재(계)가 동시간대의 모든 공간과 차원들을 무한히 채우고 있는 시공간적으로 분절/분기된 복수의 평행우주(군이)라면 그가 기대하듯이 그렇게나 자명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 '기대/가정된 자명성'( 특히 무정의 용어와 공리 등)은 그 자신은 물론이고 수학 전체의 치명적 결함이기도 한데, 우리는 새로운 속성들의 parameter들을 도입하거나 집합들 자체를 원소로 갖는 집합군, 또는 집합 차원 등을 정의함으로써 부분집합을 갖는 공집합을 얼마든지 새롭게 창안할 수 있고, 이에 기반한 새로운 집합론을 구성할 수도 있으며,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수학 또한 전혀 조금도 예외적인 '지식'이 아니기에 수학(화) 그 자체만으로는 어떠한 진리성도 보증할 수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전형적인 형식성으로 인해 Lacan적으로 분석된 정신구조의 반토대주의 frame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식분과라 할 수 있다.

ex. 집합들 자체를 원소로 갖는 집합에 의한 model 구현은 현재의 수학으로도 일정 정도 가능한데 이렇게 전개된 근사 model의 일례는 (비록 현 수학 구조 상 (단일차원 공간에서는) 단 하나의 한계를 내포할 수 있긴 하나) 이를 테면 아래와 같다.

Φ,  {Φ},  {Φ,{Φ}},  {Φ,{Φ},{Φ,{Φ}}},  
{Φ,{Φ},{Φ,{Φ}},{Φ,{Φ},{Φ,{Φ}}}},
{Φ,{Φ},{Φ,{Φ}},{Φ,{Φ},{Φ,{Φ}}},{Φ,{Φ},{Φ,{Φ}},{Φ,{Φ},{Φ,{Φ}}}}},
{Φ,{Φ},{Φ,{Φ}},{Φ,{Φ},{Φ,{Φ}}},{Φ,{Φ},{Φ,{Φ}},{Φ,{Φ},{Φ,{Φ}}}},{Φ,{Φ},{Φ,{Φ}},{Φ,{Φ},{Φ,{Φ}},{Φ,{Φ},{Φ,{Φ}}},{Φ,{Φ},{Φ,{Φ}}}}}},

......................



(이 하나의 한계에 대해 그가 알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별 의미없는 (한계의) 본질적 의미에 대해까지 알 수 있을지는 솔직히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 전개를 이용하여 이하처럼 정합적 정의로의 확장도 가능하며, 이 정의를 이용해 '집합차원'이나 '차원집합' 같은 새로운 수학적 개념의 창안이 가능함.


     Φ(^0)=Φ={}

     Φ^1  ={Φ}={{}}

     Φ^2  ={Φ, {Φ}}={{}, {{}}}

     Φ^3  ={Φ, {Φ}, {Φ,{Φ}}}={{}, {{}}, {{}, {{}}}}

     Φ^4  ={Φ, {Φ}, {Φ,{Φ}}, {Φ,{Φ},{Φ,{Φ}}}}

     Φ^5  ={Φ, {Φ}, {Φ,{Φ}}, {Φ,{Φ},{Φ,{Φ}}}, {Φ, {Φ},{Φ,{Φ}},{Φ,{Φ},{Φ,{Φ}}}}}

     Φ^6  ={Φ, {Φ}, {Φ,{Φ}}, {Φ,{Φ},{Φ,{Φ}}}, {Φ,{Φ},{Φ,{Φ}},{Φ,{Φ},{Φ,{Φ}}}}, {Φ,{Φ},{Φ,{Φ}},{Φ,{Φ},{Φ,{Φ}}},{Φ,{Φ},{Φ,{Φ}},{Φ,{Φ},{Φ,{Φ}}}}}}

     Φ^k  ={Φ, {Φ}, {Φ,{Φ}}, {Φ,{Φ},{Φ,{Φ}}}, {Φ,{Φ},{Φ,{Φ}},{Φ,{Φ},{Φ,{Φ}}}}, {Φ,{Φ},{Φ,{Φ}},{Φ,{Φ},{Φ,{Φ}}},{Φ,{Φ},{Φ,{Φ}},{Φ,{Φ},{Φ,{Φ}}}}}, .............}


((이 집합군 연산에서 (공집합의 특성 상 특히 더) k→k+1로 대체 치환된 정의도 역시 정합적일 수 있음.))





또한 보다 simple하고 아름다운 solution으로 n차원( 수리공간에서의) 공집합은 n개의 각차원 공집합들을 (하위구성) 원소로 갖는 ’공집합들의 집합’으로 정의함으로써 현재의 수학과 무모순적이며 결함없는 전개를 할 수도 있다.

    Φn={Φi, Φj, Φk, .....}  (단, n=i+j+k+.....)


또는 차원 대신 집합Vector 개념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는데, 이 계열 solution들의 핵심 idea는 '공집합' 자체를 존재론적 다층성, 중층성을 갖는, 하위 요소들의 복합구성체로서 재구성함으로써 분절/분할 가능한 개념으로 변형/확장시켜서, 하위 공집합 요소와 그것을 원소로 갖는 상위 공집합이 동시에 원래의 공집합 정의를 모두 만족하는 구성체( 관계)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






 
게다가 이렇게 Post-modernism적 Lacan주의가 Socrates 해석으로 연역될 때 필연적으로 봉착하게 되는 좀더 중요한 aporia 중 하나는 차라리 다음과 같은데, 


그 Socrates가 Post-modernism의 진정한 기원으로서의 Sophist들과 전혀 분별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가장 증상이 심하거나 또는 (/) 바로 그 점 때문에 동시에 가장 충실한 Sophist로 등극하게 되는 반면, (국가 이성의 기원으로 지목되어 온) 수제자 Platon과는 도저히 화해 및 양립 불가능한 불구대천의 대척점에 서게 되며, 따라서 왜 그가 Sophist들과 대립했으며, 생전부터 그의 주요 제자들이 대부분 반민주주의자들이었는지 등등을 전혀!!! 설명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진짜 문제는 이런 태도와 행위들의지속적 반복을 통해 그가 자신이 행한 모든 급진적 주장들을, 심지어 방금 전 그렇게나 힘주어 역설한 (이를테면 가장 직접적으로는 ""Freud로 돌아가자"는 Lacan의 구호가 Freud의 구멍을 찾아내야 한다는 뜻이었다면 Lacan을 공부한다는 것은 Lacan 자신의 구멍을 찾아내는 작업이어야 한다" 같은) 바로 그 주장들까지도 스스로 철저하게 배반함으로써 그것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려던 상대를 심하게 모욕한다는 사실이다. 

일렁이던 황당감은 여기서 그 절정에 달하게 된다.

 
 

 
P.S.1

그리고 이주향 같은 사람이 그것도 제1 전국방송에서 "'발명'이요??? '발명'이라고 하는 '선생님의' 생각이 너무나 놀랍고 새로워요!!"라고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며 경이로워하고 있을 때, 그래서 상대가 당연히 이미 알고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전제할 수 없을 때는, 아무리 Copyleft 입장에서 관용한다 할 지라도 최소한 그 오래된 발명철학의 원작자가 Negri와 자율주의 계열 그룹이라는 사실 정도는 반드시 밝혀줘야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면 그 땐 그건 미처 몰랐고 blog에서 읽은 거라 그런 식으로 여기저기 막 갖다 써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기라도 했던 것이란 말인가.

 


 
P.S.2
이하는 "의미의 공집합 '실재(계)’ = 환상의 장막에 불과한 ideology들과 지식들에 뚫린, 미처 가리지 못 한 틈과 균열들"이라고 주장하는 분의 댓글에 달아드렸던 명료한 상세 답글인데, 이 분이 댓글 전체를 삭제해버려서 동일한 혼동을 겪고 계실 의외로 많은 분들을 위해 간략히 복기하여 추가키로 한다. 




가상계라는 Stained glass 창문에 나있는 구멍과 그 창문 너머에 있는 실재(계) 


가상계의 장막

[가상계의 광의와 Deleuze-Massumi적 협의

(THE)
    ideal         상징                                             광
                    상상                                             의
    virtual    =    가상 (협의)                                             의

    possible                                                                가                   
                                                                             상
    potential                                                                계

    reality    = 見実[뵐현,볼견]/感実(/顯実)

               : 감각/경험된 현상적 겉보기 실재


    real      = 실재

    actual   = 現実 : 현행(화된)/실현(된) 실재
                  =確実(在) : 확정된 실재

    material
]





분절과 가산성, 그리고 그 역전!!




백상현이 (압축??)반복하는 Lacan주의의 발달 Pattern과 전망


그는 실지로 공집합을 언급할 때 "의미의"라는 필수불가결한 한정사를 완전히 빠트렸는데, 본인은 실수 등으로 주장할 지 모르나 이것이 바로 Post-modernism적 무의식의 전형적 증상 중 하나이다. (의미,가치, 목적은 모두 Homo sapiens종의 대뇌가 꾸며낸(, 또는 긍정적으로는 창조해낸) 환상 관념에 불과하며, 따라서 ’의미’ 자체는 의미가 없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의미 없음’도 전혀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절대적) ’없음/無/空’ 자체도 너무나 인간적인 관념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지만 실재(계)는 공집합이 전혀 아니고  오히려 시공(과 (암흑)Energy)의 존재 그 자체로 충만하게 꽉 채워져 있을 뿐만 아니라, 그 Stained glass 창 너머에 가만히 누워 있는 절대 정적과 침묵의 바다, 거대한 암흑의 벽이 아니라 매일 매순간 그 창문을 박살내고 난입해 들어오려는 타자들의 세계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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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izome 2018-02-28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특히 ’실재계의 난입’을 강조하는) 후기) Lacan주의 노선 자체와는 충분히 협력도 가능했겠지만, 본문과 같이 여러 가지를 이런 식으로 열심히 베껴먹으면서도 진지하고 성실한 대화는 회피하는 완전히 이중적 태도의 반복 때문에 애석하게도 더이상의 개인적 협력은 불가능하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