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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이전에는 전혀 신경을 못 쓰고 그냥 지나치던 {Classⓔ} Program을 주말에라도 틈틈이 챙겨 보려 노력하게 된 최초의 계기도 김석 선생님의 Lacan 강의 때문이었는데, Butler는 여러 사람들에게 {위대한 수업Great Minds}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유인이 되기 충분할 것입니다.

세계 지성계의 지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나 그 기여도를 고려할 때, 그래도 나름 외국 방송이라고 신경 쓰고 나오신 듯한 선택이 하필 동물피부 jacket이었다는 점이 실망스럽긴 하지만, 적잖은 분량의 강의안까지 정성스럽게 준비하신 배려심과 성실성에 대한 경의로 겨우 상감하면서 감히 드리고자 하는 간략한 제언은...



대부분의 강의가 너무 짧아 심도 확보가 전혀 안 되고 매우 단편적으로 수박 겉핥고 지나가기를 못 벗어나는 게 고질적 문제점일 것으로 보이나, 이를 최대한 보완하기 위해서는 이번처럼 강의안을 별도로 준비하신 경우만이라도 (사전에 가능하다면 더 좋겠지만) 반드시 같이 online 배포, 공유될 수 있도록 좀 더 노력을 기울여 주실 것과 특히 성우의 dubbing diction은 국문 자막의 필요성을 현격히 감쇠시키는 게 사실이긴 하나, 여전히 난청 등등 다양한 유형의 청각 장애를 갖고 있을지도 모를 다른 동료 시민들을 위해 {Classⓔ} Program에 준하는 꼼꼼한 자막 처리를 주관 기관들에 요청드리는 바입니다.[1]


또한 더 중요하게는 출연진이 너무 영미권, 특히 미국 거주자라는 사실이 강력하게 조건지을 인식의 편향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세계 각 지역의 다양한 지성들에게도 적극적 섭외 시도를 확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인구의 상당수가 영미권 강의 자료엔 직접 접근할 수 있는 여러 channel들이 날로 확대되고 있는 반면, 기타 언어권은 번역, 소개 등에 공영 방송과 기관들의 개입이 더욱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될 뿐 아니라, 특히 France나 독일 등의 경우 인문사회과학 등 광범한 분야에서 영미 학계를 압도함으로써, Butler 자신을 포함해 영미권에서도 유학 등 수입 및 추종에 급급한, 뿌리와 원천이 되고 있는 석학들과 그 학통들이 다수 존재하는데, 더구나 Jacques Ranciére, Jacques Attali나 Hito Steyerl처럼 이 지역 출장이 전혀 일정에 없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Badiou[2], Balibar[3], Jacques-Alain Miller 등이나 Bourdieu 후학단, Jacques Bidet, Dominique Lecourt, Pierre Macherey 그리고 바로 이웃한 Habermas, Axel Honneth[4] 등의 Frankfurt 학파와 Negri 주위의 post±Operaisti, Slovenia/Ljubljana 학단 등등은 물론이고, 경제학만 해도 Gérard Duménil, Dominique Lévy 하다못해 Thomas Piketty 등등의 거장들이 전멸에 가까울 정도로 완전히 배제된 점[5]은 거의 지역 차별에 해당할 정도여서 정말 매우 안타깝다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모쪼록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에서 힘들게 애써 주시는 점 전혀 모르는 바 아니오나 기왕 들이시는 노력들이 조금이라도 헛되지 않도록 그 모든 노고에 선행하는 근본적 방향 설정의 중요성에 관해서만이라도 약간의 신경을 더 경주해 마무리 지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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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중에 확인해보니 Butler까지는 재방 version에도 청각장애인용 자막지원조차 첨부되어 있지 않았음.

[2] 잘 알려진 직계제자인 서용순 선생님을 통하면 의외로 매우 빠르게 진척될 수 있음.

[3] 역시 직계제자인 배세진 선생님을 코디로 참여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매우 빨리 성사될 수 있음.

[4] 심지어 Honneth는 운이 좋으면 현재 Frankfurt( @Goethe Univ.)가 아니라 New York시( @Columbia Univ.)에 거주 중일 수 있음.
(겸직으로 되어있지만, 어쨌든 공식적으로는 매주 화요일 11~13시를 Office Hour로 운영 중.)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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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와 여성해방
주디스 오어 지음, 이장원 옮김 / 책갈피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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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저 자체는 (한심하게 만연된 무지의 red complex 때문에 과도하게 저평가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 가장 정통한 분석에 입각해 최근의 국제 상황들까지 페미니즘 역사와 최신 이론 정세들을 거의 모두 꿰뚫고 있는 현재까지 나온 가히 최고의 입문서 중 하나라 해도 흠잡을 데가 없는 저작이다.
번역도 매끄럽고 가독성도 좋으나 다만 한 가지, Radical feminism을 굳이 ’급진주의’ 페미니즘으로 오역하고 있어 그 의도와 태도에 의구심을 갖게 하고 다른 부분들까지 절대적 신뢰도를 의심받게 만드는 아쉬움이 있다.
원래 학술적으로는 거의 예외없이 ’~적’과 ’~주의적’이라는 용어 사이에는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큰 차이가 있고 심지어 종종 대립되기까지 한다.
대표적으로 이 분들이 신성시해 마지않는 ’Marx적’과 ’Marx주의적’이란 용어의 관계사가 그 비근한 일례를 구성하는데, 특히 ’Marx주의(적)’이란 말이 공식화된 교조로서의 Stalin주의 Soviet Ideology만을 유일하게 지시할 때 이에 ’대립’하며 이를 내재적으로 ’비판’하기 위해 다시 그 뿌리로 돌아가고자 했던 다양한 ’비정통적’ 사유와 방법론을 시도하는 사상체계들이 자신을 지칭할 때 사용했던 것이 바로 ’Marx적’이란 용어였듯이 이 경우도 ’Radical’과 ’Radicalism/Radicalist(ic)’은 큰 차이가 있고 엄밀하게 구분하여 사용되지 않으면 안된다.
당대에 ’Radical’은 차라리 ’과격한’에 가까운 의미로 사용되었던 어법인 반면 ’급진주의’나 ’Radicalism’은 사용하고 싶다면 동일한 text 안에 반드시 엄밀한 학술적 정의를 적시하여 대동하지 않으면 안되고 이 기초과정을 빼먹으면 최근의 제1어법으로 (후기) Judith Butler의 3세대 feminism을 포함하는 급진민주주의 소수자정치학, 좀더 전통적인 제2어법으로 사회자유주의/사회민주주의 내 좌파(나 때로 반자본주의 급진좌파), 미국색 짙은 제3어법으로는 Saul David Alinsky로 대표되는 Progressiv(e Liberal)ism 내 좌파를 지시하게 되어 완전히 다른 뜻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더구나 Marx주의 내에서는 전통적으로 급진주의라고 하면 거의 제2어법으로 사용되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바로 그 Marx주의 저작에서 원문의 훨씬 넓은 외연과 단순어법을 가진 ’radical’을 민감하고 risky한 학술 용어인 ’급진주의’로 번역한 것은 가장 아쉬운 오역적 개입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런 태도가 운동의 다른 단위들로부터 이 정파에 필요 이상의 반감과 비난을 불러오고 있는 일원인과 결코 무관하지 않기에 안타까운 마음에 몇 자 적어본다.





[이 후기는 사랑하는 동지들의 노고를 존중하여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질 때까지 상당 시간을 기다려 작성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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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5 17: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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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왼쪽 날개를 펴다 -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35인의 여성/노동/계급 이야기
낸시 홈스트롬 엮음, 유강은 옮김 / 메이데이 / 201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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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에 대해 심광현선생님께서 {교수신문}에 발표하셨던 서평입니다. 관심있는 분들께 좋은 참조점을 제공해 줍니다.
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25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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