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푼도 용서없다 동서 미스터리 북스 86
제프리 아처 지음, 문영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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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이 '머리가 아프기 때문에' 싫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범죄도 복잡하고, 탐정이 맨 뒷장에서 '범인은 이 사람이요!' 라고 밝히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안개 속에 가려진 채 독자의 궁금증만 유발하는, 결말이 나와도 뭔가 찝찝한 느낌이 남는 그런 소설들에 익숙해져서 추리소설을 마음에 안 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픈 소설이다. 유쾌한 코믹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작가의 글을 쭉 따라가면 부담 없이 결말에까지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줄거리 또한 단순명쾌하다. 미국인 백만장자에게 백만 달러 어치의 사기를 당한 네 사람이 공모하여 그들이 사기당한 백만 달러를 한푼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대로 되찾아 오기로 한다. 그래서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그들은 자기 직업의 특징을 살려 백만 장자에게 갖은 사기를 치는데.. 맨 마지막 페이지에는 역시 모종의 반전도 준비되어 있다. 더 이상의 언급은 스포일러가 될 테니 여기에서 그치도록 하겠다.

굳이 머리 쓸 필요 없이 흥얼대며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 새 결말에 도달해 있는 그런 소설이다. 그러나 그렇다는 것은 그만큼 소설 자체의 무게감은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체적으로 유쾌하고 코믹한 분위기가 흐르긴 하지만 머리 속에 묵직하게 각인되는 느낌은 거의 없다시피 한 편. 가볍게 읽고 싶은 소설을 찾을 때 추천하고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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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의 동서 미스터리 북스 39
프랜시스 아일즈 지음, 유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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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추리문고 재판' 은 아마 추리소설 매니아들에게 가장 반가웠을 소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세계 추리소설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 걸작들이 이렇게 다시 빛을 보게 되다니!! 사실 이 시리즈에 선정된 작품들은 하나 하나가 모두 빼어나기 그지없는 수작이지만, 그 중에서도 백미로 꼽힐 만한 작품 중의 하나가, 도서추리물 역사상 최고 걸작 중 하나인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 이다.

우리 나라 독자들에게 '도서추리'는 생소한 장르이다. 그러나 도서추리라는 말 대신 '콜롬보 식 추리' 라고 표현하면 대개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 탐정이 단서를 쫓아 범인을 잡는 일반적인 추리소설과는 정 반대로, 이런 장르의 소설에서는 먼저 범인이 등장한다. 그리고 범인이 범죄를 일으키는 과정과, 범인이 죄를 감추기 위해 경찰과 대립하는 모습 등등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범인의 알리바이 조작이라든지 단서를 세심하게 감추는 작업이 워낙 완벽해 보여서 독자는 이 사람이 과연 붙들릴까 하는 의심을 품게 되지만, 당연히(?) 범인은 어딘가에선가 실수를 저지르기 때문에 대부분 붙잡힌다. (하지만 범인이 완전범죄에 성공하는, 예외적인 소설도 있다) 이 소설에서도 범인은 물론 붙들린다. 그런데 <살의> 가 독특하게 평가받을 만한 점은 마지막 한 장의 충격적인 반전 때문이다. 어떤 반전이냐고? 절대 말할 수 없다. 직접 보고 평가하시길.

프랜시스 아일즈의 이 수작이 더 인상깊은 이유는, 단순히 독특한 구성과 충격적인 결말에만 있지 않다. 작가의 손끝에 그려진 사람들의 모습은 감히 '추악하다' 는 어구를 쓸 수 있을 만큼 사악한 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부인에게 시달리다 못해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주인공 버클리 박사를 절대 옹호할 수는 없지만, 한편으로 일말의 동정심을 갖게 되는 것은 사건에 얽힌 다른 인물들 역시 그다지 깨끗하다고는 할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 아닐까.

그리고 첫 번째 살인에 성공한 이후 스스로 타락해가며 두 번째, 세 번째 살인을 저지르려 하는 박사의 모습은 '살인은 습관' 이라는 저 유명한 크리스티의 명제를 되새기게 한다. 정말로 살인은 중독되는 것일까? 나는 아직 살인을 저질러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리뷰 제목에 적었다시피, 반가운 마음에 앞서 '왜 이제야 나온 것인가!!!' 라는 원망이 스쳐 지나갔던 작품이다. 그러나 그런 원망은 책을 펼쳐들고 읽는 순간 알아서 사라진다. 셜록 홈즈와 크리스티보다 한발짝 더 나아간, 정말 독특한 추리소설을 원하시는 분께 절대로 권하고 싶다. (또한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인 '독초컬릿 사건' 역시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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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드르 거장의 그림 열린책들 세계문학 216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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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르테의 소설은 흔히 움베르토 에코의 그것과 많이 비교되곤 한다. 추리 소설의 형식을 빌고는 있으나, 일반적인 추리 소설처럼 주된 사건의 수수께끼 풀이가 아닌, 전문 지식이 총동원된 독자와의 지적 유희가 책 내용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방식이 상당히 비슷하기 때문일까.

그러나 책을 펼쳐 보면 곧 알게 되겠지만, 레베르테의 글은 에코보다는 훨씬 쉽게 읽힌다. 그의 다른 작품인 <뒤마 클럽> 도, 지금 말할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 도 그렇다. 비교적 쉽게 채색된 에코 풍의 글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내가 이 책을 읽고 난 후 받은 느낌을 가장 적절하게 나타내줄 듯 싶다.

무엇보다 소재가 참신하다. 유명한 화가 반 다이크의 그림 속에 숨겨진 진실을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 추적해 나가는 과정은 상당히 독특하다 --- 그 수수께끼의 가장 큰 단서가 바로 그림 속에 그려진 체스판이기 때문에. 레베르테의 세밀한 묘사 덕분에, 체스의 달인이 그림 속의 체스판을 분석할 때마다 저절로 손에 땀이 쥐어질 정도다. (나는 체스를 전혀 모름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이 중세의 명화가 가진 비밀이 하나 하나 비밀이 벗겨져 나가며 소설이 클라이막스에 다다를 때마다 주인공에게는 위기가 닥친다. 문제는, 그 절정에 기다리고 있는 결말이 상당히 충격적이라는 것.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그 결말은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을 많이 읽은 사람이면 금방 알아낼 수 있는, 그런 결말이라는 점이다. 몇몇 독자들은 책을 덮고 난 뒤 '식상하다' 라는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그랬었다)

다시 서두로 돌아가자. 이 소설은 분명 에코와 많이 비슷하다. 그렇지만 그와는 또 엄청난 차이점이 있다. 에코 만큼의 치밀함과 흡인력은 떨어지지만, 생소한 소재를 사용하여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음에도 매우 쉽게 읽힌다.

책 속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전문 용어들도 글을 어렵게 한다기 보다는, 사건의 진행을 위해 필요한 양념 정도로 느껴지기 때문에, 이런 류의 소설치고는 부담없이 편하게 볼 수 있다는 게 최고의 장점 아닐까 싶다. 그리고 덤으로, 글을 통해 이색적인 스페인의 풍물과 정취를 느껴볼 수 있다는 것 또한 중세 그림 속으로 떠나는 여행 못지 않게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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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 상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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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은 '세계에서 가장 지적인 추리소설'이라는 찬사를 받는 작품이다. 거장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들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히는 밀리언셀러이기도 하다. 이렇게 찬사 가득한 서평에 끌려 책을 펼쳐 보면 일단 문장의 어려움과 엄청난 각주에 놀란다. 초반에 급습해 오는 이런 압박을 극복하고 읽어 나가다 보면 배경의 특이함에 또 놀란다.

이야기의 배경은 사람들에게 흔히 암흑시대로 알려진 중세, 그것도 모자라 범죄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힘든 엄숙하고 명망 높은 수도원이다. 홈즈 역의 윌리엄 신부도, 왓슨인 아드소도 신을 받드는 성직자들이다. 이래서야 무슨 얘기가 될까 싶지만 윌리엄 신부 일행이 수도원에 도착한 후부터 사건은 빠르게 전개된다.

영국 출신 수도사인 윌리엄 신부는 살인 사건에 대한 일종의 의뢰를 받고 수도원에 도착할 때부터 셜록 홈즈의 선조다운 비범한 추리력을 선보인다. 그러나 탐탁찮은 태도를 보이는 수도원장이며 척 봐도 수상한 장서관, 수도사들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기류가 소심한 성격인 이야기꾼 아드소를 움츠러들게 한다. 그리고 연달아 일어나는 살인사건들 --- 기나긴 줄거리를 몇 줄로 요약하자면 이 정도가 될까.

그러나 중간에 삽입된 여러 신학적 논쟁들이며 수도원과 장서관에 관한 아름다우면서도 난해한 묘사들을 빼면, 사건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부연설명을 다 뺀 플롯은 간단해서 눈치 빠른 사람들은 금방 범인을 알아낼 수 있을 정도다. 어찌 보면 뻔하다 싶은 결말은 지식의 홍수를 힘겹게 헤쳐 가며 끝까지 온 독자들을 허무하게 만들기엔 충분하다.

그러나 이 소설을 고전으로 만드는 것은 추리소설 외적인 부분들이다.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해박한 에코의 중세 관련 지식들은 읽는 사람이 마치 그 시대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나' 로 묘사되는 1인칭 화자가 등장하는 점도 그렇고, 지극히 세밀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수도원에 대한 묘사나 그 당시 여러 가지 종교 분쟁으로 어지러웠던 시대 상황을 반영하는 수도원장과 윌리엄 신부의 대화 등등이 그렇다.

또한 딱딱하고 엄숙한 중세 수도사의 이미지를 탈피한, 명랑하면서도 냉소적인 면이 있는 윌리엄 신부는 참 매력적인 인물이다. 간간이 나오는 그의 유쾌한 농담은 난해한 문장 해석에 지친 머리에 시원한 청량제가 되어 준다고 평가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일까. 어렵다는 말이 서평의 주를 이루고 있지만, 단언하건대 이 책은 분명히 재미있다.

오히려 어려운 책이기 때문에 더욱 재미있었다는 표현을 감히 하고 싶다. 내가 몰랐던 지식들을 새롭게 알아 가는 과정이나 사건의 이면에 담긴 숨은 뜻을 파악하는 작업, 그리고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배하고 있는 긴 문장과 각주와의 전투는 신선한 재미를 주었다. 읽고 난 뒤에 뭔가를 확실히 얻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책을 덮기 전에 생각해보자. 단순히 '범인이 이 사람이었구나' 라는 정도에서 그치면 곤란하다. '장미의 이름'을 관통하고 있는 키워드는 지식이다. 책 자체가 중세 기독교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담고 있기도 하지만, 중심 사건의 원인 역시 장서관이 감추고 있는 지식이었다. 지식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지식이 금기의 이름으로 감춰지면 스스로 권력을 갖게 되고 사람을 지배하게 된다. 살인의 원인이 된 금기된 지식은 알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니다. 단지 비밀이라는 사실 때문에 본래보다 훨씬 큰 위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중세를 괜히 암흑시대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지식이 성직자들에 의해 독점되어 무기화되었던, 따라서 일반 대중들은 지식의 암흑 속에 갇혀 있던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를 끝내고 근세를 연 원인 중 하나가 지식을 널리 공유하는 인쇄술이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만약 인쇄술이 더 일찍 발명되었다면 소설 속에서 희생된 수도사들은 죽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 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보았다. 여러분들은 <장미의 이름>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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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2006-06-19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윌리엄 수도사는 많은 오류를 가지고 추리를 이끌어가지만, 우연이라는 행운을 만나서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있었다고 고백하죠. 추리 소설이지만, 진실에 이르는 과정은 많은 우연을 담고 있고 그 속에서 근대와 중세의 대결, 진리에 대한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경고를 잘 보여준 소설이라고 생각됩니다. 직관적으로 범인을 알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전말을 알기에는 전개과정에 우연성이 많이 포함되어 있...
 
그린마일 - 페이퍼백
스티븐 킹 지음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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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나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머쓱하게 닦아 내야만 했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벅찬 감동과 쓰라린 가슴아픔을 함께 느끼며 저절로 뜨거워지는 눈시울. 너무나도 선한 사람이 가장 비열하고 잔혹한 죄를 뒤집어쓰고 억울하게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차라리 고역이었다. 나중에 양로원에서 자신의 과거를 담담히 회상하는 주인공 ---- 그리고 그 모든 얘기를 증명해 주는 작은 생쥐 한마리. 이 장면에서 갑자기 쏟아져 내리는 눈물. 도대체 이 소설을 어떻게 정의내려야 할지 모르겠다. 그만큼 찡하게 마음을 울리는 뭔가가 있었다. 단순히 감동이라고 할 수도, 분노라고도 할 수도 없는 묘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버린 느낌이었다.

나는 나름대로 스티븐 킹의 팬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이고, 때문에 그의 소설도 번역 출간된 것은 거의 다 읽었다. 대부분 스티븐 킹을 공포 호러소설의 대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갑부작가 정도로만 인식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을 곰곰히 읽어보면 작품 이면에, 인간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휴머니즘과, 잔혹한 비인간성에 대한 고발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 바로 '그린 마일' 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스티븐 킹의 다른 소설과는 달리 전혀 무섭지 않다. 때로는 가슴 벅차게, 때로는 아련하게 슬프다. 아마 가장 큰 감동을 전해주는 작품일 거라고---적어도 우리나라에 번역된 것 중에서는---생각한다.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 도 공포가 아닌 다른 뭔가를 전달하려고 했다는 점에서는 '그린 마일' 과 비슷하지만 감동의 크기는 '그린 마일' 쪽이 훨씬 더 크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스티븐 킹이 단순히 재미만을 추구하는 공포 호러소설을 쓰는 작가인가? 그는 종종 그런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혹평을 듣곤 한다. 스티븐 킹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진 분들은 꼭 읽어보시기 바란다. 그는 아무 내용 없는 환상 공포소설만을 쓰는 작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히 느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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