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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의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39
프랜시스 아일즈 지음, 유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동서 추리문고 재판' 은 아마 추리소설 매니아들에게 가장 반가웠을 소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세계 추리소설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 걸작들이 이렇게 다시 빛을 보게 되다니!! 사실 이 시리즈에 선정된 작품들은 하나 하나가 모두 빼어나기 그지없는 수작이지만, 그 중에서도 백미로 꼽힐 만한 작품 중의 하나가, 도서추리물 역사상 최고 걸작 중 하나인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 이다.
우리 나라 독자들에게 '도서추리'는 생소한 장르이다. 그러나 도서추리라는 말 대신 '콜롬보 식 추리' 라고 표현하면 대개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 탐정이 단서를 쫓아 범인을 잡는 일반적인 추리소설과는 정 반대로, 이런 장르의 소설에서는 먼저 범인이 등장한다. 그리고 범인이 범죄를 일으키는 과정과, 범인이 죄를 감추기 위해 경찰과 대립하는 모습 등등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범인의 알리바이 조작이라든지 단서를 세심하게 감추는 작업이 워낙 완벽해 보여서 독자는 이 사람이 과연 붙들릴까 하는 의심을 품게 되지만, 당연히(?) 범인은 어딘가에선가 실수를 저지르기 때문에 대부분 붙잡힌다. (하지만 범인이 완전범죄에 성공하는, 예외적인 소설도 있다) 이 소설에서도 범인은 물론 붙들린다. 그런데 <살의> 가 독특하게 평가받을 만한 점은 마지막 한 장의 충격적인 반전 때문이다. 어떤 반전이냐고? 절대 말할 수 없다. 직접 보고 평가하시길.
프랜시스 아일즈의 이 수작이 더 인상깊은 이유는, 단순히 독특한 구성과 충격적인 결말에만 있지 않다. 작가의 손끝에 그려진 사람들의 모습은 감히 '추악하다' 는 어구를 쓸 수 있을 만큼 사악한 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부인에게 시달리다 못해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주인공 버클리 박사를 절대 옹호할 수는 없지만, 한편으로 일말의 동정심을 갖게 되는 것은 사건에 얽힌 다른 인물들 역시 그다지 깨끗하다고는 할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 아닐까.
그리고 첫 번째 살인에 성공한 이후 스스로 타락해가며 두 번째, 세 번째 살인을 저지르려 하는 박사의 모습은 '살인은 습관' 이라는 저 유명한 크리스티의 명제를 되새기게 한다. 정말로 살인은 중독되는 것일까? 나는 아직 살인을 저질러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리뷰 제목에 적었다시피, 반가운 마음에 앞서 '왜 이제야 나온 것인가!!!' 라는 원망이 스쳐 지나갔던 작품이다. 그러나 그런 원망은 책을 펼쳐들고 읽는 순간 알아서 사라진다. 셜록 홈즈와 크리스티보다 한발짝 더 나아간, 정말 독특한 추리소설을 원하시는 분께 절대로 권하고 싶다. (또한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인 '독초컬릿 사건' 역시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