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관중도 몰랐던 삼국지이야기
김재웅 지음 / 청년사 / 2000년 10월
평점 :
품절
나관중이 지은 삼국지연의를 읽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흔히들 연의에 기록되어 있는 역사가 진실 그 자체라고 여기고, 정말로 적벽에서 온갖 화려한 계략들이 난무하고 관우가 화용도에서 조조를 놓아 주었다고 생각하며 사마의는 제갈량에게 항상 골탕만 먹고 살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것들은 정사(正史)인 진수의 삼국지에는 언급되지 않거나 다르게 나와 있는 것들이다.
이 책에서는 나관중의 연의에서 역사적 사실과 다른 부분을 짚어내고, 무장과 모사들이 국가에 공헌한 만큼 능력을 서열화시켜 기록하고 있다. 특히 삼국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무장과 모사들의 순위를 매긴 것이 참신한 발상으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저자가 책을 쓰면서 지나치게 '연의와 정사가 다른 점이 무엇이냐' 에 치중한 나머지, '왜 나관중은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이런 방식으로 연의를 써야만 했을까?' 에 대한 해석이 빈약한 듯 싶다.
내 개인적인 소견은 이렇다. 나관중은 단지 뛰어난 소설가일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깊은 소양을 가진 교양인이었다. 지금보다 사료도 더 풍부했을 명나라 시기에 나관중이 '몰랐다는 이유로', 실질적인 패자(覇者)였던 조조가 아닌 유비를 정통으로 삼아 연의를 저술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삼국시대 이래로 중국은 오호십육국 시대, 남북국 시대를 거쳐 통일왕국 시대였던 수당시대로 접어들고, 당나라 멸망 후의 짧은 혼란기를 지나 송 왕조에 의해 다시 통일되었다.
송 왕조는 북방 민족인 금나라의 침입을 받아 강남 지역으로 쫓겨가 남송 왕조가 되고, 남송 왕조를 멸망시킨 원나라의 100여년간의 중원 지배 끝에 들어선 것이 명나라 - 즉 나관중이 살던 시대인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각 왕조마다 삼국지의 정통론이 항상 바뀌었다는 점이다. 특히 같은 왕조라 할 수 있는 송대에도, 북송 시대에는 조조의 위나라를 정통으로 보았지만 남송 시대에는 유비의 촉나라를 정통으로 보는 등 차이가 상당했다. 이 책에는 삼국지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논제인 '정통론' 에 관한 논의가 부실한 것처럼 느껴진다. 이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나관중은 당시 사회에 일반적으로 팽배해 있던 '촉한정통론' 에 따라 삼국지 연의를 썼기 때문이다. 모르기 때문에 멋대로 사실을 윤색한 것이 아니다. '알면서도' 그렇게 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대한 배경이 더 자세히 나왔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삼국지 연의를 보는 또 다른 시각 - 역사왜곡 - 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몇 마디 하고 싶다. 연의(演義)는 역사서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소설이다. 소설은 허구의 문학이고, 비록 소설이 역사에 기초하고 있다 하더라도 필연적으로 허구가 섞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아니, 허구가 섞이지 않으면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로 분류될 수 없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나관중의 '역사왜곡(?)'에 더욱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는 밋밋한 사실을 자신의 독특한 필체로 해석하여 문학적 감동을 주는 훌륭한 작품으로 만들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소설가의 역량이다. 이 사실을 가지고 '원래는 이런데 이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혹은 몰라서 이렇게 했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연의는 어디까지나 연의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연의에 적힌 허구와 정사에 나온 사실을 구분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정사의 기록을 가지고 연의를 폄하하거나, 또 연의의 허구를 여과 없이 그대로 믿어 버리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비단 이 책 뿐만 아니라, 앞으로 삼국지에 관련된 수많은 도서들을 읽어 나갈 분들께 꼭 해드리고 싶은 충고이다.
1분중 0분께서 이 리뷰를 추천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