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 시공 로고스 총서 2 시공 로고스 총서 2
데이비드 매클릴런 지음, 정영목 옮김 / 시공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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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 나라에 알려져 있는 모든 사상가들 중, 칼 마르크스처럼 유명한 서양 사상가는 없을 것이다. 또한 마르크스처럼 사상계에 커다란 파장을 끼친 사상가도 없을 것이고 - 마르크스처럼 왜곡된 모습으로 알려진 사상가 또한 다시 없을 것이다. 사실 학생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한 60년대 이후부터, 마르크스의 저서들은 위험한 혁명 사상을 담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 대부분 위험한 서적으로 취급당했고, '자본론' 같은 책을 들고 다니는 대학생은 졸지에 불순한 사상을 지닌 사람으로 전락해 버리는 등 - 마르크스의 사상은 우리 나라에서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아직까지도, 몇몇 보수적인 기성 세대는 마르크스의 이름만 들어도 눈살을 찌푸릴 정도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마르크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현재 사람들이 흔히 '공산주의' 라고 생각하는 이념은 마르크스의 공산주의가 아닌, 레닌과 스탈린 같은 사람들이 왜곡시키고 굴절시킨 마르크스의 사상이다. 또한 마르크스가 무작정 투쟁하고 혁명할 것만을 주장한 것도 아니고, 자본주의를 맹목적으로 반대하기만 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조국의 분단과 이념 대립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으로 인해, 우리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객관적이고 순수한 태도로 바라볼 수 있는 자세를 잃어 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정말로 반갑다. 난해한 감이 없지 않은 마르크스의 사상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쉽게 풀어 썼다. 그대로 놓아두면 저절로 딱딱한 뱡항으로 흘러가 버리는 것이 소위 사상서적이라는 책들인데, 작가는 맨 처음에 마르크스의 삶에 대해 간략하게 저술하고 그의 삶과 사상을 연결지어서 이런 분야엔 문외한인 일반 독자들도 읽기 편하게 만들었다. 책의 크기도 작고 두께도 얇으며 글씨까지 큼직하다. 그러면서도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마르크스 사상의 요점은 알아서 딱딱 끄집어 언급하고 있다. 중간중간에 보이는 오자들(책이 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책들보다 많은 양이다)과 체계적인 정리가 조금 모자란 것을 빼면, 마르크스 사상의 입문서로서는 그야말로 '괜찮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책 서두에서, 저자는 '마르크스만큼 현대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친 사상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라고 한탄(?)비슷한 어조로 말한다.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따라서 특히 우리나라에 이 책이 번역되어 나온 것이 매우 반갑다. 마르크스의 사상은 현대의 사회, 정치사상의 뿌리를 이루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케케묵은 이상주의자의 헛소리가 아니라 우리의 생활에 생생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살아 있는 사상인 것이다. 21세기를 맞아 우리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는 칼 마르크스. 사상이란 무조건 어렵고 골치아프다 - 라는 선입견을 벗어 던지고, 위대한 사상가와의 지적 대화를 나누어 보심이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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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중국인의 일상생활
자크제르네 / 신서원 / 199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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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서점에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와 같은, 옛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초점을 맞춘 책들이 시리즈로 출간되는 것을 보고 기뻐했었다. 사실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대개 왕조 이름 외우는 것부터 시작하여, 그 당시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적 업적 같은 것을 딱딱하게 암기하는 재미 없고 어려운 역사다. 역사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대개 이런 이유로 역사를 싫어한다. 지루한 암기 과목이라는 소리다.

그러나 시각을 조금 바꾸어, 옛 사람들이 실제로 살았던 '모습' 에 초점을 맞추어 보는 것은 어떨까. 옛날에도 시장에는 사람들이 북적북적 모여 장사를 했고, 커다란 도시에는 소방관이나 경찰관처럼 요즘에 필수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명절날에는 모두 나들이 옷을 차려입고 야외로 나와 경치를 즐기며 노는 것 까지 - 사실 옛 사람들의 생활은 지금의 우리와 그다지 다를 바 없다. 이렇게 친근한 주제에서부터 역사 공부를 시작하면 역사가 어렵고 따분한 학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옛 중국, 특히 남송 시대의 수도 항주에 살았던 중국인들의 일상생활에 초점을 맞춰 저술한 이 책은 상당히 반갑게 느껴졌다. 중국 역사는 그야말로 방대하다. 딱딱한 사서(史書)읽기부터 시작하면 역사에 특별한 취미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아마 하품부터 나올 것이다. 그러나 옛 중국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아는 것에서부터 역사 읽기를 시작하면 - 엄청난 스케일의 중국 역사를 배어 가는 것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전통중국인의 일상생활' 은 평이한 제목과는 달리, 심심풀이나 흥미거리 정도로 가볍게 읽고 넘길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깨알같은 글씨가 빽빽히 들어찬 책장을 보면서 한숨부터 내쉴 사람이 분명히 있으리라. 또한 당시의 풍속과 일상생활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필요 이상' 으로 자세하고 꼼꼼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법률이나 제도를 서술하고 있는 부분에서는 졸음마저 온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이런 저자의 친절함(?)은 옛 중국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속속들이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매우 도움이 된다. 수박 겉핥기 식으로 스윽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수박의 속 알맹이의 정체까지 확실히 알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온고지신(溫古之新)이라는 말이 있고,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도 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건 어쩌면 900여년 전, 100만이 넘는 인구를 자랑하는 북적거리는 거대 도시 속에서 바쁘게 살아갔던 항주의 신민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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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지혜 - 그림과 함께 보는 서양철학사
B.러셀 지음, 이명숙 외 옮김 / 서광사 / 199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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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러셀은 한마디로 '대단한' 사람이다. 저명한 수학자이자 노벨 문학상까지 받은 저술가이며 20세기 철학사에 한 획을 그은 철학자인데다가 반전, 반핵 시위를 주도했던 평화주의자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의 철학은 너무나도 난해해서, 철학을 전공하지 않고 그저 교양으로 배우던 나에게는 말 그대로 '넘을 수 없는 산' 처럼 보이는 사람이었다.

서양철학을 교양으로 배우기 시작하면서 먼저 눈길이 갔던 책이 러셀의 '서양철학사' 였다. 책을 펼쳐 조금 읽어 보고 '...어려워' 라고 생각했다. 그 책을 덮고 다시 서가에 꽂아 넣으려던 순간 옆에 있던 노란 빛깔의 조금 큰 책이 눈에 띄었다. 러셀이 서양철학사를 집필하고 난 후 여러 해가 지난 다음에 새로 쓴 책이라고 했다. 펼쳐 보니 여러 가지 그림들이 보였다. 게다가 문체도 서양철학사보다는 조금 더 평이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서양철학사가 아닌 '서양의 지혜' 를 선택했다.

여태 여러 권의 철학사 책을 읽어보았지만 '서양의 지혜' 처럼 나를 생각의 도가니 속으로 빠뜨린 책은 없었다. 확실히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은 결코 객관적이지 않다' 라는 것이다. 상당히 많은 철학사 책들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철학자의 사상들과 그들의 일생을 객관적, 단편적으로 죽 나열하고 있는 데 반해, 러셀은 어떤 철학자의 사상과 인생에 대해 설명하면서 거기에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덧붙여 '살아 있는 글' 을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체계적이지 않다.

예를 들자면 플라톤의 사상에 관해 이야기할 때, 내용의 절반 이상을 소크라테스와 피타고라스 학파의 사상을 설명하는 데 할애하고 있는 것 등이다. (그러므로 플라톤을 설명하고 있으므로 다른 책들처럼 플라톤에 관한 것만 나오리라고 생각할 일반 독자들은 얼마나 놀라겠는가!)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점, '목적을 위한 수단의 무조건적인 정당화' 로 비난받았던 마키아벨리즘을 약간 다른 입장에서 해석한 점 등이 눈에 띈다. 글 속에 러셀의 의견이 들어 있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생각'을 할 수 있다. 옳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동조하고, '그래도 저건 아니야' 라고 여기는 대목은 반박하는 등, 글을 통해서 저자와의 대화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러셀의 독창적인 의견과 해석 때문에 단점 또한 존재한다. 아까 밝혔다시피 이 책은 체계적이지 않다.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상이 꽤 들쑥날쑥하게 등장한다. 그래서 가끔 갈피를 잡지 못하고 글 속에서 헤맬 때가 있다. 또한 러셀이 뛰어난 수학자이기 때문에,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목적으로 수학에 관련된 도식이 많이 등장한다. 그 덕분에 본인과 같은 수학 공포증 환자는 가끔 그 도식들 때문에 더더욱 사상을 이해하기 힘든 적도 있었다. 따라서 철학에 관한 기본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권해 주고 싶지 않다.

비록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평하긴 했지만 - 이 책은 대단한 책이다. 무엇보다도 러셀이라는 인물의 지식의 폭과 깊이가 여실히 드러나 보인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내내 '나는 이 철학자의 사상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고 있소. 당신은 어떻소?' 라고 문제를 제기한다. 단순히 책을 읽고 지식을 암기하는 것이 아닌, 생각할 꺼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래서 러셀의 전기들을 읽는 것 보다는, 오히려 그의 저술을 읽으며 사람됨을 판단하는 것이 효과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서양철학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진지하게 어려운 독서를 해보고 싶은 분들께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서양의 지혜' 는 절대 쉽게 읽고 넘어갈 책이 아니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말 그대로 '지혜'를 쌓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씌어진 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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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중도 몰랐던 삼국지이야기
김재웅 지음 / 청년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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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중이 지은 삼국지연의를 읽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흔히들 연의에 기록되어 있는 역사가 진실 그 자체라고 여기고, 정말로 적벽에서 온갖 화려한 계략들이 난무하고 관우가 화용도에서 조조를 놓아 주었다고 생각하며 사마의는 제갈량에게 항상 골탕만 먹고 살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것들은 정사(正史)인 진수의 삼국지에는 언급되지 않거나 다르게 나와 있는 것들이다.

이 책에서는 나관중의 연의에서 역사적 사실과 다른 부분을 짚어내고, 무장과 모사들이 국가에 공헌한 만큼 능력을 서열화시켜 기록하고 있다. 특히 삼국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무장과 모사들의 순위를 매긴 것이 참신한 발상으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저자가 책을 쓰면서 지나치게 '연의와 정사가 다른 점이 무엇이냐' 에 치중한 나머지, '왜 나관중은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이런 방식으로 연의를 써야만 했을까?' 에 대한 해석이 빈약한 듯 싶다.

내 개인적인 소견은 이렇다. 나관중은 단지 뛰어난 소설가일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깊은 소양을 가진 교양인이었다. 지금보다 사료도 더 풍부했을 명나라 시기에 나관중이 '몰랐다는 이유로', 실질적인 패자(覇者)였던 조조가 아닌 유비를 정통으로 삼아 연의를 저술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삼국시대 이래로 중국은 오호십육국 시대, 남북국 시대를 거쳐 통일왕국 시대였던 수당시대로 접어들고, 당나라 멸망 후의 짧은 혼란기를 지나 송 왕조에 의해 다시 통일되었다.

송 왕조는 북방 민족인 금나라의 침입을 받아 강남 지역으로 쫓겨가 남송 왕조가 되고, 남송 왕조를 멸망시킨 원나라의 100여년간의 중원 지배 끝에 들어선 것이 명나라 - 즉 나관중이 살던 시대인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각 왕조마다 삼국지의 정통론이 항상 바뀌었다는 점이다. 특히 같은 왕조라 할 수 있는 송대에도, 북송 시대에는 조조의 위나라를 정통으로 보았지만 남송 시대에는 유비의 촉나라를 정통으로 보는 등 차이가 상당했다. 이 책에는 삼국지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논제인 '정통론' 에 관한 논의가 부실한 것처럼 느껴진다. 이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나관중은 당시 사회에 일반적으로 팽배해 있던 '촉한정통론' 에 따라 삼국지 연의를 썼기 때문이다. 모르기 때문에 멋대로 사실을 윤색한 것이 아니다. '알면서도' 그렇게 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대한 배경이 더 자세히 나왔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삼국지 연의를 보는 또 다른 시각 - 역사왜곡 - 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몇 마디 하고 싶다. 연의(演義)는 역사서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소설이다. 소설은 허구의 문학이고, 비록 소설이 역사에 기초하고 있다 하더라도 필연적으로 허구가 섞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아니, 허구가 섞이지 않으면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로 분류될 수 없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나관중의 '역사왜곡(?)'에 더욱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는 밋밋한 사실을 자신의 독특한 필체로 해석하여 문학적 감동을 주는 훌륭한 작품으로 만들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소설가의 역량이다. 이 사실을 가지고 '원래는 이런데 이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혹은 몰라서 이렇게 했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연의는 어디까지나 연의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연의에 적힌 허구와 정사에 나온 사실을 구분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정사의 기록을 가지고 연의를 폄하하거나, 또 연의의 허구를 여과 없이 그대로 믿어 버리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비단 이 책 뿐만 아니라, 앞으로 삼국지에 관련된 수많은 도서들을 읽어 나갈 분들께 꼭 해드리고 싶은 충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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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의 여인들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7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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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등장하는 4명의 여인들은 사회와 문화, 정치, 예술, 종교의 모든 분야에 새 바람을 일으켰던 르네상스 - 그 격변의 시대의 중심에 섰던 사람들이다. 그중 두 여인은 폭풍같았던 시대를 자신의 힘으로 헤쳐 나갔으며, 다른 두 여인은 시대의 격류에 휩쓸려 어찌 보면 불행하다고도 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간 여인들이었다. 시오노 나나미는 특유의 간결하고 깔끔한 문체와, 그러면서도 역사 속의 인물을 현재 생존하는 사람처럼 살려 내는 그녀만의 탁월한 능력으로 자칫하면 역사의 책갈피 속에 묻혀 버렸을 네 여인을 활자 속에서 숨쉬게 만들었다.

책 자체가 두껍고 내용이 방대하기 때문에 네 여인 전부를 소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내가 제일 관심있게, 그리고 안타깝게 보았던 여인은 밀라노의 스포르차 가문의 딸인 카트린 스포르차였다. 네 사람의 여성들 중 가장 현대적인 기질을 가지고, 비록 결말은 비극적이었다고 하나 -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최선을 다해 개척해 나가려 했던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귀족 여자들은 집에서 가만히 바느질이나 하고 노래나 부르는 것이 미덕이었던 시절, 카트린은 위기에 처한 자신의 성을 구하기 위해 남자들처럼 갑주를 입고 칼을 들고 싸웠다. 남자들도 겁먹을 만한 배짱과 뛰어난 수완으로 당시 모든 이들이 벌벌 떨었던 체사레 보르자와 대결했으나 - 결과는 비극적인 패배로 끝났다. 그러나 그녀의 패배는 진정한 패배가 아니었다. 메디치 가였던 세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 - 조반니가 성장해서 토스카나 대공 코시모 1세의 아버지가 되고, 그녀의 핏줄이 전 유럽의 귀족 가문과 황실 가문으로 퍼져 나가게 된 것이다. 결국 역사 속의 최후의 승리자는 체사레가 아닌 카트린이었던 셈이라고 보아도 지나친 비약은 아닐 듯 싶다.

여기서는 카트린에 대한 이야기만 했지만, 책에 다루어진 다른 세 여성들 역시 나름대로의 매력과 사연을 가지고 있다. 자의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든 타의에 의해 강요된 것이든 간에 - 이 책에 등장한 모든 여인들은 르네상스라는 역사의 대 전환점을 불꽃처럼 살다 간 것이다. 과연 이 여인들의 삶이 숨가쁘게 돌아가는 21세기 현대 여성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없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없이, 급히 흘러가는 시대의 물살 속에 수동적으로 자신을 맡기고 생각 없이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과거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고, 우리는 미래를 알기 위해 역사를 읽는다. 시오노 나나미의 뛰어난 필력으로 되살아난 '르네상스의 여인들' 역시, 현재와 미래를 보여 주는 거울로서 전혀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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