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르네상스의 여인들 ㅣ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7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2년 1월
평점 :
이 책에 등장하는 4명의 여인들은 사회와 문화, 정치, 예술, 종교의 모든 분야에 새 바람을 일으켰던 르네상스 - 그 격변의 시대의 중심에 섰던 사람들이다. 그중 두 여인은 폭풍같았던 시대를 자신의 힘으로 헤쳐 나갔으며, 다른 두 여인은 시대의 격류에 휩쓸려 어찌 보면 불행하다고도 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간 여인들이었다. 시오노 나나미는 특유의 간결하고 깔끔한 문체와, 그러면서도 역사 속의 인물을 현재 생존하는 사람처럼 살려 내는 그녀만의 탁월한 능력으로 자칫하면 역사의 책갈피 속에 묻혀 버렸을 네 여인을 활자 속에서 숨쉬게 만들었다.
책 자체가 두껍고 내용이 방대하기 때문에 네 여인 전부를 소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내가 제일 관심있게, 그리고 안타깝게 보았던 여인은 밀라노의 스포르차 가문의 딸인 카트린 스포르차였다. 네 사람의 여성들 중 가장 현대적인 기질을 가지고, 비록 결말은 비극적이었다고 하나 -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최선을 다해 개척해 나가려 했던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귀족 여자들은 집에서 가만히 바느질이나 하고 노래나 부르는 것이 미덕이었던 시절, 카트린은 위기에 처한 자신의 성을 구하기 위해 남자들처럼 갑주를 입고 칼을 들고 싸웠다. 남자들도 겁먹을 만한 배짱과 뛰어난 수완으로 당시 모든 이들이 벌벌 떨었던 체사레 보르자와 대결했으나 - 결과는 비극적인 패배로 끝났다. 그러나 그녀의 패배는 진정한 패배가 아니었다. 메디치 가였던 세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 - 조반니가 성장해서 토스카나 대공 코시모 1세의 아버지가 되고, 그녀의 핏줄이 전 유럽의 귀족 가문과 황실 가문으로 퍼져 나가게 된 것이다. 결국 역사 속의 최후의 승리자는 체사레가 아닌 카트린이었던 셈이라고 보아도 지나친 비약은 아닐 듯 싶다.
여기서는 카트린에 대한 이야기만 했지만, 책에 다루어진 다른 세 여성들 역시 나름대로의 매력과 사연을 가지고 있다. 자의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든 타의에 의해 강요된 것이든 간에 - 이 책에 등장한 모든 여인들은 르네상스라는 역사의 대 전환점을 불꽃처럼 살다 간 것이다. 과연 이 여인들의 삶이 숨가쁘게 돌아가는 21세기 현대 여성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없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없이, 급히 흘러가는 시대의 물살 속에 수동적으로 자신을 맡기고 생각 없이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과거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고, 우리는 미래를 알기 위해 역사를 읽는다. 시오노 나나미의 뛰어난 필력으로 되살아난 '르네상스의 여인들' 역시, 현재와 미래를 보여 주는 거울로서 전혀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1분중 0분께서 이 리뷰를 추천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