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공간 - 세계화.신체.유토피아, 한울공간환경시리즈 14 한울공간환경 14
데이비드 하비 지음, 최병두 외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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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에서 하비의 출발점은 outopia에 대한 일반적 정의에 대한 반항이다. 이것은 '어디에도 없는 공간'이 아니라 '희망의 공간'이며, 타락한 유토피아를 거부한 변증법적 유토피아를 의미한다. 유토피아가 항상 실패한 것은 그 '불가능한 현실' 때문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명시적인 거부 시도들, 부르주아와 한 줌의 통치자들에 의해 계획된 타락한 전망 때문이다. 이 목표는 인류사에서 소멸되지 않는 잠재성으로서 현실 구성에 영향을 끼쳐 왔다. 하비는 이러한 가능성을 맑스의 [자본론]과 [선언]으로부터 도출해 낸다. 하비에 의하면 맑스의 텍스트들은 맑스 생존 시보다 지금에 와서 더 적실해 진 것이다.

문제는 변증법적 유토피아의 전망을 가능한 현실로 주조해 내는 방식이다. 하비는 이것을 지리-유물론적 시도로 지칭한다. 공간적인 형태의 유토피아가 항상 시간적인 방면에서 실패한 것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변증법적 이해와 실천이 늘 적정 수준에 미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실패한 시도들 모두가 가치 없는 것은 아니다. 시도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유령과 같다.

부정적인 방식으로 '타락한 유토피아'를 제시하는 것은 새로운 유토피아의 전망에 유익하다. 하비는 이 타락한 유토피아의 여러 예들을 제시한다. 그 자신이 거주하는 볼티모어는 어떤 식으로 자본과 국가가 공간의 변형을 통해 인간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지에 대한 대표적인 예가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이 책의 [부록]편을 통해 하나의 꿈을 제시한다. Edilia. 한 편의 작은 소설 같은 이 편은 하비와 (일신한 의미에서) 유토피아주의자들이 왜 항상 꿈꾸는 것을 포기할 수 없는지에 대한 심원한 에필로그와 같다.

가독력이 떨어지는 부분이 많이 보인다. (더불어 비문도) 좋은 책이긴 한데 번역 상의 난해함(?)이 보일 때마다, 번번히 번역자들의 노고를 높이 사는 것보다 그들의 오류를 지적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고 싶지는 않다. 내가 읽은 것은 2001년 초판이고 재판에서는 상당부분 교정되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을 내서 영문판을 함께 읽으면 그만이다. 번역 때문에 투덜거리는 것까지는 좋지만, 책 전체를 힐난하는 속좁은 짓은 하지 않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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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이라는 유령 - 네그리와 하트의 제국론 비판 이매진 컨텍스트 14
알렉스 캘리니코스 외 지음, 고팔 발라크리슈난 엮음, 김정한 옮김 / 이매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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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Empire]이 출간된 지도 7년이 흘렀다. 이 책이 가진 파급력이 대단했다는 것은 '자율주의'(Autonomism)라는 운동의 고유명사가 증명해 준다. 역사와 문화, 사회과학과 철학을 횡단하는 지적 얼개에서부터 프롤레타리아트와 혁명에 대한 낙관적 전망에 이르기까지 그 방대함과 치밀한 분석력에 있어서 이 책은  68년 이후 좌절에 빠진 좌파들에게 하나의 선물 이상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내가 이 책을 접했을 때의 놀라움도 이러한 좌절감의 대척점에서 가늠해야 마땅하다. 이 책 이후로 네그리의 책들을 거의 다 봤으니 그 좌절감이란 게 얼마나 큰 것이었을까? 하긴 나는 지금도 맑시즘과 자율주의, 그리고 아나키즘이라는 왼쪽 길들의 원근을 가늠하며 걷고 있는 중이다.  

[제국]이 나온 것과 더불어 수많은 논쟁들이 있었다. 이 책은 그러한 논쟁들의 정수들을 모아 놓은 리스트라 할 수 있다. 캘리니코스와 아리기, 우즈의 논평은 특히 날카롭다. 그러나 몇몇은 실망스럽기도 하다. 그 몇몇 중에는 [제국]이라는 텍스트에 집중하기 보다, 네그리라는 인물에 더 치중하면서, 이상한 음모론 같은 비평(부르주아에의 투항이라는?)을 전개하기도 한다. 함량 미달의 이런 비평들을 제외하면 각각의 글들이 제 나름의 논변을 가지고 텍스트를 꼼꼼히 비평하고 있다. 그런데 이 비평들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게 바로 '노동자주의적 낙관론'이라는 거다. 이 방면의 비판은 파올로 비르노가 그의 [다중의 문법]이라는 책에서 더 정교하게 전개해 놓았는데, 네그리 입장에서 보면 그리 낯설지도 않을 것이다. 내 생각에 네그리의 낙관주의는 문제틀의 범위에 놓여 있다기 보다, 전략적 관심에서 나온 것이지 않나 싶다. '억누를 수 없는 코뮤니스트의 기쁨'이라는 [제국]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그 테제는 그래서 비판을 받아 마땅하지만 폐기될 수는 없는 것이다. 

발췌하고 정리하여 좀 더 긴 서평을 써 봐야 할 책.- Noma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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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 근대성과 순간의 시학 - 김수영.김종삼 시의 시간의식
남진우 지음 / 소명출판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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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비평가인 남진우의 박사논문(중앙대)이다. 

내게 남진우는 80년대 시운동 동인의 한 사람이었고, 시대적인 분위기를 거슬러 꽤나 사색적인 시를 썼다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와 하재봉 등등 시운동 동인이 모여 찍은 사진도 기억 난다. 하나같이 장발에다가 굶주린듯한 눈빛들을 하고 있었다. 하긴 당대의 리얼리스트들에게 이들은 역적 정도로 비치지 않았을까?

남진우는 이 책에서 두 사람의 시인을 비교하고 있지만 사실, 김수영에 대한 편애를 감추는 데는 실패한 것 같다. 분량에 있어서도 그렇고, 분석의 독창성이나 깊이 면에서도 김수영에 대한 시각이 훨씬 풍부하다. [풀]와 [사랑의 변주곡]에 대한 분석은 매우 독특해서 이 방면의 논문을 쓰는 사람은 반드시 참고해야 될 듯하다. 그러나 김종삼에 대한 분석은 초기시의 중요성을 발견했다는 것 외에 다른 독창적인 시각이 보이지 않는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남진우가 김수영의 시를 '상상적 도정의 언어'로 김종삼의 시를 '귀향적 도정의 언어'로 규정하면서 '순간의 시학'을 말하는 곳에서, 그러한 규정의 준거를 (제목과는 달리)미적인 차원에서 찾기보다 철학적인 차원에서 더 많이 찾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하이데거에의 의존은 관점을 정교화한다기 보다 흐리게 만드는 게 아닌가 할 정도다. 보러(Bohrer)를 빌어 말하자면 시란 시만의 '자기준거틀'이 있지 않겠는가? 다시 말해, 철학과 이론으로부터 작품으로의 하방경로가 아니라, 작품으로부터 이론을 구성해 내는 상방경로가 마땅하지 않겠는가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이 두 시인의 '시간의식'이 제대로 개념화되지 않겠는가?

내용 비판과는 별개로 이 논문은 빛나는 분석과 구절이 수도 없이 많다. 배우는 사람이 본받아야 할 점이다. 논문의 형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기도 하다.- Noma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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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연구
이상섭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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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쓰면서 이상섭 선생은 희랍어 전공자가 아님에도 [시학]을 역주하는데 대한 세간의 비난에 대해 매우 불편했던듯 하다. 서문격인 글에서 벌써 [시학]과 자신의 학문적 이력과의 오랜 인연을 설명해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비난은 그저 웃어 넘기면 될 듯 하다. 이 책은 영문학 전공자의 학문적 성취 바깥을 넘보지도 않으면서도 제 나름의 해석학적 풍부함을 [시학]에 가져다 주고 있으니 말이다. 희랍 원전의 연구자라면 단연 단국대학교의 천병희 선생을 꼽아야 하는데, 이교수는 천교수와 자신의 해석의 변별점도 분명히 짚고 있다. 이 책의 2부는 Plato와 Horace의 시학 관련 문헌도 정리하고 있으니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들을 더 주고 있는 샘이다.

[시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6부를 꼼꼼히 봐야 한다. 여기에 이 저서 전체의 중요 개념들이 거의 망라되기 때문이다. Catharsis, plot(mythos), charactor(ethos), thought(dianoia) 등등, 그리고 hamartia와 desis, lusis 개념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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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비극의 이해
천병희 지음 / 문예출판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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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이와 같은 연구서나 평전, 사적 문헌들을 많이 읽는다. 학교 토론강의를 이끌어 가는 데 유용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예전에 봤던 원전들을 다시 상기하고 정리하는 기회가 된다. 하긴 이 독서 계획 때문에 정작 봐야할 책들을 그전보다 덜 읽긴 하지만 말이다. 아쉬운 건 아니다. 

이번 수업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peri poietikes] 과 셰익스피어의 [맥베스Macbeth]와 더불어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Oedipus]를 한다. 이 책들 모두, 읽은지 10년, 아니 15년이 넘었다. 더우기 [시학]은 읽을 당시에 굉장히 지루해 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Dithyrambos니 Iambos니 단장 3보격 등등의 낯선 희랍어들과 고전 전문용어들이 혼란스러웠었다.

그리스 비극 작품들은 [시학] 전에 보았었다. 세로쓰기 2단으로 된 현암사판이었는데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로 나누어 각각의 작품들을 번역해 놓았던 것으로 기억된다.(물론 그때는 희랍어 원전 번역이 아니었다) 그게 2권으로 분책되었던 것 같다.그런데  어째 그때는 그리스 비극이 [시학]과는 도대체 연결되지 않았었다. 이런 혼란들이 천병희 선생의 이 책으로 '완전히' 해결된 것 같지는 않다.(아마 [시학]에 관해 계획해 놓은 이상섭 선생의 책을 보면 좀 더 나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완전히 해결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책은 그리스 비극 작품을 한 두 개 읽어 본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만한 내용들이 많다. 특히 첫 장이 중요하다. 작가와 작품들에 대한 설명이 나오기 전에 그리스 비극 전반의 역사적 배경과 비평이 나온다. 이 부분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사적인 이해를 충분히 하기 위해서는 몇몇 연도와 사건들을 외워 두는 것도 뒷장을 이해하는 데 수월할 것이다. 지금 기억나는 대로 써보면 이렇다. 아르카익시대(~ BC 480 살라미스 해전), 그리스 문화의 부흥기인 50년기(480~431), 펠로폰네소스 전쟁(431~404), 그리스 고전 시대(알렉산더 대왕의 죽음까지, ~ BC 323), 헬레니즘시대(옥타비아누스 황제에 의한 그리스 병합, 악티움 해전, 안토니우스 클레오파트라 연합군의 패배 ~BC 31). 이 연도들에다 소크라테스(369~399)와 플라톤(427~347)의 생몰년을 비교해 보면 더 구체적인 그리스 사상사와 역사가 그려진다.

그리스 비극, [시학]에서 아우렐리우스까지 많은 희랍어 라틴어 원전 번역을 해온 천병희 선생의 내공도 믿을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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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 2007-06-17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자료실의 자료들을 가져가면서 인사를 해야겠는데 덧글 쓰는 곳이 없어 이 곳에 남깁니다. 읽음에 대한 새삼의 각성을 감사드립니다. 잘 읽겠습니다.

nomadia 2007-06-17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움이 되면 좋겠군요. 네이버 덧글이 전체 글쓰기로 공개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뵙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