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없는 세계
미우라 시온 지음, 서혜영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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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사랑 없는 세계>는 식물과 요리라는 소재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영화 <식물도감>을 떠올리게 한다. <식물도감>은 흔하지 않은 식물을 활용하여 따뜻하고 색다른 집밥을 만들어내는 데에 집중한 작품이다. 한편으로 식물 연구를 세밀하고 생생하게 묘사해낸 점이 도서 <랩 걸>과 닮아있다. 다른 두 작품을 단박에 떠올릴 수 있었던 건 식물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작품이 드물기 때문일 것이다. 미우라 시온이 쓴 장편소설 <사랑 없는 세계>는 식물을 비롯한 모든 분야의 연구자들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고,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요리사의 시선에서 식물과 식물 연구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한다. 식물 에세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방대한 양의 전문 지식이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이었다.

작가는 2~4장에 걸쳐 '모토무라'라는 캐릭터를 심층적으로 다룬다. 그녀의 삶을 통해 연구자들의 애환과 기쁨을 보여주려 노력한다. 대학원을 거쳐 연구원 혹은 교수의 자리에 오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남들과는 다른 길을 선택함으로써 끊임없이 자신의 결정이 옳은지를 고민해야 하고, 뛰어난 연구 성과를 내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식물 연구는 남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종목이다. '모토무라'를 비롯한 연구원들은 '알고 싶다'라는 순수한 호기심으로 작업에 뛰어들었고, 명예나 지위가 보장되지 않는 연구를 거듭한다. 이들도 안정적인 생활에 대한 욕구로 인해 흔들리는 때가 있다. 그러나 식물에 대한 호기심과 연구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못해 다시 금방 자신만의 궤도로 돌아온다. 작가는 '후지마루'라는 사람의 시선에서 연구원들의 삶을 조망하여, 그들의 끈기와 굳은 의지가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또한 실패로 끝난다 해도, 연구 자체를 즐기고 사랑하려는 '모토무라'의 태도에서 인생에 관한 조언을 던지기도 한다. 예측이 가능한 길로만 나아가는 것보다 의외의 결과를 맞닥뜨리는 경우가 훨씬 즐거우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연구자들의 관계에서 인간관계의 귀감을 발견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서로의 라이벌이지만, 서로를 지지하고 협력하며 함께 길을 나아가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나는 이 부분에서 우리가 '인생'이라는 주제를 함께 연구해 나가는 사람들이라고 치환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후지마루'처럼 나도 처음에는 '모토무라'의 팀이 진행하는 연구가 생소했다. 온갖 메커니즘에 괜한 관심을 두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래도 곧장 '모토무라'가 가진 앎에 대한 열망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대학에서 다른 동기들과 달리 취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을 이유로 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이다. 뒤처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있었지만, 좋아하는 주제를 연구할 수 있어 진심으로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사랑 없는 세계>는 '모토무라'가 가진 식물에 대한 애정과 열의를 통해 이전과는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눈앞에 있었지만, 여태껏 알아보지 못했던 세계를 그녀는 '후지마루'와 독자에게 펼쳐 보인다. 사랑이나 여타 인간의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식물의 세계를 사랑으로 끌어안고, 또 그런 애정을 공유하는 '모토무라'의 연구팀을 지켜보며 새삼 세상에 쓸데없는 일이란 없고, 이를 속단해서는 안 된다고 느끼게 되었다. 작가 미우라 시온은 매일같이 만지는 요리 재료 속에도 있었던 이 놀라운 세계를 감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책을 통해 보여주었다. 극적으로 감정을 표출하지 않고, 그저 과묵하게 담담히 자기 몫을 살아내는 식물들로 인해 오늘을 인내하고, 우직하게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취미든 일이든 사람이든, 사랑을 기울일 수 있는 대상이 있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지탱하는 힘이 아닐까 하고 거듭 생각한다
- P229

요리책에 쓰여 있는 대로 만들어서 예상한 대로의 맛이 나왔을 때보다, ‘이런 요리가 됐어!‘라고 의외의 결과를 만났을 때가, 설사 맛없는 게 만들어졌다 해도 더 즐거웠습니다. (...) 저는 ‘다음에 더 맛있는 요리를 만들자‘라고 생각하면서, 심하게 맛없는 실패작을 우걱우걱 먹어버리는 쪽이에요
- P348

‘예정대로‘란 건 있을 수도 없고, 있다고 해도 따분한 일이다. 예정과는 다른, 뜻대로 되지 않은 길을, 그래도 자신이 스스로 생각한 방식으로 자신의 직감을 믿고 계속 나아갔기 때문에 지금의 이 발견이 있는 거다.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거다
- P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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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의 완벽한 고백 브라운앤프렌즈 스토리북 1
이정석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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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정확한 이름은 알지 못해도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하는 중일까. '브라운'이라는 이름을 가진 갈색곰은 네이버에서 출시한 라인프렌즈라는 캐릭터 중 하나다. 카카x톡의 아성에 밀려 별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는 듯하지만, 대만이나 일본 등지에서 이들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캐릭터의 외양적인 면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을 넘어서서 이들에게도 각자의 스토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BT21캐릭터의 제작과정 영상을 보고 깨달았다. 캐릭터가 대중의 삶에 더 깊숙이 파고들 수 있도록, 혹은 캐릭터들을 조합해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수 있도록 하나하나에 배경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름까지는 그렇다치더라도, 세세한 성격이나 과거까지 창작해내야 한다는 건 좀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브라운의 완벽한 고백>이라는 제목으로 책이 만들어진다는 점은 더더욱. '브라운'을 하나의 생명체로 본다면, 그가 대필 작가를 동원해 일상 에세이를 출간했다고 보면 되는건가(조크). '이정석' 작가가 쓴 이 책은 예상보다 훨씬 유쾌하고,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구석이 있다. 페이지를 넘기자 갑작스레 등장하는 한 문장에 곰곰이 생각을 거듭하고, 울컥하기도 했다. 뭐랄까,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동생이 딱 한 마디로 내 뒤통수를 때린 느낌이다. 감히 단언컨대, 뭘 좀 아는 책이다.

이 책에서의 설정에 따르면 '브라운'은 무척 과묵하고, 다정다감한 성격을 지녔다. 나도 늘 생각하던 바지만, 조용한 성격에는 뛰어난 장점이 있다. 묵묵히 상황을 지켜보며 사람들을 파악하는 일에 능숙해진다. 다른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아서 과묵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를거라 생각하지만, 내 개인적 경험을 돌이켜보면(왜냐면 나도 과묵한 쪽에 속했으니까) 관계의 흐름이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속마음 등을 타인보다 빠르게 알아차리곤 하는 것이다. 이처럼 둔감해보이지만 타인의 마음을 빠르게 캐치할 수 있는 '브라운'은 친구들에게 "따뜻하고, 포근하고, 소박한" 존재로 자리잡았다. 가끔은 거절에 능숙하지 못하거나 자신을 명확하게 표현할 줄 모르는 성격이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그런 브라운을 잘 이해하고 있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삶을 통과한다. 어떤 단점이든 커버해줄 수 있는 친구들의 존재가 이 책에서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상대를 위로하는 것이 특기인 브라운의 꿈도 "최고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라인 프렌즈 캐릭터에 대한 관심으로 <브라운의 완벽한 고백>을 구매한다면 최상의 만족감을 얻게 될 듯하다. 책의 절반이 캐릭터 삽화이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가끔씩 위로가 절실해지는 순간에 이정석 작가의 허를 찌르는 문장이 필요해지는 때가 오면, 브라운을 찾아가주면 좋겠다.

무기력함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방 밖으론 단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할 것 같을 때, 방탈출 게임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 P61

어떤 마음은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전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있는 그대로
- P154

어쩌면 단점이라는 건 친구가 덮어주는 걸지도 몰라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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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발견 -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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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리브스는 <20vs80의 사회>에서 교육이 계급 재생산에 기여하는 도구로 전락했다고 주장했다. 중상류층의 사람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질 높은 교육을 받음으로써 경제 하위층의 사람들과의 간극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교육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측면에 집중한 것인데 배움에 관해 다른 시각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었다. 여기에 때늦은 교육을 통해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고, 과거를 객관적으로 바라봄으로써 화해를 시도하는 작가 '타라 웨스트오버'가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교육을 비롯해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서비스의 혜택을 거부했다. 어떤 위험한 순간에도 현대 의학에 의지하기보다 민간요법 치료를 지향했고, 심지어 아이들의 출생신고까지 하지 않았다. 집착에 가까운 종교적인 신념으로 세상의 종말을 예측하는 저자의 아버지는 소설 <나의 아름다운 고독>을 떠올리게 했다. 소설은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를 둔 딸이 어떻게 자신의 세상을 벗어나는지를 그리고 있다. '타라 웨스트오버'의 아버지는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지만, 정신적인 폭력을 자식에게 가했다는 점은 닮아있다. <나의 아름다운 고독>은 소설에 지나지 않지만, 안타깝게도 <배움의 발견>은 저자의 자전적 에세이다. 소설에 가까워 보이는 작가의 무수한 경험들이 실제의 기억에 의존한 글이라니. 또 한 번 내가 무심코 지나쳐온 세상의 이면을 발견한다. 그것만으로도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다. 제대로 된 교육의 기회를 박탈하고, 무관심한 아버지는 아이들 모두에게 무시 못 할 수준의 영향을 끼쳤다. 7남매 중에서 특히 '숀 오빠'는 정서적으로 가장 불안정했고, 나중에는 분노조절장애와 폭력성을 띠기 시작한다. 해당하지 않는 가정도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이 책에서만큼은 교육의 중요성이 극대화되고, 작가는 짧은 배움이 대물림되는 상황을 우려한다. 무지함으로 인해 숀 오빠나 아버지의 정신적인 문제가 적기에 해결되지 못하고, 이런 상황이 자식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자신의 조카들이 자신처럼 아버지가 만들어낸 세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될까 걱정을 표한 것이다. <배움의 발견>에서 교육은 이처럼 자신의 현실을 인지하고, 기존의 세상에 불만을 품고 있다면 그것을 깨고 나아갈 발판이 되어주는 기능을 했다.

숀 오빠와 아버지가 그녀의 자아를 억누르고, 기존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상황에서도 '타라'는 배움을 지속했다. 그럴 수 있었던 데에는 기적처럼 그녀의 삶에 등장한 여러 은인들 덕분이다. 그리고 기적적인 여정의 시작에 그녀의 오빠 중 하나인 '타일러'가 있었다. 타라보다 먼저 가족에게서 벗어나 대학에 입학한 타일러는 그녀의 가능성을 주지시키고, 자신과 같은 대학에 입학할 것을 권유한다. 배움의 기회가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던 막냇동생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주고, 어떤 상황에서도 그녀를 포기하지 않았던 타일러의 존재를 저자가 얼마나 다행으로 여겼는지는 작품이 '타일러 오빠에게'로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감지할 수 있다. 자신의 위치가 명확히 어디인지를 알 수 없어하면서도 인생이 바뀌리라는 믿음을 완전히 놓지 않고 탈출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녀 자신의 노력도 물론 빼놓을 수 없다. 그것은 적절한 타이밍에 나타나준 은사들만큼이나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었다. 아무리 옆에서 격려했더라도, 스스로 내려놓고 다른 세상을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애쓰지 않았다면 현재의 성공은 없었을 테다. 의지할 데가 하나도 없이 완전한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저자가 애초에 얼마나 강력한 결심을 세워야 했을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책을 쓴 '타라 웨스트오버'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자라는 과정에서 부모는 거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부모의 조종을 받던 삶에서 벗어나 우리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알을 깨려는 시도를 한다. 이는 충돌을 불러일으키고, 그로 인한 충격이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기도 한다. 그래도 의심의 여지없이 진정한 자유를 획득한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모두가 거쳐야 하는 과정임에는 틀림없다. 인생에서 어느 것보다도 절실하게 요구되는 단계인 것이다. 저자가 견뎌낸 지난한 삶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내가 특별한 대가 없이 얻을 수 있었던 기회들을 떠올렸다. 나는 풍부한 교육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그것의 소중함을 미처 알지 못해 기회를 낭비하는 삶을 살아왔다. 아니,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오히려 교육에 저항하는 삶을 살고자 했던 것 같다.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고 나만의 역사를 써 내려가야 하는 시기에 이를 깨달을 수 있는 배움의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무성의하게 학창 시절을 떠나보낸 나 자신을 책망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지 않던 무언가가 어떤 이의 인생에서는 철저하게 결핍될 수도 있음을 목격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그것의 중요성과 귀중함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책 제목에 딱 들어맞게 나는 진정으로 배움을 발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20vs80의 사회>에서 리처드 리브스가 교육을 철저히 중상류층의 시각에서 권력 강화의 도구라고 본다면, <배움의 발견>을 쓴 타라 웨스트오버는 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에게 교육이 가지는 의미를 강조한다. 리처드 리브스는 모든 아이가 학교를 다닌다는 전제하에 다양한 계층의 아이들이 혼합되어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 타라 웨스트오버는 세상이 그어놓은 선을 완전히 벗어나 고립되어 자신들이 박탈당한 기회가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무지한 아이들이 있음을 독자들에게 주지시킨다. '교육'이라는 키워드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양쪽 모두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좋을 듯하다. 그래야만 더 풍부한 시각으로 세상을 조망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한편으로 무지로 인해 세상의 폭력에 가담해왔음을 배움을 통해 "자각"하고, 더이상 꼭두각시로 살지 않겠다는 저자의 외침은 마치 영화 <레미제라블>이 보여준 프랑스 혁명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자신이 감내해온 세상을 부수고 더 나은 곳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독자에게도 <배움의 발견>이 유용한 도움을 주리라 믿는다.

집 바깥의 세상은 넓어, 타라. 아버지가 자기 눈으로 보는 세상을 네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을 더이상 듣지 않기 시작하면 세상이 완전히 달라 보일거야
- P196

학생은 순금이예요. (...) 그 본질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다른 사람이 학생을 보는 눈은 변할지 모르고, 학생이 자신을 보는 눈도 변할지 모르지만. 어차피 순금도 빛에 따라서는 덜 빛나 보일 때도 있으니까. 하지만 빛이 덜 난다면 그게 허상인거예요 - P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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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VS 80의 사회 - 상위 20퍼센트는 어떻게 불평등을 유지하는가
리처드 리브스 지음, 김승진 옮김 / 민음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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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알베르 카뮈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난과 죽음은 중요한 키워드다. 그중에서 가난이라는 단어에 꽂혀 <20vs80의 사회>를 우선적으로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SNS에 올린 것을 보고 민음사 우수 서포터즈 선물로 선택한 도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은 불평등에 관한 이슈로 들끓었다. 불평등이 당연한 관행으로 여겨지던 시절은 지나가고, 사람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타파할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통의 경우에 비난은 상위 1% 슈퍼 리치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리처드 리브스는 슈퍼 리치 이외에 상위 20%의 부자들까지로 범위를 확대한다. 상위 20%의 사람들이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할 때 상위 1% 집단으로 편입되며, 마치 잘못이 없는 척 굴고 있지만, 불공정한 사회에 중상류층도 일조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책 속에서 저자는 본인도 속해 있는 중상류층이 누리고 있는 특권을 인식하고, 기회 사재기와 같은 행태에 대한 뼈저린 반성을 내비친다. 과거의 잘못을 교훈으로 삼아 적절한 대안을 모색하고, 행동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래지향적인 작품이다. 영국과 미국의 상황만을 주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을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하는 독자가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계급의 영속화가 진행되고 있고, 교육이 계급 재생산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등의 모습은 한국과 닮아 있다. 그러므로 저자의 이야기는 한 번 들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혹시 책을 완독할 시간이 없는 독자들을 위해 리처드 리브스가 앞 장에 친절하게 요약까지 해두었다.

저자가 주장을 펼치는 과정에서 중상류층이 월등히 많은 기회를 가지고 있음이 드러난다. "부유한 사람들에게는 꿈과 현실의 차이가 더 좁"아 보였고, 그런 사실이 절망스러웠다. 돈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일 없이 든든한 지원군과 함께 목표를 향해 나가는 그들이 무척 부러웠다. 이 책에서 지적되고 있는 미국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것 없이 한국에도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한다. 슈퍼 리치의 자녀들은 본 적 없지만, 개인적으로 중상류층의 친구들은 학창 시절에 목격한 경험이 많다. 그들은 실제로 여러 제도를 활용해 대학에 입학했고, 대학교 때도 나처럼 끝없이 조급증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들의 실패와 방황을 커버해줄 부모와 부모의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까이에서 경험을 해왔음에도 불평등에 대한 책임이 슈퍼 리치에게만 있다고 생각해온 나 자신이 좀 놀랍다. 아마도 저자가 지적한 바를 참고해 보자면, 중상류층이 자신의 특권을 운이 아니라 스스로의 능력에서 비롯되었다고 여기는 이유 때문인 듯하다. 그들이 스스로에 대해서 떳떳했고, 주변에서도 상위 1%는 부당하게 혜택을 입는다고 지적하면서도, 상위 20%에게 비난을 가하지는 않았으므로 나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숙고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책에서 언급된 내용처럼 능력을 키우기까지 중상류층은 적지 않은 혜택을 누려왔다. 성공의 발판이 될만한 능력을 키울만한 처지가 아닌 사람(하위 80%)도 수두룩하다.

다른 상위 20%의 부유층과 달리 자신이 누리고 있는 우위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지가 대단해 보인다. 그것은 자신의 친구를 배반하는 일이자, 자신의 자식들에게 주어질 기회를 내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신과 가족에게 주어진 안정적인 현재와 미래를 포기한 리처드 리브스는 진정한 개혁가이자 지식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자신의 특권을 인식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대중을 향해 일련의 주장을 펼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그가 불평등에 가담하는 부당하는 일을 저지르지 않는지 감시하는 눈들이 불어나는 일을 이제 감내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말뿐인 약속이 아니라, 실제로 중상류층 중 하나인 그 자신도 사회 구조 개혁을 위해 애쓰겠다는 진실된 선언이다.

<20vs80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고 특징적인 부분은 역시 대안이 제시되는 7장이라고 볼 수 있다. 리처드 리브스의 제안은 미국 사회에 국한되므로, 한국에서 계급 타파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면 좋을지에 대해서는 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미국의 부정적인 면을 보면서 그곳에 관한 환상이 많이 깨지기도 했고, 한국에 살아서 다행이다 싶을 때도 있었다. 우리는 미국과 달리 엄청난 경쟁률을 뚫은 엘리트들이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해 교사의 자질이 보장되는 편이고, 또 국가장학금이라는 제도로 소득 분위가 낮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이 제공되고 있어 대학 등록금에 관한 부담을 낮추고 있다. 실제로 나도 대학에 다닐 때 국가장학금 제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암리에 인턴이 공정하지 못하게 분배되고 있다거나 4년제 학위 과정에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는 문제는 한국에도 통용된다. 우리에게도 아직 해소되지 않은 경제적 불평등이 남아 있고,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중상류층이든 상위 1%의 슈퍼 리치든 간에 저자의 제안대로 그들이 욕심을 내려놓고, 더 많은 세금으로 정책을 지원하고, 하향 이동에 동의를 표하며, 하위 계층과 가까워지려는 시도를 할지는 미지수다. 책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책으로만 그치게 될 확률이 더 커 보이기 때문에 두려운 마음이 가득하다. 모든 것은 중상류층을 비롯한 부유한 사람들이 "불공정에 대해 스스로의 책임을 인정하고 개혁을 받아들일 것이냐"에 달려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비롯해 사회 전체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그러리라고 믿는다".

 

다른 이를 배제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것으로 인식되고 나면 배제를 일으키는 행위는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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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 186호 - 2019.겨울
창작과비평 편집부 지음 / 창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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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잠잠하던 한국 사회가 여러 이슈로 들끓었다. 개인적으로 이번 사회적 문제들의 핵심은 차별과 배제라고 생각한다. 한기욱 교수가 특집 파트에서 언급했듯 발전주의를 지향하는 한국은 특정 계층을 선택하고, 그들에게 집중하는 데에 골몰해왔다. 더 나은 성과를 위해 이런 방식을 택하게 된 것이지만, 이는 자연스레 사회의 흐름에서 도태되는 사람들을 만들어냈다. 국가로부터 평등하게 주목받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대부분의 사람은 이를 묵인하며 살아왔다. 7~80년대에는 경제적으로 성장하는 일이 급급했으므로, 국가의 대의를 위해 작은 희생을 감수하며 지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21세기에 공동의 목표를 위해 스스로 희생되는 쪽에 서겠다는 사람은 없다. 인내심 있게 고통을 감수하며 기다리더라도, 자신에게 보상이 주어질 리 없다는 것을 사람들은 간파했다. 한 번 '을'의 입장에 서기 시작하면, 끝없이 '갑'에게 부림을 당하는 인생을 살아내야만 한다. 촛불 혁명을 기점으로 국민들은 욱여넣었던 분노를 적극적으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자신도 민주주의 국가의 한 사람으로서, 존중받을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 것이다. 국민 청원과 같은 기회를 통해 사회 변화의 연료가 주입되기 시작했다.

급진적으로 돌출되기 시작한 차별과 배제에 관한 논란을 완화하기 위해 '보편적 기본소득'과 같은 대안이 제시되었다. 이번 겨울호에서도 소설가 존 란체스터가 이에 관한 의견을 표명했다.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면, 사람들이 나태해지고, 일에 대한 열의가 사라질 수 있다는 반대 의견도 존재한다. 물론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추진해야 하겠지만, 반대자들이 '선택과 집중'의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인상은 지워지지 않는다. 성장과 발전만을 중시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유용한 인재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애써야 했다. 생존을 위해 타인을 짓밟고 올라설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전부 평등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누려보자,는 주장이 달가울 리 없다. 누군가는 불안에 떨어야만, 자신의 존재가 절실하게 여겨지는 탓이다. 소수의 반대자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 이상 성과주의가 아닌 진정으로 평등하게 최소한의 삶은 보장이 되는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이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고, 또 발전보다는 현상을 유지하는 것도 버거운 시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따라서 겨울호에서 현실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름의 대책을 강구하려던 모습이 반가웠다.

2019년은 홍콩의 이례적인 시위로 기억되는 해이기도 하다.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들이 국가라는 거대한 존재에 의해 짓밟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처럼 작년은 여러모로 위협적인 시간이었다. 사회의 불안정성이 지속적으로 고조되었고, 암담한 현실을 반영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회 현실을 비판하고, 분석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노동이 가진 의미를 탐구하려는 시도도 이어졌다. 이번 겨울호에 소개된 김세희 작가의 <가만한 나날>, 만해문학상을 수상한 황정은 작가의 <디디의 우산>등이 대표적 예다. 여러 작가가 사회의 부조리를 포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자, 독자들도 이에 화답하듯 리얼리즘을 반영한 책들을 놓치지 않았다. 게다가 유독 법이나 정의 등에 관한 책들도 흔하게 목격되었다. 박주영 판사의 <어떤 양형 이유>도 크게 사랑받았고, '김영란법'으로 잘 알려진 김영란 대법관의 <판결과 정의>도 주목받았다. 사람들이 일련의 사건들을 각각 주목하기보다는, 이면에 있는 더 큰 개념인 '정의'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렇게 현실을 들춰보는 노력도 반드시 이어져야 하지만, 사회의 암울함만을 쏟아낸다면, 문학이 주는 긍정적인 작용을 간과하게 되었을지 모른다. 꼭 사회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잘 보이지는 않지만 세상이 분명히 지니고 있는 희망을 일깨워주거나, 너무도 지쳐있는 독자들에게 위안을 건네려는 작가도 더러 있었다. 특집에서 살펴본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도 과학적인 미래를 묘사하면서, 인류가 본래 소유한 따뜻한 면면을 드러내었다. 작가는 불행이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이 가진 빛이 더 돋보일 수 있다는 진리를 재인식하게 도와주었다. 소설 파트에서 장류진 작가의 <연수>또한 항시 불안한 현실의 땅을 딛고 서 있는 독자들에게 잘하고 있으니, 괜찮다는 다정한 위로를 건넨다. 나이의 적고 많음과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첫 인생을 살아내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때로는 운전 연수처럼 인생 연수도 이행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게 된다. <연수>라는 작품을 통해 장류진 작가는 나보다도 삶에 능숙하며 도움 주기를 서슴지 않는 '인생 강사'의 존재를 암시해 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낸다. 그리고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기 때문에 맨땅에 헤딩하듯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여전히 세상에 부딪혀 볼 용기를 심어준다. <연수>를 읽으며, 어떠한 문제도 회피하지 않고, 어둑어둑한 밤하늘 같은 현실에 온몸을 부딪혀 살아볼 힘을 내본다. 내 윗세대가 우리를 위해 독립, 민주화, 성 평등을 위해 투쟁했듯, 나를 뒤따라오는 다음 세대들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길 희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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