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비평 186호 - 2019.겨울
창작과비평 편집부 지음 / 창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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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잠잠하던 한국 사회가 여러 이슈로 들끓었다. 개인적으로 이번 사회적 문제들의 핵심은 차별과 배제라고 생각한다. 한기욱 교수가 특집 파트에서 언급했듯 발전주의를 지향하는 한국은 특정 계층을 선택하고, 그들에게 집중하는 데에 골몰해왔다. 더 나은 성과를 위해 이런 방식을 택하게 된 것이지만, 이는 자연스레 사회의 흐름에서 도태되는 사람들을 만들어냈다. 국가로부터 평등하게 주목받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대부분의 사람은 이를 묵인하며 살아왔다. 7~80년대에는 경제적으로 성장하는 일이 급급했으므로, 국가의 대의를 위해 작은 희생을 감수하며 지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21세기에 공동의 목표를 위해 스스로 희생되는 쪽에 서겠다는 사람은 없다. 인내심 있게 고통을 감수하며 기다리더라도, 자신에게 보상이 주어질 리 없다는 것을 사람들은 간파했다. 한 번 '을'의 입장에 서기 시작하면, 끝없이 '갑'에게 부림을 당하는 인생을 살아내야만 한다. 촛불 혁명을 기점으로 국민들은 욱여넣었던 분노를 적극적으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자신도 민주주의 국가의 한 사람으로서, 존중받을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 것이다. 국민 청원과 같은 기회를 통해 사회 변화의 연료가 주입되기 시작했다.

급진적으로 돌출되기 시작한 차별과 배제에 관한 논란을 완화하기 위해 '보편적 기본소득'과 같은 대안이 제시되었다. 이번 겨울호에서도 소설가 존 란체스터가 이에 관한 의견을 표명했다.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면, 사람들이 나태해지고, 일에 대한 열의가 사라질 수 있다는 반대 의견도 존재한다. 물론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추진해야 하겠지만, 반대자들이 '선택과 집중'의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인상은 지워지지 않는다. 성장과 발전만을 중시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유용한 인재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애써야 했다. 생존을 위해 타인을 짓밟고 올라설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전부 평등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누려보자,는 주장이 달가울 리 없다. 누군가는 불안에 떨어야만, 자신의 존재가 절실하게 여겨지는 탓이다. 소수의 반대자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 이상 성과주의가 아닌 진정으로 평등하게 최소한의 삶은 보장이 되는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이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고, 또 발전보다는 현상을 유지하는 것도 버거운 시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따라서 겨울호에서 현실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름의 대책을 강구하려던 모습이 반가웠다.

2019년은 홍콩의 이례적인 시위로 기억되는 해이기도 하다.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들이 국가라는 거대한 존재에 의해 짓밟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처럼 작년은 여러모로 위협적인 시간이었다. 사회의 불안정성이 지속적으로 고조되었고, 암담한 현실을 반영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회 현실을 비판하고, 분석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노동이 가진 의미를 탐구하려는 시도도 이어졌다. 이번 겨울호에 소개된 김세희 작가의 <가만한 나날>, 만해문학상을 수상한 황정은 작가의 <디디의 우산>등이 대표적 예다. 여러 작가가 사회의 부조리를 포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자, 독자들도 이에 화답하듯 리얼리즘을 반영한 책들을 놓치지 않았다. 게다가 유독 법이나 정의 등에 관한 책들도 흔하게 목격되었다. 박주영 판사의 <어떤 양형 이유>도 크게 사랑받았고, '김영란법'으로 잘 알려진 김영란 대법관의 <판결과 정의>도 주목받았다. 사람들이 일련의 사건들을 각각 주목하기보다는, 이면에 있는 더 큰 개념인 '정의'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렇게 현실을 들춰보는 노력도 반드시 이어져야 하지만, 사회의 암울함만을 쏟아낸다면, 문학이 주는 긍정적인 작용을 간과하게 되었을지 모른다. 꼭 사회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잘 보이지는 않지만 세상이 분명히 지니고 있는 희망을 일깨워주거나, 너무도 지쳐있는 독자들에게 위안을 건네려는 작가도 더러 있었다. 특집에서 살펴본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도 과학적인 미래를 묘사하면서, 인류가 본래 소유한 따뜻한 면면을 드러내었다. 작가는 불행이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이 가진 빛이 더 돋보일 수 있다는 진리를 재인식하게 도와주었다. 소설 파트에서 장류진 작가의 <연수>또한 항시 불안한 현실의 땅을 딛고 서 있는 독자들에게 잘하고 있으니, 괜찮다는 다정한 위로를 건넨다. 나이의 적고 많음과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첫 인생을 살아내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때로는 운전 연수처럼 인생 연수도 이행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게 된다. <연수>라는 작품을 통해 장류진 작가는 나보다도 삶에 능숙하며 도움 주기를 서슴지 않는 '인생 강사'의 존재를 암시해 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낸다. 그리고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기 때문에 맨땅에 헤딩하듯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여전히 세상에 부딪혀 볼 용기를 심어준다. <연수>를 읽으며, 어떠한 문제도 회피하지 않고, 어둑어둑한 밤하늘 같은 현실에 온몸을 부딪혀 살아볼 힘을 내본다. 내 윗세대가 우리를 위해 독립, 민주화, 성 평등을 위해 투쟁했듯, 나를 뒤따라오는 다음 세대들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길 희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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