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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VS 80의 사회 - 상위 20퍼센트는 어떻게 불평등을 유지하는가
리처드 리브스 지음, 김승진 옮김 / 민음사 / 2019년 8월
평점 :
작가 알베르 카뮈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난과 죽음은 중요한 키워드다. 그중에서 가난이라는 단어에 꽂혀 <20vs80의 사회>를 우선적으로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SNS에 올린 것을 보고 민음사 우수 서포터즈 선물로 선택한 도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은 불평등에 관한 이슈로 들끓었다. 불평등이 당연한 관행으로 여겨지던 시절은 지나가고, 사람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타파할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통의 경우에 비난은 상위 1% 슈퍼 리치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리처드 리브스는 슈퍼 리치 이외에 상위 20%의 부자들까지로 범위를 확대한다. 상위 20%의 사람들이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할 때 상위 1% 집단으로 편입되며, 마치 잘못이 없는 척 굴고 있지만, 불공정한 사회에 중상류층도 일조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책 속에서 저자는 본인도 속해 있는 중상류층이 누리고 있는 특권을 인식하고, 기회 사재기와 같은 행태에 대한 뼈저린 반성을 내비친다. 과거의 잘못을 교훈으로 삼아 적절한 대안을 모색하고, 행동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래지향적인 작품이다. 영국과 미국의 상황만을 주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을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하는 독자가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계급의 영속화가 진행되고 있고, 교육이 계급 재생산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등의 모습은 한국과 닮아 있다. 그러므로 저자의 이야기는 한 번 들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혹시 책을 완독할 시간이 없는 독자들을 위해 리처드 리브스가 앞 장에 친절하게 요약까지 해두었다.
저자가 주장을 펼치는 과정에서 중상류층이 월등히 많은 기회를 가지고 있음이 드러난다. "부유한 사람들에게는 꿈과 현실의 차이가 더 좁"아 보였고, 그런 사실이 절망스러웠다. 돈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일 없이 든든한 지원군과 함께 목표를 향해 나가는 그들이 무척 부러웠다. 이 책에서 지적되고 있는 미국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것 없이 한국에도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한다. 슈퍼 리치의 자녀들은 본 적 없지만, 개인적으로 중상류층의 친구들은 학창 시절에 목격한 경험이 많다. 그들은 실제로 여러 제도를 활용해 대학에 입학했고, 대학교 때도 나처럼 끝없이 조급증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들의 실패와 방황을 커버해줄 부모와 부모의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까이에서 경험을 해왔음에도 불평등에 대한 책임이 슈퍼 리치에게만 있다고 생각해온 나 자신이 좀 놀랍다. 아마도 저자가 지적한 바를 참고해 보자면, 중상류층이 자신의 특권을 운이 아니라 스스로의 능력에서 비롯되었다고 여기는 이유 때문인 듯하다. 그들이 스스로에 대해서 떳떳했고, 주변에서도 상위 1%는 부당하게 혜택을 입는다고 지적하면서도, 상위 20%에게 비난을 가하지는 않았으므로 나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숙고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책에서 언급된 내용처럼 능력을 키우기까지 중상류층은 적지 않은 혜택을 누려왔다. 성공의 발판이 될만한 능력을 키울만한 처지가 아닌 사람(하위 80%)도 수두룩하다.
다른 상위 20%의 부유층과 달리 자신이 누리고 있는 우위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지가 대단해 보인다. 그것은 자신의 친구를 배반하는 일이자, 자신의 자식들에게 주어질 기회를 내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신과 가족에게 주어진 안정적인 현재와 미래를 포기한 리처드 리브스는 진정한 개혁가이자 지식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자신의 특권을 인식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대중을 향해 일련의 주장을 펼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그가 불평등에 가담하는 부당하는 일을 저지르지 않는지 감시하는 눈들이 불어나는 일을 이제 감내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말뿐인 약속이 아니라, 실제로 중상류층 중 하나인 그 자신도 사회 구조 개혁을 위해 애쓰겠다는 진실된 선언이다.
<20vs80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고 특징적인 부분은 역시 대안이 제시되는 7장이라고 볼 수 있다. 리처드 리브스의 제안은 미국 사회에 국한되므로, 한국에서 계급 타파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면 좋을지에 대해서는 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미국의 부정적인 면을 보면서 그곳에 관한 환상이 많이 깨지기도 했고, 한국에 살아서 다행이다 싶을 때도 있었다. 우리는 미국과 달리 엄청난 경쟁률을 뚫은 엘리트들이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해 교사의 자질이 보장되는 편이고, 또 국가장학금이라는 제도로 소득 분위가 낮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이 제공되고 있어 대학 등록금에 관한 부담을 낮추고 있다. 실제로 나도 대학에 다닐 때 국가장학금 제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암리에 인턴이 공정하지 못하게 분배되고 있다거나 4년제 학위 과정에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는 문제는 한국에도 통용된다. 우리에게도 아직 해소되지 않은 경제적 불평등이 남아 있고,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중상류층이든 상위 1%의 슈퍼 리치든 간에 저자의 제안대로 그들이 욕심을 내려놓고, 더 많은 세금으로 정책을 지원하고, 하향 이동에 동의를 표하며, 하위 계층과 가까워지려는 시도를 할지는 미지수다. 책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책으로만 그치게 될 확률이 더 커 보이기 때문에 두려운 마음이 가득하다. 모든 것은 중상류층을 비롯한 부유한 사람들이 "불공정에 대해 스스로의 책임을 인정하고 개혁을 받아들일 것이냐"에 달려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비롯해 사회 전체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그러리라고 믿는다".
다른 이를 배제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것으로 인식되고 나면 배제를 일으키는 행위는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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