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호의 주제였던 ‘세대‘처럼 ‘인플루언서‘에 관한 논의는 시의적절하게 느껴진다. 다양한 매체에서 인플루언서가 주목받은 지는 꽤 되었지만, 지금만큼 그들이 활동 영역을 넓혀가며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던 때도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느새 tv 프로그램에까지 진출했고, 수많은 이들을 자신들과 같은 콘텐츠의 생산자로 끌어들였다. 연예인과 비연예인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각계각층의 다양한 배경을 지닌 인플루언서들은 넓은 범주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런 급작스러운 상승세에 기존의 미디어와의 비교, 이에 관한 영향력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잡지의 몇몇 글에서도 새로운 미디어의 주동자에 관한 기존 매체의 시각을 싣고 있다. 나는 그 글들에서 부정적인 분위기를 감지했는데, 어쩐지 인플루언서와 그에 관련한 현상들을 엄마가 사춘기의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처럼 읽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존의 시각에서 인플루언서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그들과 함께했던, 기존 미디어의 존재를 까맣게 잊은 듯한 사람들의 생각은 어떤지 듣고 싶어졌다. 인플루언서와 그들의 영향력,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은 특정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고, 더 이상 틀어막거나 배제할 수 없는 분명한 흐름이므로, 나는 지적과 비난보다 긍정적인 작용을 발견해내고 싶었다.

또한, 미디어 자체가 가진 부정적인 측면을 논의하려는 시도도 발견된다. 처음에 새로운 소통의 장이 생겨났을 때만 해도, 콘텐츠 생산자의 ‘진정성‘에 관한 회의론이 제기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비자보다 생산자에게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던 지난날과 달리 이제는 미디어를 활용하는 자들의 태도가 주목받고 있다. 이제는 악플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시작했으며, 더 비판적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인플루언서이든 팔로워이든 관계없이 사람들은 치열하게 ‘선한 영향력‘에 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여전히 문제가 팽배해 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이미 확고해진 흐름을 돌이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연이은 죽음으로 촉발된 미디어에 관한 회의가 진정한 개선의 계기가 되어야만 한다. 미디어 안전 불감증을 소홀히 하지 않고, 인플루언서를 비롯한 (뉴미디어를 사용하고 있는) 모든 개개인에게 영향력이 있음을 감지하고, 사회를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데에 자신의 영향력을 투자해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전보다 더 개인에게 주목받을 기회가 더 많이 펼쳐져 있고, 그것을 적절하게 활용해 사람들을 선한 일에 동참하도록 이끌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잠재적인 인플루언서이고, 좋은 신념을 지니고 있는 일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인문학‘의 존재가 누누이 강조되고, 사람들이 인문 잡지 <한편>에 관심을 쏟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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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세트] 기억 (총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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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기 전에 우리 모두는 전생을 살았던 전임자로부터 일종의 유산을 물려받았어요. 어떤 재능을 갖고 싶은지, 누구를 만나고 싶은지에 대한 그들의 소망이 바로 그거죠. 그래서 삶을 거듭하는 동안 우리는 서로 돕는 하나의 가족이 돼요. <영혼의 가족>인 거죠."

'기억'만큼 흡인력을 가진 단어가 또 있을까. 그건 내뱉자마자 어떤 아련한 느낌을 자아내어 한 번쯤은 다시 돌아가고 싶은 특정 순간을 떠올리게 만든다. 나 또한 그런 기억들에 끈질기게 얽매이는 사람이고, 이를 뛰어넘어 '전생'에 관한 환상을 품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사고를 확장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 거지만, 관심있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책장을 펼칠 생각조차 못하는 어떤 아이러니를 새삼 실감한다.

과거에 관한 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일은 없다고 해도 사람들의 열망은 잦아들 줄을 모른다. 내가 앞서 설명한 건 개인적인 욕망이지만,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기억>에서 좀 더 대의적인 의미의 '기억'을 다루었다. 그는 '전생'과 '최면'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통해 독자에게 기록된 역사의 진실을 밝혀내고, 올바른 '역사'를 수호할 의무를 상기시킨다. 이 작품에서의 역사는 인종, 종교, 국가 등을 뛰어넘는다. 우리는 하나의 인간으로서 공통적으로 역사의 진실을 소홀히 하지 않을 책임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전생의 자아들 사이에서 형성되는 '연대'는 진정한 지구촌 시대로의 진입을 도모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장면이다. 작품 속에서 '진실 추구'라는 공동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면서 각자의 몫을 해내는 이들의 모습은 점점 더 경계를 획정하는 일에 골몰하고 있는 현대인을 일깨운다.

<기억>은 대부분의 경우에 흥미로웠으나, 가끔은 스토리가 힘을 잃고 삐걱대는 순간도 있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누군가에게 건네고자 한다면, 그것은 개인 스스로의 역사와 더 큰 의미의 공통된 역사를 끝까지 지켜내고 싶은 작가의 바램이 나 역시 옳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이를 독자에게 강요하고, 부담을 지우기보다 전생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진실을 보존하는 일이 나에게서 분리될 수 없는 의무임을 자연스레 알아차리게 한다. 전생의 자아가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지금의 삶을 오롯이 지켜내는 건 비단 스스로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올바른 기억을 생성하고 후대에 전달하는 일을 통해 조금씩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런 의무가 존재하고, 그러니까 마땅히 하루하루 속에서 더 적극적으로 살아 남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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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들이 경험하는 방식 - 김솔 짧은 소설
김솔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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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놀라웠던 건 작품 내내 이어지는 번역투의 서술 방식이다. 분명 외국어로 적힌 원문을 한국어로 고심해서 내뱉은 것만 같은 말투가 흥미로웠다. 말투뿐 아니라 작가는 여러 작품에서 다양한 대륙을 넘나든다. 글을 읽으면서 작가의 안에 축적된 경험과 그만의 내공을 느끼며 나는 주말 동안 쉼 없이 책장을 넘겼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담아둔 것이 넘쳐나는 사람들만의 인상이 있는 듯하다. 나는 김솔 작가에게서 앞으로도 쏟아낼 것이 많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그건 하나의 '인상'에 지나지 않지만.

완독을 한 이후의 느낌을 묻는다면, 그저 혼란스럽다고 대답해야 할 것 같다. 등장인물이 겪는 감정은 물론이거니와 각 소설이 끝나는 방식, 마무리하는 문장까지도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서 '살아남은 자들이 경험하는 방식'이라는 제목을 발견하고서는 새삼 이 책에 담긴 '혼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되었다. 세상에 살아남는다는 것은 끝없는 혼돈을 감내하겠다는 문장과 동일한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어릴 땐 혼란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서있으면서도, 그 단어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가진 감정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현재는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으면서도, '혼란스럽다'라는 단어가 주는 기이한 느낌에 휘말려 곧잘 내가 애초에 표현하고자 했던 바를 잊어버리고야 만다.

김솔 작가가 이 책에 적어내려간 글들은 짧은 농담의 모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자리에서 들을 때만 해도, '저게 무슨 소리지.' 싶었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꾸만 되새기게 되는, 은은하면서도 강렬한 흔적을 남기는 농담들. 그래서 어쩐지 꿈이나 신기루 같은 소설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그가 분명히 무언가를 내 마음에 남겼는데, 그게 정확히 어떤 것이었는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타인에게 설명할 수 있으리라는 예감이 든다. 마치 '혼란'이라는 단어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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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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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결국 구매하기까지 정말 무수한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작품의 포장지보다 내용물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 안에 있는 어떤 단어가, 문장이 지금의 나를 자극해야만 책을 읽는다.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노래만 골라서 듣는 것처럼. 하지만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의 경우 평소와 조금 다른 패턴으로 구매하게 되었다. 백수린 작가는 이 책에 관해 "이 한 권의 소설집 안에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이미 다 들어 있"다고 표현했다. 글을 쓰는 것의 어려움을 알면서도 꼭 그 안으로 파고 들어가고 싶던 때에 나는 이 책의 띠지를 발견했고, 작품의 유명세와 관계없이 단지 백수린 작가의 한 마디 때문에 책을 읽게 되었다. 그래서 그만큼의 감동을 느끼게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책을 이리저리 뒤집어 보며 감탄사를 내뱉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일상 안에서 흐르는 순간들과 그 안에 담긴 감정들을 포착해 내는 능력이 뛰어난 작가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 놀라울 것 없는 흔한 일상에서 작가가 포착해 낸 것들의 집합은 놀라울 만큼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단편 소설을 읽다 보면 매 소설이 끝날 때마다 알 수 없는 당혹감에 휩싸이기 마련인데, 앤드루 포터의 이 작품집은 그렇지 않다. 이 소설에서 저 소설로 넘어가면서 때때로 그들의 이야기가 너무 밀접하게 들러붙어 개별적인 작품으로 인식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이야기의 중첩으로 인해 지겨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라는 말을 돌려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작가는 누군가의 일상을 담아냄으로써 소설집이 하나의 세계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일상성과 보편성을 담아낸다고 해서 모든 작품이 연결성을 지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작품만큼은 그랬다. 그리고 나는 이 작품에서 느껴지는 막연한 우울감이 좋았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울고 싶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이렇게 아득하게 무언가가 그리워지고, 그로 인해 밀려드는 약간의 애틋한 슬픔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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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알고 있다 다카노 시리즈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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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알고 있다>를 읽으면서 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어떤 특정 영화를 떠올렸던 것은 아닌데, 일본 영화에서 자주 보던 장면이 요시다 슈이치의 문장과 겹쳐져 눈앞에 그려졌다. 이름을 댈 수 없는 한 일본 배우가 웃음을 터뜨리고, 벽을 기어오른다. 언젠가 본 적 있는 영화가 하나의 글을 통해 수면 위로 떠올랐던 것일까. 하지만 역시 이름만큼은 모르겠다. 전형적인 일본 영상물의 냄새를 풍기지만, 그렇다고 또 너무 고전적이어서 도저히 완독하지 못할 작품은 아니다. 꽤 흥미롭고 생생한 묘사로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세계관이 이어져 있는 다른 작품도 읽어볼 계획을 세우고 있을 정도이다.

이 작품은 실제 아동학대 사건에서 구상이 시작되었고, 작품 속에서도 아동학대의 이야기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현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동학대에 관한 경각심을 일깨우듯이 '다카노'의 삶을 통해 빈번하게 등장한다. 작가는 그 아이들을 동정하기보다 밖으로 꺼내놓고 스스로 일을 하며 나름의 개체로 살아가는 방향으로 글을 썼다. 아이들에게 관심을 두고, 그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쏟으려 했던 작가의 의도는 좋았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온전한 자유를 부여받지 못하고, 상급자의 지시가 없으면 쉽게 길을 잃는다. 아이들을 구원한다는 번듯한 명목 아래에서 또 다른 착취가 버젓하게 자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웠다. 한편으로는 어른들에게서 완전하게 분리되지 못하고 뚜렷한 소신이 형성되지 못하는 것은 청소년기의 흔한 특징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이것은 차차 이후에 이어지는 작품들에서 아이들의 향방을 지켜본 후 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되었든 그들이 스스로를 학대하지 않고 마음껏 자신에게 행복할 자유를 줄 수 있기를, 원하는 곳에 원하는 크기의 별을 멋대로 그리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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