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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도 그 여자의 자리는 없다 - 현대 아랍 문학선
나왈 알싸으디위 외 24명 지음, 문애희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내가 처음 아랍문학을 접한 것은 어떤 책이었을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이나 <알라딘의 요술램프>따위가 아니었을까? 물론 그 책들은 오래된 고전이니 현 아랍을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을 테지...<악마의 시>라는 살만 루시디의 책을 처음 읽었을 때 그 묘하고 특이한 느낌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어쨌든 아랍의 독특한 문화는 책으로 접할 때마다 그 특이함이 보였고, 같은 여성으로서 동질감에 의한 고통은 늘 나를 아프게 한다.
이 책에는 열여섯 명의 남성 작가와 아홉 명의 여성 작가 작품 40편이 실려 있다. 그 40은 아랍에서 여러가지 의미를 두지만 40일 이후에 출생 신고서를 작성하러 집 밖을 나오는 아기 엄마들의 예를 들며 역자는 아랍 사회에서 한국 사회로 출생신고서를 작성하러 나가는 심정으로 이 책을 내보낸다고 한다. 이제 한국에서 출생신고서를 마친 아랍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여성..아..가련한 여성들이여..
같은 여성으로서 아랍의 여성들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나는 치가 떨린다. 지금이 어느 세상인가? 여성이 대통령도 하고, 우리나라 같은 보수주의 국가에서도 이젠 국무총리까지 여성이 나오는 판에 아직까지도 남자들에 의해 짓밟히고 억눌려 사는 여성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정말 기가 막힌다. 물론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조금은 시간이 흐른 과거의 이야기지만 얼마 전에 읽은 <카불의 책장수>를 보더라도 그 때나 지금이나 이슬람에서 여성의 지위는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
여기 결혼을 앞둔 신부가 있다. 그녀가 한 남자의 완전한 신부가 되려면 그 남자의 의해 처녀성이 증명되어야 한다. 증명되지 못한 신부는 가족의 명예를 떨어뜨린 것이므로 그녀의 인생은 이제 그녀의 것이 아니다.(나왈 알싸으다위-그녀는 약자였다) 또 결혼을 하여 남편에게 복종하며 어머니가(어머니가!!) 가르쳐 준대로 <발 뒤꿈치와 옷 밖에는 안 보이며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단 한마디 "그럴게요">만 알던 그녀는 죽도록 남편에게 맞아 친정으로 가면 아버지에게 또 죽도록 맞고 남편에게 돌려보내진다. 어머니의 따뜻한 말이라곤 <돌아가거라, 자이납. 천국이 너의것일 테니> 그러나 그녀에겐...천국에도 자리가 없었다.(나왈 알싸으다위 - 표제작) 근친상간도 등장하는데 열세 살 여자아이에게 마음이 뺏긴 아버지가 그 아이를 둘째 아내로 주지 않자 자신의 아들과 결혼을 시킨 후 욕심을 채우는가 하면(푸아드 알타카를리 - 사그라드는 등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형부의 욕심에 아이까지 낳아 감옥에 갇힌 불쌍한 처제(라일라 알우쓰만 - 벽이 찢어지다) 그녀들의 인생은 정말이지...언제쯤 자유로워질 것인가? 부르카를 벗어 던지고 자연의 바람을 느끼는 그 순간이 과연 그녀들에게 오기나 할 것인가?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아랍문화
우리가 알고 있던 아랍의 문화가 주로 여성들의 억업된 이야기가 주를 이루긴 하지만 우리가 모르고 있는 아랍의 문화는 어쩌면 그 억압된 여성들의 이야기만 제외한다면 여느 나라나 별반 다른 게 없는 듯하다.
아랍의 문화에도 동성애가 있다. 문학에서 남성 작가의 자유로운 표현에 비해 여성 작가들의 표현은 극히 제한적이지만 나름대로 동성애도 다루고 있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유수프 이드리스 - 남자 중의 남자, 알리야 맘두흐 - 부재한 남자의 존재) 또 전쟁 포로로 십 년이나 잡혀 있다가 돌아 온 남편을, 아버지를 대하는 가족의 모습은 이미 영웅으로 죽었다는 아버지가 포로였다는 사실에 부끄러워하며 아버지가 설 자리를 내어 주지 않는다.(부싸이나 알나시리 - 포로의 귀향) 우리네 일상과 달라 보이지 않는 여행, 자살, 추억에 관한 이야기들도 있고,(데이지 알아미르의 과거의 불길,약사 처방전,대기자 명단) 빈곤함과 성 사이에서 살짝 반전을 보여주며 성적 좌절감을 이야기 하기도 한다.(자카리야 타미르 - 마른빵) 또, 결혼식에서 북을 두들기며 살아가는 아버지와 아들이 자동차라는 현대 문명이 들어와 겪게되는 아픔(갓산 카나파니 - 독사의 갈증) 등등..아주 다양했다.
아랍 문학, 대단한 출생신고서
어쩌면 그동안 내가 알아 온 아랍문학은 문학이 아니었던 듯하다. 아니면 한쪽으로 치우쳐져 여성의 억압된 생활상만이 아랍을 대표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다양한 아랍의 이야기들을 총망라하여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그동안의 아랍에 대한 편견을 살짝 깨 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랍이라 하면 늘 여성이 마음에 걸리지만 꾸준하게 그 여성들을 대표하여 그들의 처지를 이야기 해 주는 여성 작가들이 있으니 언젠가는 아랍의 문학에서도 당당한 여성상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위에서 이야기 하지 않은 훌륭한 다른 이야기들도 많다. 읽다보니 아랍이라는 독특한 문화 속에서도 세상은 역시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벼락부자가 있는가 하면, 이성에 대한 고민도 똑같다. 그것에 대처하는 방식만이 문화적 차이로 다르지만 말이다. 아랍문학에 관심이 있다면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