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사라지지 마 - 노모, 그 2년의 기록
한설희 지음 / 북노마드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이 책에 관한 얘긴 나오기 전에 들었다. 

난 눈물나게 만드는 책을 싫어하므로 귓등으로 들었다.

특히 요즘은 더욱 그렇다. 웃으면서 살아도 우울이 얼굴 한 가득인데 

이런 책을 읽겠다고 펼치면 

분명 눈물 한 바가지 흘릴 게 분명할 테니까.

한데 어쩌다가 읽게 되었다. 책을 받아놓고 한참을 쳐다봤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몰랐는데 실제로 보니 제목의 글씨체에서부터 울컥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엄마 죽지 마'라는 노골적인 투가 아니라 '엄마 사라지지 마'라는 

감정을 건드리는 제목에다 '~지 마'의 희미한 글자 디자인이 

정말로 엄마가 사라지기라도 하듯,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펼치기도 전에 젠장, 하는 말부터 나왔다. 이걸 넘겨, 말어?

용기를 냈다.


"재작년 갑자기 아버지가 타계하시고

황망해하던 중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늙고 병들어 겨울나무처럼 앙상해진

엄마가 곁에 있었다."


아, 이럴 줄 알았어. 프롤로그의 첫 문장에서부터 목이 메어 왔다. 

그리고 넘긴 페이지에서(아 제기랄,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제대로 감정이입 ㅠㅠ)

그만 덮어버리고 말았다. 

혼자가 아니었고 주변에 사람들이 있었고 

흐릿해지면서 훌쩍거리는 모습을 보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집에 책을 들고와서 혼자 읽다가 그냥 울어버릴 것 같아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그러고선

다음 날 용감하게도(!) 출근 길 버스 안에서 펼쳤다.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 감정이입 덜 될 거라는 얄팍한 마음으로;


역시 전날과 다르게 덤덤하게 읽혔다.


"늦든 빠르든 우리는 언젠가 고아가 된다.

내 머리 위를 받치고 있던 커다란 우산이 순식간에 거두어지고,

속수무책으로 쏟아지는 비와 눈을 맞으며 우두커니 서 있는 것.

그것이 부모를 잃는 경험이 아닐까."


내겐 아직 부모님이 계신다.

살아오면서 한번도, 라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부모님이 안 계시는 삶을 상상해보지 못했다.

한데 요즘 들어 점점 노쇠해지는 부모님을 볼 때마다 조금씩 현실로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결혼을 하지 않은 터라, 내 가족은 엄마, 아빠, 나. 이렇게 구성이 된다고 생각했다.

동생들은 결혼을 했기에 그들 가족이 따로 있으니까.

그렇다면 정말, 나는 고아가 되는 거지? 이런 스무 살도 안 하는 생각에 잠기곤 한다.

어쩌면 그래서 이 책을 펼치기가 더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무표정한 얼굴로 찍힌 저자의 어머니를 보면서 

자꾸 엄마가 오버랩되었다.


"내가 아는 것은,

엄마가 사라지는 순간이

이 기록의 마침표가 되리라는 것뿐이다."


생전 전화를 하지 않는 엄마. 그 엄마에 그 딸. 나도 전화를 잘 안 한다. 한데

어쩌다 요즘은 매일 출근 길에 안부 전화를 하게 되었다.

대화는 매번 똑같다.

엄마 뭐 해? 밥은 맛있게 드셨어? 일 많이 하지 말고 쉬세요. 감기 조심하고.

돌아오는 답도 매번 똑같다.

청소 한다. 맨날 먹는 밥 먹었지. 일이 얼마나 많은데 쉬냐. 

너나 출근길에 옷 따듯하게 입고 다녀라.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서로를 바라보는 일이다.

셔터를 누르는 것은 그다음이다.

찍는 사람도 찍히는 사람도,

서로의 시선 앞에선 숨김없이 남김없이

온전한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야 만다."


<엄마, 사라지지 마>를 읽고 나니 나도 엄마 사진이 찍고 싶어졌다.

이제와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냐마는 그래도 그래보고 싶었다. 한데 곁에 없으니~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큰 동생에게 이 책을 선물해야겠구나,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집에 내려가면 저자처럼 엄마 등에 기대 사진 한 장 찍어야지, 생각했다.


'엄마' 라는 말, 

저자는 그 말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단어는 없다고 한다.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내게 엄마는 어떤 존재였을까, 

엄마가 결코 되어보지 못할 나는, 그래서 더욱 엄마의 존재에 대해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다.  


"엄마 뭐 해?


내가 불을 켜면 응? 하고 소스라치며 황급히 부엌으로 들어가던 엄마.

그때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어린 시절의 어느 날, 엄마가 내게 노래를 하나 가르쳐주었다.


저 하늘에 해와 달은 변함없이 비치지만

사랑하는 우리 엄마 어느 곳에 계시나요.

비 옵니다. 비 옵니다......


노래는 끝나지 않았는데 엄마의 목소리는 차츰 잦아들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엄마가 울고 있었다.

엄마는 엄마의 엄마를 생각하는 걸까.


그때는 몰랐다.

아무것도 몰랐지만 엄마가 우는 것만은 가슴이 먹먹하도록 슬펐다.

나는 슬픔 속에서 어렴픗이 두려움을 느꼈다.

엄마가 나를 두고 떠나버릴까봐, 엄마가 사라질까봐 무서웠다.

왜 나는 슬픔 속에서 이별을 예감했을까.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일이 그것이기 때문이었을까."


결국 버스 안에서 다시 책을 덮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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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연 2012-11-23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