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卍).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 (무선)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김춘미.이호철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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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고 읽지 못했던『만卍ㆍ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를 읽었습니다.

 

작가인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읽은 책은 겨우 두 권.
그것도 한 작품은 읽다가 만 상태이고 다른 작품은 에세이였습니다.
이번에 이 작품을 읽고 나니 다른 작품들도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卍ㆍ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를 쓴 다니자키 준이치로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책에 실린 작품 해설에 보니 그는
 '일본 현대문학계의 거두이자 탐미주의 문학의 거봉'이라고 하더군요.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79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1965년 8월 6일자 <타임스>에 이런 기사가 올라왔다고 해요.

"다니자키 준이치로, 일본문학계의 원로. 
도쿄의 미곡상 아들로 태어나 79세에 심장마비로 사망.
그는 여성에게 예속당하는 성도착자인 남성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길 즐겼으며,
성(性)과 결혼 문제를 다룬 소설을 118편이나 발표하여 동양의 D.H. 로런스로 불린다."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일본뿐만 아니라 범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였고 
노벨문학상의 유력한 후보였으나 아깝게도 가와바타 야스나리보다 일찍 사망하는 바람에 
노벨문학상이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돌아갔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러한 화려한 경력을 가진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을 읽는 일은 즐거웠습니다.
첫 번째 단편 _만卍은 네 명의 남녀가 얽히고설켜(마치 卍이라는 한자처럼) 애욕의 거짓말, 
갈등의 거짓말, 그 거짓말의 거짓말을 해대며 관계를 형성하는 모습은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이며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정에 약한 존재인지 보여줍니다.
또 이 작품의 화자격인 한 미망인이 선생님이라 불리는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밝혀지는 이야기는 마치 '탐정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해줍니다.
도대체 누가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고, 
누가 거짓말을 하며 이 이야기의 결말은 과연 무엇인가?
한 치의 틈도 없이 작품 속으로 빨려들어가 
그들의 이야기에 놀아나는 '나'를 발견하게 만듭니다.
번역하신 김춘미 선생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이란 어떤 경우에도 자기 소신을 지키고 관철하는 존재가 아니며
상대방에 따라 끊임없이 대응하고 변할 수밖에 없는 불안한 존재" 라고.

무척 공감이 가는 말이었어요.

두 번째 단편 _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는 아아, 그야말로! 강추하고 싶은 단편이었습니다.
두 남자, 아비와 아들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한때는 아내와 어머니였던 여인에 관한 흠모와 숭배를 어찌나 아름다운 문체로 들려주는지
마치 귀를 쫑긋하고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이야기를 숨죽이며 듣는 듯한 느낌으로
정신없이 읽었답니다. 뭐가 그렇게 좋았냐고 물으신다면,
일단 읽어보세요! 라는 무책임한 답만(-.-)  

이 책에 실린 두 권의 단편은 한 편은 비교적 초기에,
뒤에 실린 _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는 말년에 쓴 작품입니다.
어쩌면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스스로 굉장히 몰입하며 쓴 작품이 아닐까, 했는데
해설에 보니 역시 육체가 쇠약해진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젊은 마쓰코 부인에게 "너무 젊은데 불쌍하다. 당신 바람 피워도 돼"라고 했다는 군요.
왜 이 말에 그렇게나 공감이 가던지;;;

최근에 읽은 책, 중에 가장 맘에 들어온 책입니다.
일본 탐미주의 문학의 대표작가라는 다니자키 준이치로, 역시 한동안 
제 맘에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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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2-10-04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지금 기다리고 있어요. <세설>을 너무 재미있게 읽었는데 readersu님 리뷰 읽으니 이 책은 더 기대됩니다.

readersu 2012-10-04 16:44   좋아요 0 | URL
저도 <세설>을 넘 재밌게 읽던 중에, 다른 책 읽느라고 놓치고 말았었어요. 얼른 <세설>을 다시 잡아 읽어야겠다고, 이 책을 덮으면서 생각했더랍니다. 부디 blanca님의 마음에도 이 책이 들어가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