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아 시가 되라 - 달털주 샘과 아이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詩 수업 이야기
주상태 지음 / 리더스가이드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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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의 이야기다. 전혀 문학소녀답지 않았던 내가 학교에서 실시하는 시화전시회에 나가게 되었다. 맞다. 상상하는대로 시와 그림을 그려 전시하는 것을 말한다. 자초지종은 기억나지도 않는다. 일단 나가게 되었으므로 안 나가면 창피한 일이라 무조건 나가야 했던 것만 생각난다. 근데 그때의 나는, 그림은 둘째치고 책도 잘 안 읽는 소녀였다. 더구나 독후감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는 무늬만 문학소녀였던지라 시를 '골라서'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자작시'를 써야 한다는 소릴 들었을 때,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몹시 고민이 되었더랬다. 하지만 자존심 하나는 겁나게 쎈 편이라 곧죽어도 까짓것, 써보겠다며 시작(詩作)을 하기 시작했는데… 다들 아시다시피 시를 짓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시인들의 시를 골라 그림과 같이 꾸미는 일도 어려운데 자작시라니! 언감생심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몇 줄 적었다. 친구에게 보여줬다. 친구가 웃었다. 그럼 네가 써봐! 라고 말하니 까짓것, 하며 써주겠단다. 며칠이 지난 후 시를 적어왔다. 어랏, 꽤 괜찮다. 좋아, 그럼 이걸로 하겠어. 하고 그 시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시화전에 제출했다. 무사히 시화전은 끝났다. 그 판넬을 집으로 가져오는 날, 친구를 만나 고맙다고 인사 했다. 그 친구 그제야 킥킥거리며 실토를 한다. 헤르만 헷세의 시와 무슨 클래식 가사인지 뭔지에서 패러디했음을(-.-) 아놔;;; 그 뒤로 나는 시 같은 것은 안 썼다. 아니 읽을 생각도 안 했다. 아무도 그 시에 대해 아는 척을 해주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내 자존심 구겨지는 일은 정말 싫었으므로. 세월이 지나 요즘은 시를 조금 읽기는 읽는다. 하지만 여전히 시를 쓰는 일은 진심으로 어렵다고 생각했다. 이 책, 《사진아 시가 되라》를 읽기 전에는.

 

매일 한 편의 시로 아침을 시작하던 주상태 선생님은 어느날 중고등학교 아이들과 '특별한 시 수업'을 해보겠다고 생각한다. 그냥 무턱대고 시를 지으라는 게 아니라 손수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그 사진을 보며 시를 지으라는 거였다. 엉? 사진을 보고 어떻게 시를 지어? 시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나조차 이런 반응이었을테니 아이들도 똑같았을 것이다. 역시 아이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무조건 놀기나 하자는. 하지만 그 아이들이 사진을 보여주자 관심을 보인다. 그 사진 속에 '내'가, 친구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근데 이 사진으로 시를 지어?

 

 

낚이다

이선주 (고2)

 

 

9월 17일

재미있는 강의가 있다더니……

 

오자마자 시 쓰란다

 

이 시는 책에서 내가 제일 재미있어 하는 시이다. 옆의 사진을 보고 이런 시를 지은 거다. 그니까 선주는 시가 쓰기 싫은 거였다. 한데 이런 것도 시가 되는 건가? 선주가 말한다. "네, 머릿속은 복잡한데 그것을 그대로 표현하기 어렵네요." 그러자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마다 하고 싶은 일이 다 다르니까 괜찮아." 이 말에 선주는 어? 갸우뚱하며 "시가 마음에 든다는 이야기인가요?" 라고 묻는다. 선생님 말씀을 이렇다. "그래, 선주 작품은 선주 작품대로, 솔희 작품은 솔희 작품대로, 희원이 작품은 희원이 작품대로 다 개성이 있잖아. 선주를 아는 사람이라면 다 마음에 들 거야. 선주다운 시를 쓰는 것이 가장 좋은 시가 나오는 거거든. 조금 노력해서 깊이를 더한 시를 쓰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 때문에 시가 너무 싫어지거나 하면 안 좋잖아." 그랬다. 나다운 시, 그게 중요한 거였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선주는 다시 시를 적었다.

 

 

 

 

자전거

이선주 (고2)

 

"띠링띠링"

시끄러워 죽겠다

자전거는 꼭 사람보다 빠르려고 한다

치! 자동차보다 느린 게

 

자전거는 왜 꼭 인도로 다닐까?

자전거 도로도 있는데

 

선주는 선생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한 것 같다. 시란 이런 거다. 그냥 내 마음 가는대로 적으면 되는 것. 그것을 오래 전 나는 몰랐던 거다. 시란 뭔가 멋을 부려야 하고 은유해야 하며 감성이 풍부한 시적인 단어를 적어야 시가 되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시란, 그저 내 마음에서 내가 생각하는 대로 적으면 되는 데 말이다.

 

이렇게 이 책에는 선생님과 아이들이 사진을 보면서 시짓기를 한 시 수업 이야기가 들어 있다. 사진을 보며 시를 지은 아이들의 시도 있다. 그 시들을 읽노라면 이 아이들의 미래가 보인다. '자신들의 이야기와 자신들의 감성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 아이들로 자라날 것이다. 사진으로 시 쓰기 활동을 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고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주상태 선생님은 하필이면 '사진'에 대해 말하고자 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한다. 교사가 공부하던 시대와는 달리 지금 중학생들은 영상 세대라고. 예전에 우리들은 공부가 지겹거나 힘들 때 낙서를 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면 요즘 아이들은 낙서보다는 그림을 그린다고. 그래서 시를 지을 때 그림과 연결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라고.

 

 

책을 읽고 나니 멋(!)을 잔뜩 부리며 시를 짓겠노라 고민하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무렵에 주상태 선생님처럼 시 짓기에 대해 쉽게 설명해주고 재미있게 가르쳐주었으면 나도 지금쯤은 시인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시를 짓겠노라 설친 바람에 시와 오히려 멀어지고 말았으니 아쉬울 뿐. 다행이라면 몇 년 전부터 시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시를 지을 엄두는 못 내지만 많은 시를 읽고 는 있으니까 말이다.

 

사진아 시가 되라》에 나오는 아이들의 시는 정말 좋다. 재미있고 센스 있다. 아이들의 상상력이란 놀랍구나, 라는 찬사가 나온다. 이게 다 좋은 선생님을 만난 덕분? 그래서 나도 오늘 밤에 사진 한 장 쳐다보며 시나 한 번 적어볼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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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2-08-23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재밌을 것 같아요!
그나저나 시는 정말 어려워요.
읽는 것도 쓰는 것도.

readersu 2012-08-23 19:01   좋아요 0 | URL
읽어보시면 '시'도 어렵지만은 않다는 걸 아시게 될 거예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