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문학상을 받은 두 권의 책을 연이어 읽었다. 2011년 퓰리처상을 받은 제니퍼 이건의 《깡패단의 방문》과 2011년 맨부커상을 받은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이다. 《깡패단의 방문》을 먼저 읽었는데 분량이 만만찮았다. 또 공간과 시간이 비규칙적이어서 가끔 앞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며 읽느라 시간이 걸렸다. 그에 비해 2011년 맨부커상을 받은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문학상치고는 꽤나 얇은데다 초반 몰입도가 높아 잡자마자 읽었다. 읽으면서 생각하길 제니퍼 이건의 《깡패단의 방문》과 같이 책 대 책으로 엮어보면 좋겠다, 했더랬다. 두 권의 책, 비슷하면서 다르다. 한데 역시 문학상을 받을만한 좋은 책이라는 것에는 공감한다. 제니퍼 이건의 서사적인 이야기도, 줄리언 반스, 역량 있는 그의 글도 너무나 훌륭했다. 이런 책을 동시에 읽을 수 있었던 독자로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책을 읽으면서 두 권의 책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포괄적으로 보자면 시간, 삶, 기억. 두 권의 책이 가진 공통점이다. 제니퍼 이건의 책은 제목에서부터 '시간'을 말한다. 깡패=시간, 어떻게 이런 공식이? 일단 읽어보라고 말하겠다. 또 두 권의 책에는 개개인의 '삶'이 들어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에 준하는 삶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 삶을 지배하는 '기억'들이다. 좋거나 나쁜 추억, 그리고 잊었거나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이 하나둘 씩 터져 나온다. 과거, 그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문득 나의 삶도 되돌아보게 만든다. 두 권의 책을 감히 비교하지는 못한다. 그저 내 식대로 일부분들만 주절거린다. 삶에 관해. 내 것이기도 하지만 당신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제니퍼 이건의 《깡패단의 방문》은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각 장마다 화자가 다르고 시점도 다르다. 또한 공간과 시간이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처음엔 뭐지? 헷갈린다. 하지만 매 장이 독립된 이야기처럼 읽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탄탄하다. 모두 열세 장으로 된 이야기의 중심은 레이블 대표 베니와 그의 비서 사샤의 인간관계로 엮인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이다. 그 속에서 드러나는 삶의 부조리나 깨달음은 독자로 하여금 나는 잘 살아온 것일까, 혹은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와 같은 회환과 희망을 가지게 한다.
어느 정도 세월을 보낸 분들은 알 것이다. 시간이라는 것이 청춘에겐 얼마나 더디고, 나이가 들면서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청춘일 때는 이 시간만 지나면 뭐든지 근사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지만 그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삶이 존재하리라곤 그땐 생각을 못한다. 또한 언제나 그 청춘일 것만 같은 삶이 지나고 보니 그렇지 않은, 그저 그때보다 조금 나은 여유만 생겨날 뿐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느끼게 되는 씁쓸한 느낌은 《깡패단의 방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마치 나의 삶을 되돌아보는 듯한 공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럼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 나오는 토니의 삶은 어떤가? 잘 살아온 것일까? 토니는 그렇다고 처음엔 여긴다. 비록 이혼을 한 상태지만 딸과의 교류도 있고 헤어진 아내와도 친구로서 지속적으로 만남을 유지한다. 그동안 벌어놓은 돈도 있어 여유롭진 않지만 노후를 편안히 보내기엔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과거를 돌아볼 사건(!)이 터진다. 지나가버린 시간, 이젠 까마득하여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때의 일들이 뜬금없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토니에겐 과거를 ‘기억’해야만 하는 일이 주어졌다.
잘 살아왔다고 반추하는 토니가 알게 되는 사실들은 우리가 그동안 ‘기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자기 위주로 왜곡되어 왔는가를 보여준다. 자신의 기억이 왜곡된 기억이라는 사실을 처음 깨달으면서도 그는 계속 의문과 질문을 던지며 변명 같은 말로 ‘삶의 본연’을 예감하지 못하지만 과거 자신이 던진 말을 사실과 다르게 기억하고 그 말로 인해 두 사람의 미래가 무시무시한 결말로 치닫게 되어버린 일을 알게 된 후 그가 가지는 삶의 무게는 과연 평범할 수 있었을까?
삶의 끄트머리에서 인간은 누구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살아오는 동안 잘못한 일은 무엇인가? 적어도 그걸 생각할 정도의 시간은 모두 가지길 바랄 것이다.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 비슷한 삶을 살게 될지언정. 파노라마처럼 내 인생이 머릿속에 지나갈 때 무얼 깨닫게 될까.
인생에 대해 내가 알았던 것은 무엇인가. 신중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았던 내가. 이긴 적도, 패배한 적도 없다. 다만 인생이 흘러가는 대로 살지 않았던가. 흔한 야심을 품었지만, 야심의 실패를 깨닫지도 못한 채 그것을 위해 섣불리 정착해버리지 않았던가. 상처받는 게 두려웠으면서도 생존력이라는 말로 둘러대지 않았던가. 고지서 납부을 하고, 가능한 한 모든 사람들과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았을 뿐, 환희와 절망이라는 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소설에서나 구경한 게 전부인 인간으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자책을 해도 마음속 깊이 아파한 적은 한 번도 없지 않았던가. 이 모든 일이 따져봐야 할 일이었고, 그러는 동안 나는 흔치 않은 회한에 시달렸다. 그것은 상처받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쳤던 인간이 비로소 느끼게 된 고통, 그리고 바로 그랬기 때문에 느끼게 된 고통이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