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웬만하면 집에 있는 책을 읽자, 고 다짐했었는데 유난히 좋아하는 작가, 시인들이 근 4~5년 만이라며 책들을 내 놓고 있어 어느 때보다 더, 책을 구매하게 만든다. 한 권 사면, 또 다른 작가나 시인이 나타나고(-.-) 아아 정말이지 이 분들은 왜 다들 한꺼번에 책을 펴내어 독자를 괴롭히는 걸까. 그래서 오늘도 구매 버튼을 누르고 만 책! 더불어 같이 살 수 밖에 없었던 책! 그리고 사야할 것만 같은 책!
소식을 듣고 한참을 기다린 책이다. 마침내 나왔단다. 발 빠르게 행동하지 못하고 늦장 부리고 있는데(달랑 한 권만 사기가 그래서 다른 책들과 같이 사려고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는데) 이미 읽은 친구들의 찬사가 장난 아니다.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어서 다른 책들은 제쳐두고 구매 버튼 눌렀다. 낼 도착한단다. 바로 강정 시인의 《콤마 씨》이다.
지난 해 부터인가, 우연히 시인들의 에세이를 읽기 시작했다. 우연히 읽게 되는 에세이마다 시인들의 것이어서 우연치곤 재미있네, 혼자 생각했더랬다. 한데 가끔은 시보다 시인들의 에세이가 훨씬 좋을 때가 있다. 그 이윤 그들에겐 보통 사람들에게는 없는 시적인 감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 감성이 글에 녹여 있다. 때론 짠하게 때론 위트도 주면서. 또 기성 작가들의 에세이보다 섬세하고 매력있다. 그래서 강정 시인의 에세이가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언제쯤 나올까, 기다린 것 같다. 책소개를 보니 이렇다.
시와 산문과 노래를 담았단다. '열네 명의 시인과 그들의 열네 편의 시를 기저로 빚어낸 새로운 스타일의 산문이자 일종의 장시'란다. 무엇보다 이 책은 '강정 시인의 줄글을 주목함과 동시에 끝까지 그로부터 시선을 놓지 않아야 완벽하게 읽어냈'다 할 것이란다.
이미 김경주 시인의 산문집《밀어》에서 쓴 그 멋진 추천사를 알고 있기에 몹시 기대가 된다. 그리고 읽고 나면 시인들의 산문집 모음을 엮어봐야겠다. 오래 전에 나온 시인의 산문집들을 찾아둬야겠다.
《콤마 씨》가 급하긴 했으나 한 권만 사기엔 섭섭하여 그동안 사야지, 벼르기만 하고 사지 못했던 박상륭 선생의 《죽음의 한 연구》를 같이 샀다. 며칠 전에 박상륭 선생과 관련한 재미있는 글을 읽은 덕분에 마침내 사게 되었지만 다른 책 다 필요없고 소설은 이 책만 읽으면 된다고 추천해주신 선생님이 계셨기에 언젠가는 무조건(!) 사야겠다, 마음만 먹고 있었던 책이다. 프로필에 이런 글이 쓰여 있다.
'생존작가로서는 전례 없었던 1999년 예술의전당의 '박상륭 문화제, 평론가 김현이 "이광수의 '무정'이후 가장 잘 쓰인 작품"이라고 격찬했던 책이며 심지어 '박상륭 교도(敎徒)라고까지 불리우는 일군의 독자들. 소설가 박상륭 앞에 붙는 레테르다."
김현 선생이 저토록 극찬한 작가라니! 그동안 건성으로 박상륭 선생에 대해 들었다, 싶어 추천해주신 선생님께 죄송한데 이번엔 다른 선생님이 386세대 문학 지망생들의 우상이었다고 말씀해주셨다. 한데 그 또한 알지 못하고 있었으니 이번에 제대로 관심을 가지게 된 셈이다. 책을 산다고 바로 읽어대는 것은 아니지만 어째, 이 책을 주문하고 보니 알 수 없는 뭔가로 마음이 가득 차오르는 것 같다.
그리고 친구의 강력 추천 시집, 《서봉氏의 가방》이다. 봄이 오니 시집이 자꾸만 눈에 들어오는데 먼저 읽은 친구가 어찌나 좋다고 하는지 시에 관해서는 통하는 편이라 무조건 그 추천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일단은 찜. 문태준 시인과 장석남 시인의 시들을 온전히 받아들인 후에 천천히. 암튼 이 시인 천서봉은 이 시집이 첫 시집이란다. '화려하지 않으나 밀도 있고 정석에 가까운 말의 본디를 구사하는 그의 차분한 시들이 느릿느릿, 그러나 정확하게 눈과 귀로 와 꽂힌다. 자극적이고 템포가 빠른 요즘 시들과는 차별화되는 그만의 개성, 그 진심이 울림 깊은 소리통으로 온몸 가득 전해진다.'고 한다. 오! 책소개가 멋지다! 그럼 서봉 씨의 한 마디를 들어보자.
내 시(詩)는
수만 장의 나뭇잎처럼 자잘할 것.
소소한 바람에도 필히 흔들릴 것.
그러나 목숨 같지 않을 것.
나무 같을 것.
또한 나무 같지 않아서 당신에게 갈 것.
입이 없을 것. 입이 없으므로
끝끝내 당신으로부터 버려질 것.
세월이란 것이 겨우 몇 개의 목차로 요약된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아마도 이 책의 대부분은 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탕진의 그 방대한 여백만이 시의 몸이 되었으니 지금 더듬을 수 없는 것만이 다시 희망이 될 것이다.
시를 써오는 동안, 내가 바란 것이 있다면 더이상 시를 쓰지 않고도 견딜 수 있는 아름다운 날을 살아보는 것이었다.
그런 날 만나고 싶은 착한 당신들과
천기태 교수, 김창옥 여사께 나의 첫 시집을 바친다.
2011년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