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부터 갑자기 세계문학전집 바람이 불었다. 그동안 전집을 봐도 관심도 없었는데 여기저기 계속해서 전집이 나오니 자꾸만 눈이 돌아간다. 눈이 돌아간다고 해서 살 것도 아니면서 괜히 침만 발라놓는다. 어떤 친구의 말처럼, 생일날 그 전집을 통째로 선물 받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와우! 그만큼 친구가 많다는 소리? 설마? 제일 적은 권수의 시리즈를 말한다.) 하지만 그걸 사놓거나 선물로 받아놓고선 읽느냐 말이다. 읽을 리가 없다. 책이 그것들만 나오고 안 나오는 것도 아니고... 

오래 전에 울 엄마 아빠들이 전집으로 사두었던 세계문학 작품들 부모님이 읽는 것 한번도 못봤다.(물론 안 그러신 부모님들도 계시겠지만^^;) 우리 부모님을 보면 그냥 폼이다. 그러고 보면 전집이란 꽂아두고 흐뭇해하는 장식용품밖에 안 된다. 나 역시 오래 전에 살림출판사에서 나온 10권짜리 <세계명작산책>을 싼 값에 득템하고 너무 기쁜 나머지 책꽂이 맨 윗쪽에 잘 올려두기만 했다.-.-;; 근데 단편집이 또 나왔다. 창비. 아, 갈등 때리는(!) 상황! 내가 그것들을 다 살까, 안 살까? 나도 잘 모르겠지만... 해서, 

이 참에 세계문학전집을 찾아봤다. 보면 볼수록 사고 싶은 책들이 많지만 그것들 중에서도 유독 내 눈을 괴롭히는 것들로 다섯 권을 골랐다. 이 정도면 생일날 선물 받아도 되겠다 싶다. 물론 그때까지 마음이 안 변한다면 말이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아, 다섯 권만 고르려고 했는데 최근 것부터 검색하다보니 자꾸만 클릭하게 된다. 이 중에서 가장 궁금한 책은 마지막『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이다. 요즘 <아마존의 눈물>이 눈에 밟히고, 얼마 전에 본 <아바타>도 그렇고, 서구세력의 유입으로 몰락해가는 아프리카 부족 마을의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펼쳐질 지 궁금하다. 비슷하게 어린이 그림책 중에 『토끼들』이라는 존 마스든 지음 숀 탠 그림의 책이 있는데, 그 책이 문득 떠오른다. 같이 엮어보면 재미있겠다. 그리고 존 치버의 『왑샷 가문 몰락기』, 좀 웃기지만 가끔 친구들이나 작가들의 강추에 읽어보지는 않고 이름만 듣고선 그 작가의 책을 무조건 사는 경우가 있다. 바로, 존 치버가 그 경우 중 한 사람이다. 언젠가 정이현 작가가 강추했던 게 기억이 나고, 친구 여럿이 『불릿 파크』라는 책을 추천했는데 책꽂이에 꽂은 채 아직도 읽지 않았다. 그의 단편 「기괴한 라디오」만 달랑 읽었다나. 좋기는 정말 좋았지.

 

2. 웅진 펭귄클래식 

 

역시 고르다보면 끝이 없다. 펭귄클래식이 나오자 무조건 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표지만 보고도 사고 싶은 생각을 하게 만든 전집이 바로 펭귄 클래식 시리즈이다. 그래서 책을 많이 샀냐고? 달랑 한 권이었다.-.-;; (난 전집에 관심이 없다. 나는 읽고 싶은 책을 사지, 꽂아두고 싶은 책은 안 산다. 진짜? 집에 있는 읽지 않은 그 많은 책은 뭐람?=.=) 근데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전집이 붐을 이루며 자꾸만 눈앞에서 아른거리니 이것들 사두면 멋지겠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암튼, 위의 것들은 그 중에서 읽어보고 싶다고 찜한 책인데, 역시 맨 마지막에 보이는 저 책에 유독 눈길이 간다. 『인상과 풍경』, 스페인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여행산문집이다. 그게 누구냐고?  사실은 나도 몰랐다. 하지만 지난 주에 본 영화 <리틀 애쉬스>에서 달리를 사랑한 시인으로 나왔다. 나름 굉장히 유명한 시인이었다. 영화를 보고나서 그에 대해 검색을 하다보니 이 책이 걸렸다. 『인상과 풍경』시가 아니라 여행, 그것도 스페인 남부를 여행하고 쓴 산문집이며 로르카 문학의 거의 모든 요소들이 담겨 그의 탄생을 알리는 서곡이라고 한다. 가르시아 로르카를 제대로 알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3.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아마도 세계문학전집의 바람은 문학동에서 불어온 게 아닌가 싶다. 전집이 나온다는 얘길 어쩌다가 알게 되었는데 문학동네 직원도 아니면서 문학동네 책을 좋아하다보니 문학동네라면 좀 뭔가 다르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하며 학수고대하던 시리즈였다. 그래서 내 집에 있는 세계문학전집 들 중에 민음사의 세계문학과 열린책들 세계문학을 제외하곤 세 번째로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는 전집이다. 아직 이후로도 책이 계속 나올 거라고 하는데 책꽂이에 꽂아둔 책 말고 갖고 싶은 책들을 골라봤다. 그 중에서 『위대한 개츠비』에 눈 돌아가신다. 처음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받았던 감동을 뭐라고 할까. 미국의 문학들은 이상하게도 그다지 읽고 싶어하지 않는데 이 책을 읽고선 첫사랑에 목숨 건 한 남자의 안타까움이 너무나 절절하여 정신놓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근데 김영하 작가가 번역을 했단다. 현업 작가의 번역이라면 좀더 문학적일 테니 어떻게 번역했을지 정말 궁금하다. 그리고 『1984』, 그렇다. 아직도 못 읽고 있다. 하루키의 『1Q84』3권이 나오기 전에 읽어봐야 할 터인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두 권의 책이 모두 다른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에도 들어 있는데 굳이 문학동네의 책이 궁금한 것은, 왜 일까? 

 

4. 열린책들 세계문학 

 

아마도 내가 가지고 있는 책 중에 제일 많은 세계문학 시리즈는 열린책들일 것이다. 예전에 나온 것도 세계문학이라는 타이틀로 개정되어 나오고 있으니 읽은 책도 그렇고, 집에 있는 읽지 않은 책들도 열린책들이 가장 많다. 열린책들의 세계문학은 정말이지, 소설에 표지따위는 아무거나(!) 만들던 그 시기에 오로지 열린책들의 표지와 서체만이 눈에 들어와 열린책들이라면 무조건적으로 사 모으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걸 생각하면 외국소설를 읽었다 하면 대부분은 열린책들이었던 게 기억이 난다. 지금이야 여기저기서 많은 외국소설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아직도 대중적인 외국소설을 찾을 때는 일단 열린책들부터 검색해보곤 한다. 위의 책들은 세계문학이라는 제목으로 개정되어 나온 책들이다. 『그리고 죽음』이나 존 스타인 벡의 『의심스러운 싸움』같은 것도 열린책들의 소설시리즈 중에 하나였었다. 이 책들 중에서 가장 궁금한 책은 『몰타의 매』이다. 여기저기에서 이 책의 제목을 들었고 추천을 받았기에 꼭 읽어보고 싶었다. 한데 아직도 구입하지 않고 있는 상황. 탐정 소설이라고 하니, 하드보일드에 약한 나로서는 살짝 걱정이 되긴 하지만 그래도 읽어보고 싶어서 읽게 되면 다르지 않을까, 싶다. 문득 『몰타의 매』를 읽고 몰타로 떠난 김경의 『셰익스피어 배케이션』이 생각난다. 맞다. 김경의 글을 읽고 몰타가 가고 싶었다. 물론 『몰타의 매』를 읽고 가야지. 

 

5. 창비 세계문학 

 

다른 전집들이 장편인데 반해 창비의 세계문학은 나라별로 뽑은 단편모음집이다. 위의 전집들 중 가장 늦게 뛰어든 셈인데, 장편이 아니라 단편이라 그 희귀성에 일단 한표! 창비에 앞서 『세계명작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이문열 작가가 주제별로 모은 세계단편집이 있었다. 그 전집은 이문열 작가의 해석이 달려 있어 아주 좋았던 기억이 난다(달랑, 「기괴한 라디오」하나 읽었지만;) 근데 창비에서는 주제별이 아니라 나라별로 묶었다. 양장에 정말 전집 같은 포스를 느끼게 해준다. 표지가 예뻐서 그냥 다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단편들이라 읽은 단편이 많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도!! 읽어보지 못한 단편들도 많다. 장편에 비해 단편이 좋은 점은 시간날 때마다 하나씩 읽을 수 있다는 거다. 요즘 나는 일본의 젊은 작가들의 책이 아닌 나이 지긋한 노장 작가들의(혹은 이제는 세상에 없는) 책에 빠져 있다. 그러므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일본편이다. 이상하게도 고르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나라가 딱 구분이 된다. 일본, 중국, 프랑스는 일순위이고 러시아나 폴란드, 독일은 이상하게 관심이 없다. 영국은 관심이 가는 단편이 있었고, 미국 역시 궁금한 단편이 있었으며 스페인을 책 제목이 나를 유혹!-.- 하여튼, 창비 세계문학은 전집으로 나두면 폼날 것 같기도 하다.^^;;; 

 

 6. 을유 세계문학전집

 

정혜윤과 김연수 작가의 추천으로 을유문화사의 『아우스터리츠』를 구입하며 알게 된 시리즈다. 을유문화사에서 전집이 나온 것을 어렴풋이 기억은 했지만 책들이 대부분 무거워보여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대중적인 너무나 대중적인 나의 취향 탓이라고 말하겠다. 그런 점에서 대산세계문학도 비슷하다. 이 책 중에선 조셉 콘라드의 『어둠의 심연』이 제일 궁금하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원작이라고도 하는데 문명과 야만, 인간의 어둠을 파헤친 작품이란다. 또 궁금한 것은 펭귄클래식에서 선택했던 스페인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집이다. 시를 잘 모르긴 하지만 일단 관심을 둔 시인이기에 한번쯤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에밀 졸라의 『』은 당연히 선택. 무조건 좋아하는 작가 중에 한 사람이 에밀 졸라이므로. 이렇게 생각하니 정말 위에 고른 책들은 모두 사서 읽어봐야 하는 책이 되어버렸다. 이런! 

 

7. 대산 세계문학총서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내고 있는 세계문학총서이다. 제목의 묵직함과 두께, 그리고 작가들의 이름을 들어보면 처음부터 읽기가 주저해지기는 하지만 일단 읽어보면 깜빡, 넘어가는 시리즈다. 영화로 보고 책으로 꼭 읽어보고 싶었으나 책을 구입하려고 서점에 간 당시엔 딱 한 권의 『위험한 관계』뿐이었는데, 썩 그다지 사고 싶지 않은 서체와 표지와 기타등등. 그래서 구입을 하지 않았는데 대산 세계문학총서에 들어간 줄 알았으면 진작에 구입해서 읽을 것을 그랬다. 그리고 『우게쓰 이야기』는 일본 에도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들로 동명의 영화가 있다고 한다. 궁금해진다. 괴이하고 신비한 분위기의 몽환적인 작품이라니 일본 현대 괴기 소설들의 기본이 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또 사무엘 베케트의 『몰로이』는 친구가 읽어보고 강추한 작품이다. 내가 과연 이 책을 읽어내겠나 싶은 생각이 드나, 언젠가는 나도 베케트의 책을 읽어내지 않을까?^^;;  

 

이 외에도 민음사에서 최근에 나온 대중적인 문학들을 고른 <모던클래식>시리즈가 있다. '젊은 고전, 즐기는 고전, 미래를 향하는 고전'을 모토로 한다는 이 시리즈엔 인기가 있었던 외국소설들을 모던클래식이라는 시리즈 제목을 붙여 개정판으로 펴내고 있다. 코맥 매카시의『핏빛 자오선』이라든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 그런 책이다. 또 문예출판사의 <세계문학선>이나 책세상의 <책세상문고 세계문학>도 시리즈로 나오고 있다.  

너무 많은 곳에서 중복이 되는 책들도 있지만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출판사에서 나오는 전집을 꼼꼼하게 따져서 고르는 재미를 독자들은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좋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의 대부분은 전집이나 시리즈로 계속 출간되는 책이라면 무조건 모으고 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므로 출판사들의 전집이나 시리즈 경쟁은 어쨌거나 독자들에게 대단한 유혹이긴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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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2-17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영하의 위대한 개츠비를 사면서 땡투를 누릅니다.
우와 어쩜 이렇게 다 정리를 하셨어요!
대단해요 ㅎ

readersu 2010-02-17 15:43   좋아요 0 | URL
그쵸? 잘했죠?ㅋㅋ
저 책들 다 사 읽고 싶은 마음이 이렇게 정리하게 만드네욤.
김영하 작가의 <위대한 개츠비>, 저도 빨리 읽어봐야 하는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