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존재
이석원 지음 / 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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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의 일기를 읽어보는 일은 소설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 주변의 일이 아니고,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일이기에 그게 비록 현실적이든 비현실적이든 간에 그럴 수도 있구나! 라는 공감 아닌 공감 한마디 던지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가끔은 잘 알지도 못하는 그 사람의 일기를 무심코 들여다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 몇 방울 떨어뜨릴 때가 있는데 그럴 땐 참으로 곤혹스럽기까지 하다. 뭐야. 이거, 내 일도 아닌데 웬 눈물? 

 이 남자, 이석원의 책을 읽으며 주책맞게 또로롱~ 눈물 한 방울 흘렸다. 도대체 어느 문장이 나도 모르게 나의 감정을 건드렸을까? 책을 되돌리니 온통 밑줄투성이다. 헉, 이거 내 일기야?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는 게 좋은 남자, 하고 싶거나 하고 싶은 일이 없어 스스로 아메바처럼 여겼던 남자, 연애란 이어달리기와 같다는 남자, 서른여덟 생일날 존재의 본질을 깨달은 남자, 나이를 먹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는 남자, 먹고 싶은 음식을 먹지 못하는 비애(!)를 아는 남자, 그 비애(!)를 너무나 능청맞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버리는 남자, 나이 마흔에 칠순 엄마의 보살핌을 받았다고 부끄러워하는 남자, 그러면서 엄마의 동문서답에 짜증부리는 남자, 효심도 깊다면서 엄마가 말을 걸면 화부터 난다는 남자, 지금의 얼굴이 전생에 사랑했던 사람의 모습이라는 말에 설마, 이 얼굴을 하며 믿지 않았던 남자, 자신을 안다는 것은 잔인한 일이라고 말하는 남자, 남들도 다 외롭다는 사실마저 위로가 되지 않으면 책을 읽으라는 남자, 결혼하고 싶을 만한 상대가 나타나지 않게 해달라고 신에게 비는 남자, 엄마의 믿음에(!) 따라 노란 옷은 절대로 안 입을 거라 해 놓고선 노란색 표지로 책을 펴낸 남자, 진정으로 굳은 결속은 대화가 끊기지 않는 사이가 아니라 침묵이 불편하지 않은 사이라고 말하는 남자, 거절 당하는 걸 두려워하는 남자, 컴플렉스란 숨겨도 솔직해도 어쨌든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을 알고 있는 남자.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보통의 존재이며 우리가 그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그렇게 밖에 기억되지 않는 존재라고 말하는 남자.

분명 내 이야기가 아니고 한번도 만난 적 없고 대화를 나눈 적이 없는, 여자도 아니고 남자의 이야기인데 공감, 공감, 공감을 했다. 분명 이름이 있는 가수인데 도무지 스타 의식이 없어 보이는 보통의 남자. 어쩌면 꾸밈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기 때문에 보통의 존재들일 수밖에 없는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문득 남의 사생활에 이토록 관심을 갖다니 나 좀 이상한 거 아냐? 뭐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어찌나 공감스러웠던지... 

우중충한 겨울, 쓸쓸함이 밀려온다면 이석원의 일기를 훔쳐(!) 보길 바란다. 그의 일기 속에서 나의 마음을 발견하고, 그 마음으로 인해 '나'를 다시 알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쓸쓸함이 사라지고 말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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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09-12-02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공감이 돼요.
읽어보고 싶었던 책인데, 역시 그럴 것 같았어요. readersu 님 덕분에 더 좋아졌어요.

readersu 2009-12-02 11:07   좋아요 0 | URL
Arch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시죠?
이석원의 책은 정말 공감덩어리라서 읽는 내내 생각할 거리가 많았어요.
꼭 나를 되돌아보는듯한..ㅎㅎ
Arch님의 멋진 리뷰 기다릴게욤~^^

Arch 2009-12-02 13:13   좋아요 0 | URL
반갑단 인사도, 잘 지내냔 말도 다 좋은데 멋진 리뷰를 기대하면 곤란해져요^^ readersu님 만큼 리뷰 쓰려면 제 페이퍼 10개(100개로 쓰려다 자존심은 있어서ㅋㅋ)로도 모자라요.

readersu 2009-12-02 15:20   좋아요 0 | URL
에이~겸손하시긴요.
제가 Arch님의 실력을 모르는 바가 아닌뎅~~ㅎㅎ

2009-12-03 2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4 1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7 14:2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