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있던 다른 책을 잠시 놓았다. 영화 <렛미인>을 보기 위해 부랴부랴 책을 펼쳤고 그 후로 책을 놓을 수가 없었지만 1권만 겨우 읽은 채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는 동안 1권이라도 읽고 오길 너무 잘했다고 생각했다. 영화가 보여주는 절제의 미, 책을 읽은 연후라 그 아름다운 장면들이 마구 이해가 되면서 더더욱 신비롭게 보였다. 더구나 책으론 볼 수 없었던 배경들과 음악. 좋았다. 보통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 실망하는 편인데 <렛미인>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책을 읽고 온 것이 많이 도움이 되었고, 다시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로선 2권을 읽지 않았으니 영화를 생각하며 읽을 수 있게 되어 1권만 읽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눈보다 하얀 아이 오스카르, 북구의 사람들이 본디 하얗다는 것은 알았지만 책을 읽으면서는 상상을 하지 못했다. 그 하얀 눈밭도 그랬다. 분명 추운 나라의 이야기였음에도 내 머릿속엔 왜 우거진 숲의 이미지만 떠올랐던 걸까? 오스카르가 숲에 들어가 나무에 화풀이를 하리라 생각했는데 집하곤 너무나 가까운 곳에서 그 짓(!)을 하는 것과 영화에서 보여준 숲에서 일어나는 살인의 장면도 그런 까닭에 사실은 조금 어이가 없었다. 벌거벗은 나무, 너무나 쉽사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들킬 것 같아 조마조마했었다는.^^; 
엘리가 비르기니아를 덮치는 장면이나 영화로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오스카르의 아빠와 얀네의 관계(난 얀네와 오스카르의 아빠가 사랑하는 사이인 줄 알았다.ㅋ), 얼음덩이가 된 요케의 모습까지도 영상과 소설이 오버랩되면서 더욱 흥미를 갖게 했다. 또 소설에선 훨씬 더 왕따를 심하게 당하는 오스카르, 호칸과 엘리의 관계는 책을 읽고 나면 뭔가 뚫린듯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아직 읽지 않았다면 이 더운 여름에 소설 『렛미인』을 읽고 영화 <렛미인>을 한번 봐주길 바란다. 그게 아니라 영화 <렛미인>만 보았다면 반드시 소설 『렛미인』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책 뒤에 실린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글에 백번 공감할 것이다.
영화 <렛미인>에 매혹되었다가 원작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 출판을 기다렸다. 하이얀 눈의 나라에서 펼쳐지는 이 기이한 동화의 암시적 텍스트는 어떤 원형을 갖고 있었을까. 필름에 아로새겨졌던 피와 눈물의 연금술은 어떻게 꿈을 꾸는 언어의 번안이었을까. 호칸은 엘리를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 오스카르는 엘리에 대해 어디까지 아는 건지, 그리고 열두 살을 영원으로 겪는 아이와 열두 살을 터널로 앓는 아이는 왜 서로에게 그토록 빠져들었던 것인지에 대해, 소설 『렛미인』은 잎을 떨군 겨울의 문장들로 하나하나 비밀을 풀어헤친다.
마지막 책장까지 다 덮고 나면, 영화가 남긴 퍼즐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아 또렷한 이야기를 완성하는 순간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내러티브에 대한 궁금증이 해갈된 이후에도 이 소설은 여전히 우리를 상상하게 만든다. 그토록 인상적인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여전히 저마다의 그림을 마음에 그리게 하는 활자의 힘이 소설 『렛미인』에 있다. 이동진(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