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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 -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지독한 감정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온화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20세기의 뛰어난 전기 작가라 불리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의 베르사유의 장미』가 출간되었을 때 왠지 모를 끌림에 구입하고선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다. 또 ‘역사의 행간에 숨어 역사의 장엄함을 극적으로 보여준다’는『광기와 우연의 역사』도 진즉에 읽고 싶었으나 읽지 못하고 있다가 엉뚱하게도 츠바이크의 유일한 소설이라는『연민』부터 읽게 되었다. (그는 이 소설이 명백한 사실이라고 하니 다르게 생각하면 전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두고 "인간의 마음에 아주 미세하게 숨어 있는 감정과 이기심의 씨앗까지도 낱낱이 밝혀내고 있다."는 책 소개를 보자마자 읽어보고 싶은 강력한 욕구를 느꼈지만(그런 책이 한두 권이 아니기에;;) 겉표지에 자신만만하게 써 놓은 ‘읽기 시작하면 책을 놓을 수 없을 것’이라는 광고 문언에 살짝 의심을 품었다. 설마, 이 두껍고 글자 빽빽한 책이 정신없이 읽을 만큼 재미가 있으려고? 했는데 그 광고는 거짓이 아니었다. 긴장감 넘치는 추리 소설이 아님에도 정말! 한 장을 넘기는 순간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고 인간의 이기심에 나마저도 느끼게 되는 그 모두를(케케스팔바, 에디트는 물론이고, 호프밀러, 지참금을 위해 에디트를 도우러 와 있는 일로나까지도) 향한 연민의 마음이 무거워질 대로 무거워진 채로 책을 덮었다.
사랑과 연민의 차이는 뭘까? 한 사람을 사랑하다 보면 그의 어떤 면에서는 연민이라는 감정이 생겨날 수 도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사랑이 우선이 되어야겠지만 중심을 못 잡고 우유부단한 호프밀러의 경우는 사랑보다는 연민이 먼저 앞섰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물론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콘도르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케케스팔바와 에디트에게 완치할 수 있다는 엄청난 거짓말을 본의 아니게 하게 되면서 부터다.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들로부터 받는 신이나 다름없는 대접에 눈이 멀어 진심이 아닌 연민으로 먼저 그들을 대한 것이 그의 최대 실수였던 거다. 더구나 호프밀러는 자신의 우유부단함으로 생긴 이 문제가 장벽에 부딪칠 때마다 그 순간을 벗어나기 위해 거짓말에 또 거짓말을 한다. 급기야는 호프밀러 스스로 "나는 이 세상에 나쁜 일이 생기는 것은 악이나 야만적 행위 때문이 아니라 거의 언제나 우유부단함 때문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기 시작했다."고 까지 말을 하기에 이르니 이 소설의 결말은 보지 않아도 뻔한 것이었다.
난 이 작가가 존경스럽다. 처음부터 끝까지 매 장마다 나타나는 연민에 대한 그의 생각은 빈틈이 없다. 호프밀러가 공원에서의 그 밤에 케케스팔바에게 한 말로 인해 생겨난 이 모든 오해에 대해 의식적인 사기도 악의적인 거짓말도 없었음으로 자기 합리화하여 그들 부녀를 대하게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에디트가 자신을 거짓으로 대하는 사람들에게 거침없이 쏘아대는 불만들은 읽으면서도 오싹함을 느꼈다. 또 우유부단한 호프밀러가 이랬다저랬다 갈피를 못 잡는 심리를 어찌나 제대로 표현을 해내는지 작가가 그런 감정에 빠졌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나약한 사람들은 언제나 누군가의 친절에 쉽게 빠지게 된다. 그 친절이 사랑인지 연민인지 따위는 고민하지 않는다. 처음엔 부정하다가도 결국엔 그것이 진심이라고 믿게 된다. 그리고 그 친절을 베푸는 사람은 그저 ‘네가 약하니까!’라는 단순한 생각과 잘못된 관심으로 인해 상대방을 빠져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 속으로 밀어 넣고 만다.
기껏해야 동정심밖에 줄 게 없는 한 남자의 잘못된 상황 판단으로 인해 결국은 모두가 파멸의 길로 들어선 이 엄청난 인생역정은 그의 마지막 말처럼 “양심이 있는 한 그 어떤 죄도 망각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