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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그든 씨의 사탕가게 - '이해의 선물' 완전판 수록
폴 빌리어드 지음, 류해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07년 10월
평점 :
지금 아이들은 그렇지 못하겠지. 하지만 우리 어릴 때는 놀거리가 많았다. 그땐 컴퓨터도 없었고, 학원에서 하루 종일 보낼 일도 없었을 뿐더러 학교 다녀오면 오후 내도록 이 골목 저 골목 누비며 다 저녁에 저녁 먹으라고 부르는 엄마의 소리가 들릴 때까지 밖에서 놀 일밖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사건도 많았고, 사고도 많았다. 아이들과 술래잡기 하다가 내리막길에서 엎어져 이마를 찢고 병원에 가서 실 뭉텅이 들고 나오는 의사 선생님 보고 놀라, 죽어도 안 꿰매겠다고 버티다 지금도 어렴풋이 보이는 흉터를 남겨놓고,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 멀쩡하게 잘 서 있는 정원등을 넘어뜨리고선 혼이 날까 두려워 같이 있던 친구과 우리 다 같이 죽자!라는 비장한 다짐도 했었다.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를 읽으면서 제일 많이 느낀 것은 바로 그 시절의 추억이다. 폴 빌리어드가 겪은 그 추억들이 고스란히 내 추억이 되어 내 향수를 건드린 것이다.
유머감각이 없는 알자스 출신의 아버지와 몽상적인 어머니 밑에서 호기심으로 세상을 배워나간 삶들을 위트 있고 감동적으로 써내려갔다. 폴은 이 책을 두고 '성장통'이라고 부른다. "아마도 여러분들도 비슷한 일들을 겪으며 성장했을 것이다"라는 폴의 말처럼 나 역시 그랬으니 우리 모두에겐 어른이 되느라 다들 겪은 '성장통'이 있는 것 같다.
모두 22편의 이야기가 실린 이 책은 폴의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그 어린 시절은 사고와 장난의 연속이었고, 그만큼 폴에겐 많은 추억을 남겨주었다. 체리 씨앗으로 사탕을 산 이야기를 들려주던 표제작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를 필두로 짧은 이야기들 속에 감동이 숨어 있다. 친구와 두들겨 패고 싸우면서 만든 우정, 물건을 훔친 폴에게 부모와 주인이 준 교훈, 여섯 살짜리 아이를 혼자 기차에 태워 보냈는데(우리나라에선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일 것만 같은) 노느라 기차를 놓친 폴을 기다려 준 많은 승객들, 선생님을 너무나 사랑하여 일으킨 일이 엉망이 되어버린 사건, 형의 풍선(?)을 가지고 놀다가 어른들을 황당하게 만든 일 등 이루 말 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장난들 중에서 특히 감동적이었던 일은 「안내를 부탁합니다」였다. 요즘에야 얼굴도 모른 채 이야길 하고, 채팅하는 일이 인터넷으로 인해 많아졌지만 예전에는 그럴 일이 전혀 없었다. 있었다고 해봐야 아마도 펜팔 정도였을 것이다. 그런 시대에 장난 전화를 시작으로 폴과 이어간 전화교환원 존슨부인과의 인연은 너무 아름다웠다. 그 둘이 만나게 된 사연도 놀라웠지만 어린 폴을 위해 질문에 대한 대답을 공부했었다고 말하던 존슨부인의 이야기는 소설보다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요즘 아이들은 나가서 노는 일 보다는 집에서 컴퓨터를 하는 것이 더 좋다고 하고, 모여 놀아도 각자 닌텐도 하나씩 꿰차고 자기만의 놀이에 몰두하는 것을 보면 우리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하지만 날이 추워도 코가 새빨개지도록 뛰어노느라 바빴던 그 시절의 추억을 만들 수 없음이 우리 아이들은 섭섭하지 않겠지. 그들에겐 그들만의 추억이 있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안타까움이 앞서는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