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성석제 지음, 김경호 그림 / 창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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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고향이 어딘지 말하는게 지겨워졌으므로 더이상 밝히지 않겠다는 작가의 고향은 내 고향과 아주 가깝게 있다. 그래서 그의 책을 읽으면 내 고향의 구수한 말씨가 들려 한결 정겹다. 그런 그가 작년 봄에 고향의 맛을 들고 나타났었다. 워낙 말재주가 비범한(?) 작가라 그의 책을 읽을 때마다 낄낄거린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는데 음식이야기를 하면서도 이렇게 웃길 줄이야. 소풍가기 딱 좋은 계절이 돌아온 지금 이 책에 담긴 구수한 고향의 맛을 눈으로 느끼면서 가까운 공원으로의 소풍이라도 꿈꿀 수 있다면 행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엔 그 흔한 맛집의 맛은 없다. 멋진 레스토랑도 없고, 소문난 서양요리도 없다. 그저 구수한 고향의 맛, 어머니의 맛, 그립던 어린시절의 맛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역시 성석제답다. 

 첫 이야기 '너비아니'에 대한 이야기에서 성석제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음식에 관한, 맛이라는 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풀어냈다고 생각한다. 작은 간판으로 '얌전하게' 요리를 하던 그 식당. 욕심도 없어보이고 늘 그렇게 '얌전하게' 맛을 보전할 것 같던 그 식당이 시간이 흘러 맛집으로 이름이 나고 돈을 벌자 그 맛을 잃어버린 안타까움을 그는 이렇게 '얌전하게' 전했다.

 얌전하게 한복을 입고 앞치마를 두른 부인, 얌전하게 풍로에 불을 붙이고 얌전하게 생긴 부채로 얌전하게 부채질을 하고 있는데 솣불 위에 얌전한 석쇠가 놓여 있었고 석쇠 사이에 고기가 얌전하게 끼여 있어 익어가며 얌전하게 냄새를 피워올리는 것이었다. 내가 잠깐 멈추어서자 그 부인은 나를 얌전하게 돌아보며 얌전하게 미소를 지었는데, 그 부인의 콧등에는 크지도 작지도 않게 얌전한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나는 그곳을 다녀온 뒤에 한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입에 거품을 풀며 그 부인의 얌전함, 음식 맛에 관해 이야기했다.

 십여년 뒤 ~ 그 부인은 식당업에 성공해서 땅을 사고 빌딩을 지어 대형식당을 낸 것이다. 그런데 그 집의 너비아니, 아니 불고기,아니 물 고기,아니 석쇠구이는 전혀 옛날 같은 맛이 나지 않았다. 너무 달았고 너무 손님의 입맛에 맞추는 듯했고 너무 짰다. 그 부인은 조금 주름진 얼굴, 조금 오만해진 표정으로 계산대에 앉아 있었다. 그 자태 역시 얌전하긴 했다.

 성석제가 이야기하는 음식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골목 어느 구석에 박혀있어 사람들이 잘 찾아가지 못하더라도, 허름하고 간판마저 없어 그 집이 음식점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가는 곳에 자리잡고 있더라도 변함없는 손맛으로, 변함없이 따뜻한 마음으로 자신있게 자신의 요리를 내 보일 줄 아는 그런 음식이야기를 한다. 세상이 변해도 변치않는 맛, 그 음식을 맛보면 어쩐지 인생이 보일 것 같은, 그래서 두고두고 그 맛이 잊혀지지 않아 나이가 들어 한번만이라도 다시 먹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그런 음식말이다.

 책을 읽는 동안 요즘 유행하는 퓨전도 아니고, 맛집에 등장하는 맛난 음식이 아닌데도 그가 풀어내는 음식의 맛에 홀딱 빠져버려 침이 꼴깍 넘어갔다. 옛날 어머니가 소풍가기 전날 밤에 싸 주던 어머니표 김밥, 새벽의 나이트클럽 앞에서 김을 모락모락내며 팔던 거친 진짜 순두부와 내 어릴 때 아니, 지금도 열심히 먹어대는 갱죽이라 불리는 갱시기까지. 이 책에 나온 모든 음식들은 그가 풀어 놓는 이야기속에 웃음이라는 양념까지 버물어져 최고의 맛을 냈다.

 무릇 이야기란 우리 삶의 소풍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시원한 나무그늘이 아니더라도 책을 펼칠 수 있는 그 어떤 장소에서든 이 책을 펼치면 어릴 때 즐거워하며 가던 소풍처럼 그때의 즐거움을 맘껏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이 따듯한 봄에 가까운 공원으로 맛있는 소풍이나 가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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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3-27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기란 우리 삶의 소풍, 명대사!

readersu 2007-03-29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대사!!! 근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