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갈증
미시마 유키오 지음, 송태욱 옮김 / 서커스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미시마 유키오의 『비틀거리는 여인』을 읽은 후에 그에게 폭 빠져버렸다. 로맨스 소설 표지 같은 일러스트가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으나 책을 읽고 나면 내용과 표지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한국어 제목은 정말 잘 지은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 책은 미시마 유키오가 '꼴통보수주의자'라 불리기 전에 쓰여진 책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유명한 소설 『금각사』 이전에 쓴 소설이다. 그래서 『금각사』의 저자로 알고 있던 그 미시마 유키오가 이런 소설을 썼다는 것에 다들 놀라워한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비틀거리는 여인』으로 미시마 유키오를 처음 만난 나는, 누군가는 어려워서 못 읽었다 하고, 또 누군가는 읽을 생각도 안 했다는 꼴통보수주의자로서의 미시마 유키오가 아니라 섬세하고 완성도 높은 문학의 정수를 보여준 작품으로 그를 만나게 된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았다면 미시마 유키오의 진정한 문학성을 알지 못했을 거다.

에쓰코의 남편 료스케는 여성 편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에쓰코의 기억으로 료스케와 결혼 후 가장 행복했던 때는 신혼여행때와 료스케가 발병하기 전 사흘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다가 장티푸스라는 병을 안고 마침내 에쓰코에게로 돌아와 에쓰코에게 간호를 받던 16일 동안뿐이었다. 그 기간 동안 에쓰코는 료스케를 위해 진정으로 간호했으며 또 한편으론 그가 죽기를 진정으로 바랐다. 결국 료스케가 죽자 시아버지 야카치의 부름으로 마이덴의 스기모토가로 들어간다. 그곳은 시아버지 야카치를 비롯하여 첫째 아들부부인 켄스케와 치요코, 셋째 아들의 며느리인 아사코와 아이들, 그리고 하녀인 미요와 사부로가 같이 살고 있었다. 남편을 잃은 지 1년도 안 된 젊은 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의탁하러 들어온 것에 대해 가족들은 의아해했지만 에쓰코는 ‘따분한 듯, 마음이 내키지 않은 듯, 그러나 사람들의 시선에 개의치 않는 단정치 못한 활달함으로 온종일 이 울타리 안을 왔다 갔다 하는, 날개가 퇴화하여 날지 못하는 한 마리 날짐승 같은’ 태도를 보여줄 뿐이었다.

미묘한 가족 관계 속에서 켄스케 부부는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감초처럼 등장하여 한마디씩 던질 뿐, 이 책의 주된 이야기는 에쓰코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생각하는 에쓰코의 감정이다. 시아버지에게 보여주기 위해 가짜 일기를 쓰고, 시아버지와의 동침이 처음부터 그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한 아무렇지 않은 그녀의 감정 표현처럼 구멍이 없는 동전에 구멍을 뚫을 각오로 이 따분한 시골 생활을 견뎌내는 단순함만 존재한다. 행복하다고 부정할 수 없고, 증거도 없는 만들어진 ‘믿음’과 어리석은 ‘연극’ 같은 생활 말이다. 그런 삶 속에 사부로라는 하인이 에쓰코의 마음에 들어온다. 사부로를 향한 에쓰코의 마음은 제목처럼 '사랑의 갈증'이다. 온 가족이 다 알아채도록 사부로를 향한 마음을 여는데 정작 사부로만은 무지하게도 그 사랑을 끝까지 알아채지 못한다. 그에게 있어 에쓰코는 '성가신 주인집에 살러 온 성가신 부인이라는 존재'이며, 그에겐 오로지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욕망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미요에 대한 사부로의 사랑이 별 것 아니었음을 알게 된 에쓰코는 사부로에게 듣고 싶던 그 한마디를 듣기 위해 용기를 낸다. 그리고 사부로는 여전한 무지로 에쓰코가 원하는 대답을 해 주었지만 ‘너무나도 역력하게 거짓말을 알리는 이 말투, 사랑하지 않는다고 직접 말하는 것보다 더욱 노골적으로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걸 알리는 이 말투’로 인해 에쓰코가 마음을 고쳐 먹게 만든다. 일순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자신을 대하는 에쓰코를 이해하지 못한 사부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 표정을 짓지만 순간적으로 그동안 없었던 감정이 생기며 에쓰코에게 여자를 느낀다. 그리고…….

미시마 유키오는 한 여자의 사랑에 대한 갈증을 한 편의 잔혹극으로 끝내버렸다. 이 책에서 눈여겨 볼 것은 에쓰코의 감정이다. 남자인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표현하는 여자 에쓰코의 감정은 그야말로 하나같이 문학적이면서 무게감이 있다. 내뱉는 한마디 말마다 에쓰코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는 그 울림은 미시마 유키오가 어떻게 세 차례씩이나 노벨 문학상 후보에 거론되었는지 보여주고도 남음이다.

비틀거리는 여인』에서 보여준 세쓰코의 귀여운 행각과는 대조가 되는 에쓰코(그러고 보니 이름이 비슷하군) 의 미래는 과연 그녀의 생각처럼 그후로도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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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3-22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특이해요. 실제 책으로 보면 어떨런지.

readersu 2007-03-23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는 역시 로맨스 소설같지만..^^
내용은 멋집(?)니다..그 시대 일본소설답다고 해야하나...느낌상..^^;;;
마지막 무지한 사부로와 에쓰코가 나오는 장면에서 사부로의 생각은 그야말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