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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철학, 소소한 일상에게 말을 걸다 - 일상에서 찾는 28가지 개념철학
황상윤 지음 / 지성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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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 무식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절대! 자뻑 아니다.) 가끔 어처구니 없는 말과 생각들로 '내가 왜 이럴까?'라는 자책은 하지만, 그래... 무식은 아니다...그래도 oo교양, oo상식, oo철학들은 나도 모르게 나를 주눅들게하고, 읽고 또 읽어도 항상 새롭게만 느껴져서 '아직 멀었군'하는 생각과 함께 재도전의 의지를 불태우게 만든다. 나에게 '철학'은 내가 이루어야 할 지적 로망이다.  읽어도, 들어도, 배워도 항상 제자리 걸음 중인 나의 철학적 지식에 바람의 신 제피로스가 봄바람을 불어주듯 젊은 철학자 황상윤식 유쾌한 철학이 말을 걸어와 희망의 바람을 불어주었다. 자아! 그럼 이제부터 '철학'이란 놈에 대해서 알아볼까. 

철학...참 뻔뻔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철학은 자신도 자신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그러니 철학자들이 자신의 정체를 알려고 동분서주해도 철학자 자신들도 본인이 무엇을 연구하는지 모른다. 게다가 어렵기까지 하다. 그러니 성격 나쁘고, 접근하기 쉽지 않은 '철학'을 사람들이 싫어해도 '철학' 자신은 억울해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억울하단다. 자신은 성격도 좋으며 항상 사람들 옆에서 기웃기웃 하는데 사람들이 그걸 몰라주어서 억울하단다. 그도 그럴 것이 황상윤의 설명에 귀기울이다 보면 '철학'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최초의 철학자라고 하면 탈레스를 든다.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고 주장했다. 지금 우리는 이 주장이 틀리다는 것을 안다. 이렇게 틀린 주장을 내세웠는데 탈레스를 최초의 철학자라고 하는 이유는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최초로 했기 때문이다. 철학의 시작은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질문에 따라 정답이 달라지고 드러나는 진실의 범위도 달라지며 어떤 철학자인지도 결정되는 것이다. 고로 질문을 할 수 있는 우리는 철학이 무엇인지 몰라도 철학을 할 수 있고 철학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래도 못 믿겠다면! 우리는 모두 다른 삶을 산다. 사소하든, 중요하든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하며, 저마다 각기 다른 기준, 즉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 철학으로 판단하고 선택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그 생각들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고 행동에 따라 결과도 대부분 다르게 나타난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모이고 모여 무엇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바로 한 사람의 삶이다. 즉, 개인의 삶은 개인의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철학자일까? 황상윤의 유쾌한 철학을 접하기 전부터 내가 알고 있던 철학자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니체, 헤겔, 공자, 맹자 등이었다. 누구나 이들의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들의 철학론까지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었으면 바랄 것이 없겠지만 설명할 수 있었다면 철학이 나의 지적 로망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황상윤의 유쾌한 철학 얘기를 들은 지금 나의 철학이 갖고 있는 의미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그래도 여전히 철학에 대한 나의 갈증은 해결되지 않았다. 아마도 아무리 마셔도 해갈되지 않는 목마름이 될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세상의 부조리함때문에 실망하고, 좌절해도 참세상과 거짓세상을 구분 짓지 않고 참세상은 거짓세상 속에 있다고 생각하고 세상의 부조리와 싸우고 있다면,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론이다. 또한 두 개의 주장 우리가 살면서 흔히 겪는 자장vs짬뽕, 발라드vs힙합, 전지현vs송혜교, 액션영화vs멜로영화  등의 주장의 이면에도 참과 거짓이 제눈에 안경도 아니고 객관적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는 칸트의 철학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외에도 우리는 일상에서 데카르트, 맹자, 홉스, 하먼, 마르크스 등을 알게 모르게 만나고 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생각을 확장하면 우리의 인생은 많은 철학자의 생각과 함께 한다고 봐도 무방하지 싶다.  

철학은 어렵거나 고리타분하거나 고루한 것이 아니다. 철학은 변화를 수용할 줄 아는 포용성도 가지고 있다. 각자의 처지와 위치에 따라 선택의 기준도 달라지고, 선택도 달라지기 때문에 철학론들도 처지와 경우에 따라서 선택되기도 탈락되기도 하면서 시대가 발전,변화함에 따라 철학도 발전하고 변화한다. 황상윤의 유쾌한 철학으로 처음의 답답함, 거리감, 어려움 같은 '철학' 이미지를 떨쳐버리고 개혁성, 시대성을 가진 새로운 '철학'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유쾌한 철학과 만나고 헤어진 지금 다른 철학책이나 철학자가 '철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철학얘기를 시작한다고 해서 너무 뻔한 질문이라고 무시할 수도, 그 질문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또한 그런 질문에 '철학이란 무엇이다'라고 답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여전히 철학의 시작은 '철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야 하는가 보다. 그리고 '철학은 무엇이다'라는 답에 가깝게 왔어도 또다시 머릿속에 물음표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끝나지 않는, 네버엔딩이 '철학'인가?

*서평도서의 좋은 점 - '어라? 철학? 별거 아니군. 그래 난 아직 무지, 무식까진 아니야. 이만하면 꽤 철학적인 인간이라구'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생긴다. 

*서평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철학이 지적로망인 사람.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p.96 지금까지 철학은 세계에 대해 수많은 해석을 내려왔다. 어떤 해석이 올바른지 갑론을박하면서 논쟁해 왔다. 그러나 진리는 기존 철학이 해 온 것과는 달리, 세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세계에 대한 해석 속에 진리가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철학이 망상으로 꿈꾸고 있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한 세계에 대한 고정 불변한 해석도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더 나아가 해석은 변화,발전하는 세계로 인해 끊임없이 변화,발전할 수 밖에 없으며, 그래야만 도태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진리는 세계의 변화 속에서 구현되고 만들어지는 것이다. 

p.116 많은 사람들이 혈통을 중시하며 단일한 혈통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인류를 현재까지 살아남게 해 준 것은 단일한 혈통도 유전자의 동일성도 아니었다. 혈통이나 유전자의 동일성은 오히려 변화에 적응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일 뿐이다. 공룡도 멸종하는 환경 변화 속에서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혈통과 유전자의 다양성 때문이었다. 그 다양한 차이가 인류를 현재까지 존재할 수 있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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