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들의 풍경 - 고종석의 한국어 산책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고종석의『말들의 풍경』이라는 책의 제목에서 '말'보다는 '풍경'이라는 단어가 더 와닿는다. 제목안의 '풍경'은 우리 주변에서 반사되고, 비치는 여러 말들의 정황들을 순간 호흡을 정지시켜(나에겐 놀라움이었다--이 책을 읽는 누구든 한 홉정도는 숨을 멈추었을것이다) 그 말들의 광경을 둘러보고자함을 담고있겠지만, 나는 어느 이름모를 절간의 처마아래에 매달려 바람결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정막을 깨치는 작은 쇠종(풍경)이 떠오른다. 이 작은 '쇠종'의 울림처럼 '말'들이 은은하게 퍼지면 좋으련만, 요즘의 세상은 가벼워진 말들때문에 점점 무거워져만 가는듯하다. 하긴 어느때는 안그랬겠는가.

『말들의 풍경』을 읽고 알 수 있었던게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김현'이라는 작가이고, 또 하나는 '김현'이라는 작가가『말들의 풍경』이라는 책을 훨씬 이전에 내놓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고종석'의 '말들의 풍경'은 어찌보면 선배(김현)의 말잇기를 연장하는 선에서 선배가 품었던 말의 진정을 담아 낸 것이기도 하고, 나머지 하나는 김현 시대의 '말들의 풍경'에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던, 아니 등장하지도 않았던 21세기 초입의 새로운 말들이 풍기는 품새를 첨삭한것일수도 있겠다. 뭐가 되었든 숙성된무언가를 확장한 느낌이다(사실, 김현의『말들의 풍경』은 읽어보질 않아 두 책을 비교할수는 없을 듯 하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말보다는 체계화된 글로써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인데, 이 책이 보듬고 있는 내용이 글로 표현된 말이다보니 문어와 구어의 차이가 더욱 뚜렷하다는 느낌이다. 글은 말보다 머릿속의 하나의 회로를 더 거쳐 표현되니, 깔끔과 정제로써 사고작용의 찌꺼기를 여과하지만, 말은 좀 더 날것으로 대할 수 있으므로 좀 더 순간적이고 거칠기에 사람의 본성 그 자체일 듯싶다.

말은 지극히 휘발성이라 순간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공중으로 증발되지만(물론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메아리로 울려대는 독한 말들이 있긴하다),글은 그런 말의 속성을 이기기위해 태어난 것이므로 충격이 연타로 빗발치니 말보다 더욱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소통공간이 우주의 팽창처럼 무한히 확장되고 있는 요즘, 인터넷을 하다 횡횡하는 악플들을 보면 연타성의 글의 속성과 찰라의 충격을가하는 말의 속성이 묘하게 섞여 그런지 오래전에 TV속 치약광고에 등장하던 충치를 가장한 삼지창을 든 (귀여운) 악마보다 더 악마스럽다는 생각이다. 새로운 소통의 도구인 웹이 새로운 사회질병을 키워내는 곳으로 등장하게 된것은 역시나 주고받는 정보의 속도가 내뱉는 말만큼 빨라진 것일 수도 있겠다. 고종석의 말의 풍경에서도 지적하지만, 웹이라는 소통의 공간 혹은 도구의 이면에는 역시나 그림자가 드리워져있다. 한번 더 곱씹으면, 말에서 글로, 글에서 이미지로, 다시 이미지에서 비디오로 옮겨지는 소통의 그릇이 좀 더 자극적이고, 직설적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다. 이것도 또 하나의 풍경일 것이다.

이 책의 부제는 '고종석의 한국어 산책'이다. 산책이라함은 동네 주변을, 산길을, 들길을 가벼운 차림새로 나들이 가는 것인데, 이 책속에 들어있는 한국어에 대한 정보는 그리 가볍지는 않다.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고, 헛점이라도 찾으려고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려다가도 주저앉고만다(사실, 그런 꺼리를 찾을 재주도 지식도 없지만..).공감에 동감을 넘어서 감동에까지 이른다. 도대체 무슨 책을 읽으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지. 작가가 가진 한국어에 대한 그리고 언어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오롯이 표현해내고 머리든, 가슴이든 새기게 만드는 작가의 재능에 어떤 토끼든 아침에 꼭들러 먹어야한다는 전설속의 옹달샘만큼 샘이 치솟는다.

주제와 소재가 소리로 표현되었든, 글로 표현되었든, 온갖 말들이다 보니, 말과 글을 품었던 여러 인물들을 책속에서 만나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이다. 나 또한 이 책을 읽고 그윽한 말과글에 대해 다시한번 느낀것처럼, 작가인 고종석 또한 이런 인물들을 통해 언어에 대한 그윽함과 진지함을 만났고 성장통을 앓았으며, 아픈만큼 성장했을 것이다. 이글을 읽고 재미나다고 느낀 부분이 있는데,  재밌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누군가의 말과 글은 누군가의 생이 끝남으로써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충 이런 문구로 정리될 듯 싶다. 작가가 쓴 '김현'에 대한 글에서도 '전혜린'에 대한 글에서도, '정운영'에 대한 글에서도 이런 느낌을 받았다. 예전에 '정운영'의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라는 유작을 보았을때도 이런 감정이 파고든 적이있었다.

'누군가'의 죽음으로써 그 사람의 말과 글이 더 이상 자라지도 못하고, 씨를 퍼트리지도 못하게 된다는 것. 비록 생전에 남겨놓은 글들이 어디에선가 존재하고 있겠지만, 더 이상 이런 사람들의 사고는 진행되어지지 않고, 말과 글은 생이 끝난 그 인물의 나이대에서 멈추어 있게 된다는 것.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당연한 일일테지만, 역시나 안타까움은 느껴진다. 전혜린이 그렇다. 그녀는 자살로 인해 30대 초반에서 그녀의 모습도 멈추었지만, 그녀의 생각도, 또 더 자랄수 있는 말과 글도 모든 것이 멈춘것이다. 물론 이런 느낌은 글쟁이뿐만은 아닐것이다. 가수 김광석에게서도 느꼈으니까. 아마 감성을 파는 예술인 그리고 지식을 전파하는 지식인의 죽음이 안타까운 것은 이때문일 듯 싶다.

안타까움이 큰 이유는 그 자리를 누군가 대신하지 않는다는데에 있다. 특히 요즘이 그렇다. 지나간 사람들의 자리를 오는 사람들이 채워야하는데, 요즘 우리의 말과 글은어떠한가. 정치적이라는 미명아래 수많은 글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아니 나오지도 못하고 글쟁이들의 머릿속에만 숨어있는 판국이다. 권력과 돈의 힘아래 응당 나와야 할 글들이 전혀 다른 논지의 글들로 채워져가고 있으며, 심지어 많은 사람들의 정당한 생각의 표현, 합리적인 의심조차 가동을 멈추길 바라는 부류가 있다. 말들의 풍경을 몇몇 부류가 어거지로 바꾸고 있다. 이것이 정말 무서운 말들의 풍경일 것이다. 아무것도 표현할 수 없는 말들. 정의와 용기가 살아 꿈틀대는 말들이 자취를 감춰버린 텅빈공간. 회색의 공간. 이것이 요즘들어 자주 느끼는 내가 살고 있는 사회속 말들의 요즘 풍경이다. 지금 제대로 된 말들의 풍경을 왜곡시키고 있는 글쟁이들과 정치인들도 있다. 그들은 말들의 풍경을 제한시킨다. 말들에 굴레를 덧씌우고 있다. 그들이 알아둘 것이  한가지가 있다. 그들이 죽는다면, 그들의 글과 말들 또한 사회적 오물로 처리될 것이라고.

제대로 된 말들의 풍경은 고전이든, 한국문학이든, 외국문학이든 혹은 방송이든, 신문이든, 이 세상의 일부를 품고 있는 '누군가의' 말과 글로써 지금도 스쳐 지나가는 모든 시간에 대해, 스케치북에 정당한 생각으로 붓칠되어져야 할 것이다.


 
<덧붙임>
 
1. 다음에 읽고 싶은 고종석의 책 : 『감염된 언어』



2. 이외에도 내가 읽은 책들 중에서 '언어'의 매력과 '칼럼'의 맛이 느껴지는 책들...
(물론..기고글이 아닌 것도 있을 것이다..)

    

  

첫번째는 : 리뷰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정운영의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
두번째는 : 이어령의 『축소 지향의 일본인』과 『디지로그』
세번째는 :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이자 전 카이스트 총장이었던 로버트 러플린의 『한국인, 다음 영웅을 기다려라』

3. 이밖에 언어에 관한 스티븐 핑커의 책들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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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11-08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놓고 아직 못읽은 책인데, <감염된 언어>는 강추입니다. :)
고종석의 책 절반도 못읽었지만 제일 좋았던게 <감염된 언어> 였어요.

쿼크 2007-11-08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벌써 댓글이..<말들의 풍경>은 천천히 읽을 수록 그 가치가 더해지는 책인것 같습니다. 너무 빨리 읽어버리면, 감미할 타이밍을 놓쳐버릴 듯 합니다.. 저도 <감염된 언어> 조만간 읽으려구요..그전에 스티븐 핑거의 책부터 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