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날 그후 - SF거장 14인이 그린 핵전쟁 그 이후의 세상
노먼 스핀래드 외 지음, 마틴 H. 그린버그 외 엮음, 김상온 옮김 / 에코의서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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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문명을 리셋시킨 껍데기들의 사투

리 가 인지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종말은 '우주적 종말'과 '지구적 종말'로 나눌 수 있을 듯 하다. 이 둘의 차이는 물론 종말을 맞는 주체의 차이지만, '지구적 종말'은 '우주적 종말'에 포함되어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쓰는 '지구적' 종말의 개념을 지니는 단어에는 무었이 있을까? '종말'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아마겟돈 Armageddon'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신약성서의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단어로, 흔히 최후의 결전, 선과 악의 대결,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등과 같이 전쟁으로 인한 종말의 의미를 함축한다. 또 다른 단어는 '라그나뢰크 Ragnarök'(우리는 흔히 '라그나로크'라고 말한다)라는 단어인데, 이는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세상의 마지막 전투라고 한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신들의 숙명 Fate of the gods'이라는 의미가 있다 한다. 또 '아포칼립스 apocalypse'라는 단어 역시 성서에서 나오는 말로 이 자체로 '요한계시록 the Revelation'을 의미하기도 하며, 신의 계시나 묵시라는 뜻으로 쓰여 종말이나 대전쟁을 가리키기도 한다. 또한 (종의) 멸종(extinction)이라는 단어도 종종 '인간(혹은 생명체)의 종말'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종말을 의미하는 몇가지 단어를 간단히 살펴보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종교나 신화속에서 경고하는 인간을 향한 심판의 메시지처럼 들리기도 한다. 물론 종교에서 의미하는 '지구적 종말'은 곧 '우주적 종말'과도 일맥상통하지만, 인간을 향한 심판이라는 의미에서'우주적' 보다는 '지구적' 이라는 말이 더 가까울 듯 하다.

아무튼 책 이야기로 넘어오자. 이 책 『최후의 날 그후』에서 보이는 종말, 즉 여기서의 '최후'는 '핵전쟁'이 몰고온 파멸을 의미한다. 이 책에서는 핵전쟁을 '메가 워 mega war'로 대신한 단편도 몇가지 있다. 이 책은 핵전쟁 이후의 지구의 모습, 혹은 인간의 모습을 그린 여러편의 단편선집이다. 테마북이라 말하면 쉽게 와닿을 듯 하다. 이 책이 가지는 장점 중에 하나는 바로 한가지의 소재 혹은 주제(테마)를 가지고 여러 작가들이 그들 방식의 다양한 상상들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꿔말하면 다양한 상상들은 여러 갈래의 이야기들을 '핵전쟁'의 전후 시점으로 나누어 완벽하게 복원한다(하지만 제목 자체부터 '이후'라는 뒷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어서 그런지 핵전쟁 이후의 세상을 보여주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이 책의 장점은  다양한 상상의 갈래들인데, 작가마다 서로 다른 시,공간적 관점에서 그려내고 있어서, 이것들을 (강제적으로) 연관시켜 읽다보면, 이야기들이 커다란 하나의 줄기가 되게끔 엮어진다(비록 순서가 뒤죽박죽이지만, 하나의 장편의 분위기도 느낄수 있다). 물론 줄기가 되는 것은 '핵전쟁'이 아닌 원초적 본능을 지니고 문명을 그리워하는 '인간의 삶'이다. (인간의 삶을 중심에 놓고 읽다보면 '핵전쟁'이 의미하는 '신이 내리는 심판의 메시지'를 어느정도 중화시키게 된다.)

일례로, 시간적 관점에서는 핵을 쏘기 직전 버튼을 누르는 상황부터 핵이 터진 이후 수년이 흘러, 죽지 못하고 살아남은 자들이 어떻게  삶을 연명하는지를, 또 공간적인 관점에서는 (문명을 이루는)물 질이 없어 마비된 세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내가 보기엔 이게 바로 주제이다. 과학의 이기가 만들어낸 무기로 인해, 과학의 편리를 제거시킨 암흑의 세상. 한마디로 물질을 이용한 시기는 과거로 흘려보내고, 쓸만한 물질조차 소멸되어 구차하고 무거운 삶을 이어가는 것. 이게 바로 살아남은 자들에게 있어서 종말인 것이다(소설속에서도 죽은 이들은 그리 언급되어 있지는 않다).

인간은 문화의 힘으로, 과학의 힘으로 물질을 만들어냈으며,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하고픈 욕망으로 인간들의 사회는 갈수록 이념적, 경제적, 사회적 경계들을 치기 시작한다. 경계선 안팎으로 너와 나의 구분은 뚜렸해지고, 드디어 지구적인 제로섬게임에 들어간다. 그리고 버튼을 누르고 이 세상을 리셋시키며, 살아남은 자들은 이제는 물질이 그리 많지 않은 세상에서 국소적인 제로섬게임을 다시 시작한다. 이 갈등의 순환이 바로 종말로 읽혔다. 쓰다보니 무슨 '아니메(일본식 에니메이션)'풍의 나열이 되었지만, 이 단편들을 읽다보면, 1930년대부터 1980대년에 이르기까지 힘들었던 이념적 갈등의 시대를 비추고 있어서인지, 구차하고 무기력한(혹은 이념에 종속된) 개인을 그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20세기의 구시대적 패러다임이 21세기에 와서도 여전히 유효할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하게 된다.

지금 바라보고 있는 세상은 어떠한지. 비록 세계화로 인해 외관적으로는 각자가 친 여러 경계들을 없애는 과정으로 보여지지만, 실상은 힘으로, 돈으로 그 경계들을 더 넓히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덧붙임>

1. 20세기 중,후반(1950년대와 1960년대가 많다)의 작품들이 대부분인지라 이념적 성격을 띤 글들도 있다.

2. '세상의 종말'에 관해 몇 권을 엮어 넣어보자면...

좀 오래된 1991년작 소설이긴 하지만... 이미 고인이 된 '시드니 셀던'의 『최후 심판의 날의 음모』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초반과 중반은 정말 흥미 진진하다. '로버트 러들럼'의 '본 시리즈'와 같은 첩보물이며, 쫓고 쫓기는 이미지가 매우 강렬했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중반을 지나 후반에서는 조금 엉뚱하게 흐른다. 물론 이 책에서 말하는 '최후 심판'에 대한 소재는 『최후의 날 그후』에서 그리고 있는 핵전쟁과 관련된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인류의 과제를 다루고 있는데...이는 스포일러상 말하기가 그렇다. 그래도 '시드니 셀던'표 첩보소설을 좋아한다면...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종말의 바보』는 요즘 '일류日流'의 바람을 타고 국내에 들어와있는 '이사카 고타로'의 일본 소설이다. 이 책에 대한 소개는 예전에 써두었던 나의 리뷰로 대신한다.




여전히 읽고 싶은 책에서 상위 목록을 차지하고는 있지만, 훑어만 본 책...


'폴 데이비스'의 『마지막 3분』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우주의 탄생과 현재의 우주, 그리고 우주의 미래를 아우르는 과학서적이다.



마지막으로 '마이클 J. 벤턴'의 『대멸종』은 이 블로그에서 몇 번 언급했으므로(완전히 읽지 않아서 리뷰는 없다) 여기서는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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