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면 좀 어때! 푸른숲 새싹 도서관 6
고토 류지 지음, 하세가와 토모코 그림, 고향옥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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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여린 아이들은 눈물이 많다. 그래서 눈물을 자주 보이는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다른 아이들은 멀쩡한데 자신만 눈물을 보일때 아이는 자신이 버거워진다. 이럴 때 부모가 윽박지르듯 말하거나 한심스럽다는 듯 말하면 아이는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이 책은 그런 아이중 대표격인 울보 대장 신의 이야기를 다룬다.

 

신은 눈물이 많다. 한 번 눈물샘이 터지면 그쳐지질 않는다. 게다가 하필이면 반 최고의 장난꾸러기 구로사와가 짝이다. 신이네 반 대청소 날, 신의 눈물이 또 터졌다. 구로사와가 칠판을 닦은 더러운 걸레로 신의 얼굴을 닦았기 때문이다. 원래 그 걸레는 신의 것이었다. 남의 걸레를 더럽게 만든 것으로도 모자란지 구로사와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하고는 신의 얼굴을 걸레로 닦아버린다.

 

 

친구들이 와서 달래도 신의 눈물이 그쳐지질 않는다. 선생님은 '구로사와가 친하다고 생각해서 장난친거라며 그만 용서해 주면 안되겠냐' 하신다. 게다가 구로사와는 자신이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지 모르는지 마구 친한 척을 해댄다. 너무도 마음이 상한 신은 집으로 달려간다. 엄마는 신에게 계란찜을 해주시겠단다. 구로사와 때문에 신은 계란찜마저 싫어졌다. 엄마는 신의 기분을 헤아리신듯 맛있는 카레라이스를 해주시겠다고 한다. 하지만 신은 모든 것이 시큰둥하다. 엄마를 도와주기 위해 양파를 집었다. 어찌나 매운지 눈물이 비오듯 한다. 엄마도, 신도 눈물 범벅이 되었다. 그제서야 신은 엄마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하나씩 털어놓는다.

 

 

자식이 유독 순하거나 여린 성정을 가지고 있으면, 부모의 머리 속 생각은 많아지고 마음은 복잡해진다. 어디 가서 맞지는 않을까 늘 걱정을 하게 된다. 그런데 적잖은 시간을 함께 있어야 하는 짝이 별난 아이라면 마음이 편할 수 없다. 엄마는 노심초사했나 보다. 구로사와와 잘 지내는 것 같아 마음을 놓았는데 구로사와 때문에 하루도 울지 않은 날이 없었다니! 엄마의 얼굴이 폭발 직전이다.

 

엄마가 불같이 화를 내니 오히려 신의 마음이 풀어진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오늘 있었던 일이 별거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자신도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 엄마는 신의 말을 들으며 안심을 한다. 그간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가. 이제 신은 구로사와를 위해 변명을 한다. 그리고는 자신만 당한 게 아니라며 편까지 든다. 어이가 없는 엄마를 뒤로 하고 신은 구로사와와 놀기 위해 밖으로 뛰어나간다.

 

눈물이 많은 건 결코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만 아이를 창피하게 만들 때가 있다. 이 책은 눈물이 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임을 알려준다. 눈물을 그치고 싶어도 제어가 안되는 아이에게 꾸짖거나 화내지 않고 공감해주는 엄마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일부러 과도하게 화를 내 아이가 감정을 발산할 수 있도록 이끄는 모습도 지혜롭게 느껴졌다. 엄마가 되는 일은 끝없이 배워야 되는, 기쁘고도 끝나지 않은 여정임을 느끼며 조용히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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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위 고아 소녀 청소년시대 1
수지 모건스턴 지음, 김영미 옮김 / 논장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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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엄마, 아빠를 포함해 가족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 외에는, 없는 것이 없는 소녀가 있다. 이제 겨우 열 여섯 살인데 별 다섯개 짜리 호텔과 맞먹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유명 조리사들이 만드는 음식을 먹는다. 주말이면 유럽 각지의 문화도시에서 지내고, 저녁엔 유명한 연주가나 오페라 가수들과 연주회도 갖는다. 칸 영화제 기간에는 내로라하는 유명 영화배우들을 만나고 그들과 식사도 한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로부터는 새 소프트웨어의 최신판을 선물로 받는다. 이보다 더 근사한 삶을 바랄 수 있을까?  

 

그러나 소녀는 자신이 누리는 호사가 엄마 아빠의 동반 자살, 외할머니의 병사로 인해 촉발된 것을 알기에 받아들일 뿐이다. 소녀는 다른 사람들이 당연해서, 때론 지겹게까지 여기는 가족이란 말에 사족을 못 쓴다. 자신이 고아라는 사실에 엄청난 불행을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이 제 곁에 없다는 사실은 소녀를 쓸쓸하게 했다. 소녀가 있는 기숙사는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은 부자 고아들이 있는 곳이고, 소녀는 지금 프랑스에서 캘리포니아를 향해 가고 있다. 소녀는 '캘리포니아의 가정생활을 삼백 자로 쓰기'라는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탔고, 부상으로 진짜 가정에서 생활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소녀 즉, 클라라 카미유 카라멜은 잠시 후면 제러마이아를 만날 것이다. 그 아이는 큰 키에 근육질의 몸을 한 잘생긴 청년일 것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적어도 일흔 다섯은 돼 보이는 할아버지가 자신을 반긴다. 할아버지네 집에는 아무도 없단다. 예전에 세 번 결혼한 경력이 있는 할아버지는 지금은 혼자고 자식들은 먼 곳에서 떨어져 산단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짐을 싸고 싶지만 돌아가신 할머니가 자주 들려주신 "끝을 봐야지! 중간에 포기하면 안 돼! 해 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해!"라는 말씀이 클라라의 발목을 잡는다.  

 

클라라는 이제껏 자연 속에서 편안하게 지내는 법을 한번도 배우지 못했다. 게다가 혼자 있는 것 또한 배우지 못했다. 전에 한번도 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할아버지는 마구 시킨다. 할아버지는 운전면허를 따라고 했고, 춤도 배우라 했으며, 집 지을 때 잔일도 거들게했다. 클라라는 비록 보름 정도 밖에 안되는 기간을 머물지만 이곳에서 많은 것을 경험한다. 할아버지의 영원한 첫사랑에 대한 얘기도 듣고, 첫 생리도 시작했으며, 비록 알콜중독자이지만 멋있게 생긴 지미와 첫키스도 하게 된다. 게다가 할아버지는 첫 생리를 축하하는 파티도 열어주었다. 할아버지는 진짜 가족처럼 클라라를 소중하게 대한다.  

 

크리스마스날, 지미네 집에 놀러간 클라라를 데리러 온 할아버지가 갑자기 위중해졌다. 클라라는 할아버지를 위해 운전대를 잡고 병원으로 향한다. 할아버지의 입원으로 멀리 살던 할아버지의 아들 딸이 달려왔다. 병실에서 적적해진 클라라는 할아버지의 지갑을 보게 되고, 그 속에 있는 할머니의 사진을 발견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예전에 무척 사랑했지만 이별하게 된 연인이었단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서로를 평생 그리워했고, 은행금고에서 가져온 할머니의 편지를 클라라는 할아버지에게 읽어 드린다. 클라라는 제러마이아 할아버지가 진짜 할아버지이기를 바랐지만 그리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처음부터 클라라를 사랑했다고 했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보름에 불과했지만 클라라는 이곳에서 많은 것을 얻었고 그토록 소망했던 가족이 생겼다.  

 

모든 것을 다 가져도 가족이 없으면 허무하고, 모든 것을 다 주어도 가족은 살 수는 없다. 육친의 사랑을 갈구했던 클라라는 투박하지만 진솔한 할아버지의 사랑 안에 닻을 내리게 되었다. 처지가 같기에 가족처럼 의지할 수밖에 없는 친구들과는 또 다른 의미의 가족이 생긴 것이다. 클라라는 지금 할아버지를 떠나지만 캘리포니아에서 보냈던 시간들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선물이 될 것이다. 특히 할아버지가 주신 연장 통은 클라라에게 가족이 생겼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할아버지에게도 손녀가 생겼음을 보여주는 증표가 되었다. 클라라는 모든 것을 가진 외로운 고아 소녀에서 정말로 모든 것을 가진 행복한 소녀가 되었다.

 

 사진 출처: 나는 시시한 사람이다 http://www.cyworld.com/heebee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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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짝꿍 바꿔 줘! 푸른숲 새싹 도서관 5
고토 류지 지음, 하세가와 토모코 그림, 고향옥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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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었을 즈음, 나는 부모로서 설레기도 했지만 걱정도 됐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도 아이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단체 생활을 했고, 친구들과도 잘 지낸 편이라 그런 점에서는 별 걱정이 없었다. 아이는 친구들과 선생님을 좋아해서 유치원 가는 시간을 아침부터 기다렸다. 밥을 먹자마자 빨리 가있겠다고 해서 선생님들 아직 안나오셨다며 붙잡아 앉히기도 여러 번 했다. 유치원 졸업식 때는 딸 아이가 가장 많이 울었다. 퉁퉁 부은 눈을 한채 친구들이랑 선생님과 찍었던 사진은 지금 봐도 가슴이 찡해진다. 외동이고 나이 많은 부모 밑에서 자라는 딸 아이를 볼 때마다 나는 좋은 선생님과 좋은 친구 만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유아에서 학생으로 진입되는 그 시작점에 나는 선생님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배움의 세계에 첫 발을 딛는 아이에게 선생님은 그 자체로 한 세계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 그대로 좋은 선생님이 배정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1학년 선생님 중에서도 30대 초중반의 젊고 예쁜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이 되었다. 호리호리한 몸에 쌍거풀 진 눈, 얌전하고 담담한 성격이 애 아빠와 흡사해 딸 아이와 나는 선생님이 좋았다. 성별과 나이만 다를 뿐 선생님은 이미 우리에겐 낯선 분이 아니었다. 우리 때와 너무 달라 모르는 것 투성이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친구, 동네 친구조차 없던 반에서 딸 아이와 그에 딸린 나는 마음으로 선생님을 의지하고 일학년을 잘 넘길 수 있었다. 이제 딸 아이는 3학년이 되고 초등학교 입학도 마치 오래 전 얘기같이 느껴지지만, 입학을 앞둔 부모의 심경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일본에서 초등학교 1학년생들의 필독서라 불릴 만큼 친숙한 책이란다. 1984년 출간된 이래 100만 부 이상 팔렸고, 현재 25 권까지 나왔다 한다. 초등학교 1학년 반에서 일어남 직한 이야기들을 작가 고토 류지는 재미있고 실감나게 표현해 놓는다. 이 책의 주인공은 울보 신이다. 그러나 주인공보다 구로사와의 이야기가 신의 입을 통해 더 많이 들려진다. 신은 구로사와의 짓궂은 장난으로 노상 울지만,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땅꼬마 고지마는 구로사와에게 결코 밀리지 않는다. 다른 친구에게 지나친 장난을 하는 구로사와를 시라카와 선생님은 한 번도 혼내지 않고 잘 품어준다.

 

 

이 반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돌발 상황은 구로사와의 장난에서 비롯된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라고 눈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예민할 수 있는데도, 구로사와가 이렇게 기세등등히 지내는 것은 선생님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구로사와는 좋게 말해 장난꾸러기지 사실은 골칫거리에 가까운 아이다. 이런 아이가 반에 있으면 선생님의 일은 늘어날 확률이 높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참아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정말로 예뻐한다. 어떻게 보면 편애에 가깝다. 엄마도 없이 아빠와 지내고 있는 구로사와에게는 사랑만이 답이라는 걸 선생님은 잘 아는 것 같다.

 

 

하루도 조용히 넘어가는 날이 없었지만, 선생님의 배려 덕에 구로사와는 건강한 자아를 가진 아이로 자라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오랜 만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을 떠올려 봤다. 아이의 학교 첫 선생님이라서 그런지 그 선생님에겐 남다른 감정이 있다. 이 참에 선생님께 문자라도 드려봐야겠다. 학부모에게 부담주는 걸 싫어하셔서 자주 뵈었지만 커피 한잔 대접해 드린 적이 없다. 학교에 갈 때 마다 오히려 맛난 커피를 대접해 주신 선생님.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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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사용법 - 제16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작 신나는 책읽기 33
김성진 지음, 김중석 그림 / 창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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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되뇌기만 해도 눈물이 날 때가 있다. 그렇다고 엄마와 내가 그리 마음이 잘 맞는 것도 아니다. 엄마는 나보다는 오히려 근처에 살고 있는 친척 새언니와 더 잘 맞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사이인데도 엄마 없는 나를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다. 한 아이의 엄마인데도 이런데, 하물며 엄마가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는 어린 아이의 마음은 얼마가 시릴까? 그 춥고 서러운 마음을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재미있고 유익하게 풀어낸 동화가 있다. '엄마 사용법'이다.

 

엄마 없는 아이 현수는 며칠 전 엄마 생명장난감을 주문했다. 현수는 다른 아이들처럼 자신도 엄마가 깨워주고 토닥여주고 때론 혼내줬으면 좋겠다. 아빠는 출장중이고 지금 현수의 마음은 온통 엄마 생각으로 가득하다. 현수에게 엄마 생명장난감은 장난감이 아니다. 엄마 생명장난감을 마음에 담았던 순간부터 현수는 한번도 장난감이라 부르지 않았다. 엄마는 맨 처음 본 사람을 자식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그래서 현수는 민지가 그렇게 사정하는데도 집에 데려오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가 좀 이상하다. 현수가 생각했던 엄마와 다르다. 제대로 조립했는데 뭐가 잘못된 건지 현수의 마음은 편치 않다. 정태성은 엄마가 아침에 깨워주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현수에게 불량품이라며 약을 올린다. 민지와 같이 집에 들어서는데도 엄마는 반기지 않고 방에만 앉아있다. 민지 보기가 면구스러운 현수는 민지를 데리고 나간다. 밖에는 파란사냥꾼 차가 서있다. 오늘도 고장난 생명장난감을 수거하나보다. 파란 사냥꾼들은 고릴라를 잡으려고 지붕으로 막 올라가고 있다. 고릴라는 현수가 학교 갈 때 심심찮게 똥을 던지는 녀석이다.

 

아빠가 출장가던 날 할아버지가 다리를 다치셨다. 현수는 엄마와 함께 병문안을 갔다. 할아버지는 현수의 얼굴을 조용히 살피시고는 엄마가 갓 태어난 아기처럼 몰라서 그런다며, 하나씩 가르쳐주자고 한다. 엄마는 할아버지와 현수의 행동을 잘 따라할 뿐 아니라 현수가 좋아하는 건 절대 잊지 않는다. 현수는 더이상 외롭지도, 무섭지도 않다. 사랑하는 엄마가 옆에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행복을 질투한 누군가가 있었는가 보다. 엄마가 파란 사냥꾼에게 붙잡히게 되었다.

 

원래 생명장난감은 마음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엄마는 현수를 보고 웃었고, 생명장난감을 탐탁하지 않게 여겼던 아랫층 할머니가 파란 사냥꾼에게 이르고 말았다. 엄마를 잃을 수 없었던 현수는 엄마와 도망치다 막다른 곳에 몰리고 만다. 그 때 현수에게 똥을 던지던 고릴라가 나타나 현수와 엄마를 할아버지네로 데려다준다. 현수는 고릴라가 친구가 되고 싶어 똥을 던졌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된다. 정태성의 생명장난감이었던 고릴라는 정태성이 늘 던지는 것만 보았던 터라 그게 사랑의 표현법인줄 알았던 것이다.

 

할아버지를 만났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다. 때마침 아빠가 출장에서 돌아온다. 할아버지는 엄마를 절대 파란 사냥꾼에게 넘길 수 없다는 현수의 말을 듣고는 엄마를 자유로운 땅으로 보내자고 한다. 아빠가 이 일을 맡기로 했다. 엄마는 현수가 없는 곳에는 가기 싫다고 했다. 현수는 엄마와 헤어진 후 말할 수 없는 슬픔에 잠긴다. 그런데 며칠 후 아빠가 멋진 여자 어른의 손을 잡고 집으로 오고 있다. 현수는 그 여자 어른이 엄마임을 직감한다. 파란 사냥꾼들은 엄마가 현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걸 보고는 생명장난감은 아이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다며 돌아간다.

 

불과 100쪽이 조금 넘는 동화인데 가슴이 뭉클해진다. 사랑에 허기졌던 현수는 엄마의 상황을 이해하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에게 엄마가 되는 법을 가르쳤다. 현수가 준 것은 사랑이었고, 그 사랑은 생명장난감 엄마를 진짜 엄마가 되게 했다. 현수는 단지 엄마만을 갖게 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상황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갖게 됐고, 자신에게 허락된 것들을 마음껏 누리며 이를 큰 행복으로 키워냈다. 엄마가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하는 현수의 모습이, 소유하는 것이 당연하고 엄마가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요즘의 아이들에게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케 했으면 좋겠다. 이 시간, 나는 친정 엄마가 계시는 것만으로도 과연 행복해한 적이 있는지 조용히 자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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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예쁜 것 - 그리운 작가의 마지막 산문집
박완서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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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다'는 말은 '보고 싶다'는 말보다 깊다. 그 말 속에 이미 간절함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그리움'이라는 말이 가슴에 박혀버렸다. 박혀버린 말은 뽑혀지지 않았고, 뽑을 수도 없었다. 내 그리움의 대상은 다시 볼 수 없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늘어나면서 내 마음 속의 그리움이란 웅덩이는 더 커져만 갔다. 커져버린 웅덩이는 밤이 깊을 때 더 무겁게 내려앉았다. 시간이 흐리자 그 웅덩이는 아픔의 시간을 추억으로 만드는 질료가 되었고, 나는 그들이 살아있을 때보다 더 그들을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내 그리운 사람 중엔 박완서 선생도 계신다. 우린 서로 다른 공간 속에 있었지만, 선생의 책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선생이 가장 힘드셨을 때 나는 저 멀리 있었지만 누구보다 가깝게 대면할 수 있었다. 첫 만남이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선생의 모습이었기에 나는 어떤 시기의 독자보다 선생을 더 빨리 이해할 수 있었다. 그 후 읽게 된 선생의 자전적 소설과 산문들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자의 마음을 잘 대변하고 있었다. 다시 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선생은 동화처럼 구현해 내셨다.

 

선생을 생각하면 늘 수줍게 웃는 새색시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미련하게도 그 미소를 오래도록 볼 줄 알았다. 그러나 선생은 재작년 우리 곁을 떠나셨고 해가 바뀐지 벌써 2년이나 되었다. 한데 고맙게도 선생이 남은 자를 기억하셨나보다. 어느 매체에도 소개되지 않은 글이 곱게 묶여져 남아있었단다. 마치 선생이 살아 돌아 오신 듯했다. 남은 자의 아쉬움을 아신다는 듯 선생은 특유의 정감있는 글로 내 허기진 마음을 다독이셨다. 낮고 소박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선생이 단순한 작가가 아닌 이 시대의 어머니였음을 전해주었다.  

 

이 책은 5부로 구성되어 있다. 선생이 소설가로 살게 된 이야기와 지난 시간들의 의미, 그리고 세상을 지탱하는 것들과 소소한 일상들이 담백하니,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그려져 있다. 선생이 살아온 지난 삶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내게 더 큰 여운을 남겼다. 날이 갈수록 내 안에서 느껴지는 부모의 흔적들 때문이었다. 내 얼굴에서 친정 엄마의 얼굴을 보거나, 돌아가신 아버지의 미소가 담긴 사진을 볼 때마다 말할 수 없는 그리움에 젖곤 했다. 그래선지 선생의 노년기가 마치 인생 후배의 노후를 미리 준비시켜주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아들을 잃었을 때, 내 여생에 다시는 근심도 기쁨도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장대 같은 아들을 잃은 지옥 같은 고통에 지쳤을 때 겨우 콩꼬투리만 한 새 생명이 기적처럼 나에게 왔다. 그 새 생명을 처음 대면했을 때 나는 온몸이 떨리는 듯한 기쁨을 맛봤다. 나에게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이 남아 있으리라고는 예상 못한 일이었다. (...) 근심도 기쁨도 없이 목석처럼 살아낼 수 있으리라고 믿은 건 거짓말이었다. 입으로는 살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도 얼마나 살고 싶었으면 그 작은 생명에게 마음을 붙이고 울고 웃고 하였을까." p 115

 

죽음을 눈앞에 둔 자만이 생의 가장 소중한 것을 볼 수 있듯, 고통의 극점에 섰던 선생이기에 삶의 처절한 바닥마저 기꺼이 드러내셨다.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곳에서 다시 지상으로 올라오기까지의 절절했던 시간들이 눈앞에 드러난다. 생의 추위를 견뎌내지 않고는 완주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기에 선생은 자신의 고난을 우리의 이야기로 만드셨다. 그래서 선생의 글은 위로하는 힘이 크다. 

 

마지막 5부는 이 시대의 어른 박완서가 아닌, 다정다감하며 소녀같은 박완서의 모습을 담겨져있다. 자신이 피천득 선생에게 편애의 대상이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 귀여운 뻔뻔함을 보면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자의 자산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또한 나이에 구애됨 없이 우정을 나눈 장영희 교수에 대한 마지막 인사 글과, 종교를 떠나 모두의 존경을 받았던 김수완 추기경, 그리고 우리 문학의 거두 박경리, 김상옥 선생을 기리는 글등은 선생이 누군가의 사랑스런 제자로 있는 시간을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알 수 있게 했다. 

 

책을 읽는 내내 선생이 내 곁에서 책을 들고 글을 읽어주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편안하고 부드러웠다. 봄바람이 내 머리를 조용히 스치고 가는 기분이었다. 선생은 가고 안계시지만 글은 살아서 선생의 소리를 들려주고 있었다. 우리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책으로 사랑의 기억들을 나누었다. '그리운 것은 산 너머에 있다'고 어떤 시인은 말했다. 그러나 내게 그리운 것은 내 안에, 그리고 우리 안에 있다. 그 그리움이 내 인생 후반부의 아름다운 재료가 되어 삶을 풍성케 할 것을 나는 지금 기쁘게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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