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직동 보림 창작 그림책
한성옥 그림, 김서정 글 / 보림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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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소중히 여기는 추억의 장소가 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따뜻해지거나 저도 모르게 아련해지는 곳 말이다. 내겐 광화문이 그렇다. 아버지의 사무실이 있었던 광화문을 지금도 나는 쉽게 지나치지 못한다. 나조차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긴 세월이 흘렀건만, 사무실이 있던 건물을 올려다 볼 때면 여전히 가슴이 뭉클해진다.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건물이지만 내 시선이 머무는 곳은 젊은 아버지와 어린 내가 있던 그 시절이기 때문이다.

 

당시 사무실에 놀러가 재미가 시들해진다 싶으면 밖으로 나와 한바퀴를 돌곤 했다. 사무실이 있던 건물에서 조금 위로 올라가면 새문안 교회가 있었다. 한번도 들어가 본 적 없지만, 이웃집 같은 느낌의 작은 교회가 도심에 있다는 게 어린 마음에도 희한하게 느꼈던 것 같다. 그때 내가 광화문에서 걸었던 거리는 불과 백 미터도 되지 않았다. 또 오랜 시간을 머물렀던 것도 아니다. 잠깐씩 놀러가 구경했을 뿐인데 그 때의 기억은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다.

 

 

한성옥이 그리고 김서정이 쓴 '나의 사직동'은 서울 사직동의 지난 시간을 살갑게 전하는 책이다. 사직동 129번지에서 나고 자란 한성옥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이 책은, 어린 소녀의 입을 통해 그 시절 그 장소로 우리를 이끈다. 소녀가 제일 먼저 안내하는 곳은 일제 시대 때 지어져 칠십 년 넘게 동네 한 복판을 지켰다는 그녀의 집이다. 친정 엄마가 어릴 적에 이사와 그녀가 열한 살이 될 때까지 살았다는 집은, 봄이면 라일락이 피고 가을이면 황금빛 은행나무를 볼 수 있는 담쟁이로 무성한 집이다. 그 곳에서 그녀는 자신의 유년을 찬란하게 보낼 수 있었다.

 

 

사직동은 참으로 정겨운 동네였다. 아흔이 넘은 정미네 할머니와 나물 말리는 게 취미인 나물 할머니가 계셨고, 파마 약만 사가면 공짜로 머리를 해주던 파마 아줌마와 날마다 골목길을 쓸던 스마일 아저씨가 계셨던 곳이었다. 해장국으로자식들 먹여 살리고 가르쳤다며 해장국이 자신에게는 서방이라던 해장국 집 아줌마와 가끔씩 사탕을 쥐어주던 슈퍼 아저씨가 계셨고, 하나뿐인 팔로 온갖 일을 했던 재활용 아저씨와 아줌마가 계셨던 곳이었다. 소박한 행복이 넘실대던 곳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동네에 '도심재개발 사업시행인가득'이라는 낯선 현수막이 걸리며 사직동이 달라졌다. 엄마 아빠는 회의 간다며 자주 집을 비우기 시작했고, 늘 웃던 슈퍼 아저씨와 말 없던 재활용 아저씨가 소리 높여 말다툼 하는 곳으로 변해갔다. 아이들은 예전처럼 놀았지만 동네는 전같지 않았다. 떡볶이를 팔던 문구점이 문을 닫자 금새 다른 간판이 걸렸고, 꽃집과 치킨 집은 부동산 사무실로 업종이 바뀌었다. 반장 할아버지 생일이 온 동네 사람이 함께 하는 마지막일 줄은 아무도 몰랐다.

 

 

이사가 시작되고 다들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곤 몇 년이 지나 다시 모이는 날이 되었다. 어린 소녀는 청소년이 되었고, 사직동 129번지는 모닝팰리스 103동 801호가 되었다. 한데 할머니 할아버지는 눈에 띄지 않았고, 옛날 동네 사람들은 찾을 수 없었다. "노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곳, 개 짓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 여기는 사직동이지만, 나의 사직동은 아닙니다. 나의 사직동은 이제는 없습니다."

 

전 같을 수 없는 사직동에 소녀는 절망하고 만다. 작은 일에도 함께 기뻐하고,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눴던 시절은 이제 어디서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지난 시간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고, 그 흔적마저 사라진 곳에서 소녀가 발견한 것은 허탈감 뿐이었다. 좋은 시설이 좋은 환경을 만들거란 어른들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토록 사랑했던 사직동은 그 시절 그 사람들이 없으므로 이미 없는 곳이 되고 말았다. 마음 한 구석이 시린다. 추억의 흔적이 사라진 곳이 결코 전 같을 순 없을테니 말이다.

 

아버지의 사무실이 있었던 작은 건물을 볼 때마다, 회상할 수 있는 장소가 남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느낀다. 시간을 담아내고 세월을 견뎌낸 것은 외형이 어떻던 간에 그 자체만으로도 작은 역사가 되니 말이다. 만일 사직동에 예전을 느낄 수 있는 장소가 한군데라도 남아 있었다면 소녀가 느꼈던 상실감이 그토록 크진 않았을 테다. 아버지와 함께 식사를 했던 음식점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사실은 그래서 내게 큰 선물이 된다. 우리는 추억을 먹고 사는 존재고, 더듬을 추억이 많을수록 우리의 삶은 더 풍성해질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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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아는 만큼 자유로워진다
이무석 지음 / 두란노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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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규정하는 데 성격은 큰 부분을 차지한다. 한 인간이 지나온 시간의 총합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창구가 성격이기 때문이다. 성격은 단순히 좋고 나쁨의 차원이 아닌 지속적이고 일관된 삶의 행동양식이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도 그 근본은 성격에서 시작된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덤덤한데, 어떤 사람은 팔딱팔딱 뛰는 건 모두 성격 탓이다. 따라서 자신을 이해하거나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성격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관계의 어려움도 실은 성격에서 비롯되니까.

 

'성격, 아는 만큼 자유로워진다'는 크리스천 정신과의인 이무석 박사의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오랜 시간의 경험이 성격을 만들어 낸 것이라며, 숨어서 우리의 행동을 조종하기에 성격 이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이해는 곧 치료와도 직결된다며, 우리 인간의 내적 고통은 스트레스 때문이 아닌 성격 때문이라고 한다. 성격을 알면 사람이 보인다며 행복한 삶을 위해서라도 성격은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건강한 성격은 건강한 자아를 말하는 것이라며, 건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은 현실을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잘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정확히 파악한다고 한다.

 

그는 인간의 성격이 이드, 자아, 초자아 이 세 가지로 구성돼 있다며 프로이트의 성격구조론을 소개한다. 이드는 본능적인 욕구 충동으로 성적인 욕구와 공격 욕구가 있고, 이드는 쾌락 원칙에 의해 작동한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이드가 나쁜 것만은 아니어서 추진력의 원천이 된다고 한다. 이어 자아는 현실을 인식하는 기능을 하고, 초자아는 양심 기능으로 자신을 감독하고 비판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한다. 그래서 초자아와 이드는 대립하게 되며, 초자아와 이드 사이에 자아가 끼어 있을 때 갈등상태가 되어 노이로제가 된다고 한다. 건강한 자아가 중심을 잡고 현실을 직시하며 판단할 때 갈등 해결사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성격은 언제 형성되는 것일까? 예나 지금이나 태교를 강조하는 것처럼 성격도 태내에서 결정된다고 한다. 불행한 태아기 체험은 불행한 인간이 될 확률을 높인다며 엄마의 정신적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성격에도 롤 모델이 필요하다며, 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방법이 동일화인데 아버지의 부재가 한국 가정의 문제라고 한다. 닮고 싶은 부모를 가진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게 된다며, 어떻게 해서라도 아빠의 자리를 만들어 주라고 권유한다. 아빠를 존경하는 엄마가 있는 가정은 안전하다며, 아빠의 권위 세우기는 엄마에게 달려 있다고 조언한다.

 

1부가 원론의 장이었다면 2, 3부는 각론의 장이다. 2부는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성격 때문에 불행한 사람들의 경우를 소개하며, 성격 장애를 11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이 장을 읽으면 사람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를 이해하게 된다. 또한 나 자신은 어떤 유형이며 내가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하게 되는 행동들을 용납하게 된다. 때로 자신조차도 이해되지 않는 행동들이 결국은 성격 때문임을 알게 한다. 우리가 삶에서 부딪치는 모든 사람들의 유형이 나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부는 성경 속의 인물들을 소개하며 그들의 마음 속에 어떤 갈등과 아픔이 있었는지를 알려준다. 이삭의 성격이 자신을 힘들게 했던 이복형과 믿음을 위해 자신을 죽이려 했던 아버지의 행동에서 비롯된 상처임을 전하며, 완벽한 인간처럼 느껴졌던 요셉에게도 총리가 되어서까지 처리하지 못한 복수심과 교만함이 남아있었음을 지적한다. 또한 사울왕의 행동은 그가 겸손해서 겸양의 자세로 한 것 아니라 열등감 때문임을 말하며, 바울에 대해선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라 그렇게 행동한 것이 아니라 자존감이 높았기에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행동했음을 알려준다. 그 외에도 베드로의 거침없는 돌격 정신와 정신질환자 및 귀신 들린자와의 차이를 소개한다.

 

배의 조종 장치가 키라면 인생을 조정하는 것은 성격이다. 하지만 성격은 파악하기도 쉽지 않고 고치기도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자신의 성격을 알아야 한다. 만일 자신의 성격이 어떤지 모른 채 산다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모르고 사는 것과 다름 없다. 병의 원인을 알아야 치료 할 수 있듯이 자신의 성격을 이해해야 부정적이고 모난 부분을 치료할 수 있다. 자신에게 있는 장점을 기뻐하고 또한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식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타인을 제대로 보게 된다. 이 시간을 통과할 때 우리는 자신 안에 있는 들보를 빼내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섬기는 자로서 타인의 눈 속에 있는 티를 제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성격, 잘 이해하기만 한다면 우리 삶의 질은 월등히 나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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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의 밤 (5쇄) The Collection 3
바주 샴 외 지음 / 보림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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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소박한 행복을 만나고 싶을 때, 집 근처 공원으로 발길을 돌리곤 한다. 공원이라 부르기도 우스울만큼 작은 곳이지만, 그곳을 향할 때면 왠지 모를 설렘이 인다. 싱그런 이파리를 흔들며 춤추는 연녹색의 향연은 생각보다 큰 위안을 준다. 생명의 찬란함을 드러내는 나무는 그래서 내 경탄의 대상이다. 만약 누군가 자연을 대표하는 개체를 하나만 들어보라 한다면, 난 서슴없이 나무를 들겠다. 지극히 수동적이면서도 소리없이 주변을 변화시키고 생명을 살리는 나무야말로 자연의 생명력과 역동성을 가장 잘 보여주니 말이다.

 

나무에 대한 내 일방적 사랑이 커져갈 때 '나무들의 밤'을 접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제목이 매력적이었다. 검은 종이 위에 일일이 사람 손으로 작업하는 실크 스크린이라 책마다 색감이 다르다고 했다. 그래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책이 된다고 했다. 하나밖에 없는 책이라니...그러나 내가 더 강하게 매료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나무와 책이 공통으로 가진 물성 때문이었다. 그 어떤 것도 품어줄 수 있는 이 둘의 넉넉함과 깊음이 좋았달까. 3,100권 중 16번째라는 책이 마법처럼 다가왔다.

 

책은 예상보다 더 독특했다. 힌두 문화가 무엇인지를 단번에 짐작할 수 있을만큼 아우라를 강렬히 뿜어냈다. 다름의 이질감이 특별함으로 다가왔다. 우리 문화권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그림체와 이야기들이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왔다. 땅이 다르고 문화가 다를 때 이런 상상과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희한하기만 했다. 비주 샴, 두르가 바이, 람 싱 우르베티라는 세 명의 작가가 표현해 내는 인도 중부 곤드족의 미술은 한번도 접하지 못한 환타지의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 인도 중부 곤드족의 미술과 민담을 옮긴 이 화려한 책은 복잡한 나무 그림이 모든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어요. 옛날부터 숲 속에서 살아온 곤드족은 나무들이 삶의 중심이라고 믿어요. 한낮에 나무는 열심히 일하면서 모든 생명체에게 그늘과 안식처와 양분을 제공해 주지요. 그리고 밤이 되어 한낮의 방문객들이 모두 떠나가면 나무에 사는 정령들이 모습을 드러내요. <나무들의 밤>은 쉽게 잊을 수 없는 밝게 빛나는 정령들의 모습을 그려 내고 있어요." 뒷 표지 소개글

 

그들이 표현해 내는 나무는 화려한 색깔과 유혹적인 색감을 바탕으로 태초의 신비와 감춰진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었다. 뱀여신이나 누에, 다람쥐의 거처가 되기도 하고 신을 위해 노래하거나 술 또는 약이 되기도 했다. 뿐 아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과 짐승을 보호해 주기도 하고 인간에게 양식을 공급해 주기도 하며, 조물주나 인간의 거처가 되기도 했다. 또 삶의 구체적 용도로 쓰이기도 했다. 그들이 그린 나무는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수동적 생명체로서의 나무가 아니라 삶과 의식에 밀접히 연결된 나무였고, 삶을 주관하고 보호하기도 하며, 정령들의 거처가 되기도 했다.

 

 

곤드족에게 나무는 내가 바라보는 나무와 너무 달랐다. 그들에게 나무는 삶을 지탱할 수 있도록 보호해주는 따뜻한 보금자리였고,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터전이었으며, 다른 생명체와 더불어 살 수 있는 공간이었다. 신기하고 변화무쌍하며, 무엇이든 꿈꿀 수 있는 소망의 자리이자 수호신이기도 했다. 나무에 대해 이토록 강력한 힘을 부여한 책이 얼마나 될까? 이들의 지독한 애니미즘을 감지한 후 원시종교의 세계에 갇혀 있는 우둔함을 살짝 지적하고 싶었던 나는 조용히 손들고 말았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자연과 격리된 채 살고있다. 스마트폰이 차지한 자리는 삶에 이미 큰 구멍을 내었고, 우리의 삶을 제멋대로 휘두르고 있다. 문명이란 미명 아래 첨단을 향해 무섭게 치달리는 우리에게 이 책은 잠시 쉬어가라는 곤드족의 초청장이다. 이들의 권유는 지친지도 모른채 사는 우리에게 나무의 품 속에 한 호흡을 고르라는 간절함으로 가득하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갈 우리에게 나무는 변치않는 물성으로 영혼에 위로를 줄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이다. 지쳐 떨어지기 전에 숲으로 가보자. 그리고 책으로 들어가보자. 그속에 상상도 못했던 태초의 우리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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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수업 -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법륜 지음, 유근택 그림 / 휴(休)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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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별다르지 않은 오늘이지만, 가만히 따져보면 오늘이란 날은 전에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새로운 날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무덤덤하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일은 의미있게 보내자 마음 먹지만, 막상 닥치면 내실 있게 보내지 못해 아쉬움을 남기며 하루를 마무리할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밤에는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놓쳐버린 시간을 꼽씹으며 시간을 허비한다. 마음은 바쁜데 실제 삶은 늘어져있는 이율배반적인 나를 볼 때마다 미련하다는 생각을 금하지 못하곤 한다. 그렇다고 답을 몰라 이러는 건 아니다. 답을 알기 위해 보낸 시간이 분명 있었고, 시간의 중량이 다 같은 것도 아니라는 것을 체득했으니 말이다.

 

 

행로를 알고 있어도 만만찮은게 삶이지 싶다. 젊어 시행착오를 겪을 때는 처음 겪는 일이라 그런가 보다 했다. 그래서 처음만 아니었다면 잘 했을 거라는 변명을 스스로에게 댔다. 나고보니 초행길이라 헤맨 게 아니었다. 처음 겪는 일도 잘 해내는 사람이 있고, 풀기 어려운 숙제도 끙끙대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수렁에 빠지듯 자괴감에 빠져있을 때, 누가 나같이 얼뜬 사람에게 인생 사는 법을 가르쳐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꿈꾸듯 했다. 그렇게 된다면 버려지고 누수되는 시간들을 막을 수 있는 거라 여겼다. 적잖은 고생 끝에 간신히 인생의 답을 얻었지만 그 과정이 힘들었는지 그후 몇 년을 번아웃의 상태로 지내게 되었다. 인생이 긴 레이스라는 걸 모르고 밀어부친 결과였다.

 

 

그런 와중에 이 책을 만났다. 사실은 안 읽으려 했다. 기독교인이 되기 전 불교를 나의 종교라고 할만큼 불교와 가깝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그랬다. '흔들리면 어떻게 하지'라는 부담과 우려도 내심 있었다. 그런데 책을 펴자 그런 생각이 기우였음을 알게 됐다. 책이 별로라서가 아니다. 책이 좋았기에 오히려 안심이 됐다고 할까. 이 책엔 인간의 출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생노병사와 희노애락의 모든 얘기들이 담겨있다. 우리가 부딪치는 수많은 문제들에 법륜 스님이 조언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지만 거부감이 들거나 뻔하다는 느낌은 주지 않는다. 모든 것이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흔하디 흔한 답조차 식상한 느낌이 들지 않았고 한번 뿐인 인생,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고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사랑하라는 말도 순도 그대로 전달되었다.

 

 

 

 

 

뭘 몰랐을 때 나이 들면 인생이 쉬울 줄 알고 나이 먹기를 기다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갈수록 힘들면 힘들지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사는 게 좀 두려워졌다. 무엇보다 몸이 내 나이를 알려줄 때가 그랬다. 멀쩡하던 몸이 여기 저기 아파, 몸 하나 건사하는 것조차 저절로 되지 않을 나이에 이르렀다는 걸 알았을 때 겁이 났다. 지금도 이런데 더 나이들면 어떻게 하지……. 그제서야 시어머니가 간간이 하시던 말씀이 빈말이 아님을 깨닫게 됐다. 그만 가고 싶다는 말씀이 딱히 하실 말씀이 없어서가 아니라 괴로워서 하셨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좀 무서워졌다. 몸과 마음이 달라지는 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야할까 마음이 왔다 갔다 했다.

 

 

『 이제 내 중심을 잡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금까지 삶의 우선 순위였던 재물, 출세, 명예, 건강 등에 대한 욕구를 뒤로 돌려야 합니다. 그 욕망들을 내려놓아야 그 순간 눈이 열리고,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는지 비로소 인생의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마치 영원을 살 것처럼 오늘을 허투루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돌아보세요. 죽음의 순간은 언제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오늘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 마음을 잃지 않아야 내일 죽어도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추구하는 성공과 상관없이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갈 때 그것이 좋은 인생입니다. 늘 오늘의 삶이 만족스러우면 그게 곧 행복한 인생이지요. 』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나이를 먹으면 경험과 시간을 통해 이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세상사에 필요한 지혜를 나름대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고통스러워 하는 건 몰라서가 아니라 삶으로 구현해 낼 힘이 없어 그날을 그날처럼 사는 걸 거다. 나이 들면 더 원숙해지고 깊어질 것 같아도 제자리 걸음이거나 반대로 갈 확률 또한 적지않다. 모든 위기가 기회가 되는 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알 것 알고 들을 것 들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게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더 힘들다. 그래서 더욱 전하는 사람의 말에 힘이 있어야 한다. 그 힘은 자신의 입으로 전하는 말처럼 살아온 사람에게서만 나오는 거니까. 반짝이진 않아도 법륜 스님의 말엔 그런 힘이 들어있다.

 

 

 

어느새 반 백이다. 인생이 그리 대단한 게 아니라는 걸 가슴 깊게 깨닫는다. 그러면서도 한편 세상 떠날 때까지 손 놓을 수 없다는 것도 인식한다. 그래서 마음 편하기도 하고 조급하기도 하다. 이제 더 이상 헛된 것에 눈 돌리지 않고 진짜 삶을 살아야하는 숙제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 숙제는 나와의 본질적 전쟁이기에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잘 살아내기만 한다면 후반부를 통해 전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첫 발걸음이 오늘 나의 하루에 달려있다. 오늘을 내가 하는 소소한 일과 만나는 사람에 마음을 다한다면 비록 대단한 뭔가를 이루지 않더라도 멋진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길 바랄 때 이 책은 따뜻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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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구달 새싹 인물전 55
유은실 지음, 서영아 그림 / 비룡소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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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 동물을 키워본 사람은 안다. 동물이 주는 위로가 얼마나 큰가를. 주인이 나갔다 들어올 때 반기는 애완견의 감당할 수 없는 애정과 무한 신뢰, 변함없는 사랑은 인간보다 더하면 더하지 결코 덜하지 않다. 또 별다른 감정 표시가 없는 동물이라할지라도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큰 위로가 된다. 그래서 동물과의 사랑에 빠지면 헤어나올 수가 없다. 그 사랑을 다른 데서는 찾을 수 없으니까.

 

 

동물과의 사랑에 빠져 평생을 함께 한 제인 구달의 삶은 그런 면에서 무척 행복한 삶이라 생각된다. 어릴 적부터 동물과 함께 하고, 교감을 통해 마음을 나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으니 말이다. 제인은 당시 여성이 영국에서 아프리카로 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음에도 아프리카에 가서 동물과 함께 하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다. 꿈은 꾸는 자에게 기회를 주나 보다. 1956년 어릴 적 친구인 클로가 아프리카 케냐에 있는 부모님의 농장에 놀러오지 않겠냐는 편지를 보낸다.

 

 

1957년 아프리카로 출발한 스물 세살의 제인은 친구네서 몇 주간 머문 후 아프리카에 남아있기 위해 일을 시작한다. 그러다 한 친구의 제안으로 세계적인 인류학자이자 고생물학자인 리키 박사를 만난다. 그 무렵 침팬지 연구할 사람을 찾던 박사는 제인을 적임자로 생각한다. 제인은 준비를 위해 영국으로 돌아가 공부를 한 후 탄자니아에 엄마와 함께 들어가 침팬지 연구를 시작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제인이 대학을 다니지 않았다며 비난하고, 침팬지들 또한 제인의 출현을 반갑지 않게 여기고는 도망가 버린다.

 

 

 

 

제인은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침팬지를 관찰하고 그 결과를 세상에 알린다. 초식동물이라 알려졌던 침팬지가 실은 사냥하고 고기를 먹을 뿐 아니라,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침팬지의 행동이 사람과 많이 비슷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1962년이 되어서는 침팬지에게 털 고르기도 해주고 레슬링도 하는 등 친해지지만 그들의 세계에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다 박사의 권유로 케임브리즈 대학에 가서 동물 행동학 박사 과정을 공부하게 되고, 1966년 박사 학위를 받게 된다.

 

 

제인의 침팬지 연구는 기대 이상으로 잘 진행되지만 제인의 가정적 행복은 그리 길지 않았다. 1964년 결혼한 사진 작가 남편과는 십 년 만에 이혼하게 되고, 그 다음해 재혼한 남편도 암으로 사망해 오래가지 못한다. 이도 커다란 상처였는데 1974년 부터 4년간 일어난 침팬지들 사이의 전쟁으로 제인은 이래저래 충격을 받게 된다. 그러다 털고 일어서 다시 연구에 몰두해 1986년 제인은 '곰베의 침팬지들'이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게 되고, 책을 쓰는 것 만큼이나 침팬지를 보호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후 제인은 아프리카 곳곳에 침팬지 보호소를 만들고, 자연 보호 운동을 벌이며, 동물원의 동물들이 좀더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제인은 여든이 넘은 지금도 동물들을 보호하고 나아가 자연 보호 운동까지 열심히 펼치고 있다.

 

사람이 행복할 때 곧 동물이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동물이 불행할 때 사람도 행복하진 않다. 같은 생명체로 우리는 이미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동물을 사랑하고 함께 하겠다는 생각으로 평생을 산 제인 구달. 특별한 지식이 있었던 것도, 능력이 탁월했던 것도 아니지만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제인을 세계적인 동물 행동학자로 만들었다. 제인으로 인해 동물에 대한 우리 인식은 넓고 깊어졌다. 사랑이 얼마나 특별한 능력인지 제인 구달은 그녀의 삶과 행동으로 오늘도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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