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수업 -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법륜 지음, 유근택 그림 / 휴(休) / 201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어제와 별다르지 않은 오늘이지만, 가만히 따져보면 오늘이란 날은 전에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새로운 날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무덤덤하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일은 의미있게 보내자 마음 먹지만, 막상 닥치면 내실 있게 보내지 못해 아쉬움을 남기며 하루를 마무리할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밤에는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놓쳐버린 시간을 꼽씹으며 시간을 허비한다. 마음은 바쁜데 실제 삶은 늘어져있는 이율배반적인 나를 볼 때마다 미련하다는 생각을 금하지 못하곤 한다. 그렇다고 답을 몰라 이러는 건 아니다. 답을 알기 위해 보낸 시간이 분명 있었고, 시간의 중량이 다 같은 것도 아니라는 것을 체득했으니 말이다.

 

 

행로를 알고 있어도 만만찮은게 삶이지 싶다. 젊어 시행착오를 겪을 때는 처음 겪는 일이라 그런가 보다 했다. 그래서 처음만 아니었다면 잘 했을 거라는 변명을 스스로에게 댔다. 나고보니 초행길이라 헤맨 게 아니었다. 처음 겪는 일도 잘 해내는 사람이 있고, 풀기 어려운 숙제도 끙끙대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수렁에 빠지듯 자괴감에 빠져있을 때, 누가 나같이 얼뜬 사람에게 인생 사는 법을 가르쳐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꿈꾸듯 했다. 그렇게 된다면 버려지고 누수되는 시간들을 막을 수 있는 거라 여겼다. 적잖은 고생 끝에 간신히 인생의 답을 얻었지만 그 과정이 힘들었는지 그후 몇 년을 번아웃의 상태로 지내게 되었다. 인생이 긴 레이스라는 걸 모르고 밀어부친 결과였다.

 

 

그런 와중에 이 책을 만났다. 사실은 안 읽으려 했다. 기독교인이 되기 전 불교를 나의 종교라고 할만큼 불교와 가깝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그랬다. '흔들리면 어떻게 하지'라는 부담과 우려도 내심 있었다. 그런데 책을 펴자 그런 생각이 기우였음을 알게 됐다. 책이 별로라서가 아니다. 책이 좋았기에 오히려 안심이 됐다고 할까. 이 책엔 인간의 출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생노병사와 희노애락의 모든 얘기들이 담겨있다. 우리가 부딪치는 수많은 문제들에 법륜 스님이 조언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지만 거부감이 들거나 뻔하다는 느낌은 주지 않는다. 모든 것이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흔하디 흔한 답조차 식상한 느낌이 들지 않았고 한번 뿐인 인생,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고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사랑하라는 말도 순도 그대로 전달되었다.

 

 

 

 

 

뭘 몰랐을 때 나이 들면 인생이 쉬울 줄 알고 나이 먹기를 기다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갈수록 힘들면 힘들지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사는 게 좀 두려워졌다. 무엇보다 몸이 내 나이를 알려줄 때가 그랬다. 멀쩡하던 몸이 여기 저기 아파, 몸 하나 건사하는 것조차 저절로 되지 않을 나이에 이르렀다는 걸 알았을 때 겁이 났다. 지금도 이런데 더 나이들면 어떻게 하지……. 그제서야 시어머니가 간간이 하시던 말씀이 빈말이 아님을 깨닫게 됐다. 그만 가고 싶다는 말씀이 딱히 하실 말씀이 없어서가 아니라 괴로워서 하셨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좀 무서워졌다. 몸과 마음이 달라지는 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야할까 마음이 왔다 갔다 했다.

 

 

『 이제 내 중심을 잡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금까지 삶의 우선 순위였던 재물, 출세, 명예, 건강 등에 대한 욕구를 뒤로 돌려야 합니다. 그 욕망들을 내려놓아야 그 순간 눈이 열리고,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는지 비로소 인생의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마치 영원을 살 것처럼 오늘을 허투루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돌아보세요. 죽음의 순간은 언제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오늘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 마음을 잃지 않아야 내일 죽어도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추구하는 성공과 상관없이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갈 때 그것이 좋은 인생입니다. 늘 오늘의 삶이 만족스러우면 그게 곧 행복한 인생이지요. 』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나이를 먹으면 경험과 시간을 통해 이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세상사에 필요한 지혜를 나름대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고통스러워 하는 건 몰라서가 아니라 삶으로 구현해 낼 힘이 없어 그날을 그날처럼 사는 걸 거다. 나이 들면 더 원숙해지고 깊어질 것 같아도 제자리 걸음이거나 반대로 갈 확률 또한 적지않다. 모든 위기가 기회가 되는 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알 것 알고 들을 것 들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게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더 힘들다. 그래서 더욱 전하는 사람의 말에 힘이 있어야 한다. 그 힘은 자신의 입으로 전하는 말처럼 살아온 사람에게서만 나오는 거니까. 반짝이진 않아도 법륜 스님의 말엔 그런 힘이 들어있다.

 

 

 

어느새 반 백이다. 인생이 그리 대단한 게 아니라는 걸 가슴 깊게 깨닫는다. 그러면서도 한편 세상 떠날 때까지 손 놓을 수 없다는 것도 인식한다. 그래서 마음 편하기도 하고 조급하기도 하다. 이제 더 이상 헛된 것에 눈 돌리지 않고 진짜 삶을 살아야하는 숙제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 숙제는 나와의 본질적 전쟁이기에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잘 살아내기만 한다면 후반부를 통해 전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첫 발걸음이 오늘 나의 하루에 달려있다. 오늘을 내가 하는 소소한 일과 만나는 사람에 마음을 다한다면 비록 대단한 뭔가를 이루지 않더라도 멋진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길 바랄 때 이 책은 따뜻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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