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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 있었냐고 묻기에 - 김이수 시집
김이수 지음 / 책익는마을 / 2021년 5월
평점 :
시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이가 있다. 시로 세상을 보고 시가 전부가 되어 시로 사는 사람. 그런 이가 시인이다. 먼저 아프고 늦게까지 울며, 세상 이치를 깨달아 도리어 아이가 되어버린 사람. 사는 일에 서툴어 계산을 놓아버린 사람. 이런 이 또한 시인이다.
시라는 숙명을 안고 사는 시인 김이수의 『무슨 일 있었냐고 묻기에』를 본다. 그의 두 번째 시집이다. 시집에는 154편의 시가 들어있다. 차곡차곡 쟁여진 시들을 읽는다. 시들은 사계로 나뉘어 계절의 옷을 두르고 향기를 뿜는다.
김이수는 '내는 글'에서 시를 아픈 물음이라 천명한다. 시인은 시에 대해 다시 언급하며 "감상을 딛고 일어선 삶이며 한없이 고독한 추락이고 눈물초자 사치인 남루"라 선언한다.
시인은 시에 대해 되물어야한다. 그 여정이 지난하고 부담스럽다해도 묻는 일을 소홀히 할 때, 시는 옹색해지고 시의 품은 줄어든다.
김이수의 시는 찌르고 도려내며 외치고 폭발할 때 빛난다.
그의 "애비는 종奴이었다"하고 그는 시류와 보신의 종이었고
그의 시는 '배암'의 혀였고 그런 종들과 배암들을 주워 먹은
나는, 종들과 배암들의 무덤이고 나의 언어는 그 썩은 시체이고
시를 참칭한 나의 언어는 그런 시체에 슨 구더기고, 구더기가
내지른 오래 묵힌 똥이 쌓여서 진동하는 악취를 향기로 속이고
그 악취를 다시 구더기가 먹고 구더기는 내 몸에 날로 창궐하여
내 몸은 늘 편안한 종들의 무덤...하략
그의 펜은 칼이고 나비다. 날카롭고 섬세하며 얼음이고 불이다. 약자를 향한 그의 눈엔 물기 가득하지만 기름진 자들의 위선엔 서슬퍼런 칼날을 들이민다. 그 세기는 다른 이에도 또 자신에게도 동일하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짠하다 / 그중 인간은 더욱 짠하다
제 거처를 잡아먹으며 / 제 동족을 잡아먹으며
닥치는 대로 잡아먹으며 / 자멸의 벼랑을 높여온
인간은 그래서 더욱 짠하다
인간 말고 모든 존재를 / 마침내 인간 자신마저도
타자(他者)로 추락시킨 인간은 / 짠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아침, / 스스로 짠한 마음에 / 눈물이 복받친다
김이수는 인간의 한계 또한 잘 안다. 어찌할 수 없는 굴레에 매여 사는 것을 알기에 그의 시는 연민으로 마무리된다. 혼자 살겠다며 지옥도를 만드는 인간에게 측은함을 갖는 건 그 또한 부질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계속 시를 읽어간다. 고집을 피워 내 마음대로 시들을 분류해본다. 생과 사물에 대한 성찰, 힘든 삶을 사는 이들에 대한 연민, 그리고 사랑으로.
비에 젖은 꽃 / 제 무게를 못 이겨 바람에 진다
눈물로 핀 봄꽃 깊디깊은 꽃자리 / 여름을 남기고 기쁘게 진다
꽃 진들 봄이 지랴
여름으로 깊어져 가을로 익은 끝에 / 겨울로 잠들었다가 이내 깨어나 매양 봄이거늘
그가 노래하는 것은 계절이 주는 경이와 충만, 조락과 사멸이지만 그 안에 사람이 있지 않으면 무슨 맛이 있을까. 그는 계절을 통해 삶을 노래하고 생명의 순환을 그린다.
꽃고 지고 우리네 생도 진다. 그러나 다음을 기약하니 스러진다 해도 기쁘게 보낼 수 있다.
흐려서 깊은 밤, / 세검정 지나온 홍제천은 / 붉게 타는 울음입니다
젖어서 푸른 아침, / 꿈결에도 없는 당신은 / 아득한 나의 가을일까요밤샌 어느 날, / 냇물에 실려 온 붉은 잎 하나 / 당신인 줄 알겠습니다.
김이수는 사랑에 약하다. 그의 사랑은 때로 순진하고 대개 애처로우며 지극하다. 그는 사랑 앞에서 눈물조차 흘리지 못한다. 뒤돌아서 흘리는 눈물, 봄의 소년이고 여름의 청춘이며 가을의 중년이자 겨울의 순정이다.
이렇게 시들을 뽑아냈지만 정작 시인은 아프다. 모든 잉태엔 출산이 있고 산고를 전제하기에.
김이수의 시는 그가 말한대로 '자기 안에서 또 관계의 행위 안에서' 계속 확장되어 누군가에게 곁이 되어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시를 놓지 못한다. 그에게 시는 영원한 사랑이자 천형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