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어른들의 옛날 사진이 들어있는 앨범을 종종 들여다 봤다. 앨범 속에는 할머니의 언니라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모할머니의 흑백 사진도 있었다. 야위고 곱게 생긴 이모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할머니가 모셨다고 했다. 이모할머니에게는 아들이 있는데 일본에 있다고 했다.
말로만 듣던 이모할머니의 아들, 큰아버지를 본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어떻게 연락이 닿았는지 큰아버지가 오셨고 우리나라 제품과는 맛이 다른 짭짜름한 초코파이와 사탕, 포장이 예쁘게 된 간식들을 잔뜩 선물로 가져오셨다. 그리고는 중학생이었을 때 한 번 더 뵙고 큰아버지와는 연락이 끊겼다. 어른들은 돌아가셨을 거라고 했다.
재미 소설가 황숙진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읽으며 큰아버지를 떠올렸다. 미국 이민 1세대의 삶을 그린 소설인데 말이다. 일본에서 어떻게 사셨을까. 당시만 해도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 얼마나 심했던가. 하지만 그곳만 그랬을까. 고국을 등지고 이역에서 터를 잡아야하는 디아스포라의 삶은 전세계 어디를 가도 비슷하지 않을까싶다. 그래서 큰아버지를 상기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는 모두 9 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맨 앞에 실린 「미국인 거지」는 몆 번이나 되읽었다. 베트남전의 전흔으로 영혼에 깊은 상처를 입은 한국인인 ‘나’와 흑인 잭은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사람들이다. 전쟁터에서 생환했지만 그들은 이미 심하게 망가졌고 누구도 그들의 상처를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아내가 사경을 헤매던 순간에도 술을 들이키느라 아내를 보호하지 못했고 결국 아내는 세상을 떠난다. 시간제로 일하는 가게 앞에는 신사 같은 풍모를 한 흑인 잭이 매일 와 구걸을 하는데 잭은 밤만 되면 엉망이 된다. 그 또한 월남전의 후유증으로 알콜중독자가 되어 삶을 소모한다.
「미국인 거지」는 ‘나’와 잭의 서사에 가게에서 시간제로 일하는 몽골인 부부의 이야기도 덧붙인다. 몽골에서 교수를 했다는 남자는 일용직 점원이나 막일 밖에 할 수 없는데 작가 또한 비슷한 상황임을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잭은 흑인 갱들 간의 전면전으로 가게 앞에서 희생되고 잭의 죽음으로 ‘나’는 발작을 일으켜 병원에 실려간다. 이 소설은 전쟁의 상흔이 한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처절하게 그려낸다.
「모네타」는 자본주의의 명암을 도발적이고도 서늘하게 적시한다. 주류사회로 진입하려는 비주류 동양인의 노력이 불을 찾아 질주하는 불나방처럼 애처롭고 눈물겹다. 돈이라면 자신의 영혼마저 팔 수 있는 작중 인물 선우를 통해 작가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우리도 그럴 소지를 다분히 가지고 있는 사람들임을 암시한다. 또한 비주류의 한계 또한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류 사회로의 진입에 아직도 강고한 벽이 존재함을 알린다.
「죽음에 이르는 경기」는 「모네타」와 유사하면서도 맥을 달리한다. 관중의 오락과 치부를 위해 목숨을 담보로 싸우는 선수들의 모습은 로마시대의 검투사를 떠올리게 한다. 모든 제국의 멸망 징후는 도덕적인 타락이고 자본주의의 몰락 징후는 인간을 오락거리로 여겨 생명을 경시할 때가 아닐까. 자본주의는 죽음에 이르는 경기라는 말이 자꾸 입가를 맴돈다.
그 밖에도 6편의 단편이 더 있다.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이야기들은 이국 땅에서의 고단한 삶을 핏빛 눈물로 선연하게 비춘다. 또한 독백처럼 들리는 이야기 속에는 늘 말했으나 여전히 갈한 작가의 속내를 토하듯 드러낸다.
“이런 한국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나중에 몇 십 년을 미국에 와서 산다고 해도 절대 미국인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중략)...나는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니었다. 한국인이기엔 한국에 대해 잘 몰랐고 미국인이 되기엔 너무 한국에 대한 기억이 많았다.” 104~105쪽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삶은 외롭고 고단하다. 떠돌다보니 삶은 뿌리 내리지 못했고 전전하기만 할 뿐이었다. 희구한 삶은 애쓴 만큼 보상해주지 않았고, 남은 것은 흰머리와 갈라지고 굵어진 손마디, 생채기가 전부였다.
그러나 성취만이 인생의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삶을 개척하기 위해 나라를 떠나는 용단을 내렸고, 사랑하는 이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두었다. 게다가 자신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 노고를 자신은 안다. 이제 개인사의 아픔과 질곡에서 벗어나 개개인이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되면 좋겠다. 그 역사는 개인사에만 머물지 않고 이 땅의 지경까지 넓힌다.
큰아버지가 서울에 오셨을 때 이모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시고 안 계셨다. 그러나 엄마를 닮은 이모가 고인의 지난 삶을 전했고, 자신을 반기는 친척이 있어 긴 시간의 공백을 추억으로 채울 수 있었다. 우리 또한 큰아버지의 지난 시간을 통해 아들을 그리워했던 이모할머니를 기쁘게 추억할 수 있었다. 자신을 일군 사람은 시간을 초극해 아픔마저 아름답게 빚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