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부식 열도 2
다카스기 료 지음, 이윤정 옮김 / 펄프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유사 이래로 한 나라나 거대 조직이 무너질 때는 상층부의 도덕적 해이가 징후로 나타난다. 흔히들 쉽게 간과하지만 도덕적 해이야말로 가장 두려워해야 할 몰락의 징조이다. 도덕적 해이는 한 두 가지가 아닌 복합적 요인으로 출현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1980년대의 거품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거품경제는 경제 전반에 걸쳐서도 많은 부정적 영향을 끼쳤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의 정신을 병들게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거품경제가 일상화되면서 사람들은 땀의 의미를 경시했으며, 과열과 투기는 이음동의어가 되었다. 그러나 영구할 것 같던 거품은 그리 길지 않았고, 그 후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을 맞게 된다. '금융 부식 열도'는 그 시기 붕괴되는 거품의 현장을 금융권을 통해 그려낸 소설이다.

 

 

 

 

거품경제 때 조직 폭력단은 부동산업과 종합 건설 분야에 깊이 침투했다. 그 중 한 회사가 교산 파이낸스다. 교산 파이낸스는 은행출자를 받기 위해 교리쓰 은행의 이케부쿠로 지점장인 아키야마를 바지사장으로 앉힌다. 교산 파이낸스의 회장인 오쓰는 처남인 이시미즈 부사장과 함께 그들이 다이산 파이낸스 시절 교메이 흥산에 융자해 준 850억엔의 부실 채권은 입에 올리지도 않는다. 1년이 지나 아키야마는 교산 파이낸스가 파산 직전인 것을 알게된다. 부실 채권은 이외에도 더 있어 2200억엔에 달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이시미즈는 교메이 흥산의 부실채권을 편법 양도하는 꼼수를 부리고, 다케나카와 아키야마는 교메이 흥산 그룹의 제 3자 파산 신청을 감행한다. 이 일로 인해 다케나카와 아키야마는 교메이 흥산의 공격을 당하는데 가두 선전차까지 동원한 협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더 이상 견딜 수도, 야쿠자에게 휘둘릴 수 없었던 다케나카는 고마다 유키오를 찾아간다.

 

고마다의 중재로 협박은 멈춰졌지만 교메이 흥산의 아라마타 사장과 교산 파이낸스의 전 부사장 이시미즈는 또다른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 그들은 미인계를 써서 아키야마를 꼼짝 못하게 한 후 대어인 교리쓰 은행의 스즈키 회장을 협박한다. 자신의 비리가 폭로된 유인물을 비롯해 가두선전차까지 동원된 협박에 스즈키의 신경질은 도를 넘어섰고 결국 아라마타와 이시미즈에 대한 형사 고소는 취하된다. 그러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은 터진다. 다마키 겐자부로라는 '그룹 21'의 오너인 거물 총회꾼이 아키야마를 찾아간다. 다마키는 이시미즈로부터 입수한 아키야마의 정사신 테잎을 꺼내며 2~3억엔의 돈을 융자해달라고 협박할 뿐 아니라 이외에도 무리한 요구를 들이댄다. 겁이 난 아키야마는 다케나카에게 도움을 청하고 다케나카는 고마다를 다시 찾는다.

 

고마다는 이 일의 해결을 위해 뒤에서 사주하는 간슈 연합의 회장 나미키와 교리쓰 은행의 스즈키 회장, 그리고 자신의 3자 회담을 제안한다. 그러나 스즈키 회장과 조직폭력단과의 만남에 부정적인 사토 비서 실장의 반대로 회담은 무산되고, 이 일로 다케나카는 고마다로부터 출입불가 조처를 당한다. 회담을 성사시키려는 다케나카의 노력으로 스즈키 회장 대신 사이토 은행장이 대타로 나가게 되고 회담은 잘 마무리 된다. 한편 스즈키 회장의 큰 딸인 마사에와 내연관계에 있는 가와구치가 또 10억엔의 융자를 부탁한다. 사토는 다케나카에게 이 일을 부탁하고 다케나카는 융자가 불가함을 말한다. 그러나 다케나카의 의견은 사토에 의해 이번에도 묵살됐고 이 일은 회오리 바람을 몰고 온다. 

 

오랜만에 휴가를 다녀온 다케나카에게 '주간 조류'의 요시다 슈헤이 기자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온다. 요시다는 교리쓰 은행의 요코하마 지점이 M&K 코퍼레이션이라는 페이퍼 컴퍼니에 10억엔을 융자했는데 알고 있냐며 물어본다. 불법 대출로 울분을 참지 못한 요코하마 지점의 야마기시라는 직원이 내부 고발을 한 것이다. M&K 코퍼레이션은 스즈키 회장의 딸인 마사에가 가와구치의 불법 융자를 위해 만든 유령회사였다. 이 일로 교리쓰 은행은 발칵 뒤집히고 결국 '주간 조류'의 톱 기사로 일면에 실린다. 자신의 건물에 이중삼중의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고 담보능력이 제로인데다 회수 불능상태임에도 가와구치에게 지금까지 25억엔이 대출된 것이다. 스즈키 회장의 건의와 사토 비서실장의 지시로 이뤄진 일인데 이 일을 맡은 요코하마 지점의 지점장이 덤터기를 쓰게 됐다. 기사가 실려 극도로 이성을 잃은 스즈키 회장은 요코하마 지점장에게 책임을 물으라 하고는 다케나카까지 자르라 한다.

 

드디어 전직 행장 출신인 상담역들이 나섰다. 더 이상 스즈키 회장의 독단과 전횡을 볼 수 없다며 자신들과 함께 동반사임을 촉구한다. 물러날 생각이 전혀 없는 스즈키 회장은 이 기회에 상담역들을 몰아내겠다 마음 먹는다. 이제 은행엔 스즈키 회장 뿐 아니라 사토 비서실장까지 규탄하는 괴문서가 나돈다. 다케나카는 사토 비서실장을 통해 스즈키 회장의 사임을 권유하며 한편으론 고마다에게 협조를 구한다. 고마다는 스즈키 회장을 설득하고 4인은 동시사퇴하게 된다. 스즈키 회장의 몰락으로 그토록 잘 나가던 사토 비서실장은 끈 떨어진 갓이 되었고, 스기모토는 사토 비서실장과 거리를 두려고 측은할 정도로 안간힘을 쓰게 된다. 다케나카는 그런 스기모토를 미워할 수 없는 녀석이라 생각하며 미소 짓는다.

 

'금융부식열도'는 그래도 희망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그 후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리는 시기를 맞게 된다. 극심한 장기침체로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고 수많은 기업과 은행이 도산했으며 0%의 성장률을 10년 넘게 기록하고 있다한다. 거품의 달콤함을 맛본 댓가 치고는 너무 혹독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의 제목이 재생 시나리오이다. 제목 그대로 나는 그들의 경제가 하루 속히 재생되었으면 좋겠다. 마치 따라하듯 우리 경제가 그들의 전철을 밟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경고음과 같은 책이었다. 피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도 거품경제의 폭탄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와같은 측면에서 꽤 유의해 읽어볼 만한 책이었다. 

 

 

이미지 사진 출처: http://cafe.daum.net/dieselmania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내용 참조: 위키디피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금융 부식 열도 1 금융 부식 열도 시리즈 1
다카스기 료 지음, 이윤정 옮김 / 펄프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거품 경제가 한창일 때 일본은 세상에 부러운 나라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아시아 유일의 G7 국가 였으며,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안에 드는 경제대국이었고, 엔화 강세로 인한 국제적 지위도 가파르게 급상승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했으며 무엇보다 일본 경제의 핑크빛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하늘을 찔렀다. 당시 동경의 땅만 팔아도 미국을 살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자산가격이 비정상적으로 급등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무언가에 취해있었고 정신을 차릴 생각조차 하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그토록 아름다운 장미빛 전망이 사라지는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경제전문가들은 거품 경제의 몰락을 예고하고 있었고 우울한 전망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예견이 함의하는 바가 그리도 크고, 길고, 혹독할 줄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아플 것을 예상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한다고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거품경제가 몰고온 후폭풍이 그랬다. 말 그대로 폭풍이었다. 정신을 차릴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들이 무너지고 있었고 이미 오래 전부터 썩어있었다. 거품 경제가 주었던 기쁨은 마약과 같았다. 쾌락의 순간은 짧고 강렬했지만 깨고 난 후 겪어야 할 댓가는 길고 끔찍했던 것처럼.

 

 

'금융부식열도'는 일본 거품경제의 몰락을 정면으로 다룬 소설이다. 1997년도에 첫 출간됐다는데 읽으면서 시간차를 느끼지 못했다. 오늘 우리 땅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흡사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주인공은 다케나카 하루오라는 은행원이다. 다케나카는 대형은행인 교리쓰 은행 도래몬지점의 부지점장으로 별 불만없이 잘 지내고 있는 직장인이었다. 그런 그에게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진다. 본점의 총무부 주임 조사역으로 발령이 난 것이다. 승진 인사임에도 그는 화가 나 어쩔줄 모른다. 다케나카는 총무부 내 섭외반 소속으로 그가 할 일은 주주총회에 나타나 훼방을 놓는 총회꾼을 담당하는 것이다. 이는 좌천보다 못한 승진이었다. 이 인사이동의 배후에는 다케나카의 동기인 스키모토 조사역이 있었고 그 뒤엔 사토 비서역이 있었다.

 

사토 비서역은 교리쓰 은행의 실세로, 은행장이었다 이번 인사에 회장이 된 스즈키 회장의 최측근이다. 스키모토는 그런 사토 비서역의 오른팔로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는 자칭 차차차기 은행장 감이다. 스즈키 회장에겐 결혼한 딸이 있는데, 그 딸이 최근에 가와구치 마사요시란 남자와 사귀고 있고, 그 남자의 은행 융자를 회장에게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 골 아픈 문제를 해결하는 임무가 다케나카에게 주어졌다. 다케나카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부터 알고 지내던 '주간 조류'의 기자 요시다 슈헤이를 만난다. 요시다는 가와구치에게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며 조심하라 알려준다. 다케나카는 요시다가 전해준 내용을 정리해 올리지만 회장의 심기를 염려한 사토 비서역의 차단으로 가와구치의 비리는 회장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결국 가와구치에게 융자를 해주기로 결정이 나고 다케나카는 원치 않았지만 그 일을 실행하게 된다.

 

다케나카는 그 일을 마친 후 본래 자신의 임무로 돌아오고 섭외반은 하루도 잠잠한 날이 없다. 어느날 고다마 유키오라는 거물 총회꾼 휘하의 나쓰가와 미치오라는 총회꾼이 찾아와, 교리쓰 은행이 다치바나 미스코라는 사람에게 부정융자를 했다며 협박한다. 나쓰가와는 이 일에 거물 정치가와 은행장이 관여했다며 입막음을 하려면 자신에게 융자를 해달라 한다. 다케나카는 사토 비서역에게 면담을 신청하지만 거절 당하고 스키모토를 통해 고다마 유키오를 만나라는 지시를 받는다. 고마다 유키오는 다케나카를 잘 보았는지 흔쾌히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이 일을 해결되는데 3억엔이라는 돈이 은밀하게 지출됐다.

 

주총 준비로 한창일 즈음 사와자키 마사타다라는 신규 프로 주주가 나타나 시마다 상무의 비리를 알려준다. 다케나카는 고민 끝에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해결하라며 상무에게 전한다. 다케나카는 이 일을 끝으로 섭외반에서 프로젝트 추진부로 자리를 옮기게 되지만, 부실채권을 처리하는 일이라 전보다 스트레스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이번에는 캐츠아이라는 악질적인 논뱅크에 걸렸다. 행정관료가 향응과 접대를 받고 은행에 지시해 융자하게 했던 개츠아이는 실체 없는 페이퍼 컴퍼니로 말만 종합 금융업이지 실제는 허공에 뜬 회사였다. 이 융자에 교리쓰 은행도 70억엔을 융자해 주었다. 과거에 은행장은 상무회에서 괜찮은 안건이라 했다는데 불과 몇 년도 지나지 않아 질 나쁜 안건이 되는 사태를 보고 다케나카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결국 채권은 포기하게 되었다. 

 

다케나카라는 한 은행인의 눈을 통해 작가인 다카스기 료는 거품경제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곁들여 관치금융의 폐해까지 지적하고 있다. 한때 일본의 자랑이라던 엘리트 관료들의 변질과 버블로 인해 돈에 대한 구체적 감각마저 잊어버린 금융권가의 모습은 비록 타국의 일이었지만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울적했다. 롤 모델이라도 되는 양 우리는 일본 경제를 따라가지 않았던가. 아직 우리의 드러나는 상황이 당시 일본의 상태까지는 도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현재는 단지 예견했던 징후가 얼굴을 드러내는 정도에 불과할지 모르니 말이다. 앞으로 거품이 사라진 본 모습이 드러나면 우리에겐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이 책이 남의 일이었다면 확실히 흥미진진한 소설이 되었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조만간 닥칠 일이라 생각하니 결코 편히 읽을 수 없었다. 그들의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이 곳에서 선명히 보이는 것 같아서 말이다.

 

사진 출처: 블로깅해요 http://blog.naver.com/lollol01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갈까마귀의 여름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64
데이비드 알몬드 지음, 정회성 옮김 / 비룡소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인간 속에 내재한 악을 조명할 때는 상당히 조심스러워야한다. 하물며 청소년을 대상으로 했을 때 더더욱 그렇다. 악을 통해 이야기 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선을 통해 이야기 하는 것이 수월할지 모른다. 그러나 데이비드 알몬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세상을 미화하지 않았다. 우리 속에 있는 추악함을 감춘채 선으로 포장한 후 이야기 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다소 우울하고 무거웠으며 약간의 잔혹과 충동이 배어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공감을 불러왔는지도 모른다.

 

악을 보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악은 무엇보다 나 자신을 통해 봐야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악을 행하는 누군가를 비난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런 환경에 처했을 때 나는 다를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치기에 가깝다.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그런 불편한 사실을 인정했을 때 우리는 악을 진지하게 대면할 수 있다. 그래서 데이비드 알몬드는 주인공인 리암에게 친구를 다치게 하는 행동을 허락한 것이다. 

 

 

'갈까마귀의 여름'엔 각기 다른 상황에 있는 청소년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처한 상황은 곧 그들의 삶이었고 그들의 성격이었으며 됨됨이가 되었다. 주인공 리암은 전형적인 십대 소년으로 베스트 셀러 작가인 아빠와 사진 작가인 엄마 밑에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살고 있다. 남들이 보기엔 리암의 부모가 과보호하지 않고 아이를 자유롭게 키우는 것 같지만 실상 그들은 리암의 마음을 잘 모른다. 아빠는 글 쓰느라 다른 것에 마음을 쓸 여력이 없고 엄마도 사진 작가로서의 활동에 무게를 더 두고 있어서 리암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단지 지금처럼 이렇게 살면 모든 것이 무난하게 돌아갈 것이라고 믿고 있다. 엄마 아빠의 사이는 나쁘지도 않지만 좋지도 않다. 엄마에게는 아빠도 알고 있는 남자 친구가 있다.

 

맥스는 리암의 친구다. 전에 둘은 죽이 잘 맞았지만 맥스가 현실적으로 변해가면서 리암은 거리감을 느끼고 있다. 리암의 또다른  친구였던 고든은 이제는 친구가 아니라 둘을 괴롭히는 악동이다. 고든의 아버지는 트랙터 사고로 한 팔을 잃은 다음부터 늘 술에 절어산다. 고든은 밖에서는 온갖 것을 다 아는 양 행세하며 아이들을 괴롭히지만, 아버지 앞에서는 꼼짝도 못한다. 고든의 아버지는 아이를 엄하게 대하고 나쁜 짓을 못하게 하면 잘 자랄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고든을 무섭게만 대한다. 고든은 친구를 괴롭히고 못된 짓을 하는 나쁜 아이이긴 하지만, 편부로부터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이기도 하다. 데이비드 알몬드는 고든이 왜 그렇게 악의적인 행동을 하게 됐는지를 넌지시 전하고 있다.

 

이 책은 이 셋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어느날 리암과 맥스는 이상하게 행동하는 갈까마귀를 보게 된다. 갈까마귀는 뭔가 보여줄 것이 있다는 듯 둘을 숲 속으로 이끈다. 숲 속엔 왠 바구니가 놓여있고 그 안에는 갓난아기가 담겨 있다. 바구니 안엔 아이를 잘 부탁한다며 아이가 신의 딸이라는 희안한 쪽지가 들어있다. 리암은 아이를 데려오지만 결국 아이는 보호센터로 보내지게 되고, 이일로 리암은 매스컴을 타게 된다. 비록 아이는 집을 떠났지만 엄마와 리암은 아이가 궁금해져 아이를 보러가게 된다. 아이가 있는 위탁가정엔 올리버와 크리스털이라는 아이들이 있다. 올리버는 라이베리아에서 도망나온 소년병으로 그 때의 기억을 아직도 상흔으로 가지고 있고, 크리스털 또한 화재로 부모와 자매를 잃은 아픔을 가지고 있다. 리암은 이 둘을 보며 자신이 이들과 깊이 연결돼 있음을 감지한다. 엄마는 그 후로도 몇 번이나 아이를 보러 간 후 더 이상은 안되겠는지 아이를 데려오기로 마음 먹는다.

 

한편 마을의 숨은 골칫덩어리 고든은 잠시도 악의를 놓지 않고 있다. 자신의 삶에 대한 분노 때문인지 고든은 도를 넘어선 행동을 일삼는다. 고든은 리암의 엄마가 하는 전위적인 행위를 본 따 자신도 익명으로 전시회를 가진다. 예술의 이름을 빌린 엽기적인 행태에 리암의 엄마는 크나큰 모독과 상처를 받는다. 무엇때문인지 고든은 늘 리암을 따라다니며 괴롭히고 리암이 자신과 같은 부류임을 알게하려고 애를 쓴다. 고든은 크리스털과 올리버가 리암을 찾아와 도움을 구했을 때도 이를 빌미로 괴롭히며 추근덕댔다.

 

어느날 올리버가 작심하고 자신의 깊은 아픔을 리암에게 말하는 중 고든이 찾아와 또 훼방을 놓는다. 올리버는 고든을 잡아채 그 목에 칼을 댄다. 그제서야 정신이 든 고든은 사태를 파악하고 두려움에 떤다. 올리버는 자신이 소년병으로 죽였던 소녀의 이야기를 하며 기나긴 고통에서 벗어나려 고든에게 칼을 건네며 자신을 찌르라 한다. 고든은 올리버를 찌르려하고 이때 리암이 고든을 향해 자신이 숲에서 주웠던 칼을 던진다. 칼은 고든의 팔에 꽃혔지만 다행히도 아이들을 지켜보던 군인들이 있어 이 일은 해프닝으로 끝나게 된다. 고든을 데리러 온 고든 아버지의 이해로 이 일은 마무리 되고, 리암은 고든과 자신이 말썽꾸러기 꼬마에 불과했음을 알게 된다.

 

대개의 청소년 소설이 밝고 경쾌하게 전개되는데 반해 '갈까마귀의 여름'은 몽환적이고 음울하였고 때로는 불안감마저 조성하며 이야기를 끌고 나갔다. 재미는 있었지만 전체적인 주조는 무거웠다. 전쟁이 일어날 징조가 보이지 않는데 아이들은 노는 곳에서 늘 전운을 느꼈다. 어쩌면 이는 우리 삶이 전쟁임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든 가치가 전복되고 도덕이 사라지며 폭력과 야만만이 판치는 그 곳에 이미 우리가 살고 있다고 알려주는 것 같다. 또한 만약 당신이 실제 전쟁터에 있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고 있는 듯하다. 작가는 아이들을 등장시켜 무겁지 않게 처리했지만 그렇다고 그 함의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올리버와 같은 소년병이 되지 말란 법은 누구도 없으니 말이다. 이런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책을 읽으며 고든의 악의가 소년병의 실상으로 나아가지 않게 된데에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은 아직은 거기까지는 아니었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사진 출처: 나는 시시한 사람이다. http://www.cyworld.com/heebee74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커졌다! 사계절 그림책
서현 글.그림 / 사계절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아이들은 키에 대한 관심이 대단한 것 같아요.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인 저희 딸도 키에 관심이 어찌나 많은지 몰라요. 밤 10시에 성장 호르몬이 많이 나온다는 얘기를 들은 뒤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10시에 자야한다며 시간 지키는데  철저하답니다. 그러나 눕기만 그렇지 실제는 훨씬 더 뒤에 자면서도, 하여간 10시에는 꼭 잘 준비를 하네요.

 

저도 아이가 어릴 때는 그렇게 키에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입학식 날 아이가 키 순서로 3번이 되고서는 제법 신경이 쓰이더라구요. 당시 바로 앞에서 선생님이 키를 재시는데 1번이 될까봐 어찌나 조마조마하던지요. 딸 아이도 자신이 그렇게 작은 줄 몰랐나봐요. 전에도 틈 날 때마다 키를 재긴 했지만 작년에는 아이가 하루에 몇 번이나 키를 재는거예요. 키가 그렇게 금방 자라는 게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아이는 요지부동이에요. 그러더니 2학년이 돼서 4번이 되니까 좀 안심이 되는지 전보다는 키를 덜 재네요.

 

 

 

이 책은 아이들의 관심사를 그대로 반영한 동화예요. 어떻게 하면 키가 클까 싶어 이런 저런 방법을 동원하는 아이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좀 애처롭기도 하네요. 어른들이야 때가 되면 알아서 큰다 고 쉽게 말하지만 아이의 마음은 그게 아니잖아요. 한시가 급한지 아이는 우유도 먹어보고 몸도 늘려보고 별 짓을 다하지만 마음대로 안돼요. 아이에게는 꽤 심각한 고민거리였나 봐요. 드디어 아이가 결심을 합니다. 비를 맞아야겠다구요. 책에서 보니 나무가 비를 맞고 쑥쑥 자라는 거예요. 

 

비를 맞던 아이는 커지기 시작합니다. 얼마나 빠르게 커지던지 무서울 정도예요. 한 번 보세요.

 

 

   

 

아이는 자라고 자라 마침내 지구 밖까지 커졌어요. 뿐 만 아니에요. 무시무시하게 커진 아이가 이제 지구까지 삼켜버립니다. 

 

 

이런!  아무리 그래도 지구는 삼키면 안되잖아요? 아이는 그간 삼켰던 것들을 있는 힘을 다해 뱉어냅니다. 그랬더니 온갖 것들이 아이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거예요. 이제 다 뱉었다 생각할 즈음 아이는 작아지기 시작합니다. 작아지고 작아지고 작아지더니......얼마나 작아졌냐면요, 집에서 있기 딱 맞을 정도로 작아져요. 그러니까 원래대로 돌아온거죠. 그러면 속상하겠다구요? 그럴까요? 그건 직접 확인해 보세요. ㅎㅎ

 

 

이 책은 '키'라는 아이들의 관심사를 주제로 현실과 상상이 자연스럽게 접목돼서 거부감이 들지 않아 좋았어요. 다른 책에선 현실에서 상상으로 넘어가거나 다시 돌아오는 과정이  종종 어색할 때가 있었거든요. 또 초등 1~2학년을 대상으로 만든 책이라는데 글이 많지 않아서 의외였어요. 사실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보이지 않는 이야기가 더 많은 말을 하고 있었거든요. 게다가 곳곳이 위트로 가득했어요. 겉 보기에는 유아들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눈여겨 보지 않으면 책 속에 담긴 많은 이야기를 놓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 책은 적어도 초등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라야 알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이야기죠. 은근히 초등학생들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책이었답니다.

 

모처럼 직접적인 교훈을 주지 않으면서 아이들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꾸민 책을 만나 기뻤답니다. 저는 그래서 이 책이 진짜 동화라고 생각돼요. 아이들을 진정으로 존중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에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 - 한국의 미를 세계 속에 꽃피운 최순우의 삶과 우리 국보 이야기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의 미를 슬프리만큼 아름답고, 고상하면서도 담백하게 표현한 이로 혜곡 최순우를 따를 사람은 없다. 우리 스스로도 얕잡아보고 하찮게 여겼을 때 최순우는 자신의 가장 지극한 사랑을 담아 우리의 미를 글로 표현했고, 자신의 생으로 그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최순우 안에 조선 백자의 담아함이 있었고, 그 안에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우리의 순응적 세계관과 소박함이 담겨 있었다. 이 땅에 많은 사람이 오고 갔지만 그처럼 자신의 전 생애를 들여 우리 문화재를 사랑하고 가꾸었던 사람은 드물었다.         

 

최순우를 떠올리면 나는 늘 조지훈의 '승무'가 생각났다. 삶의 고통을 승화시켜 생의 숭엄함으로 드러낸 젊고 고운 여승처럼, 최순우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우리의 미를 온전한 꽃으로 피워냈다. 먹고 사는 문제를 지상 최대의 명제로 여겼던 가난의 시대를 지나 우리 문화가 우리의 삶 안에서 자리잡을 때까지 최순우는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 전시와 행정을 비롯 온갖 중대하고 잡다한 일을 그가 했음에도 고졸이라는 학력으로 인해 20여 년을 만년 과장으로 지내야했던 최순우의 시간을 생각하면 우리 문화에 대한 그의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를 유추할 수 있다. 인간적인 바람과 기대보다 더 큰 것이 그 안에 있었기에 그같은 인고의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석굴암 11면 관음보살상 부조                               백자달항아리      

 

보살핌과 사랑이 없으면 유물과 유적도 오래된 시간의 흔적에 불과하다. 전 세대의 노력과 정성이 현 세대의 안목과 사랑을 만나야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 노력의 선봉장에 고유섭이 있었고, 전형필이 있었으며, 최순우가 있었다. 만일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고 했다면 단 몇 달도 힘에 부쳤을 것이다. 오로지 우리의 유산을 지켜야한다는 엄중한 자각이 있었기에 비난과 무관심의 비바람을 견딜 수 있었고, 그 정가운데에 최순우가 있었다. 

 

  

                                      고유섭                         뒷줄 두 번째 전형필, 우측 끝 최순우

 

최순우를 대중적으로 알게 해 준 책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였다면, 이 책은 최순우의 일대기를 그린 책이다. 개성박물관의 말단 서기에서부터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오르기까지의 그의 개인사가 우리 유적 발굴사 및 박물관사와 맞물려 명확하고도 상세하게 그려져있다. 최순우의 삶은 만남으로 이루어진 생이었다. 그 삶의 주춧돌이 된 만남은 첫 스승이었던 고유섭과 생의 반려자였던 박금섭과의 만남이다. 고유섭과의 만남을 통해 최순우는 자신이 가야할 길을 선택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받아들인다. 아내이자 든든한 지원군이었던 박금섭은 최순우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갈 길을 포기하지 않도록 가정 경제를 책임지고 격려해주었다. 두번 째 스승이었던 간송 전형필과의 만남은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최순우의 이해를 깊게 했고, 많은 위로와 기쁨도 얻게 했다. 또한 박물관인들과 다른 세계와의 만남은 그의 시야를 확장시켰다. 이제 최순우가 가는 곳마다 우리 역사는 열리고 넓어졌으며 심화되었다. 그의 눈으로 우리는 역사를 보았고 그의 연구로 우리 역사의 지경은 확대되었다.

 

최순우는 평생을 박물관과 함께 했다. 박봉에 나라의 지원조차 미약했지만 자신이 외교관이 되고 행정가가 되어 우리 문화를 발굴하고 전세계에 소개하는 데 앞장 섰다. 우리 유물의 전시로 변방의 약소국이자 분단국이었던 우리나라는 문화유산 강국으로 변신할 수 있었고, 열등감에 젖어있던 현지 교포들에게 자긍심마저 일깨워 주었다. 또한 최순우는 박물관 행사와 기고등을 통해 우리 유물에 대한 국내의 관심을 고취시키고 저변 확대를 이루었다. 전시와 강좌는 사람들의 발길을 박물관으로 돌리게 했고,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한 글은 우리 문화를 사람들의 삶과 가깝게했다.

 

그러나 학문적 깊이와 전문가적 능력에도 불구하고 고졸이라는 학력은 늘 그의 발목을 잡았다. 개성박물관의 유물을 중앙박물관으로 옮기는 것을 시작으로, 한국전쟁때 그 많은 유물들을 수도 없이 옮기고 해외전시 때도 유물을 맡아 옮기는등 각종 실무를 진행했건만 그의 직책은 20년이나 제자리였다. 부하 직원이나 동료가 상사가 되는 아픔을 수없이 겪으면서도 그러나 최순우는 박물관을 떠나지 않았다.

 

 

              일본에서 문화재를 점검하는 최순우                                 국립중앙박물관장 시절     

 

20여 년을 과장으로 보낸 후 1973년 최순우는 학예연구실장이 되고, 다음해 드디어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된다. 긴 시간 동안 힘겨움과 좌절이 있었지만 그는 첫 스승과의 약속을 지켰고 외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1984년 세상을 뜰 때까지 최순우는 오로지 우리의 문화유산만을 생각했고 그 가운데서우리 문화가 가진 독창성과 진솔한 아름다움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유려한 글 안에서 풀어냈다. 그의 글이 도자기를 설명했을 때 사람들은 고려청자와 이조백자의 세계에 취했고,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을 언급했을 때 감탄의 눈물을 흘렸다. 박제된 시간을 차고 나와 최순우를 통해 들려지는 유물들의 생생한 소리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뀌게 했고 우리 역사의 소중함에 눈을 돌리게했다.

 

신은 우리에게 최순우란 고결한 사람을 선물로 주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머물게하지는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마치 예감이라도 했던 듯 그는 많은 사람 몫의 일을 하고 우리 곁을 떠났다. 그는 우리 정서와 우리의 글로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새색시와 같은 수줍음과 섬세함으로 전하였고, 때론 무장한 군인의 용맹함으로 설파했다. 배부른 사람들의 유희로만 알고 멀찍이 있던 사람들도 최순우의 숨결로 전해진 우리 미의 다채로움과 다양성을 접하며 역사와 내가 무관하지 않음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 것을 사랑했고 그를 위해 자신을 던지길 주저하지 않았던 한 사람의 경이로운 힘 때문에 사람들은 우리의 유산을 사랑하게 되었다. 최순우, 그가 우리 곁에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