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부식 열도 1 금융 부식 열도 시리즈 1
다카스기 료 지음, 이윤정 옮김 / 펄프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거품 경제가 한창일 때 일본은 세상에 부러운 나라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아시아 유일의 G7 국가 였으며,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안에 드는 경제대국이었고, 엔화 강세로 인한 국제적 지위도 가파르게 급상승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했으며 무엇보다 일본 경제의 핑크빛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하늘을 찔렀다. 당시 동경의 땅만 팔아도 미국을 살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자산가격이 비정상적으로 급등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무언가에 취해있었고 정신을 차릴 생각조차 하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그토록 아름다운 장미빛 전망이 사라지는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경제전문가들은 거품 경제의 몰락을 예고하고 있었고 우울한 전망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예견이 함의하는 바가 그리도 크고, 길고, 혹독할 줄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아플 것을 예상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한다고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거품경제가 몰고온 후폭풍이 그랬다. 말 그대로 폭풍이었다. 정신을 차릴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들이 무너지고 있었고 이미 오래 전부터 썩어있었다. 거품 경제가 주었던 기쁨은 마약과 같았다. 쾌락의 순간은 짧고 강렬했지만 깨고 난 후 겪어야 할 댓가는 길고 끔찍했던 것처럼.

 

 

'금융부식열도'는 일본 거품경제의 몰락을 정면으로 다룬 소설이다. 1997년도에 첫 출간됐다는데 읽으면서 시간차를 느끼지 못했다. 오늘 우리 땅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흡사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주인공은 다케나카 하루오라는 은행원이다. 다케나카는 대형은행인 교리쓰 은행 도래몬지점의 부지점장으로 별 불만없이 잘 지내고 있는 직장인이었다. 그런 그에게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진다. 본점의 총무부 주임 조사역으로 발령이 난 것이다. 승진 인사임에도 그는 화가 나 어쩔줄 모른다. 다케나카는 총무부 내 섭외반 소속으로 그가 할 일은 주주총회에 나타나 훼방을 놓는 총회꾼을 담당하는 것이다. 이는 좌천보다 못한 승진이었다. 이 인사이동의 배후에는 다케나카의 동기인 스키모토 조사역이 있었고 그 뒤엔 사토 비서역이 있었다.

 

사토 비서역은 교리쓰 은행의 실세로, 은행장이었다 이번 인사에 회장이 된 스즈키 회장의 최측근이다. 스키모토는 그런 사토 비서역의 오른팔로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는 자칭 차차차기 은행장 감이다. 스즈키 회장에겐 결혼한 딸이 있는데, 그 딸이 최근에 가와구치 마사요시란 남자와 사귀고 있고, 그 남자의 은행 융자를 회장에게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 골 아픈 문제를 해결하는 임무가 다케나카에게 주어졌다. 다케나카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부터 알고 지내던 '주간 조류'의 기자 요시다 슈헤이를 만난다. 요시다는 가와구치에게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며 조심하라 알려준다. 다케나카는 요시다가 전해준 내용을 정리해 올리지만 회장의 심기를 염려한 사토 비서역의 차단으로 가와구치의 비리는 회장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결국 가와구치에게 융자를 해주기로 결정이 나고 다케나카는 원치 않았지만 그 일을 실행하게 된다.

 

다케나카는 그 일을 마친 후 본래 자신의 임무로 돌아오고 섭외반은 하루도 잠잠한 날이 없다. 어느날 고다마 유키오라는 거물 총회꾼 휘하의 나쓰가와 미치오라는 총회꾼이 찾아와, 교리쓰 은행이 다치바나 미스코라는 사람에게 부정융자를 했다며 협박한다. 나쓰가와는 이 일에 거물 정치가와 은행장이 관여했다며 입막음을 하려면 자신에게 융자를 해달라 한다. 다케나카는 사토 비서역에게 면담을 신청하지만 거절 당하고 스키모토를 통해 고다마 유키오를 만나라는 지시를 받는다. 고마다 유키오는 다케나카를 잘 보았는지 흔쾌히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이 일을 해결되는데 3억엔이라는 돈이 은밀하게 지출됐다.

 

주총 준비로 한창일 즈음 사와자키 마사타다라는 신규 프로 주주가 나타나 시마다 상무의 비리를 알려준다. 다케나카는 고민 끝에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해결하라며 상무에게 전한다. 다케나카는 이 일을 끝으로 섭외반에서 프로젝트 추진부로 자리를 옮기게 되지만, 부실채권을 처리하는 일이라 전보다 스트레스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이번에는 캐츠아이라는 악질적인 논뱅크에 걸렸다. 행정관료가 향응과 접대를 받고 은행에 지시해 융자하게 했던 개츠아이는 실체 없는 페이퍼 컴퍼니로 말만 종합 금융업이지 실제는 허공에 뜬 회사였다. 이 융자에 교리쓰 은행도 70억엔을 융자해 주었다. 과거에 은행장은 상무회에서 괜찮은 안건이라 했다는데 불과 몇 년도 지나지 않아 질 나쁜 안건이 되는 사태를 보고 다케나카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결국 채권은 포기하게 되었다. 

 

다케나카라는 한 은행인의 눈을 통해 작가인 다카스기 료는 거품경제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곁들여 관치금융의 폐해까지 지적하고 있다. 한때 일본의 자랑이라던 엘리트 관료들의 변질과 버블로 인해 돈에 대한 구체적 감각마저 잊어버린 금융권가의 모습은 비록 타국의 일이었지만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울적했다. 롤 모델이라도 되는 양 우리는 일본 경제를 따라가지 않았던가. 아직 우리의 드러나는 상황이 당시 일본의 상태까지는 도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현재는 단지 예견했던 징후가 얼굴을 드러내는 정도에 불과할지 모르니 말이다. 앞으로 거품이 사라진 본 모습이 드러나면 우리에겐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이 책이 남의 일이었다면 확실히 흥미진진한 소설이 되었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조만간 닥칠 일이라 생각하니 결코 편히 읽을 수 없었다. 그들의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이 곳에서 선명히 보이는 것 같아서 말이다.

 

사진 출처: 블로깅해요 http://blog.naver.com/lollol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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