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마중 보림 창작 그림책
김동성 그림, 이태준 글 / 보림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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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책을 읽으며 가장 가슴에 남는 작가와 그림 작가를 들라 한다면, 저는 주저없이 이태준과 김동성을 들겠습니다. 일제 강점기 하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구슬프고 애달픈 정서와 섬세하고 따뜻한 마음이 담긴 이태준만의 서정성은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을 정도라 여기니까요. 우리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그의 위치와는 무관하게 달밤이나 가마귀, 복덕방이 담긴 단편집을 읽으며 제가 느낀 감정이 그랬습니다.

 

그러면 김동성은 또 어떤가요? 저는 그를 '메아리'라는 책으로 만났습니다. 그 시대 정서를 반영하며 동화의 내용과도 기막히게 어우러진 수묵담채화를 보면서, 그의 나이 몇이기에 이리도 잘 구현해냈나 하는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그후 그의 이름이 들어간 책을 만나면 지나치다가도 되돌아와 훑어보는 습관마저 생겼습니다. 이렇게 멋진 작가들이 시공간을 초월해 만났지만, 저는 이 책이 재출간돼서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읽을 책은 많고 시간이 없었다면 변명일까요?

 

책을 보자마자 폈습니다. 김동성의 그림이 너무 좋았어요. 계속 읽어나가려는데 어린 딸이 책을 채갑니다. 그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책장을 덮으며 엄마가 안왔다고 마음 아파하네요. 아이는 연이어 말하더군요. 책 속 아이의 마음이 어린 딸에게 고스란히 전달된 모양입니다. 저도 책을 폈습니다. 글은 얼마 되지 않았어요. 책을 다 읽은 후 세어보니 총 15문장에 불과하더군요. 그런데 그 글 속에 담긴 아이의 마음이 무척이나 간절한 거예요. 그 아이의 마음을 김동성의 그림이 받아 여백 가득히 채우더군요.

 

 

이야기는 정말 간단합니다. 추운 겨울, 거친 광목의 옷을 입은 어린 아이가 정류장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거예요. 고맙게도 이내 전차가 도착합니다. 그런데 엄마가 보이지 않는 거예요. 아이는 차장에게 묻습니다. "우리 엄마 안 오?" 그러자 차장의 퉁명스럽기 짝이 없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너희 엄마를 내가 아니?" 전차는 두 대나 그렇게 지나갑니다. 마침내 세번 째 전차가 왔어요. 엄마는 또 보이지 않네요. 아이는 똑같은 질문을 합니다. 고맙게도 이번 차장은 친절하게 대답해 주네요. 그러나 그 대답은 아이에게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엄마가 오지 않았거든요. 그후 아이는 입을 열지 않습니다. 단지 그 자리에 코가 빨갛게 되도록 가만히 서있기만 합니다.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간절한 마음과, 마치 그 아이인 것처럼 다가오게 만드는 그림이 특별한 동화 한 편을 만들었습니다. 어린 자식을 두고 돈 벌러 나갔음직한 엄마의 가슴 아픈 사연과 그런 엄마를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 싶어 정류장을 찾아간 아이의 마음이, 어떤 부연 없이도 있는 그대로 전달됩니다. 몸도 마음도 추웠던 그 시절 그 때의 모습이 처연하게 다가오는군요. 그런데 희안하게도 왠지 모를 위로를 받는 기분입니다. 아이를 위로해줘야 할 사람은 분명 우리인데, 저 조그만 아이에게서 소중한 선물을 받은 느낌인건 왜일까요? 코를 빨갛게 만드는 겨울 추위 속에서도 엄마에 대한 사랑만으로 그 자리를 지켰던 아이는 커서 정말 훌륭한 사람이 되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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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파르티잔
서정춘 지음 / 큰나(시와시학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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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으며 왈칵 눈물이 날 뻔 했던 적이 몇 번 있다. 그 한 번이 서정춘의 '30년 전'을 읽고서였다. 왠지 모를 서러움이 가슴을 훒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2연 4행에 불과한 시였지만 이 짧은 시가 전하는 울림은 꽤 오래갔다.

 

'30년 전'

               - 1959년 겨울

어리고, 배고픈 자식이 고향을 떴다

 

-아가, 애비 말 잊지 마라

가서 배불리 먹고사는 곳

그곳이 고향이란다

 

세상에 못 볼 것이 자식 배곯는 모습이란다. 먹고 살 길을 찾아 먼 길 떠나는 어린 자식에게, 다시 오지 않아도 좋으니 그곳에서 배불리 먹고 잘 살라는 애비의 당부가 어찌 이리 덤덤하면서도 절절할 수 있을까? 그 애잔함과 서글픔에 목이 매일 정도다. 이 시를 읽은 후부터 서정춘의 시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게다가 그가 시 짓기에 인색하다는 신경림의 글까지 읽은 터라, 기회가 되면 그의 시집을 꼭 사봐야겠다고 마음 먹게 되었다.

 

이 시집은 그의 두번 째 작으로 2001년 출간되었다. 11 년이나 지났으니 구간도 보통 구간이 아닌 셈이다. 그래선지 올 초 이 책을 샀을 때, 마치 고서점에서 희귀본을 산 듯한 느낌이 들었다. 1부 '꿈, 안풍동 詩'에 19편, 2부 '오늘, 그 푸른 말똥이 그립다'에 14편의 시가 담겨있다. 시도 몇 편 없지만 시 자체도 여전히 짧았다. 그러나 짧은 시에 담긴 의미와 그만의 정서는 여전하면서도 확연히 외연이 넓어진 느낌이다.

 

낙차 落差

              -해우소에서

 

마음놓고 듣네

 

나 똥 떨어지는 소리

 

대웅전 뒤뜰에 동백나무 똥꽃 떨어지는 소리

 

노스님 주장자가 텅텅 바닥을 치는 소리

 

다 떨어지고 없는 소리

 

어린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똥 얘기, 똥 얘기를 들으니 해방감마저 든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나도 산사의 해우소에서 내 똥 떨어지는 소리를 들어보고 싶다. 근심을 푼다는 곳에서, 모든 것이 다 떨어지고 난 후 아무도 없는 듯한 적요를 느끼고 싶다. 가장 원초적이고 고독한 행위 속에서 그 누구도 아닌 나와 조우하고 나를 위로하며, 비워짐 속에 채워지는 기쁨을 만나고 싶다. 살포시 얹혀졌을 재를 향해 떨어지는 똥 떵어리의 퐁당 소리는 얼마나 명랑하랴.

 

봉선화

              -1950년대

 

너는 가낭뱅이 울아비의 작은 딸

 

나의 배고팠던 누님이 아이보개 떠나면서 보고 보고 울던 꽃

 

석양처럼 남아서 울던 꽃 울던 꽃

 

무슨 설움이 그리도 많을까? 마치 '30년 전'의 연작시 같다. 한 입이라도 덜어야 살 수 있기에 집을 떠나야만 했던 배고픈 누이의 모습이, 목에 가시처럼 박힌 소년의 애절한 노래다. 누이가 울면서 떠났던 길에 피어있던 봉선화, 소년은 봉선화를 보며 이 노래를 불렀을지도 모른다. '울 밑에서 선 봉선화야, 내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 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또 이 노래를 부르며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이 강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30년 전'의 애비가 속으로 울음을 삼켰다면, 소년은 꺼이꺼이 울며 누나를 소리쳐 불렀을지도 모른다.

 

그밖에도 색을 달리하는 여러 시들이 있지만, 나는 못 먹고 못 살던 때의 슬프고도 애절한 정서를 가진 서정춘의 시가 특별히 더 좋다. 요즘의 우리로서는 상상조차 힘든 상황들이 불과 반 세기 전, 이 땅에서 벌어진 일이었음을 그가 몸으로 증언하기 때문이요, 그런 슬픔들이 켜켜이 쌓인 터 위에 우리의 풍요가 들어섰음을 상기케 하기 때문이다. 언제고 한번 기회가 된다면 서정춘 시인을 모시고, 서 시인이 좋아하는 음식으로만 차려진 곳에서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 생존이라는 절체절명의 가치 앞에서 어떻게 시를 붙들고 지켜왔는지 그 얘기를 그의 입을 통해 듣고 싶기 때문이다. 어쩌면 시인은 이 얘기로 서두를 시작할지도 모르겠다.

 

"제 얼굴이 험상궂지요잉. 이게 다 그때 하도 고생을 해서 그렇당께."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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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 깜박이와 투덜 투덜이 중국 아동문학 100년 대표선 5
런룽룽 지음, 신영미 옮김 / 보림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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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몇 권 안되는 책을 읽고 한 나라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갖는 건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한 작가의 책만이 아니라 여러 작가의 책을 읽었는데도 비슷한 느낌이 난다면, 그건 공통적으로 흐르는 어떤 정서가 있음을 뜻하는 것일 터이다. 최근 중국 아동문학을 연이어 읽고 있다. 분명히 다른 작가가 쓴 글인데도 마치 한 작가가 쓴 글인가 싶을 정도로 비슷한 느낌이 든다. 땅덩어리가 넓어서 그런지, 그도 아니면 오랜 세월을 다양한 사람들과 부딪치며 살아서 그런지, 중국 작가들의 책엔 왠지 모를 느긋함이 느껴진다. 때로는 능청스러운 느낌마저 드는데, 그래서일까 읽는 사람도 덩달아 느긋해지고 여유마저 생기는 것 같다.  

 

이달에 만난 작가는 런룽룽이다. 1923년생이니 요즘 아이들에겐 할아버지나 증조할아버지 뻘쯤 되는 사람이다. 그러니 그의 이야기 속에 시간의 낙차가 느껴질 법도 하건만, 약력을 몰랐다면 이 시대의 작가가 썼다 해도 모를 정도로 신선하다. 런룽룽은 아이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면서도, 자신이 들려주려는 바를 흔들림 없이 7편의 동화에 담아 전한다. 아이들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스스로 유쾌하게 답을 찾을 수 있는데, 이는 작가가 동화 속에 자신의 의도를 잘 녹여냈기 때문이다. 엉뚱하고 제멋대로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잘못한 일이 있으면 즉각 반성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책을 읽는 부모들에게도 대리만족을 준다.

 

『깜빡 깜박이와 투덜 투덜이는 아이들이 친근하게 생각하게 하는 신선을 등장시켜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는 이야기다. 늘 뭔가를 놓고 다니는 깜빡이와 온종일 투덜대고 살면서도 자신이 고쳐야 될 점이 무엇인지 모르는 투덜이에게 어느날 신선이 나타난다. 신선은 두 아이를 미래로 데려가 훗날의 자신을 보게하면서, 자신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던 작은 습관이 얼마나 큰 일을 부르는지를 알게한다. 일일이 혼내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불찰로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진지하게 생각케하는 것은, 몇 번을 생각해도 지혜롭고 적절한 동화적 대응이라 생각된다.  

 

천재와 어릿광대는 탁월한 실력을 가진 서커스 선수가 자신의 재능만 믿고 운동도 안한채 먹기만 하다 수모를 당한다는 이야기다. 평소 그가 하찮게 여기던 어릿광대는 꾸준히 연습한 끝에 뚱보가 된 서커스 선수를 손가락 하나로 돌리게 되는데, 뻔하지 않은 결말인데다 비아냥이 아닌 가벼운 웃음을 일게 해 더 참신하게 와닿았다. 

 

『할머니의 이상한 귀는 버릇없이 구는 손자를 지혜롭게 다루는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요즘 어른들에게 예의없게 구는 것으로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아이들이 꽤 있는 것 같다. 이를 세태라 하며 손놓고 있는 부모가 있는데,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쉽게 할 말은 아니지만 세태가 내 아이를 책임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젊은 부모들에게 주는 전(前) 세대의 부드러운 조언이라는 생각이 드는 동화다.디얼의 주문사고뭉치 디얼은 디얼이라는 작은 요정이 등장하는 연작 동화다. 전편은 수학을 못한다고 여기는 아이가 스스로의 힘으로 풀 수 있도록 디얼이 격려하며 이끈다는 내용이고, 후편은 수사적인 표현을 아이들의 시각으로 쉽게 풀어주는 내용이다.

 

『네 몸 속에 있는 요정을 조심해!는 미운 세살 쯤 되는 아이의 이야기다. 착하고 예쁜 짓만 하던 아이가 어느날부터 떼를 쓰고 자기주장을 할 때 부모는 힘들다. 이럴때 조부모는 아이와 부모 사이를 부드럽게 이어주며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 이 이야기는 아이의 입장에서 자신을 제어하고 잘 넘길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구체적인 방법을 동화로 제시하는 매우 독특하고 특별한 동화다.  

 

『다다다와 샤오샤오의 모험은 걸리버 여행기에서 모티브를 따와 시작되는 이야기다. 거인국의 다다다와 소인국의 샤오샤오는 걸리버를 통해 자신들도 모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여행을 떠난다. 그러던 중 샤오샤오가 파도에 휩쓸려 다다다의 배에 떨어지면서 둘은 만나게 된다. 주의해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은 샤오샤오에게 다다다는 여러 차례 도움을 받으면서도, 늘 자신도 모르게 샤오샤오를 무시하게 된다. 마침내 샤오샤오의 도움으로 자신의 나라에 돌아가게 된 다다다는, 세상에 큰 것은 큰대로 작은 것은 작은대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7편의 동화 속에는 각기 다른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한결같이 전달되는 것은 아이들이 잘 자라길 바라는 작가 런룽룽의 마음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으며, 자신들에게 필요한 교훈을 찾을 수 있을까를 고심하며 지었을 작가의 마음이 오롯이 전해진다. 읽자마자 박장대소할 동화는 아니지만, 은근히 웃기고 은근히 세심하며 속속들이 교육적 신념으로 꽉 찬 동화였다. 책 표지 안에 '좋은 문학은 지역과 언어를 뛰어넘어 마음으로 이해된다'는 말이 적혀 있다. 이 책은 그 말이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동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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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 탐험 - 짐 큐리어스 바닷속으로 가다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82
마디아스 피카르 지음 / 보림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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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책의 진화가 놀라울 정도다. 홀로그램 인쇄라든가 팝업북 형태의 책을 비롯해 동화책의 경계를 넓히려는 노력은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3D 그림책의 등장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동화책이 가진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밋밋한 느낌의 단조로움이 있었는데, 이 부분이 보완되고 새 지평이 열리니 무척 반갑다. 평면에서 입체로의 진입을 통해 생생하니 현실감 있고, 또 한편으론 놀라운 판타지의 세계를 아이들이 맛볼 걸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들뜬다.

 

 

'해저 탐험'엔 3D 안경이 함께 딸려온다. 아무리 봐도 별 장치를 한 것 같지 않은데 이 안경만 끼면 사실감이 느껴지니 참 희한하다. 안경의 한 쪽엔 파란색, 다른 한 쪽엔 빨간색 셀로판지가 붙어있다. 단지 이런 안경을 끼는 것 뿐인데 말이다. 게다가 이 그림책엔 이야기도 없다. 주인공 짐 큐리어스가 잠수복을 입고 움직이면서 내는 소리외에는 어떤 말도 없다.

 

 

         

 

 

짐 큐리어스는 집에서 나와 뒤뚱거리며 바다로 들어간다. 바닷속엔 우리가 버린 쓰레기들이 쌓여있다. 누가 몰래 갔다 버렸는지 폐차도 있고 폐기물도 있다. 이를 뒤로 하고 짐은 계속 나아간다. 해초가 춤추고 물고기들이 유유자적 노니는 모습이 무척이나 편안하고 아름답다. 어딘가를 향해 쉬지않고 가다 짐은 뒤의 어마어마하게 큰 상어가 일으킨 소용돌이로 아래로 떨어지고 만다.

 

 

 

 

 

그곳엔 오랜 시간 있었음직한 전투기가 있고, 처음에 만났던 물고기들과 확연히 다른 물고기들이 느리게 헤엄치고 있다. 게다가 무척이나 어둡다. 짐은 그곳에서 해적선을 만나고 더 나아가고 나아가다 마침내 거대한 도시의 흔적을 만난다. 그곳에서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다 마침내 저 밑에 도달한다. 그곳에서 짐은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출구를 발견한다.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는 책이다. 배경지식이 없이 보아도 좋고, 배경지식이 있는 상태에서 본다면 더 많은 이야기거리를 아이들 스스로 찾을 것 같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결코 쉽거나 가볍지 않지만, 그를 찾기 위해 굳이 애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3D 안경을 쓰고 마음껏 상상의 세계에서 노닐기만 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으니 말이다. 좋은 책은 한 번 볼 때와 두 번 볼 때가 다르고, 많은 것을 함의하면서도 단서만 줄 뿐 결코 앞서서 답을 제시해주지 않는 것 같다. 안경을 쓰고 엄마와 아이가 함께 보면서 서로의 느낌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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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 자메이 중국 아동문학 100년 대표선 4
친원쥔 지음, 전수정 옮김, 정가애 그림 / 보림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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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곳에서 10 년 가까이 살다보니 이웃집 아이들의 커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조그맣던 아이가 어느새 커서 초등학생이 되고 중학생이 되는 모습까지 보면서, 기특하기도 하고 세월이 빠르다는 사실도 실감하게 된다. 그런데 희안한 건 어릴 때 그렇게 인사성 바르고 잘 웃던 아이들이 중학생만 되면, 표정이 어두워져 있고 뭔가 불만에 차있는 얼굴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춘기라 그렇겠지 생각하지만 확연히 달라진 아이들을 보면서, 뭐가 그리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결코 남의 얘기일수만은 없기에 가는 관심일지도 모르겠다.

 

한때 북한이 쳐들어오지 못하는 이유가 우리의 중학생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떠돈 적이 있다. 위태위태하게 심리적 이유기를 지나는 중학생들의 폭발적 에너지를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자신의 내적 고민과 여러 변화를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는 아이들이 반항과 침묵으로 표출하기에 그 시기의 집안에서는 심한 내홍을 겪는다. 오로지 무사히 지나기만을 바라는 엄마들도, 또 그렇게밖에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안됐다. 아이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사는지, 그들의 세계는 어떤지 알기 원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는 엄마들의 모습은 때로 측은하기까지 하다.

 

그럴 때 엄마들에게 쉽게 찾아오는 유혹이 아이 몰래 일기장을 읽거나 책상을 뒤지는 일이다. 아무리 답답해도 하지 말아야 하는데 급한 마음에 이런 실수를 하는 엄마들이 더러 있다. 혹여라도 아이가 알게 되면 신뢰에 금이 가는 건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아이의 마음을 더 닫게 하는 행동이리라. 그럴 때 차라리 또래 아이들의 심리를 나타내는 책을 읽는 것이 훨씬 더 건강한 방법이지 싶다. 엄마가 읽고 아이에게 전해주거나, 아이가 읽는 걸 엄마도 뒤따라 읽으면 이를 매개로 대화도 나눌 수 있으니 말이다.

 

'여학생 자메이'는 중국의 아동소설이다. 중국인 특유의 느긋함과 아이들의 엉뚱함이 배어있어서인지 꽤 재미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책 제목 그대로 중학교 1학년 짜리 여학생 자메이다. 자메이에겐 자리라는 쌍둥이 오빠가 있고, 글을 쓰는 아빠와 연극배우인 엄마가 있다. 같은 쌍둥이라도 자리와 자메이는 많이 다르다. 촐랑대며 잘난 척하는 자리와 달리 자메이는 자신이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한다. 얼굴도 예쁘고 학교예술단의 간판급 배우이기도 하지만 자메이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한번도 없다.

 

근 자메이는 쭤거라라는 가수에게 홀딱 빠져있다. 친구인 린샤오메이와 같이 쭤거라의 콘서트에 가기위해 자메이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런데 친구들이 와 잔뜩 먹고 간 통에 돈도 얼마 받지 못했다. 콘서트는 가야겠고 마땅한 방법이 없자 자메이는 아빠에게 애원하고, 아빠의 통큰 배려로 콘서트를 가게된다. 그토록 기대했건만 콘서트는 자메이에게 씁쓸함만을 남겨주었고, 이를 통해 자메이는 마음이 한뼘 자라게 된다.

 

학교에서 자메이는 나름 스타지만, 잘난 체 하거나 으스대지 않는다. 예쁘장한 아이가 예쁜 척 하지 않으니 얼마나 보기 좋을까? 린샤오메이와 같이 다닐 때 아이들의 눈이 둘만 따라다니는데도 순진한 자메이는 그런 것 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때로 친구에게 이유없이 화풀이 대상이 되기도 하고, 감정이 왔다갔다하는 선배언니에게 휘둘려 흔들리기도 하지만 자메이는 언제나 긍정적이다. 그런 자메이를 보고 있자니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모르겠다.

 

괴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운다는 캔디형도, 자뻑 공주 타입도 아니지만 자메이는 있는 모습 그대로 주어진 하루를 열심히 살아간다. 그래서 자메이가 있는 곳에는 황당한 일은 벌어져도 나쁜 일은 생기지 않는다. 그런 자메이를 보고 있자니 우리 아이들이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잠시도 쉴틈 없이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마음 편히 쉬지도 못하는 아이들에게, 이 책이 휴식이 됐으면 좋겠다. 이 책을 통해 엄마와 중학생 자녀들이 조금이라도 더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말할 나위 없겠고.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욕심을 내자면 현실에서도 자메이 같이 넉넉한 마음을 가진 친구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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