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문세설 - 모국어는 내 감옥이다
고종석 지음 / 열림원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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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를 읽다가 가끔씩 고종석 기자의 글을 읽으면서, '글 참, 참신하게 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시사IN에서 까칠거칠의 고정에세이스트인 김현진씨가 고종석기자에 대해 찬양(?)하는 글을 읽고는 이 언문세설을 읽었다. 'ㄱ'부터 시작해서 'ㅣ"까지 저자의 우리말 사랑은 끝이 없다. 저자의 전공은 불문학이라지만 이 기자양반은 어찌 그리 우리말을 잘 쓰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좀 과격한 남영신선생, 이오덕 선생과 같은 반열에 둘만한 분이다, 고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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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미래 - 총.달러 그 이후... 제국은 무엇으로 세계를 지배하는가?
에이미 추아 지음, 이순희 옮김 / 비아북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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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메네스 왕국에서 미합중국에 이르기까지 초강대국의 비밀은 관용에 있었다는 걸 말하는 책.

1. 잘 쓴 책이다.

2.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은 한 가지, 초강대국이 되려면 "관용하라" 저자도 계속 반복하듯이 전략적인 관용일지라도 관용하라......

3. 법학자답게 케이스 스터디가 역시 돋보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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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세계 - 세계화는 어떻게 전세계의 민족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는가?
에이미 추아 지음, 윤미연 옮김 / 부광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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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 추아의 책은 모범적인 케이스 스터디를 보는 것 같다. 이 <불타는 세계>라는 책 역시 그 다음 저서인 <제국의 미래>와 유사하게 전세계에 걸쳐 각 나라들의 케이스 스터디를 통해 결론을 유도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동시에 수출할 때 준비 되지 않은 국가에서 어떤 불상사를 초래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특히, 인도네시아의 중국인이나 러시아의 유대인, 시에라리온의 레바논인들과 같은 소수집단이 경제권을 쥐는 것과 동시에 경제적 혜택을 받지 못한 다수집단에게 민주적 권한이 주어질 때 세 가지 방식으로 반동(backlash)이 일어난다고 보고 있다. 그 저자의 주장하는 바에는 공감이 많이 간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반미의 한 관점으로, 전세계에 대해 미국의 모습이 경제력을 쥔 소수집단으로 비추어 지는 데 있다고 본다.

 

<제국의 미래>와 마찬가지로 이 책의 장점은 접근 방법이 귀납적이다. 하지만 그 접근 방법이 이 책의 단점으로 부각될 수도 있다. 저자와 같은 귀납적인 접근의 한계는 저자의 테제를 증명하기 위해 든 케이스가 과연 충분한가라는 것이다. 미국과 세계 사이에 놓여있는 저 깊은 강의 이유가 단순히 경제적인 논리로만 환원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또 한 가지, 이 책의 근간인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이식의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반동을 제어하기 위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그 점에 대해 그리 명확한 결론이 없다. <제국의 미래>에서도 느꼈던 점인데, 에이미 추아 교수의 글은 뒷심이 조금 부족하다.

 

어쨌든 에이미 추아교수의 책은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고 그 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점을 일깨워 준다. 특히 인도네시아에서 돌아와 바로 본 책이라 그랬겠지만 내게 새로운 관점을 보여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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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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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 박사의 글은 몇 년 전엔가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를 읽으면서 처음 대한 적이 있다.  연암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를 자신의 관점에서 재해석해서 쓴 글이었는데 들뢰즈나 가타리의 철학과 연계해서 열하일기를 쓴 연암선생을 조선 후기의 노마드로 규정하며 재기발랄하게 써내려간 글이 참신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물리학이나 수학에 나오는 전문적인 내용을 단순히 메타포로만 사용하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그 현학적인 탈근대 내지는 탈현대 철학을 좋아하기 힘든 내 입장에서는 고미숙 박사의 글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번에 읽은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에서도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시공간>이라는 책에서처럼 저자는 이야기를 재기발랄하게, 하지만 강한 자기 주장을 섞어 인간에게 왜 공부가 중요한지 잘 설명하고 있다.  매 장을 넘어가면서 들뢰즈의 철학 냄새가 좀 풍긴다는 것을 느끼긴 했지만 그 전에 쓴 책과 비교하여 느낌이 많이 달랐다.  자기 주장이 강하게 실려있는 책이지만 그 느낌이 싫지 않았다.  특히, 이 땅에 펼쳐져 있는 그 야만적인 교육 현실을 날카롭게 바라보는 그 시선, 제도권 교육의 한계가 무엇인지 이반 일리치의 글을 빌어 비판하는 부분, 대안학교조차도 그 제도권 학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 한다는 지적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자본주의 체계 안에서 그 자본주의 체계를 더욱 더 공고하게 해주는 현재의 교육 시스템에 대하여 강펀치를 날린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저자의 의도가 조금 지나칠 정도로 강하게 나타나는데 그 글의 느낌으로도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호모 쿵푸스 (Homo Kungfus)라는 말이 마치 라틴어처럼 들리긴 하지만 뒤에 붙어 있는 말은 중국 무술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한 공부를 뜻한다.  이 쿵푸스라는 말의 어감에 맞게 저자는 1부, 2부, 3부를 각각 1초식, 2초식, 3초식으로 부르며 저자의 생각을 전개해 나간다.  제 1 초식에서는 현 교육 제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이 비판의 내용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제2초식에서는 호모 쿵푸스와 호모 부커스 (Bookus)를 동일화시킨다.  2 초식에서의 저자의 주장은 공부를 제대로 하라는 말인데, 그 제대로 하라는 말은 결국 고전에 집중하라는 말과 상통한다.  2초식에서 저자는 공부에 있어서 스승의 중요성과 '앎의 코뮌', 즉 학문적 공동체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제도권 밖에 있는 학자 답게 2초식에서도 제도권 안에 머물며 인문학의 위기를 노래하는 학자들에 대해서도 잽을 날린다,  '인문학의 위기를 부르는 그대들이 먼저 능동적으로 공부하라'고.  이 2초식에서는 공부 진행 과정을 암송, 구술 -> 독서 -> 글쓰기로 정리하고 있다.  3초식에서는 인디언 권법 쯤 되려나?  저자의 고전 예찬은 3초식에서도 계속된다.  독서를 통하여 우주적 존재가 되고 이런 독서를 통하여 몸과 마음을 문명의 거처로 만들 수 있다.  3초식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이다.  Amor fati.  저자는 독서와 배움의 힘을 종교적인 차원으로 확장해 간다.  3초식에서 인디언이 자연에 동화되어 살 듯, 공부에 동화되어 살면 변혁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저자는 주장한다.    

오늘날 교육이 자본주의 체계를 더욱 더 강화하는 쪽으로 변질되어 있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그리고 그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가 단 기간 안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알 것이다.  1초식에서 언급한 문제들은 특히 오늘날 이 땅에서 벌어지는 교육 문제와 맞닿아 있다.  그러나 제도권 밖에서의 앎의 코뮌이 대단히 중요하지만 이 제도권 안의 교육 문제를 변화시키는 것 또한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  변혁은 한 사람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제도권 안의 교육을 한 데 뭉퉁거려 비판할 수 있지만 그 속에서 투쟁하는 사람들 또한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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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호모 쿵푸스 실사판] 공부는 셀프!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3-30 17:03 
    ─ 공부의 달인 고미숙에게 다른 십대 김해완이 배운 것 공부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 몸으로 하는 공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적절한 계기(혹은 압력?)를 주시곤 한다.공부가 취미이자 특기이고(말이 되나 싶죠잉?), ‘달인’을 호로 쓰시는(공부의 달인, 사랑과 연애의 달인♡, 돈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부해서 남 주자”고.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근대적 지식은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만을 앎의 영역으로 국한함으로써 가장 ...
 
 
 
현대인의 소외
프리츠 파펜하임 지음 / 문예출판사 / 197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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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태생의 미국 사회학자, 프릿츠 파펜하임이 쓴 <현대인의 소외>라는 책은 꽤 오래 전에 읽었는데 번역 탓인지, 아니면 그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고 읽은 뒤 어느 구석에 쳐 박아 두었다고 최근 다시 꺼내서 꼼꼼하게 읽었다.  역시 이해하는 데 힘들었던 주 이유는 번역 탓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우리말로 번역할 때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오덕 선생이나 남영신 선생 같은 분들의 충고를 귀 담아 들으면서 번역을 했으면 한다.  전문 번역가가 아니라 교수들이 번역한 경우, 난독 가능성이 더 높은 걸 보면 특히나 더 그렇다.  물론 교수들이 번역한 경우, 그 전문성을 놓치지 않고 번역서에 잘 담아 놓겠지만 말이다.  

이 프릿츠 파펜하임이 쓴 <현대인의 소외 (The alienation of modern man)>은 현대 사회에서 한 인간이 소외되고 그 소외를 느끼는 원인을 마르크스와 독일 사회학자 퇴니스의 관점에서 자세히 분석해 놓은 책이다.  이 책은 현대 사회에서 소외의 원인을 먼저 분석한 뒤, 그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를 다루고 있다 .  비록 이 책이 1958년에 쓰여졌고 그 분석틀로 19세기 중반에 쓰여진 마르크스의 초기 저서 <경제학 철학 초고>와 퇴니스가 1881년에  <사회학의 근본적 개념: 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의 내용이 20세기말, 동구권이 몰락하고 난 지금의 "현대사회"에 적용될 것인가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의 내용은 현 자본주의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여전히 통찰력있는 관점을 제공해 준다.  특히 저자가 이 책을 쓴 뒤 예일대에서 발표한 <미국사회에서의 소외 (1964)>라는 글과 함께 읽으면 저자의 관점을 좀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특히, <미국사회에서의 소외>라는 글에서는 저자의 생각을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소외에 대한 해답으로 사회주의라고 주장하는 것도 책과는 달리 더욱 더 적극적이다.  

서론에서 파펜하임은 고야의 <카프리초스>의 하나인 <이빨사냥>이라는 동판화에 나오는 한 여인과, 사진 콘테스트에서 입상한 한 사진 작가가 찍은 교통 사고 현장에서 죽기 일보 직전에 있는 고통에 찬 희생자의 사진을 예로 들며 소외에 대해 설명한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려고 하는 바는 이익 추구를 극대화하는 인간과 진정한 한 인간 사이의 간극이다.  그 사진을 찍은 사진 작가는 한 인간으로서 사진을 찍기보다는 먼저 그 사람을 구했어야 하지만 그 사진작가에 더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이 좋은 사진을 찍기에 최고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한 개인이 자기자신으로부터의 소외가 되는 것을 경험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서론에서 저자는 현대인의 소외를 다루는 데 마르크스의 <경제학-철학 초고>와 퇴니스의 <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를 바탕으로 두고 이론적인 분석을 해 갈 것이라고 말한다.  

1장에서는 소외의 자각을 다루는데 그 소외가 무엇인가 정의하기 위하여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 (Georg Simmel)과 훗설의 현상학, 샤르트르와 하이데거 같은 실존철학자들의 이론을 바탕으로 설명한다.    
2,3장에서 파펜하임은 현대인의 소외가 기술 과학이나 정치와 같은 현대인의 외부 조건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 뒤, 저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내용이 담긴 4장에서 현대인의 소외는 사회 구조, 즉 철저하게 게젤샤프트의 성격을 띤 자본주의 때문에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상품의 사용가치 또는 고유가치 (intrinsic value)에는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고 오직 교환가치에만 두는 자본주의 체계에서 모든 관계는 내게 이익이 되는가에만 놓이게 된다.  이 경우, 우정과 같은 단어는 개입할 여지가 없다.  이러한 소외 극복으로 그 소외된 사회에서 교회나 클럽 같은 게마인샤프트에 소속되는 것은 사회구조 속에서 근본적인 치유책은 되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에서는 강력한 어투를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1964년에 쓴 글에서는 현대인의 소외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회주의를 든다.  이 책이 쓰여진 시점의 미국사회와 오늘날 이땅의 현실과 비교해보면 자본주의 때문에 생겨나는 그 피폐한 부분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저자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사회주의가 이 소외를 극복하는 데 만병통치약이 될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이 땅의 교육 문제, 무한경쟁으로 몰리는 사회의 모습, 곧 시행될 한미 FTA 속에서 한 인간이 더 이상 한 인격체가 아니라 사용가치가 없어지면 버려질 (expendable) 하나의 부속품 취급을 받는다는 점에서 이 땅에서도 인간 소외의 그림자는 어둡게 드리워져 있다.  사회주의로 전환은 불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서로에 대한 연민과 유대,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연대감을 높여 한 인간이 느끼는 소외를 조금이라도 극복하려면 사회주의적인 요소가 반드시 있어야만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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