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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ㅣ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고미숙 박사의 글은 몇 년 전엔가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를 읽으면서 처음 대한 적이 있다. 연암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를 자신의 관점에서 재해석해서 쓴 글이었는데 들뢰즈나 가타리의 철학과 연계해서 열하일기를 쓴 연암선생을 조선 후기의 노마드로 규정하며 재기발랄하게 써내려간 글이 참신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물리학이나 수학에 나오는 전문적인 내용을 단순히 메타포로만 사용하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그 현학적인 탈근대 내지는 탈현대 철학을 좋아하기 힘든 내 입장에서는 고미숙 박사의 글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번에 읽은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에서도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시공간>이라는 책에서처럼 저자는 이야기를 재기발랄하게, 하지만 강한 자기 주장을 섞어 인간에게 왜 공부가 중요한지 잘 설명하고 있다. 매 장을 넘어가면서 들뢰즈의 철학 냄새가 좀 풍긴다는 것을 느끼긴 했지만 그 전에 쓴 책과 비교하여 느낌이 많이 달랐다. 자기 주장이 강하게 실려있는 책이지만 그 느낌이 싫지 않았다. 특히, 이 땅에 펼쳐져 있는 그 야만적인 교육 현실을 날카롭게 바라보는 그 시선, 제도권 교육의 한계가 무엇인지 이반 일리치의 글을 빌어 비판하는 부분, 대안학교조차도 그 제도권 학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 한다는 지적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자본주의 체계 안에서 그 자본주의 체계를 더욱 더 공고하게 해주는 현재의 교육 시스템에 대하여 강펀치를 날린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저자의 의도가 조금 지나칠 정도로 강하게 나타나는데 그 글의 느낌으로도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호모 쿵푸스 (Homo Kungfus)라는 말이 마치 라틴어처럼 들리긴 하지만 뒤에 붙어 있는 말은 중국 무술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한 공부를 뜻한다. 이 쿵푸스라는 말의 어감에 맞게 저자는 1부, 2부, 3부를 각각 1초식, 2초식, 3초식으로 부르며 저자의 생각을 전개해 나간다. 제 1 초식에서는 현 교육 제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이 비판의 내용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제2초식에서는 호모 쿵푸스와 호모 부커스 (Bookus)를 동일화시킨다. 2 초식에서의 저자의 주장은 공부를 제대로 하라는 말인데, 그 제대로 하라는 말은 결국 고전에 집중하라는 말과 상통한다. 2초식에서 저자는 공부에 있어서 스승의 중요성과 '앎의 코뮌', 즉 학문적 공동체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제도권 밖에 있는 학자 답게 2초식에서도 제도권 안에 머물며 인문학의 위기를 노래하는 학자들에 대해서도 잽을 날린다, '인문학의 위기를 부르는 그대들이 먼저 능동적으로 공부하라'고. 이 2초식에서는 공부 진행 과정을 암송, 구술 -> 독서 -> 글쓰기로 정리하고 있다. 3초식에서는 인디언 권법 쯤 되려나? 저자의 고전 예찬은 3초식에서도 계속된다. 독서를 통하여 우주적 존재가 되고 이런 독서를 통하여 몸과 마음을 문명의 거처로 만들 수 있다. 3초식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이다. Amor fati. 저자는 독서와 배움의 힘을 종교적인 차원으로 확장해 간다. 3초식에서 인디언이 자연에 동화되어 살 듯, 공부에 동화되어 살면 변혁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저자는 주장한다.
오늘날 교육이 자본주의 체계를 더욱 더 강화하는 쪽으로 변질되어 있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그리고 그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가 단 기간 안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알 것이다. 1초식에서 언급한 문제들은 특히 오늘날 이 땅에서 벌어지는 교육 문제와 맞닿아 있다. 그러나 제도권 밖에서의 앎의 코뮌이 대단히 중요하지만 이 제도권 안의 교육 문제를 변화시키는 것 또한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 변혁은 한 사람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제도권 안의 교육을 한 데 뭉퉁거려 비판할 수 있지만 그 속에서 투쟁하는 사람들 또한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