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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는 내내 살인자의 일기장을 훔쳐 보는 느낌이었다. 70세 노인 김병수는 자칭 은퇴한 연쇄 살인범이다. 그는 알츠하이머로 진단을 받자 사라져 가는 기억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처음엔 그 자신에 관한 기록이었던 것이 점차 25년만에 계획하는 새로운 살인에 대한 기록으로 변해 간다. 상대는 자신의 딸 은희를 노리는 또 다른 연쇄 살인범이다.
그러나 우리는 마지막 20여 페이지를 읽는동안 혼란에 빠진다. 지금까지 기록된 김병수의 기억과 전혀 다른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체포된다. 경찰서에서 취조를 받는동안 25년전에 행했던 모든 살인의 기억은 정확히 소환해 내면서도 마지막 살인 행각만은 기억해내지 못한다. 심지어 마지막 살인의 희생자는 그가 지키고자 했던 딸 은희다.
어디선가 우리는 우리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렸을땐 그게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말도 안돼. 어떻게 기억이란게 내 맘대로 골라진단 말이야.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나니 그렇지 않더란 말이다. 똑같은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혹은 그녀와 내가 기억하는 것이 다르다. 어쩔땐 정반대의 말을 한다. 처음엔 내가 맞다고 우겼다. 세상에... 당신 건망증이 너무 심하거 아냐. 그러나 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혹시 잘못된 기억의 주인공은 당신이 아니라 내가 아닐까. 그리고 이건 지나간 세월때문만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젊은 시절엔 그럴 수도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언제나 자신 있었으니까.
그래도 다행이야, 기억도 못하는 살인사건의 주인공이 된적은 없으니까 라고 생각하지는 말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접적인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의 불완전한 기억의 희생자가 되었겠는가. 비단 나라는 사람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 그러니까 우리는 완전하지 않은 기억을 철썩같이 믿으면서 철저하게 이기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