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가출 중
미츠바 쇼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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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가출했다. 집에는 범상치 않은 가족 다섯이 남았다. 치매기가 있는 할아버지는 자꾸만 밥을 달라고 한다. 아빠가 가출한 후로 엄마는 하루종일 술만 마신다. 의붓 엄마가 불편한 큰 아들은 독립해 살다 가장 노릇을 하기 위해 집으로 들어 왔지만 사실은 실직 상태다. 여고생 딸은 밤낮으로 술만 마시는 엄마도 싫고 이제와서 아빠 흉내내느라 잔소리를 해대는 오빠도 싫어 밤늦게까지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리고 사춘기 절정인 막내 아들은 엄마와 담임 선생님 앞에서 고등학교 진학 포기 선언을 해버린다.

맙소사, 콩가루 집안이다. 실종된 아빠는 안중에 없고 갑작스럽게 닥친 이 혼란이 성가셔 어쩔 줄 몰라 한다. 너도 나도 현실을 외면하고 도피할 방법만 모색 한다. 도대체 이걸 가족이라고 말해도 되는건가. 너무 제멋대로다.

책은 다섯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남은 가족 다섯명이 각자의 관점에서 독백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중간 중간 다른 가족의 상황이 자연스럽게 전해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딸아이의 귀가 시간이 제자리로 돌아 왔다던가 막내 아들이 다시 육상부 훈련에 나가기 시작 했다던가. 화자는 달라지지만 시간의 흐름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살짝 아귀가 맞지 않는 가족이다. 나사 하나가 빠져 항상 삐그덕 거리는 톱니바퀴처럼 말이다. 그 원인은 어쩌면 할아버지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비롯된 건지도 모른다. 친부모에게 버림 받고 양아들로 들어 갔다가 양부모에게도 버림 받은 할아버지.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는 그에게 가족의 의미를 배울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그런 그가 결혼을 하고 어린시절의 그의 처지와 같은 양아들을 얻는다. 그 양아들은 두번째 부인에게서 다시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양딸을 얻는다. 생물학적 미완의 가계가 대물림 되는 것이다. 그러는 중에 그들은 건강한 가족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 그들이 정서적으로 뿔뿔이 흩어진 직접적인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빠의 부재는 그들에게 불완전한 관계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혈연적인 관계로 맺어진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그들은 한 가족이며 하나의 가족 공동체라는 것을 스스로 의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빠의 가출이 결과적으로 가족의 화합을 이끌어 낸 것이랄까.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 문제가 남는다. 과연 가출한 아빠는 다시 집으로 돌아올 것인가. 아쉽게도 책에 직접적으로 언급된 단서는 없다. 그럼 독자의 입장에서 아빠의 귀가를 예측해 보자. 난 아무래도 돌아온다는 쪽이다. 아빠가 가출한 후로 갑자기 사라져 버린 고양이 '부장'이 돌아오지 않았는가. 그를 데려온 것도 아빠이고 그에게 이름을 붙여준 것도 아빠니 '부장'의 귀환은 결국 아빠의 귀환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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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다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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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절반이 잠든 밤,
인생의 절반을 보내는 밤,
그 어둠의 시간동안 벌어지는 도시인의 이야기와 긴 시간동안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에리의 의식을 담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엔 늘 고독함이 떠 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제각기의 외로움을 지니고 있다. 때로는 익숙하게 때로는 미처 익숙해지지 못한 모습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사는 세상은 살짝 엇나가 있다. 어딘지 모르게 비정한 혹은 냉정한 냄새가 난다.

이번엔 밤이 찾아와도 잠들지 못하는 인간들의 이야기다. 유일하게 잠든 것은 에리이나 그것은 정상적인 범주의 잠이 아니라 그녀의 일상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비정상적인 잠이다. 그래서 그녀는 의식적으로 깨어나지 않는다. 그렇다고해서 그녀가 삶의 끈 자체를 놓아 버린 것은 아니다. 어쩌면 더 단단하게 부여 잡기 위해 잠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전원이 연결되지 않은 텔레비전을 통해 삶을 의식하는데 굳이 전원이 연결되지 않은 것임을 강조하는 것은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보여지는 것이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그녀의 무의식을 투영한 것임을 설명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에리의 모습은 어느때는 텔레비전 바깥에 있기도 하고 어느때는 텔레비전 안에 있기도 하다.

어려서부터 언니인 에리와 비교대상이었던 마리 또한 고독한 존재다. 그녀는 언니의 그림자조차 되지 못한다. 너무 예뻐서 누구에게나 주목받는 에리 덕분에 그녀의 존재는 늘 유리처럼 투명하다. 그녀는 그녀 자체로 의식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끈질기게 자신의 존재감을 포기하지 않는다. 마리가 악착같이 공부했던 이유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그녀의 존재는 이미 그녀 자신에게서 조차 분리되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이미 언니 에리와 분리된 것처럼 말이다.

마리는 러브호텔 종업원인 고오로기를 통해 언니 에리와 자신의 관계를 환기하는 계기를 얻는다.

"인간이란 결국 기억을 연료로 해서 살아가는게 아닌가 싶어. 그 기억이 현실적으로 중요한가 아닌가 하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아무런 상관이 없지. 단지 연료일 뿐이야...중요한 기억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기억도, 전혀 쓸모 없는 기억도, 구별할 수도 차별할 수도 없는 그저 연료일 뿐이지."

마리가 언니 에리와 가장 밀접한 유대감을 갖게 되었던 순간이 그녀의 잊혀진 기억 속에서 소환된다.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너무 오랫동안 가려져 왔던 그 날의 기억. 마리는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새벽녁, 에리의 방에 들어가 그녀의 곁에 눕는다. 그리고 그녀를 안는다. 끝내 걷힐 것 같지 않은 어둠도 아침이 되면 서서히 사라지는 것처럼 언니 에리와의 먹먹한 관계도 서서히 개선되길 바라는 희망의 끝을 놓지 않았음을 상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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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일의 레시피 키친앤소울 시리즈 Kitchen & Soul series 1
이부키 유키 지음, 김윤수 옮김 / 예담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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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일본식 음식 드라마나 영화에 푹 빠져 지낸적이 있다.
감각적인 화면도 좋고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이는 맛깔난 음식도 좋고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들도 좋고 차분하게 진행되는 갈등 해소도 좋다. 그러니까 나의 모든 감각기관에 더해 정신적인 즐거움까지 얹어 주는 느낌이랄까. 하루만에 읽어버린 이 책, <49일의 레시피>도 그와 같은 연장선 상에 있는 소설이다. 조금 다른 것이라면 앞서 이야기한 드라마나 영화가 음식이 주된 소재가 된다면 이 책에 나오는 음식은 가벼운 소재 뿐 이라는 것 정도.

갑작스런 오토미의 죽음으로 아쓰타는 삻을 포기한 것 처럼 보인다. 씻지도 않고 집안에 갇혀 지내는 그는 집으로 배달되는 우유로 하루 하루 연명한다. 그리고 그의 딸 유리코. 그녀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얼마 되지않아 남편과의 이혼을 결심하고 친정으로 돌아온다. 그것은 남편의 내연녀에게 아이가 생겼기 때문이다. 막바지에 몰린 아버지와 딸이 시골집에서 조우한다. 그들에게는 지금 희망도 열정도 없다. 그런 그들에게 생전 본 적도 없는 노란 머리의 이모토가 나타난다. 이모토는 오토미가 자원봉사하던 리본하우스의 원생이었고 생전의 오토미의 부탁으로 아쓰타의 살림을 돌봐주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이모토는 오토미가 유언처럼 남긴 말을 아쓰타와 유리코에게 전한다. 그녀는 자신의 49재가 시끌벅적하고 즐거운 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이 말도 안되는 유언(아마 일본에서는 이것이 상식적인 일은 아닌가 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을 따르기 위해 그들은 함께 집을 단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을 돕기 위해 이모토의 소개로 혼혈아인 하루미가 등장하고 그들은 49일동안 함께한다.

그 뒤로 벌어지는 일들은 우리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이다. 아쓰타가 오토미와의 추억을 되살리며 생전에 그녀가 그를 위해 해 주었던 것들의 소중함을 깨달고 여생을 혼자서 살아가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해 가는 과정, 그리고 남편에 대한 오해를 풀어 나가고 그와의 관계를 회복함과 동시에 유리코 자신이 한 인격체로 홀로서는 과정. 그 과정 속에서 안내서와 같은 역할을 해 준 것은 오토미가 생전에 그들을 위해 만들어 둔 생활 레시피 카드다. 그 카드엔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기록되어 있고 49재를 준비하는 동안 아쓰타는 그 카드를 통해 혼자서 생활하는 법을 터득한다. 그리고 유리코는 그 카드를 통해 오토미가 그녀를 사랑하는 방식을 이해한다. 마침내 클라이맥스와도 같은 49재 날의 연회는 오토미와 관련된 모든 이들의 축제가 되며 그 축제의 정점은 오토미와 관련된 모든 이들, 특히 남편인 아쓰타와 의붓딸인 유리코와의 화합이 된다.

결말로 향하는 이야기 전개에서 이 책만의 기발한 아이디어는 없다. 그러나 오토미의 레시피와 유언이 가족들의 마음을 움직여가는 과정은 따뜻하고 뭉클하다. 눈물까지는 아니더라도 뜨거운 덩어리같은 것이 가슴 속에 차 오르는 느낌이랄까. 평범한 인간은 결국 평범한 것으로부터 감동 받기 마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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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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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살인자의 일기장을 훔쳐 보는 느낌이었다. 70세 노인 김병수는 자칭 은퇴한 연쇄 살인범이다. 그는 알츠하이머로 진단을 받자 사라져 가는 기억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처음엔 그 자신에 관한 기록이었던 것이 점차 25년만에 계획하는 새로운 살인에 대한 기록으로 변해 간다. 상대는 자신의 딸 은희를 노리는 또 다른 연쇄 살인범이다.


그러나 우리는 마지막 20여 페이지를 읽는동안 혼란에 빠진다. 지금까지 기록된 김병수의 기억과 전혀 다른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체포된다. 경찰서에서 취조를 받는동안 25년전에 행했던 모든 살인의 기억은 정확히 소환해 내면서도 마지막 살인 행각만은 기억해내지 못한다. 심지어 마지막 살인의 희생자는 그가 지키고자 했던 딸 은희다.


어디선가 우리는 우리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렸을땐 그게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말도 안돼. 어떻게 기억이란게 내 맘대로 골라진단 말이야.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나니 그렇지 않더란 말이다. 똑같은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혹은 그녀와 내가 기억하는 것이 다르다. 어쩔땐 정반대의 말을 한다. 처음엔 내가 맞다고 우겼다. 세상에... 당신 건망증이 너무 심하거 아냐. 그러나 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혹시 잘못된 기억의 주인공은 당신이 아니라 내가 아닐까. 그리고 이건 지나간 세월때문만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젊은 시절엔 그럴 수도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언제나 자신 있었으니까.


그래도 다행이야, 기억도 못하는 살인사건의 주인공이 된적은 없으니까 라고 생각하지는 말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접적인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의 불완전한 기억의 희생자가 되었겠는가. 비단 나라는 사람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 그러니까 우리는 완전하지 않은 기억을 철썩같이 믿으면서 철저하게 이기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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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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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에 잠이 깼다. 그대로 침대에 누워 몇번을 뒤척이다 아무래도 다시 잠이 들 것 같지 않아 거실로 나왔다. 테이블 위에만 불을 켜고 책을 집어 들었지만 창 밖의 칠흑같은 어둠이 의식되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때마침 바람소리와 빗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일순간 소설의 배경인 세령호의 새벽녘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는 버티지 못하고 침대로 돌아가 이불을 머리 위까지 끌어 올렸다.

이 소설에서 가장 위대한 부분은 등장 인물들에 대한 탁월한 심리묘사다. 그들의 심리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사건 속에 실존하는 인물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렇다고해서 내가 그 인물이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 사건과는 상관없지만 동일시점에서 관찰하는 관찰자가 된 느낌이랄까. 그러니까 치밀한 묘사와 더불어 냉철한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사실 정보에 관한 설명은 또 어떠한가. 예로 승환과 서원이 잠수를 하는 장면은 마치 전문가가 쓴 것처럼 자세하다. 철저한 사전조사가 뒷받침 되었다는 뜻이다. 작가가 글을 쓰는 방식이 얼마나 철두철미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같은 사실과 증거는 독자로 하여금 의문이나 의심없이 글에 몰두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다.

7년동안 계속된 오영제의 집착은 사이코패스의 광기라는 단어를 제외하고는 설명할 수 없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그런 그가 사회적 강자라는 것이다. 그의 올가미에 갇혀 버린 현수, 승환, 서원은 과연 그곳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52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양 중에서 오른손에 남은 페이지수가 불과 십 여 장 뿐인데도 결말을 예측할 수 가 없다. 안타깝게도 이 시점에서는 패색이 짙어 보인다. 결국 돈과 명예를 움켜진 자들에게 이 사회의 시스템은 비겁한 손을 들어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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