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하는 삶 - 개정판
이창래 지음, 정영목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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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하는 삶』 이창래 / 알에이치코리아

'세계와 자아의 균형을 맞춘다'는 변명의 삶

 

 

  실제의 자아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교묘하게 자신을 포장하는 삶을 살고 있다. '척뿐인 삶'이라고 하면 너무 갔지만, '척하는 삶'이라는 말의 위화감이 거의 들지 않는 걸 보면, 지금도 우리는 이런 삶과 너무도 당연하게 연결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척'을 하며 사는 까닭, 그 이유는 꽤 다양하겠다. 물질을 위해서, 성공을 위해서, 사랑을 위해서. 그리고 그 밖의 다양한 이유를 나 자신이 아닌 밖에서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유를 밖으로 돌리는 것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놀랍도록 대단한 소설, 이창래 작가의 『척하는 삶』은 아마도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는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보이고 있다. 미국의 작은 마을에서 의료기기 가게를 운영하면서, 닥 하타라고 불리며 존경과 신뢰를 바탕으로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 그는 너무나 편안하게 모든 사람의 인정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입양한 딸, '서니'는 그를 겉돌고 있다. 온갖 필요와 사랑을 모두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왜 딸은 점점 멀어져만 가는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은 왜 또한 가까이 다가서지 않는지 의문이다. 그 이유가, 그의 회상 속에서 밝혀진다. 그는 미국에서 살게 된, 한국계 일본인이었다. 어딘가 너무나 복잡하지 않은가. 그는 초반부터 말하기를, 그 작은 동네에 터전을 마련하면서도 '끼어들 수 없다는 느낌'과 어색한 상황 속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닥 하타, 라고 존경 어린 말을 건네는 사람들 속에서도, 그는 중간 속에서 머무르는 주변인이었다.

 

  소설은 현재 '닥 하타'의 삶을 살고 있는 시점과 과거의 젊은 시절, 일본군에서 군의관으로 일했던 시점을 번갈아가면서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 서술은 담담하며 침착하지만, 과거의 시점은 너무나도 강렬하다. 일본군에 있었던 '위안부'와 그곳에 있었던 사랑하는 여자 '끝애'와의 이야기를 묘사한다. 그는 그곳에서도 마치 지금과 같은 삶을 산다. 위안소의 여자들을 필요치 않았지만, '끝애'라는 여인은 '필요'했고 소유하려 했다. 어디까지나 중간인으로서 존재했고, 사랑했던 여인마저 구하지 못했다. 그것이 트라우마로 남아 그의 삶을 지배했을까. '척뿐인 삶'을 증오하며 자아와 완벽하게 일치하길 원했던 '끝애'의 행동 (입양 딸인 '서니'는 그녀와 닮았다. 그리고 역시 그와 맞춰가질 못한다), 그리고 그녀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나는 그가 죄책감에서 '척하는 삶'의 이유를 찾으려는 것으로 보였다. 그는 이전부터, 그래 왔는데도.

 

   그는 자신의 모든 행동의 이유를 밖으로 돌리면서 위치를 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이 언급될 때, 철저히 거부했다. (닥 하타라는 이름도, 결국엔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었는데도.) 놀랍도록 담담하고, 마치 감정이 없어 보이는 문장은 이런 그의 행동을 묘하게 소름 끼치게 했다. 그토록 큰 풍파를 겪었지만, 너무도 안정되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그의 모습 속에서 약간은 아찔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조화와 균형'을 강조하며 살아왔고, 중간인으로서의 삶을 다하면서 세계와 자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그는, 어느새 자신도 모를 만큼 자연스럽게 그 균형을 교묘하게 맞추어나갔던 것이다.

"지금은 똑똑히 보이지만, 사실 나는 그 상황의 중요한 한 부분이었다. (...) 사실 무시무시한 것은 우리가 중심에 있었다는 것이다. 순진하게, 동시에 순진하지 않게 더 큰 과정들을 구성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414p)​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쓴 『척하는 삶』속에서 아마도 많은 사람이 '위안부'문제에 집중할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민감할 수 있는 그런 주제와 한국인의 한(恨)을 노골적이지 않고 우회적으로 담담하게 다루고 있다. 교묘하게 피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묘사하는데도), 슬픔과 고통을 그대로 분출하지 않고 조금씩 터뜨려 나가는 것이다. 그러한 서술을 통해, 외적인 상황보다 내적인 감정을 더욱더 충실하게 보도록 만들고 있어서 참 좋았다.

 

 

떠난다는 생각을 할 때 내가 가장 우려했던 것은 모두가 이따금씩 느낄 수 있는 어색함이었다. 예를 들어, 매일 다니는 거리나 가게에서, 또는 다른 경우라면 은은하고 푸릇푸릇한 공원 그 이상일 수 없는 곳에서 주변 환경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 사람들이 발을 멈추고 저 사람은 누구일까 하고 생각하는 것 (대부분이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그리한다.)에 대해 의식하고, 그것이 어떤 의미일까 궁리하는 것, 내 생각이든 남의 생각이든 나는 정말이지 이런 식의 생각을 좋아한 적이 없으며, 그래서 내가 이 타운에서 나 자신을 위해 꾸준하게 조성해 온 그런 상황 속에 들어가 있기를 늘 원해 왔다. (...)

그런데 이 모든 조화로운 관계에 당혹스러운 측면이 생겨난 것이다. 이것이 언제 어떻게 생긴 것인지, 실제로 지금도 생겨나고 있는지 어떤지는 나도 모르지만, 뭔가가 진행 중인 것만은 틀림없다. 집 밖으로 나가 마당을 걸으며 지붕의 예각, 따뜻한 색깔, 시간이 아로새겨진 전면을 살필 때마다, 마치 처음 보듯이 새로운 눈으로 볼 때마다, 평생 가야 이런 집을 내 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답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 말소리가 느낌보다 더 깊다. 나는 이제 뭘 `본다`해도 내가 보는 것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그것이 현실인지, 아니면 내가 만든 것인지, 아니면 그 중간쯤으로 우리가 삶에 기대한 것 때문에 만들어 놓고 공유하는 환상인지. 아니면 이렇게 묻는 것이 오히려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최대한 버텨 내고 만족하고 목적을 부여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만 할까? (116p)

나는 선량한 닥 하타에서 괜찮은 노인네에서 저 늙은 동양인이 누구냐로 바뀌었다. 그 질문 (지난 여름 처치 스트리트의 새 식당에서 점심 값을 치르다 그런 소리를 들었다)에는 심각한 악의나 편견은 담겨 있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의아해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처량하게 자신의 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나이 든 사람들이라면 모두 겪는 일, 심지어 한창 때는 적당한 위치를 확보했던 사람들조차 겪는 일이 틀림없다. 그러나 내 경우는 시간으로 인해 흐릿해지는 것과도 다르고 현대 생활에서 늙어 가면서 일반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일과도 다르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내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은 둘째 치고, 내가 어떤 인종에 속한 사람이냐 하는 것이 지속적이고 변함없는 사실로 남기 때문이다. 내 얼굴이라는 단순한 항상성. 따라서 나와 같은 사람은 사소한 손실들은 받아들이면서, 삶에서 생기는 위안들에 행복해야 하는 것일까? 아무리 의견이나 감정이 날카로운 사람이라 해도 적어도 나를 속속들이 알고는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녀야 하는 것일까? (280p)

이런 생각 자체에서도 순수의 맛이 나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을 알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주 어린아이가 아니라면 거의 모든 사람에게 기만적이고 위험한 바람이다. 하물며 삶의 가장 먼 영역에 다가가고 있는 사람에게는.... 사실 나 같은 사람은 기억의 모든 조각과 부스러기를 갈망해야 마땅하다. 마침내 자신이 겪은 일들의 우연성이라든가 정황이라든가 얄궂은 면을 인식하고, 그런 일들이 많은 경우 필연적이었음을 인정해야 마땅하다. 어떤 신이 허락을 한다면, 이 모든 일들을 확고하게 움켜쥐고, 그런 풍부한 경험들을 살아냈으니 나는 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 경험들 때문에 자신이 되풀이하여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고, 가장자리를 향해 천천히 다가서는 걸음에 어룰리게 살짝 고쳐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는 멈추는 것, 뒤로 도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 아니면 발끝으로 땅을 파며 뛰쳐나가, 노인네처럼 뻣뻣한 자세로 돌아다니다가 절벽 너머로 뛰쳐나가는 것. 툭 튀어 오른 첫번째 바위만 제대로 피해 그대로 자유 낙하를 할 수 있다면, 그 짧은 비행을 즐길 수만 있다면, 나는 정말 감사할 것이다.(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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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 2015 제15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작품 수록
한강 외 지음 / 문예중앙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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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 강영숙 | 권여선 | 김솔 | 김애란 | 손보미 | 이기호 | 정소현 | 조해진 | 황정은 | 문예중앙 | 2015-11-10

 

 

 

남겨진 생각들  

 

 여러 작가의 글이 모여있는,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은 오랜만이다. 그런데 작품집은 처음이다. 단편보다는 장편을, 작품집 보다는 한 작가의 단편집을 쭉 읽어내려가는 것을 선호하는 터라, 이번 책은 작품 하나하나 꼼꼼히 읽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겠다 싶었다. 하지만 수상작에 '한강', 이어지는 후보작들에 붙은 이름들을 보니 그동안 좋은 느낌으로 읽었던 작품의 주인들이어서, 꽤 흡족한 독서가 될 것 같기도 했다. 익숙한 작가의 이름이 많이 보이니 반갑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러 문학상에 반복해서 비슷한 이름이 보이니 '역시 또?' 하며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 어쩌겠는가. 한국 문학을 이끌어가는 개성 넘치는, 쟁쟁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니. 그의 작품을 한 번에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두근거리는 일일 수밖에.


 이렇게 오래 살아가는 것들 아래 있으면 더 그런 생각이 들어. 우리가 해치지만 않으면, 어쩌다 불이 나거나 벼락만 맞지 않으면 수백 년도 살 수 있는 것들 아래에서, 이렇게 짧게 꼬물꼬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다음 달, 다음 해, 아니, 오 분 뒤 일조차 우린 알지 못하잖아. 그렇게 시간에 갇혀서 서로 찌르고 찔리면서 꿈틀거리잖아. 그걸 내려다보고 있는 존재가 어딘가 있다 해도, 그가 우릴 사랑할 것 같지 않아. 우리가 상처 난 벌레를 보듯 혐오하지 않을까? 무관심하지 않을까? 기껏해야 동정하지 않을까? (39쪽,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 한강)

 

 

​ 의도했는지, 아니면 우연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딱 지금 읽을 수밖에 없는 제목을 가진, '한강' 작가의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은 '보이는' 독특한 소설이다. 한쪽은 사회에 의해 자행된, 차가운 현실을 그린다. 그리고 한쪽은 주인공이 쓰는 희곡을 생생하게 그린다. 전자인, 주인공의 현실은 지금의 바깥 기온처럼 차디차다. 죽은 지 3년이 지난 뒤에 찾아왔지만, 나에게 이렇게 찾아올 만큼 가까운 사람이었는지 알 수 없는 존재의 '선배'와의 대화 속에서 '나'는 지나간 날들을 기억한다. 회사의 파업, 해고, 침묵, 누군가가 잃어버린 자존감, 그리고 죽음을……. 그 모든 것을 회상하면서 쓰는 '희곡'은 고요한 듯하지만, 날카로운 감정들이 뒤섞여 피를 내고 있다. "내가 그 고통의 바깥에 있다는 사실이 무섭도록 생생해서" 더는 쓸 수가 없을 정도로. 그리고 그는 묻는다. 남겨진 자들이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평화를 말해야 하느냐고. '한강' 작가는 찢어질 듯 날 선 감정들을 스산하고 잠잠하게 글 속에 가둔다. 후끈한 열기로 가득한 방, 차디찬 바깥 공기가 들어올 틈 하나는 남겨 두고서. 그래서 더욱 쓸쓸하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뒤이어 차례대로 나온 9편의 최종후보작은, 각각의 개성이 돋보이는 좋은 작품들이었다. 기대했던 작가의 작품은 역시나 좋았고, 작품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던 작가의 작품 중에서도 유독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을 꼽아보자면 권여선, 손보미, 조해진 작가의 작품이었다. 자신과 불가촉의 관계였던 이모가 생을 정리하는 두렵고도 아득한 과정을 지켜보는 <이모 (권여선)>. 젊은 부부의 집에서 많은 일을 떠맡으면서도 단지 '임시'로만 머무는 <임시교사 (손보미)>, 폐쇄된 과거 속에 존재하는 사물은 덧없는 조각이라는, 슬픈 추억을 그린 <사물과의 작별 (조해진)>. 문장과 묵직한 사유를 주는 작품들로 인해, 이 작가들의 다른 작품들을 더욱 궁금해할 기회가 되었다.

​ 제 15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10편의 작품들은, 수상작을 비롯하여 각각의 색채가 짙어 당연히 어떤 통일된 느낌이 들 수는 없었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아득한 거리, 혹은 무언가를 잃은 불안한 현실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프지만 마주 보아야 할, 그런 일들을 녹여놓은 그들의 목소리를 진심으로 듣느라, 페이지를 다 넘길 즈음에는 안도감과 후련함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힘들었지만, 다시 읽고 싶은, 오래도록 품고 싶은 소설들이다.

 

 

 

담아둔 문장

 

그녀가 기대감에 가득 차서 돌게장의 껍데기 속에 모아놓은 노르스름한 알과 내장을 입에 넣었을 때였다. 누군가의 눈빛이 떠올랐다. 그녀는 입속의 것을 꿀꺽 삼켰고, 거대한 압착기에 얼굴이 끼인 것처럼 이를 딱 부딪쳤고, 그 엄청난 악력에 혀끝이 짓씹혔다. 눈앞이 번쩍 하더니 모든 기억이 반지 모양의 작고 까만 원형 속으로 빨려들었다. 지독한 통증이었다. 조심스레 손가락으로 혀끝을 만져보니 침과 함께 피가 묻어났다. 혀끝에 뜨겁고 얇은 쇳조각이 달라붙은 느낌이었다. (181쪽, 이모 - 권여선)
 
 
 아내는 연주를 끝낸 뒤 수 천 명의 기립박수를 받은 피아니스트마냥 울었다. 사람들이 던진 꽃에 싸인 채, 꽃에 파묻힌 채.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는 사람마냥 내가 받치고 선 벽지 아래서 흐느꼈다. 미색 바탕에 이름을 알 수 없는 흰 꽃이 촘촘하게 박힌 종이를 이고서였다. 그러자 그 꽃이 마치 누군가 아내 머리 위에 함부로 던져놓은 조화(弔花)처럼 보였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악의로 던져놓은 국화같았다. (247쪽, 입동 - 김애란)
 
 
 사는 건 그런 거지. 그녀는 생각했다. 아, 괜찮을 거야. 언젠가, 마치 끈 하나를 잡아당기면 엉킨 끈이 풀어지듯이 잘못된 일들이 고쳐질 거야. P부인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잠들기 위해 눈을 감았다. 잠들기 위해 눈을 감는 건, 생각보다는 언제나 쉬운 일이었다. (280쪽, 임시교사 - 손보미)
 
 
 병원 문을 열고 나가면 실타래는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굴러갈 것이고, 실타래에서 풀려나간 실은 밟히고 쓸리고 상하면서 먼지가 되어갈 것이다. 친밀했던 사람, 아끼던 사물, 익숙한 냄새를 잃게 될 것이고 세상도 그 속도로 고모를 잊어갈 터였다. 어느 날은 거울 속 늙고 병든 여자를 보며 이유도 모른 채 뚝뚝 눈물을 흘리기도 하리라. 하나의 실존은 그렇게 작아지고 또 작아지면서 아무도 모르게 절연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 누구의 배웅도 없이, 따뜻한 작별의 입맞춤과 헌사의 문장도 없이…… (379쪽, 사물과의 작별 - 조해진)
 
 
 아무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그는 그냥 하던 대로 했겠지. 말하자면 패턴 같은 것이겠지. 결정적일 때 한 발짝 비켜서는 인간은 그 다음 순간에도 비켜서고…… 가방을 움켜쥐는 인간은 가방을 움켜쥔다. 그것 같은 게 아니었을까. 결정적으로 그, 라는 인간이 되는 것. 땋던 방식대로 땋기. 늘 하던 가락대로 땋는 것. 누구에게나 자기 몫의 피륙이 있고 그것의 무늬는 대개 이런 꼴로 짜이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직조해내는 패턴의 연속, 연속, 연속. (407쪽, 웃는 남자 - 황정은)
 

Written by. 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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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사랑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20
막스 뮐러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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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막스 뮐러 (지은이) | 차경아 (옮긴이) | 문예출판사 | 2015-11-10 | 문예 세계문학선 120

 

남겨진 생각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냥 줄 수 있는 넉넉함이 아니라 꼭 줄 수 밖에 없는 절실함인거야.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단지 그 사람의 체온을 좋아한다는 게 아니라 체온을 닮아간다는 얘기야.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이 너를 끝없이 괴롭게 만든대도, 그래서 그 사람을 끝없이 미워하고 싶어진대도 결국 그 사람을 절대 미워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해. (응답하라 1998 중에서)

 

 사람은 사랑을 먹고 자란다. 오감을 자극하듯 달고, 짜고, 때로는 맵기까지 한 '사랑'은 누군가에게 살아갈 힘이 되고, 버릴 수 없는 절실함이 되고, 결코 놓을 수 없는 비장함이 된다. 이성 간의 사랑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와 자식, 형과 동생, 친구와 친구, 동물과 사람, 그리고 사물과 보이지 않는 어떤 추상적인 것들에 대한 감정들이 세상 속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이 단순한 질문에 따라오는 복잡한 대답들은 막막함에 우리의 머리를 쥐어짜게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복잡한 대답들을 제대로 파헤쳐보고 싶을 때가 있다. "당신은 어떤 사랑을 하고 있고, 어떤 사랑이 정답이라 믿는가?"

 

 

 『독일인의 사랑』을 읽기 전에 상상했던 이미지와 전개는, 책을 펼치는 순간 모두 희미해졌다. 주인공의 여덟 가지 회상으로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철학적 상념들이 가득하고, 그 상념들을 이어주는 얇은 줄기 하나는 어린 시절 새로운 세계로 다가왔던 '첫사랑'이다. 후작의 딸이었던 '마리아'와 어릴 적 낯선 타인으로 만나고, 재회하고, 오랜 인연으로 연결되어 깊은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 절절하고 숭고하게 표현되고, 사랑의 열정, 배신감, 허무감, 그리고 반성의 시간을 그린 곡선은 여타 인간의 사랑만큼이나 흔하디흔한 모양으로 뻗어있다. 하지만 그 속의, 절절한 사랑을 이루는 대화와 독백은 묵직하게 자리 잡아, 사랑의 참모습에 대해 깊이 탐구하고 있다.

 

 작가는 소설의 장을 각각의 '회상'으로 나누면서,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순수'의 의미를 작품 전체에 새겨놓았다. 물론, 지나가 버린 추억을 아무리 그때 당시로 되돌리려 애써도 꼭 그 지점까지 쫓지는 못하는 것처럼, 이미 '낯선 타인'의 존재를 알아버려 소모되는 감정들로 힘들어하는 우리는 완벽히 이해할 수 없지만 말이다. 일단 그것은, 작가가 말하기를 '다른 유의 사랑'이다. 그리고 첫사랑, 어린 시절, 인생의 봄날, 그리고 수많은 잔상으로 표현되는 '순수로의 회귀'는 작가가 말하는 진정한 사랑의 모습이다. 현대인들에게 사랑은 "결혼이라는 희극이나 비극의 전주곡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볼 수 없는, 순수한 사랑의 행복을 그는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표현한 소설 속의 사랑은 자칫 어렵고 답답해 보이며, 우리가 주변에서 줄기차게 봐오고, 스스로 겪었던 사랑의 모습과 확연히 달라 낯설고 당혹스러운 감정마저 든다. 사랑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주인공, 그리고 언젠가 다가올 죽음으로 인해 조금 더 고차원적인 사랑을 갈구하는 마리아……. 그들은 "더듬대는 말로 사랑이라고 부르는 그것의 올바른 이름을 찾아내기 위하여" 해명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대화를 이어나간다. 그리고 단순히 '플라토닉'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의 모습은, <독일 신학>에 대한 토론으로 '기독교적 사랑'의 의미까지 씌워지게 된다. '아가페적 사랑', 그리고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나누는' 것에 대하여. (그리고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큰 파장을 일으키는 또 다른 주인공 '의사'의 반전은 이와 같은 사랑이 주는 행복의 증거를 역설하고 있다.)
 

 

 어쩌면 이런 사랑을 재현해내기에,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해왔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고상한 사랑의 모습이, 아니 본래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해명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사람과 사람, 그리고 낯선 타인과의 관계까지 메마른 지금, 이들의 사랑은 (완벽히 공감할 순 없을지라도) 아름답고 가치 있게 와 닿고 있다.

 

담아둔 문장

 

 인생의 새벽빛이 영혼 안에 감추어진 꽃받침을 열어줄 때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온통 사랑의 향기가 풍기게 마련이다. 우리는 서서 걷는 것, 말하고 읽는 것을 배운다. 하지만 사랑만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사랑은 생명과 더불어 이미 우리에게 속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로 사랑은 우리 현존의 가장 심오한 바탕이라고들 말한다. 천체들이 서로를 끌어당기고 서로에게 기울며 영원한 중력의 법칙에 따라 응집하고 있듯이, 타고난 영혼들 역시 서로에게 기울며 끌어당기고, 사랑의 영원한 법칙에 따라 결속하고 있다. 태양 빛이 없으면 한 송이 꽃도 피지 못하듯, 사랑이 없으면 인간은 살아갈 수가 없다. (25쪽)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내게 지상의 행복의 절정을 보여주고 나서, 나를 인생의 넓은 사막으로 팽개치는 과정에 불과했다! 오, 이 땅에 얼마나 엄청난 보물이 감추어져 있는지를 차라리 몰랐더라면 좋았을 것을! 한번 사랑하고 나서 영원히 고독해져야 한단 말인가! 한번 믿고 나서 영원히 눈이 멀어야 한단 말인가! 이것은 엄연한 고문이다. 인간이 행하는 여타 모든 고문도 이 고문에 비하면 실로 아무것도 아니니라. (96쪽)

 

 

 어제, 도망치는 저녁 안개처럼 내 머리를 몽롱히 스쳐갔던 일들이 갑자기 생생히 떠올랐다. 그녀와 나는 서로에게 속해 있는 것이다. 그 점을 나는 느끼고 있었다. 오빠와 누이처럼이든, 아버지와 자식처럼이든, 아니면 약혼한 남녀 사이든, 어쨌든 우리는 영원히 공존하는 관계였다. 문제는 우리가 더듬대는 말로 사랑이라고 부르는 그것의 올바른 이름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136쪽)

 

 

 그녀 앞에 서서 실재로 그녀 곁에 있게 되자, 그토록 행복하게 지냈던 이틀간의 회상의 세계가 한낱 그림자처럼, 무(無)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녀의 이마, 눈, 뺨을 손으로 감촉해보며 그녀가 실재함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밤낮으로 내 앞에 어른거리는 심상이 아니라 엄연한 존재임을. 나의 소유는 아니지만 당연히 나의 것이어야 하며, 나의 것이고자 원하는 존재임을. 내가 나 자신처럼 믿을 수 있는 존재, 나와 동떨어져 있지만 나 자신보다 더 가까운 존재, 그것이 없으면 나의 생명은 이미 생명이 아니며 나의 죽음조차 이미 죽음이 아닌 존재, 그것이 없으면 내 가엾은 현존이 한숨처럼 허공으로 사라지고 말 그 존재를 - 확인하고 싶었다. (142쪽)

 

 

Written by. 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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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위의 고래 모노동화 1
김경주 지음, 유지원 디자인 / 허밍버드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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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겨진 생각들  

 

 아직 문자를 이해하기 어려운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이 우리에게 동화를 읽어주던 모습을 떠올려 본다. 그 입술을 따라가며 우리는 세계를 느꼈다. 조금 섭섭한 일이지만 이제 우리는 세계가 어른들의 입술로만 만들어진 것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안다. 동화는 어른들의 입술의 세계가 아니라 어른들의 입술로는 다시 들어가지 못하는 세계라는 것을. (248, 기획 의원의 말 _ 김경주) 

 

 정말로 아쉽고 섭섭한 일이지만, 아이들만이 볼 수 있는 세계는 분명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은 눈앞에 놓인 것들을 단지 호기심만으로 빛을 내는 물체인 양 바라보지요. 그리곤 어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세계들을 작은 입으로 오물오물 말하곤 해요. 자기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그리고 노래할 때, 저는 경탄 어린 눈으로 보게 됩니다. "저건 어린 애들만이 할 수 있는 생각이야." 하고 말이죠. 그러나 그 상상의 세계는 커가면서, 성장하며 많은 것을 보며 점점 현실로 바뀝니다. 세상을 배우고, 많은 것을 알아가는 것은 어쩌면 다른 쪽으로는 매우 슬픈 일일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는 『나무 위의 고래』를 읽고 어쩌면 '시인'은 어린아이들의 순수한 세계를 유일하게 재현해낼 수 있는 '어른'이 아닐까 하고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그 순수함과 생각의 밀도는 차이가 있겠지만 말이죠.

 

 

 

 

 

 『나무 위의 고래』 에서는 나무 위에 사는 소녀가 등장해요. 쓰나미로 엄청난 파도가 밀려들어 마을의 모든 집이 잠겨버렸고, 보트 한 척이 나무에 걸려버렸죠. 그 보트 위에서 소녀는 일 년을 살았어요. 세상과 소녀를 이어주는 것은 오직 라디오 한 대지만, 갈매기와 방울새, 우편배달부, 낙하병이 간혹 찾아와 소녀의 말상대가 되어줍니다. 그들과의 대화와 소녀의 고백은 남다른 감수성으로 책을 꽉꽉 채우고 있어요. 소녀가 그리는 숲 속의 환상적인 그림들과 호기심 가득한 말들은 너무 예쁘고 슬퍼서 정말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의심할 만큼 모호하죠. 마치 꿈처럼 다가와요. 그가 정말로 나무 위에서 살고 있는지, 단순히 상상으로만 이루어진 세계인지 확신할 수도 없어요. 하지만 우리는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어요. 따지지 않고, 의심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는 것. 어린아이들의 눈으로 말이죠.

 

 그러나 이 책이 어른 동화인 이유는, 어딘가 비틀린 부분을 어른들만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나무 위에 올라온 동물들은 소녀의 외로움을 자연스럽게 품어주지만, 낙하병과 벌목꾼, 윤리선생님 같은 '사람'들은 소녀의 환상적인 세계에 가려진 비틀린 세계를 언뜻언뜻 보여줍니다. 전쟁과 죽음, 윤리와 교육의 아이러니, 차가운 세계…… 아이들은 흐릿하게만 알 수 있는, 두려움과 잔혹함을 그리고 있어요. 파스텔 톤의 아름다운 그림 속에 숨겨진 흑백의 차가운 환영들은 어른 동화로 만들어진 이 책의 또 다른 볼거리예요.

 

 

 

 젊은 감각의 시인 · 소설가들이 창작하는 ‘자기 고백적 동화’라는 테마로 출간된 '모노 동화'는 텍스트뿐만 아니라 디자인에도 꽤 많은 신경을 쓴 듯 보여요. 그래픽디자이너 유지원은 이 아름다운 텍스트를 시각화하여 페이지에 그 이미지를 잔잔히 흘려놓았어요. 형체를 알 수 없는 이미지의 조각들은, 실제로 맞춰보면 위의 그림 10배 크기의 고래가 된다고 해요. 감각적인 그림은 『나무 위의 고래』의 몽환적인 텍스트를 더욱 깊은 감성으로 읽도록 도와주고 있죠.

 

 나무 위에 사는 작고 어린 소녀의 눈으로 본 인생의 이치를 담은 '모노 동화'. 외로움에 사무치고 막막한 성인들에게 현실의 복잡함 속에서 보지 못한 인생의 이치를,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함과 감수성을 찾아줄 거예요.

 

 

 

 

 담아둔 문장

 

 

 "바다가 보고 싶으면 날 한번 꼭 안아 봐도 돼."

 "왜 그렇게 해야 하지?"

 "날 꼭 안고 있으면 내 따뜻한 아랫배에선 바다 냄새가 날 거야."

 "넌 외롭구나."

 "응. 조금."

 "사람은 외로워지면 금방 몸이 차가워진대."

 "내 아랫배는 바다에 내려 앉을 때에도 항상 따뜻하지."

 그렇게 해서 나는 바다 냄새가 그리울 때면 날아온 부리갈매기의 아랫배를 꼭 안게 되었죠. (32쪽)

 

 

 숲에서 혼자 자고 일어나는 기분은 처음엔 맑은 공기 때문에 상쾌하지만 금방 외로워지기도 해요. 나는 내가 있는 곳이 꿈속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중얼거리죠.

 "내가 왜 여기까지 왔을까? 어떻게 이곳으로 걸어왔지?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는데 말이야. 혹시 낯선 사람이 잠든 날 안아서 여기 내려놓은 건 아닐까? 마녀의 빨간 빗자루를 타고 온 걸까? 집시의 초록색 기타를 타고 온 걸까? 아니면 썩은 몽키바나나를 너무 먹었기 때문에 나쁜 꿈을 꾸는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주변을 보면 순식간에 어두워지고 있었어요. 비록 꿈이긴 하지만요. 그러면 문득 겁이 나기 시작해요.

 "겁이 나면 외로워지는 것인지, 외로워지면 겁이 나는 것인지 아직 난 모르겠어." (34쪽)

 

 

 "이런, 구두끈이 풀렸잖아."

 어둠은 아저씨 앞에 도착하자 허리를 구부리고 자신의 구두끈을 묶기 시작했어요.

 "아저씨를 데리고 갈 거예요?"

 전 어둠에게 물었어요.

 "그럴 생각이야. 보고 싶지 않거든 눈을 감으렴."

 "전 너무 슬퍼요. 당신은 슬프지 않나요?"

 "난 이 사람이 더 이상 슬프지 않도록 해 주려는 거야."

 "어디로 그를 데려가세요?"

 "가족에게."

 "크루아상을 먹으며 그를 기다리나요?" (108쪽)

 

 

 "윤리는 뭐에요?"

 "네가 나무에서 사는 일이 없도록 교육하는 일이야."

 "그런 전 윤리를 배우고 싶지 않아요."

 "두려움을 가져야 이 사회에 필요한 윤리 의식이 생기는 거야."

 "전 자연에서 겁을 배우는 게 즐거운데요."

 "두려움을 버리면 반윤리적으로 보일 수 있어."

 "너무 어려워요. 윤리 선생님들은 지금 모두 뭘 하세요?"

 "모두 전쟁터로 끌려갔다. 아이들이 왜 무기를 들어야 하는지 리포트를 쓰는 중이야." (186쪽)

 

 

 첫 번째 연필에선 해일이 쏟아졌어요. 전 무서워서 다른 연필을 집었어요. 엄마가 깎아 주신 연필을 골랐죠. 그 연필에선 햇볕이 쏟아졌어요. 전 겨울에 맞는 단어를 하나 골라 하얗게 굴려서 눈송이를 만들고 입김을 불어 넣어 주었죠. 생명을 만들고 싶었으니까요. 지금까지 나무 위에서 보았던 자연의 눈부신 슬픔과 아름다움을 눈송이에 담아 보려고 했어요. 그러자 차가운 단어들이 눈송이 속에서 따뜻하게 숨을 쉬었어요. 전 눈송이가 된 단어들을 세상 여기저기에 뿌리기 시작했어요. 지붕 위에도 교회의 종소리 속에도, 햇볕이 들지 않는 캄캄한 동굴 속에도 눈송이를 날렸죠.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에게 눈송이를 보냈어요. 눈송이는 미소를 지으며 바람에 가까운 노래처럼 날아갔어요. (220쪽)

  

 

Written by. 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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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형제 동화집 허밍버드 클래식 6
야코프 그림.빌헬름 그림 지음, 허수경 옮김 / 허밍버드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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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그림 | 야코프 그림 (지은이) | 허수경 (옮긴이) | 아서 래컴 | 월터 크레인 | 카이 닐센 | 허밍버드 | 2015-11-20

 

 

 

 남겨진 생각들  

 

 동심과 감성을 자극하는 동화는 이제 더는 어린이들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어요. 어른 동화도 많이 출간되고요. 세상이 각박하고 바쁜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부담스럽지 않은 글밥과 따뜻한 이야기의 동화는 많은 사랑을 받게 되는 것 같아요. 그중 클래식 동화의 경우엔, 색다른 재미를 선사해요. 어릴 땐 신기한 마음으로 동화들을 읽었다면, 이제는 언뜻언뜻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줄거리와 장면들을 떠올리며 웃으면서 읽게 되죠. 어릴 적 고사리손으로 넘기며 읽던 이야기를, 수년이 지난 지금 다시 꼼꼼히 읽어보는 느낌은 정말, 뭔가 달라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그림 형제'의 동화를 오랜만에 만나보았어요. 헨젤과 그레텔, 빨간 모자, 백설공주, 라푼젤…… 이 유명한 동화들을 포함하여 16편의 동화가 수록되어 있는데, 제목이 살짝 낯선 게 있는 듯하다가도 읽어보면 "아, 이 이야기!"라고 반가움이 밀려와요. 사실 이 모든 이야기가 그림 형제의 순수 창작물은 아니랍니다. 그들의 고향 '헤센 주'에서 구전으로 떠돌던 이야기를, 형제가 편집하고 엮은 동화들이지요. 그래서 원래는 마냥 순수하고 귀여운 이야기들만 있는 것이 아니지만, 이 책에서는 자극적인 장면들은 최소화한 이야기 버전으로 담아냈어요.

 

 어렸을 적 많이 좋아했던 '라푼젤', 왠지 모르게 노랫말 같았던 '룸펠슈틸츠헨', 모든 것을 버리고서야 행복을 만끽하는 역설적인 동화 '운 좋은 한스' 이야기들은, 제가 무심코 기억 속에서 잊어버렸던 이야기 중에 가장 재밌게 읽었던 것이었어요. 그리고 독일판 신데렐라 (?) '아셴푸텔' 이야기도 기억에 남네요. 우리나라 전래동화 '콩쥐팥쥐'와도 비슷비슷해서, 다른 듯 색다른 매력이 있죠.

 

 

 이 책의 시리즈인 <허밍버드 클래식>에서 돋보이는 점은 현대 문학가들의 번역이에요. 클래식 동화의 경우, 줄거리나 이야기 흐름을 많이들 꿰고 있으니, 작가들의 감수성을 빌려 신선하게 읽히게 하는 시도인 것 같아요.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원문이나 다른 번역가의 동화를 옆에 두고 비교해보지 않는 이상 잘 느껴지지 않는 게 사실이에요. 개인적으로 번역에 둔감한 편이기도 하고, 짧은 동화라서 그런지 크게 특별한 느낌은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독일에서 오랫동안 머무르며 동화 원문을 반복해서 읽으며 행복감을 느꼈던 허수경 시인의 감수성은 이 이야기에 분명 녹아들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예쁜 삽화와 빈티지한 속지, 동화의 따뜻한 분위기가 만나 읽는 내내 좋은 기분으로, 여행하듯 읽었답니다. 독일에, 그림 형제와 그림동화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동화 가도(Maerchen Strasse)'라는 여행 코스가 있다는 애길 들었는데, 이 동화를 읽으니 갑자기 여행 생각이 간절해지네요.


 

 

 

 현재 인터넷 서점에서는 『허밍버드 클래식』 출간된 5종 중 하나를 구입하면, '동화 속 문장'이 쓰여 있는 미니북 성냥을 선물로 증정하고 있어요. 성냥이 가득 찬 성냥갑을 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네요. 여러모로 감성을 예쁘게 자극하는 책이라, 기분이 한껏 좋아집니다.

 

 

Written by. 리니

 

"빨간 모자야, 부엌에 물통이 있을 거야. 어제 소시지를 끓는 물에 데웠거든. 그 물을 가져오너라."

빨간 모자는 함지에 가득 찰 만큼 물을 실어 날라 채웠다. 그러자 소시지를 데운 물에서 나는 고기 냄새가 늑대의 콧속으로 밀려왔다. 늑대는 코를 킁킁거리면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마침내 늑대는 더 이상 몸을 지탱하지 못할 만큼 길게 목을 빼었고 아래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42쪽, 빨간 모자)

우물 속 깊이 빠진 돌을 제 눈으로 보고서 한스는 기쁨으로 소스라치며 뛰어올랐다. 그는 무릎을 꿇고 눈물 어린 눈으로 신에게 감사를 드렸다. 이런 자비를 내려주시다니, 자책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런 방법으로 짐이 되었던 무거운 돌에서 해방시켜 주시다니.

"나처럼 운 좋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거야."

홀가분한 마음으로 모든 짐에서 풀려 나와 그는 뛰어갔다. 집으로, 어머니에게로 도착할 때까지. (148쪽, 운 좋은 한스)

"형, 이제 당나귀랑 말 좀 해 봐."

방아꾼이 "브리클레브리트!" 하고 말하자 마치 그 자리에 폭우가 내린 것처럼 순식간에 황금 조각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당나귀는 모두 짊어질 수 없을 만큼 많은 황금을 쏟아 내고서야 멈추었다. (그래, 당신 표정을 보니 꼭 그 자리에 함께 있었으면 하는 눈치군.) 그 다음 셋째는 작은 식탁을 가지고 와서는 말했다.

"형, 이제 식탁이랑 말 좀 해봐."

가구공이 "식탁아 차려 주렴" 하는 주문을 끝내기도 전에 식탁이 차려지며 가장 좋은 그릇들이 식탁을 뒤덮었다. 착하고 늙은 재단사의 집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만찬이었고, 모든 친척들이 밤이 될 때까지 같이 즐겼다. (212쪽, 요술 식탁과 황금 당나귀와 자루 속이 몽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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