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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어느 독일인의 삶 - 괴벨스 비서의 이야기는 오늘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고 있는가
브룬힐데 폼젤 지음, 토레 D. 한젠 엮음, 박종대 옮김 / 사람의집 / 2018년 8월
평점 :
한동안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이 있었는데 난민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하루에 한 번씩 SNS에 난민 관련 정보를 검색했다. 해외에서 일어난 일부 난민들의 폭행, 강간 사건을 다룬 기사와 사진이 뜨고, ‘이슬람이 국가를 정복해나가는 과정’ 등의 정보를 무분별하게 긁어모았다. 최근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다 보니 제주도에 여성 실종자가 많아졌다는 이야기도 들려 화가 났다. 어느새 머릿속엔 ‘난민 = IS’라는 정보가 입력되었다. 걱정은 거의 병적으로 커졌다. ‘난민이 무서워’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사실 IS와 관련한 공포와 거부감은 당연한 일인데, 이번 난민의 문제는 일단 표면적으로는 언론 보도와 난민 분별을 도맡아 하는 관리들에 대한 불신, 이방인을 향한 불안감에서 오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두려운 동시에 스스로가 무서워지기도 했다. 어느 쪽도 아닌, 갈팡질팡하는 중도라는 이름으로 나는 은연중에 차별과 배척을 하고 있진 않을까.
과거 독일인의 삶을 다룬 이 책에서 느닷없이 난민 문제를 언급한 이유는, 이 책이 독일 내에서 출간될 당시 난민들이 대거 유입되었고 국민들의 불안감과 극우파들의 반대, 난민 테러가 격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엮은 정치학자 ‘토레 D. 한젠’은 이러한 모습이 마치 나치의 집단적 애국주의와 닮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우익 포퓰리스트들의 증가, 난민들에 대한 공격, 시리아 전쟁 같은 최악의 상황에도 젊은 세대의 상당수는 마비되어 있거나, 좌절과 체념에 빠져 있거나, 아니면 정치나 사회 문제에서 관심을 돌린 것처럼 보인다.” 또한, 문제를 대응하는 현 세대의 모습에서 이 책의 주인공 ‘브룬힐데 폼젤’의 일부를 목격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브룬힐데 폼젤은 나치가 국가를 장악하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면에서 국민을 선동하던 ‘괴벨스’의 비서다. 이미 한차례 전쟁을 겪었지만 그래도 형편이 나았던 동네에 살았던 폼젤은 엄격한 가정에서 순종과 무지를 배웠다. 오로지 부와 출세를 원했던 폼젤은 오전에 유대인 골트베르크 씨 사무실에서 일하고, 오후에는 나치당원 불프 블라이 밑에서 일하게 된다. 그 무렵 독일 사회의 불안은 최고조에 이르렀고, 경제적으로 결핍되어 있었으며, 유대인들은 점점 사라져갔다. 상대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었던 폼젤은 다양한 인맥을 접하면서 결국 나치의 핵심 인물인 괴벨스를 만난다. 그의 밑에서 일하게 된 폼젤은 ‘모든 게 선택받은 기분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폼젤의 인터뷰에서 독자는 그의 증언이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나치의 고위 관직이었던 괴벨스의 밑에서 일했는데 어떻게 모든 걸 알지 못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그는 유대인들을 가스로 대량 학살한 샤워기 밑에서 샤워를 하며, 그들이 그렇게 학살 당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고 말한다. 자신은 유대인을 향한 반감도 없었고, 유대인 친구도 있었고, 단지 ‘이리저리 출렁이는 바다와 같은 민족’에 휩쓸렸을 뿐이라고. 오로지 의무감과 성실함으로 자신의 일을 했고, 의지와는 무관하게 살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근시안적이고 무관심했던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듯하면서도, 정당화와 합리화로 회피하거나 당시 나치와 맞서 싸웠던 사람들의 노력을 평가절하시키기도 한다.
“나는 늘 타인들을 조심하면서 살아 왔는데,그러는 나는 내 속의 보통 사람입니다. 그 보통 사람 속에는 군대 전체의 배반과 폭력을 조장하기에 충분한 관성적 부조리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 다들 얼마씩 품고 있는 폼젤을 늘 조심해야 합니다.” - 잡지 <VICE> 파울 가르불스키 (엮은이의 말 중에서)
역사의 가해자 편에 섰던 브룬힐데 폼젤의 진술을 보면서, 우리가 발견해야 할 것은 누구나 마음속에 폼젤의 일부를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나치즘이 국가를 장악했던 이유를 단 한 가지로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정치에 대한 수동적 태도와 무관심, 소비 지상주의와 이기주의 등 모든 복합적인 요인이 모여 벌어질 일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다. 물론 거의 한 세기 전 과거 독일의 상황,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은 완전히 다르고 시대에 맞는 대응책은 늘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폼젤의 삶과 증언, 그것을 바라보는 독일인의 반성적 태도를 통해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멀리 떨어진 땅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일부의 사람들이 살기 위해 이 땅으로 밀려들어 오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대응을 해야 하고 어떻게 마음을 다잡아야 할까.
우리는 사실 별 걱정 없이 즐겁게 사는 편이었어요. 처음에는 모든 것이 좋았죠. 모든 사람이 잘 벌었어요. 떵떵거리며 살지는 못했지만, 자잘한 것들은 별 어려움 없이 구입할 형편이 됐고 우리끼리 만족하며 살았어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늘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생각해 봐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매일 하고 살겠어요? 요즘 바다를 건너다 물에 빠져 죽는 불쌍한 시리아 난민들도 우리가 불쌍하게 여기지만 매일 생각하면서 살지는 않잖아요? 그렇게 살 수는 없죠. 다만 텔레비전 앞에 앉으면 다시 그 생각이 떠오르죠. 어떻게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될 수 있느냐는 거죠. 하지만 그건 가능한 일이에요.
나는 내 인생에서 많은 것을 잘못했다고 생각해요. 당시엔 그런 부분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그저 난 항상 의무감이 투철한 사람이었어요. 내가 하는 일은 사람들에게 믿음을 줬어요. 그만큼 성실하게 잘했고, 항상 정확했어요. 어떤 자리에 있건 나는 내가 맡은 일을 충실히 완수했어요.
사실 그런 격동의 시절에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혹시 나는 이런 이유에서 이렇게 했고, 저런 이유에서 저렇게 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은 몰라도요. 우리는 그저 시대에 끌려다녔을 뿐이에요! 우리 의지와는 무관하게.
나치 시절에 강제 수용소가 있었다는 건 나도 일찍부터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거기서 사람들을 독가스로 죽여 불태운 건 전혀 알지 못했어요. 나 자신이 부헨발트 수용소에서 그런 가스가 나왔던 샤워기 아래 서 있었다는 상상을 하면…… 같은 곳에서 샤워를 했다는 상상을 하면 …… 그래요, 나는 목욕탕 건물에 들어가면 옷을 벗어 47번 갈고리에 걸어뒀어요. 내 고유 번호였죠. 내가 샤워를 하는 동안 옷은 빨아 다른 방에 걸어 뒀어요. 같은 번호 밑에요. 그러면 나중에 그걸 다시 찾을 수 있었죠. 그 사이 나는 15분 정도 타일이 깔린 커다란 목욕탕에서 샤워를 했어요
영원히 풀릴 것 같지 않던 책임에 대한 문제만큼은 스스로 답을 일찍 찾았어요. 그래요, 난 책임이 없어요. 어떤 책임도 없어요. 대체 뭣에 책임을 져야 하죠? 아무리 생각해도 난 잘못한 게 없어요. 그러니 져야 할 책임도 없죠. 혹시 나치가 결국 정권을 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독일 민족 전체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그건 어쩔 수 없지만요. 그래요, 그건 우리 모두가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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