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이런 책이 나왔어?"

오랫동안 독설과 야유, 비난과 조롱의 대상으로 살아온 정치인들은 가능한 한 정치 관련 글을 피한다. 읽을수록 지치기 때문이다. 정치학자이자 출판인인 박상훈이 저술한 <정치의 발견>(폴리테이아 펴냄)을 읽고 나는 모처럼 머리가 맑아졌다.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이 책은, 진보파에게 말을 걸고 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었을까?

혁명을 꿈꾸던 사람들, 혹은 진보적 사회운동에 청춘을 바쳤던 사람들이 정치권으로 진출했다. 어떤 사람은 국회의원이 되어 스타가 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치권에 진출한 진보 진영은 분열되었고, 영향력은 축소되었다. 왜일까?

이 책은 먼저 진보적 진영과 진보적 정치인들의 반(反) 정치주의에 대해 비판한다.

"민주주의를 싫어하는 사람들조차 민주주의를 직접 공격하진 못한다. 대신 그들은 정치와 정당, 정치가를 욕하고 비난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위력을 무력화시키고자 한다."


▲ <정치의 발견>(박상훈 지음, 폴리테이아 펴냄). ⓒ폴리테이아
정치, 정당, 정치가에 대한 도덕적 비난이나 야유가 사실은 민주주의를 향한 공격일 때가 많다는 것이다. 진보적인 지식인들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저자는 묻는다.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온종일 저주의 언어를 퍼붓고, 나는 분노하였으므로 진보적이었노라고 자족만 한다면 우리는 과연 도움을 절실하게 바라는 국민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현실적인 정치 참여를 망설이다가 파시스트와 나치주의자들에게 정치 공간을 내어주었던 과거의 진보주의자들은 정말 민중들을 위했던 걸까?

저자는 또 진보 정치인의 잘못된 태도를 지적한다. 정치 세계에서 의도의 선함만을 강조해서는 안 되며, 결과에 대한 신중한 판단을 중시하는 책임 윤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자신은 선의를 갖고 있기 때문에 잘못이 없으며, 나쁜 결과는 다른 사람 탓일 뿐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알리바이용 정치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진보 정치인은 남 탓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

진보적 정치인에게 주는 또 다른 질문은 근본주의적 사고로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가에 있다. 구조적 모순을 해결해야 당신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면, 한진중공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체제에 모든 책임을 돌리고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 정치인과 정치세력의 진보적 가치는 당대에 증명되기 어려울 것이다.

17대 국회의원 시절, 저마다 개혁적 정치인을 자처하며 경쟁적으로 국회 기자실에 서서 목소리 높이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이 정작 양극화 때문에 고통 받던 노동자, 농민의 삶의 현장을 얼마나 찾아갔던가? 그들의 삶은 나의 주장과 활동으로 개선되었는가? 언론에 보도된 것으로 만족하면서 후원자와의 술자리, 혹은 자기 정파의 회의를 더 중요시하지는 않았던가? 부끄러워진다.

대한민국의 진보 정치인들 중에 운동과 정치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경향도 존재한다. 정치권에서 활동하면서도 여전히 혁명적 조직관과 노선에 집착하는 경우도 있고, 촛불 집회 같은 커다란 흐름과 만나면,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가능성에 열광하기도 한다.

저자는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대의제라는 형식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수가 더불어 사는 거대한 현대 사회에서 직접 민주주의란 불가능하며, 혁명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면, '민주주의 운동론'에서 '민주 정치론'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 동의에 의한 지배를 현대 민주 정치라고 한다면 이를 진보 정치가 거부해야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 시대의 진보는 정치의 방법으로 힘을 조직하여 가난한 서민 대중의 삶의 현실을 좀 더 적극적으로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적 하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려면 그 사안의 갈등을 공적 영역으로 최대한 전환시켜야하는데, 민주 정치에서 이를 극대화할 수 있는 조직이 정당이라는 점도 강조한다.

진보도 좋은 정당이 되어야 하고 집권해서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 유능한 정치 엘리트를 배출해야 하고 그들을 중심으로 지지자를 대규모로 결집할 수 있어야 한다. 참 잘한다고 감탄할 만한 정치인도 많지만 상당수의 진보 정당은 지역에서 보면 정당보다는 동아리에 더 가깝게 운영된다는 느낌이다.

왜 그럴까? 나의 관찰로는 그들은 정당인이라는 칭호보다 운동가로 대접받는 것을 더 좋아하며, 그들이 혜택을 주고자 하는 지역 주민 속으로 과감하게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정치인이라는 칭호는 낯간지럽고 고결한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처럼 여긴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런 모습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듯하다. 시종일관 정치의 중요성, 정치 참여의 의미를 강조한다. 진정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다면, 그래서 사회적 하층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면 정당을 잘 만들어서 사회적 영향력을 키우고 집권의 가능성을 키우라고 독려한다. 그래야 진짜 '그들'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현실 속에서 진보 정당이 왜 약화되었는지의 문제를 지도자 없는 민주주의에서 찾았다. 지도자 없는 민주주의는 파벌주의의 늪으로 가라앉는다고 했다. 강력한 지도부의 부재로 인해 정파의 폐해가 무제한으로 허용되었다는 점을 개탄한다.

진보적 관점의 정치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강력한 합의 가운데 하나가, "강한 정당의 부재는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하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축소하고 선거를 중간 계급 위주의 것으로 만든다"라고까지 말한다. 그렇다면, 지도자 있는 민주주의를 위해 진보적인 정치인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사실 이 문제는 민주당의 고민이기도 하다. 강력한 지도부를 구성하고 특정인을 부각시키다보면 '이 당이 누구 개인 당이냐?' 하는 반발이 생긴다. 하지만 정파 연합 성격의 집단 체제로 운영하면, '그 당에는 왜 그렇게 인물이 없냐?'고 비판한다.

당을 대표할 만한 지도자를 분명하게 부각시키지 않으면, 그 당이 내세우는 가치가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정당 내부의 정파 간 권력 균형 문제는 내부 문제이고 강력한 지도부를 내세우는 문제는 국민과의 관계인만큼, 대중의 지지를 얻으려면 강력한 지도자를 내세우는 것이 우선 아닐까?

저자는 진보적 정치인과 정치 세력을 자극하지 않고 자신의 논점을 전달하기 위해 막스 베버의 고전적 저작, 혹은 사울 알린스키의 저술을 인용한다. 때로는 오바마의 감동적인 연설문을 인용하고, 민감한 문제에선 정치학의 건조한 문법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고 싶은 말은 다 했고, 지적할 만한 문제도 다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 정당 관계자들이 화를 낼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저자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우리 사회 진보파는 '운동성'을 강조하면서 정치를 멀리 하는데, 그러지 말고 민주주의에서 정치가 제공하는 엄청난 가능성에 주목하길 진심으로 촉구하고 싶다. 그들이 좋은 의미에서 제대로 '정치적'이 되었으면 좋겠고, 제발 정치적으로 성공하길 바란다."

"진보의 열정이 정치적 이성과 만나고 그것이 좀 더 넓고 풍부한 인간적 기초 위에서 성장해 갈 때 진보 정치는 매력을 갖게 될 것이다."

그는 진보 정치, 진보 정치인, 진보 정당이 '정치의 발견'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찾아가기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진보 정당에 몸담고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기성 정당 안에서 여러 가능성을 구현해보려고 고민했던 현실 정치인의 한사람으로써 이 책은 또 다른 성찰의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새로운 고민이 시작된다. 기성 정당에서 겪은 우리들의 경험과 진보 정당의 경험이 만날 수 있는 접점은 없는 것일까? 정치의 방법으로 힘을 조직하여 가난한 서민대중의 삶의 현실을 좀 더 적극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민주 정치 시대 '진보의 기준'이라면, 새로운 가능성을 함께 열어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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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라면 '조국 현상'이다.

조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를 둘러싼 관심이 뜨겁다. 불씨는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가 지폈다. 그가 묻고 조국 교수가 답한 <진보 집권 플랜>(오마이북 펴냄)을 보면서 많은 이들은 2002년의 '노무현'과 2007년의 '문국현'을 떠올렸다. '이제 조국인가! 오연호 대표가 조국 교수를 통해서 '어게인 2002(Again 2002)'를 시도하나?'

2002년 '노무현 신화'를 만든 '1등 공신'이자, 2007년 '문국현 바람'으로 적지 않은 시민을 홀린 오연호 대표 아닌가? 실제로 오 대표도 그런 속내를 굳이 감추지 않았다. 그는 <진보 집권 플랜>을 맺으면서 이렇게 솔직히 털어놓았다.

"독자들은 조국 교수의 '이후'가 궁금할 것이다. 2012년, 늦어도 2017년에 진보·개혁 진영이 집권하기 위한 전략을 설파한 그가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사실 나도 궁금하다. 설계자에 머물지, 시공자 역할도 할지, 혹은 감리자가 될지…. 그는 학자로서 진보·개혁 진영의 연대와 승리를 위한 '접착제' 역할을 하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가 한 걸음 더 나아가길 바란다."


▲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조국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21세기북스
정작 조국 교수는 <진보 집권 플랜>은 물론이고, 그 이후 쏟아진 수차례의 인터뷰에서 "(국회의원 같은) 정치가로 나설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어진 숱한 강연, 언론 노출과 최근에 칼럼을 묶어 펴낸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21세기북스 펴냄)를 보면서, 대중의 관심은 더욱더 커졌다. (제목만 보면 흡사 대권 출사표가 아닌가!)

지난 1월 13일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아들의 서울대학교 로스쿨 부정 입학 의혹을 둘러싼 소동에서 조국 교수가 보인 행보는 이런 관심을 더욱더 부채질했다. 조 교수는 이석현 민주당 의원의 의혹 제기를 놓고서, 이날 오후 1시경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완전한 오보"라고 반박해 여론의 흐름을 완전히 바꿨다.

2시에 서울대학교 측의 공식 해명이 예정된 상황에서 조국 교수가 개인의 트위터를 통해서 '진실'을 알린 것이다. 이를 놓고 보수, 진보 양쪽의 많은 이들은 "사실상 정치가와 같은 행보"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동아일보>와 같은 보수 언론은 "조 교수가 비판했던 폴리페서와 다를 게 뭐냐"는 취지의 논설위원 기명 칼럼을 싣기도 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에 대항할 만한 뚜렷한 진보·개혁 세력의 2012년 대선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조국 교수는 과연 오연호 대표의 바람대로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인가? 그는 지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프레시안 books'가 <진보 집권 플랜>,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의 행간에 숨은 그의 진심을 물었다.

다음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시 관악구 서울대학교 조국 교수의 연구실에서 2시간에 걸쳐 진행된 인터뷰의 주요 내용이다. 인터뷰는 전홍기혜 편집부국장(정치팀장), 강양구 문화팀장이 동시에 진행했다.


▲ 조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이것은 '조국 현상'이다

프레시안 : 최근에 조국 교수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보자면, '조국 현상'이라고 이름을 붙여도 이상할 게 없어 보입니다. 대중의 관심을 실감하십니까?

조국 : 일단 온갖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을 받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남성들을 상대로 한 패션 잡지라는 데서 인터뷰 요청이 왔어요. 또 미용실에 비치되어 있을 법한 영어 제목의 패션 잡지에서도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물론 인터뷰를 거절했어요. 많이 당혹스럽더군요.

10년 전에 서울대학교 교수가 막 되고 나서, 한 유명한 남성 양복 회사에서 양복 모델을 제의한 적이 있었어요. 그 때 아주 당혹스러웠었는데…. (웃음) 10년 만에 비슷한 당혹감을 느꼈습니다.

프레시안 : 이런 대중의 관심이 솔직히 어떻습니까?

조국 : 부담스럽고 또 의아합니다. 사실 지금 내 행동이 갑작스러운 게 아니거든요. 오랫동안 진보의 입장을 취해왔고, 칼럼을 쓰고 책도 냈고, 사회 문제에 발언하면서 참여도 계속해 왔습니다. 사실 이번에 나온 두 권의 책도 오래 전부터 준비해온 거고요. 그런데 왜 지금 이럴까, 한 편으로는 의아하고 또 부담스럽습니다.

최근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 활동하는 한 친구가 강연 요청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루 전에 광주에서 강연이 있었던 터라서, 도저히 갈 엄두가 안 나는 자리였어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지금의 내 모습을 잘 비유하는 것 같아서 소개하려고 하는데요.

"지금 한국 사회, 또 진보 진영은 부흥회가 필요하다. 그런 부흥회에서 예수가 오기 전까지 메시아의 도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도록 설파하는 전도사 역할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 부흥회에서 기도발 잘 받는 전도사가 '할렐루야!'를 외치는 일을 지금 조국 교수가 해야 한다."

그 얘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 그래! 그런 전도사가 딱 내 역할이다.' 이렇게 수긍을 하면서도 여전히 의아합니다. 사실 그런 전도사의 역할은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 해왔어요. 아까 말했듯이 신문 칼럼도 쓰고, TV 토론 프로그램도 나가고, 책도 내고…. 최근의 폭발적인 관심은 의외입니다.

프레시안 : 이런 관심의 이유를 나름대로 생각해 보셨나요?

조국 :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첫 번째는 내가 가진 약간은 모순되는 스펙(specification)이겠지요. 영남 출신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나와서 미국 유학을 다녀와서 학벌의 정점인 서울대학교 로스쿨 교수를 하고 있는…. 보통의 한국 사람이라면 모두 바라는 스펙을 다 가지고 있는 자가 진보적 이야기를 한다?

프레시안 : 한 가지를 더 추가해야 할 것 같아요. 요즘 시쳇말로 '우월한' 외모…. (웃음)

조국 : 네, 그것도 한 가지겠지요. (웃음) '강남 좌파'라는 나한테 붙은 수식어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대중이 원하는 스펙을 가진 자가 좌파인데 대한 호기심이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저 인간이 무슨 얘기를 하나 들어보자, 이런 식의 관심으로도 이어지는 것 같고요.

다른 하나는 지지부진한 현실 정치 탓이겠지요. 여론조사를 해보면,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30% 이상의 지지를 얻는 상황에서, 범야권의 대선 주자들의 지지율은 낮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적으로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장외에 있는 내가 상대적으로 조명을 받는 것이지요.

덩달아 조·중·동과 같은 보수 언론으로 대표되는 보수 진영은 '쟤가 어쩌려고 저러나' 하면서 나를 잠재적인 위협으로 놓고 견제를 하는 것 같아요. 사실 <진보 집권 플랜>은 진보적인 성향의 독자도 많이 사 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보수적인 성향의 독자도 많이 사본다고 들었습니다.

아웃사이더의 출현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방금도 얘기했습니다만, 한국 정치의 중요한 '주기적 현상' 가운데 하나가 '아웃사이더의 출현'을 기대하는 정치 심리입니다. 그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을 따져보면 정당 체제가 미발전한 상황일 것입니다. 자신의 욕구를 대변할 정당을 갖지 못하는 사회가 자신을 대표할 누군가의 출현을 기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요.

또 여기에는 2002년의 '노무현 신화'도 한몫 했습니다. <진보 집권 플랜>의 인터뷰어인 오연호 대표가 계속해서 조국 교수에게 현실 정치로 나설 것을 권한 것도 '어게인 2002'를 해보자는 것일 텐데요. 일단은 이렇게 '아웃사이더의 출현'을 기대하는 정치 심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국 : 한국 사회의 정당 체제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한 대목입니다. 한나라당, 민주당 모두 등록 당원을 확인하지 못합니다. 이러니 민주노동당, 진보신당과 같은 진보 정당을 제외한 한나라당, 민주당은 전 당원 투표도 할 수 없어요. 당연히 당내 민주주의도 못하지요.

사실 한국 정치의 토양 자체가 그렇습니다. 진보 성향이든 보수 성향이든 시민들이 정당에 가입하는 일이 드뭅니다. 진보 성향이라서 선거 때마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에 표를 주는 시민도 정작 당원이 되는 경우는 적어요. 마찬가지로 개혁 성향이라서 민주당의 열정적인 지지자인데도 민주당의 당원이 되지는 않습니다.

유럽 같으면 어릴 때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등에서 특정한 정치 성향을 표방하는 동아리에서 활동하다가, 대학 입학과 동시에 당원으로서 활동을 합니다. 특정 당원으로서의 활동이 아주 자연스럽지요. 그러나 한국 사회는 그렇지 않아요. 아마 특정 정당에 가입하면 적을 만들고 심지어 생명, 재산의 위협을 받던 권위주의 정권, 전쟁의 경험 탓이겠지요.

이렇다 보니, 과거에 그랬듯이 언제든지 정당 바깥의 인물이 기성 정당의 권력을 뒤집을 수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명박 대통령도 한나라당 바깥에서 온 사람 아닙니까? 여의도 바깥 출신으로 한나라당에 들어와 결국은 대통령까지 되었으니까요. 민주당이 계속해서 정운찬 전 총리,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 등을 데려오려고 했던 것도 이런 구조 탓이고요.

요컨대, 정당과 대중이 유리되어 있는 상황이 계속되기에 한국의 정당은 내부적으로 리더를 키우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프레시안 : 그런 상황은 극복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조국 : 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쉽게 바뀔 것 같지도 않아요. 한국의 정당을 학술 용어로 '지지자 정당'이라고 부릅니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처럼 진성 당원을 갖는 '진성 정당'과 다르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난다고 한국의 정당 체제가 지지자 정당에서 진성 정당 체제로 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진성 정당을 대표하는 유럽의 사회민주당, 노동당은 가입률이 90% 이상 되는 노동조합에 기반을 두고 있어요. 노동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다시 사회민주당 등에 가입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노동조합의 가입률이 고작 10%에 불과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진성 정당이 가능할까요?

모험적인 화두를 던지는 것이라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진성 정당을 고집하는 진보 정당도 영향력을 확대하려면 지지자 정당으로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이 한 10년간 진성 정당 실험을 했지만 성과가 미미해요. 앞으로 10년 더 하면 한국에서 진성 정당 체제가 뿌리를 내릴까요? 아닙니다.

한 10년 해서 그 사회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제도는 앞으로 10년을 더 한다고 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낮아요.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이 지지자 정당으로서의 면모를 강화한다면, 훨씬 더 다양한 활동을 융통성 있게 해나가고, 그에 따라 당세도 더 빨리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보 정당이 이 부분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어요.

대중의 열망에 주목하라!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그런 결론대로라면 한국 정치에서 아웃사이더의 출현을 기대하는 정치 심리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계속될 것 같습니다.

조국 : 그렇습니다. 사실 지금의 한국의 정치 구조에서는 그런 심리가 자연스럽습니다. 사실 진성 정당이 정착된 외국 같으면 5선, 6선, 7선 의원이 수두룩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런 의원이 시민의 이익을 잘 대변하고, 정부의 행정을 견제, 감시하는 일에도 능하니까요.

그런데 한국은 어떻습니까? 총선 전만 되면 각 당이 이른바 '개혁 공천'이라는 것을 해요. 외부 인사들로 위원회를 만들어서, 현역 의원 30% 정도의 살생부를 작성합니다. 이 과정에서 4선 이상의 경험 많은 정치인이 대거 공천을 받지 못해요. 그리고 정치 경험이 일천한 외부 인사들이 공천됩니다. 시민은 이런 개혁 공천에 열광하고요.

이런 모습이 옳건, 그르건 간에 시민들이 한국 정치에 이렇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이 중요해요. 시민은 (소수의 정당 리더를 제외하고는) 4선 이상 의원을 썩었거나 무능하다 생각합니다. 경험은 적더라도 초선 의원이 시민의 목소리에 귀도 기울이고, 일도 열심히 하리라고 기대합니다.

이런 상황은 한국 정치에서 앞으로도 오랫동안 반복될 것입니다. 매번 선거 때마다 '물갈이', '수혈' 같은 얘기가 나올 거예요.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런 맥락에서 나는 최장집 교수(고려대학교 명예교수)와 생각이 다릅니다. 정당 정치가 아주 중요하다고 보는 그의 견해에는 나 역시 공감합니다만….

프레시안 : 최장집 교수의 어떤 주장에 이견이 있습니까?

조국 : 정당 정치는 물론 중요합니다. 대중의 희망, 고통이 정당으로 수렴이 되어서 대표되지 못하면 대중은 열광과 실망을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정치적 조울증을 앓다가 결국에는 정치 자체에 환멸을 느낄 수가 있어요. 이런 점에서 정당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최장집 교수의 주장은 맞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유럽처럼 사회의 각종 갈등이 정당으로 수렴해서 논의되는 정당 체제가 등장할 가능성은 당분간은 아주 낮아요. 앞에서 얘기한 유럽과는 다른 한국 정치의 특징이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평가도 그런 맥락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최장집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문제가 없다'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대중의 정서는 다릅니다. 선거도, 의회도 돌아가지만 대중들은 '한국의 민주주의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상당수 대중은 이명박 정부가 정당 체제 안으로 수렴되지 못한 여러 가지 사회 갈등에 대응하는 방식을 보면서, 그간 한국 사회에 축적된 민주주의 성과가 파괴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2008년의 촛불 집회도 이런 맥락에서 살펴야 그 의의를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요약하자면, 나는 정당 정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국 정치, 또 시민의 정치 행태를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의 욕구, 예를 들자면 아웃사이더의 출현을 기대하는 심리 등에 주목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프레시안(손문상)

'정치인' 조국의 가능성은?

프레시안 : 방금 지적한 대로 '아웃사이더의 출현'을 기대하는 심리에는 현실 변화에 대한 대중의 욕구가 들어 있습니다. <진보 집권 플랜>,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를 꿰뚫는 핵심 메시지는 이런 대중의 변화 욕구를 응집하는 역할을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의 정치인이 해야 한다는 것일 텐데요.

그런데 정작 책이 나오고 나서의 반응은….

조국 : 네가 해봐라! (웃음)

프레시안 : 그렇습니다. (웃음) 실제로 두 권의 책을 내고 잇따른 강연을 하는 등의 행보를 보면,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많은 이들이 조국 교수가 사실상 정치인의 길을 걷고 있다고 믿는 게 크게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일부 보수 언론은 '폴리페서' 딱지를 붙이려는 시도도 했고요.

조국 : 웃기는 딱지 붙이기니까, 폴리페서 얘기부터 하지요. 사실 폴리페서의 정의 자체가 강의, 연구는 하지 않고 정치권 언저리에만 맴도는 교수를 비판하는 말입니다. 나는 그런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에요. 사실 서울대학교에서 폴리페서를 규제하는 안을 만드는 서명 운동을 주도한 게 바로 나거든요.

정치 활동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얘기하겠습니다. 대학 교수는 법적으로 정당원이 될 수 있고 출마 역시 보장됩니다. 그리고 지식인의 정치 참여, 사회 참여는 도덕적 의무이기도 하고요. 법과 제도를 연구하는 학자가 사회 현실과 무관한 연구를 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지요. 나는 소속 정당이 없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항상 넓은 의미의 정치를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다만, 이런 정치와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분명히 다릅니다. 나한테 쏠리는 관심은 이 부분입니다. 직업 정치인을 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장내의 정치인 중에도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겠지요. '경쟁자가 등장했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요. 한 번 더 확실히 말하자면, 또 국회의원을 하는 친구 선후배들에게도 이미 말했지만, 나는 직업 정치인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 오는 재·보궐 선거는 물론이고 2012년 4월에 (또 대선에도) 출마하는 일 따위는 없습니다. 내가 거짓말을 그렇게 허투루 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게 순진한 사람도 아닙니다.

'출마 안 한다' 했다가 '출마 한다' 이렇게 번복해서 우스운 꼴이 되는 상황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만약에 내년 4월에 출마할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여러 가지 수사적 표현을 썼겠지요. 그렇다면, 직업 정치인을 할 생각도 없으면서 도대체 왜 이런 행보를 하느냐? 한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장내에서 현실 정치를 하는 직업 정치인 특히 진보 진영의 정치인을 자극하기 위해서입니다. 정치인 중에서 옛날에 한솥밥을 먹었던 이들이 많습니다. 나는 학교로, 그들은 국회로 가면서 각자의 역할을 잘하자, 이렇게 다짐했었지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직업 정치인도 아닌데 이렇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너희들은 뭘 했느냐!"

이렇게 장내의 정치인을 자극하는 일 외에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아까 전도사 얘기를 했지요?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변화의 열망을 담은 도가니를 끓이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이유로 정당 내부의 사람이 나서면 도가니를 끓이는 게 어려워요. 그게 옳건 그르건 간에, 현실이 그렇습니다.

정치인이 나서서 도가니 끓이기를 시도하자마자 곧바로 정파적 이익을 도모하려는 속셈이 있을 것이다, 한 자리를 하려는 의도다 등의 온갖 의혹과 비판이 난무합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당연히 도가니가 끓지 않지요. 나처럼 2012년 4월에 출마하지 않는다, 이런 말을 할 때만 대중은 귀를 기울입니다.

사실 그간 장내에서 정치를 하는 지인들이 (국회로) 들어오라는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82학번의 안민석 의원은 <오마이뉴스>에 실명 편지를 써서 공개 권유를 하기도 했고요. 답은 안 했습니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도가니 끓이기를 염두에 두면, 내가 현실 정치로 뛰어드는 게 그다지 매력이 없습니다.

몇 가지 얘기를 해볼까요? 내가 출마를 결심하는 순간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 5개 정당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제 목소리는 5분의 1로 줄어듭니다. 지금은 내가 말을 하면 다섯 개 정당의 정치인이 모두 귀를 기울여요. 하지만 출마하는 순간 저는 한 당에 소속된 정치인일 뿐이지요.

또 299명의 국회의원 중 한 명일 뿐입니다. 물론 조국 개인은 국회의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솔직히 열심히 하면 국회의원 배지는 달 수 있지 않겠어요? (웃음) 하지만 그렇게 내가 배지를 다는 게 과연 조국 개인과 진보·개혁 진영 전체를 위해서 좋은 건가? 따져보면 마이너스(-) 아닐까요?

대중들이 선망하는 스펙, 서울대학교 교수, 눈에 띄는 외모, 특이한 이름 등 여러 가지 것들이 겹쳐서 실제 실력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주 운이 좋은 경우입니다. 이런 힘을 잘 써야겠지요. 그런데 국회의원을 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이런 힘이 다 없어질 것입니다.

프레시안 : 얘기를 듣고 보니 노무현 정부 때 한 시민운동가를 인터뷰하면서 들었던 얘기가 생각납니다. 매번 선거 때마다 정치가 뺨치는 활동을 하면서, 출마를 안 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그 시민운동가가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장외에서 총리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데, 배지 달고 일개 국회의원이 왜 되느냐?" 표현은 다르지만, 비슷하게 들립니다만….


ⓒ프레시안(손문상)
조국 : 나는 총리 얘기는 안 했습니다. (웃음) 그건 그 시민운동가의 얘기고요. 다만 맥락은 비슷하네요. 친구, 선후배 중에서 정치인들이 많으니, 오랫동안 가까이서 한국 정치가 실제로 돌아가는 구조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나한테 맞으면서도 한국 정치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역할을 찾은 거지요.

그래서인지 멀리서 보는 사람들과 달리, 아주 친한 정치인들은 나를 경계하지 않습니다. 내가 자기들의 경쟁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내가 하는 여러 가지 조언을 빠르게 수용합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런 외부의 조언자 역할이 필요할 테고, 나는 그런 역할을 할 생각입니다.

프레시안 : 아까 세 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는데요.

조국 : 네,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습니다.

오랫동안 온 몸과 마음을 다해 한국 사회의 진보와 개혁을 위해 헌신해 온 분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래 나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조명도가 강해지고 기대가 높아지는 것은 이분들을 염두에 두면 참으로 면구하고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나는 이런 분보다 한 발자국 뒤에 서 있고 싶습니다.

사실 나는 세속적 기준에서 볼 때 가진 것이 많습니다. 과거 잠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옥살이를 했지만, 이는 벌충하고도 남을 만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보다 더 많이 가지겠다고 나서는 것은 과욕입니다. 학자로서의 본분을 지키면서, 진보·개혁 세력의 성장을 돕는 데서 보람을 찾을 생각입니다. 이상의 세 가지 이유 때문에 나의 향후 진로 중 직업 정치인으로서의 변신을 가장 마지막 선택지로 놓고 있는 것입니다.

프레시안 : 조국 교수의 그런 애매한 행보가 현실 정치인의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영향력은 유지하는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을 수 있습니다.

조국 : 물론입니다. 하지만 나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애초부터 의도한 애매한 행보'를 하고 있어요. 이럴까 저럴까 하다가 결과적으로 애매한 행보를 하는 게 아닙니다. 이런 '의도한 애매한 행보'를 앞으로도 계속 할 것입니다. '의도한, 계획한 애매함'으로 진보 진영 전체의 영향력을 높일 수 있다면요.

프레시안 : 방금 본인이 가지고 있는 실력보다 목소리의 힘이 크다,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평소 그런 부분을 많이 의식합니까?

조국 : 당연하지요. 나에 대한 찬사, 기대에 거품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소리를 곧이곧대로 듣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사실 모든 공인은 어느 정도 거품이 있습니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실력을 쌓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일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거품만으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테니까요.

왜 대중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일까, 이런 질문을 해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요. 얼굴이 잘 생겨서, 여성 팬이 많아서…. (웃음) 그런 부차적인 것들을 제거하고 핵심에 남는 것은 아무래도 콘텐츠라고 생각합니다. 새롭고 다른 메시지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는 것이지요. 그것에 몇 가지가 덧붙여 있는 게 지금의 나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시대정신 혹은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가 바뀌었는데 거기에 대한 콘텐츠가 없다면 대중에게 외면을 받고 추락하는 건 한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로스쿨 부정 입학 의혹, 트위터로 대응한 까닭은…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최근에 조국 교수가 가진 목소리의 힘을 유감없이 보여준 예가 바로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아들의 서울대학교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부정 입학 의혹에 대한 대응입니다. 사실상 조국 교수가 트위터에 올린 해명 때문에 민주당의 무책임한 의혹이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대응을 놓고 비판적인 목소리도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본부의 공식 입장 표명이 오후 2시에 예고된 상황이었는데, 1시간 먼저 개인 트위터에 해명을 올린 이유가 무엇입니까?

조국 : 네, 비판은 잘 알고 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인데…. 민주당 이석현 의원이 의혹 제기를 한 날 오전에는 계절학기 수업을 하고 있었어요. 수업이 끝나고 보니 서울대학교 전체에서 난리가 났더군요. 이미 로스쿨 차원에서는 오전에 해명을 했고, 그 해명을 바탕으로 서울대학교 본부 발표가 오후 2시에 예정돼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 (서울대학교 단과 대학) 학장단에서 나를 불렀어요. 자칫하면 이 의혹이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사태처럼 될까봐 걱정이라는 거예요. 지금 상황에서는 서울대학교가 공식 해명을 하더라도, 대중은 믿지 않을 거라는 얘기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서울대 로스쿨에 강남 출신, 부자 출신 학생이 많은데 이런 불신까지 쌓이면 악재라는 거지요.

그러면서 학장단에서 나한테 부탁을 했어요. "조국 교수가 (서울대학교 본부 해명과는 별개로) 진실을 알려주면 좋겠다!" 그래서 '나도 진실이 어떤지 모르는데 어떻게 그냥 학교 말을 믿느냐'며 여러 차례 확인을 했어요. 확인을 했더니 이석현 의원이 제기한 의혹이 분명히 사실이 아니더군요. 그렇게 확인을 하고도 고민을 했습니다.

사실 나는 가만히 있어도 되는 일이니까요. 만에 하나 (내가 확인을 제대로 못해서) 나중에 안상수 대표의 아들이 부정 입학으로 드러나면 나도 끝나는 것 아닙니까? 고민하다가 결국 위험 부담을 지고 트위터에 진실을 올린 것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았다면, 정말로 조기 진화가 안 되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프레시안 : 서울대학교 로스쿨의 입시가 다른 로스쿨과 비교했을 때 정량 평가(법학적성시험(LEET), 학부 성적 등)보다 정성 평가의 비중이 높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조국 : 사실 서울대학교 로스쿨에 강남 출신, 부자 출신 학생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애초에 제도 자체가 잘못 짜인 탓이지요. 하지만 현재의 제도 하에서 이번 의혹과 같은 부정 입학은 불가능합니다. 3명이 면접관으로 참여하는데, 응시 학생의 부모가 누구인지 애초에 알 수 없거든요. 그러니까 면접 과정에서 부모 때문에 결과가 뒤집히는 일은 상상할 수 없지요.

저번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출신을 뽑은 적이 있습니다. 그건 의도적으로 뽑은 거예요. 그 학생을 제대로 교육시키면 미술 전문 변호사가 될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그렇게 특이한 경력의 소수자를 뽑는데 정성 평가가 활용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공부 잘하는 학생을 뽑습니다. 서울대학교의 조직 문화를 염두에 두면 짐작이 되지 않습니까?


ⓒ프레시안(손문상)

진보·개혁의 통합·연대 가능한가?

프레시안 :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진보 집권 플랜>과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의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는 대중의 변화 열망을 담을 수 있는 진보·개혁 세력의 통합 또는 연대입니다. 그러나 현재 야권의 모습만 보면 과연 2012년에 진보·개혁 세력이 함께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조국 : 먼저 질문에 답하기 전에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게 있어요. <진보 집권 플랜>이 나오고 나서 좌우 양쪽의 독자들, 특히 진보 성향의 독자들이 오해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책은 '2012년'에 진보·개혁 세력이 집권을 하려면 어떤 세력의 연대가 필요한지, 또 그 세력이 집권하면 2012년부터 5년간 어떤 정책을 하는 게 필요하고 가능할지 모색한 책입니다.

2017년 혹은 2022년을 염두에 둔 책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일단 현재 상황에서 2012년에 진보 정당이 단독 집권하는 게 가능할까요? 불가능합니다.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요? (웃음) 그렇다고, 지금처럼 분열된 상황이라면 민주당 단독 집권도 쉽지 않습니다. 그건 민주당, 진보 정당의 정치인들이 아주 잘 알아요.

그렇다면 보수 세력의 정권 재창출을 막고, 한국 사회에서 진보적인 정책을 펴려면 2012년에 민주당과 진보 정당 간의 연대는 불가피합니다. 더구나 그렇게 연대를 해서 집권하면 진보 정당에도 권력의 지분이 있기 때문에 국정 운영에 참여할 수가 있어요. 진보 정당이 국정 운영의 노하우를 쌓을 수 있습니다.

<진보 집권 플랜>에서 내놓은 정책이 '개량적'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연합 정부 하에서 민주당과 진보 정당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정책이 화끈하지는 못할 테니까요. 다만 내가 내놓은 여러 가지 정책을 공동으로 추진하는 것만으로도 한국 사회가 진보적인 방향으로 변하고, 더 나아가 진보 정당의 당세가 커지는데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것입니다.

프레시안 : 여기서 말하는 진보 정당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을 전제로 한 것이지요?

조국 : 그렇습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은 필수입니다. 그렇게 통합 진보신당이 만들어지고 나서 민주당과 연대를 하는 모습이 내가 생각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입니다. 개인적으로 두 진보 정당의 통합을 위해서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민주노총 관계자 등을 만나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프레시안 : 한 번 더 묻겠습니다. 그런 통합+연대가 가능할까요?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의 통합만도 쉬운 문제가 아닐뿐더러,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의 선거 연합은 더 어렵습니다. 총선만 놓고 봐도, 개별 지역구에 출마할 정치인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민주당의 대폭적인 양보가 필요한데, 중앙당의 권위도 약한 상황에서 그런 게 가능할까요? 최근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가 김희철 민주당 의원의 지역구인 관악(을)을 지역구로 정하면서 예고된 갈등은 대표적인 사례인데요.

조국 : 현 상태로는 비관이 앞서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요. 통합 진보 정당을 전제하고 예를 들어봅시다. 통합 진보 정당과 민주당이 2012년 총선에서 선거 연합을 하려면 전제 조건이 필요할 것입니다. 최소한 민주당이 심상정, 노회찬, 유시민, 이정희 등 진보·개혁 정당의 핵심 정치인이 출마하는 수도권 지역구에는 후보를 내지 않아야지요.

또 울산, 창원 더 나아가 광주·전라남도의 몇 개 지역구를 진보 정당에 양보하는 안까지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되어야 비로소 민주당, 진보 정당이 함께 선거를 치를 수 있어요. 하지만 이게 말이 쉽지, 도처에 장애물이 널려 있습니다. 지금 민주당에는 DJ(김대중)와 같은 당내에서는 사실상 '왕'이었던 리더가 없잖아요?

민주당이 이런 결정을 내리려면 치열한 당내 투쟁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이 그러한 결단을 하더라도 지역구의 현역 의원, 혹은 출마를 준비하는 정치인이 과연 그 결정을 따를지도 의문입니다. 광주·전남의 경우에는 복당을 전제로 한 무소속 출마가 뻔히 예상됩니다. 수도권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상황을 떠올리면 통합, 연대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한 가지 가장 큰 이유는 통합, 연대하지 않고서는 2012년 두 번의 선거에서 야권이 모두 다 패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권의 정치인은 누구나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정치인은 자신한테 닥쳐올 불이익이 명확할 때 행동합니다. 결국은 공멸할 게 뻔한 상황에서 적당한 조건이 주어진다면 정치인은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조건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그게 희망을 버리지 않는 두 번째 이유인데. 바로 대중의 열망입니다.

이른바 '촛불 시민'이 선거 때마다 겪는 문제가 바로 변화에 대한 자신의 열망을 온전히 담을 정치 세력의 부재입니다. 지난 지방 선거까지 수차례나 이런 경험을 하면서, 시민의 기대치는 최고조에 이른 상황입니다. 이런 대중의 열망을 계속 정당들이 외면한다면 반드시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문성근 씨가 주도하는 '100만 민란 프로젝트'와 같은 방식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통합, 연대의 과제를 정당에만 맡겨두지 말고 시민들이 밖에서 압박을 할 필요가 있어요. 나 역시 봄부터 문성근 씨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런 시도를 본격적으로 해볼 생각입니다.

또 2012년 선거를 야권이 연대해서 치루려면 상설 기구를 마련해야 할 거예요.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두는 내가 그런 기구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기구를 마련하고 또 그 기구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실천을 모색할 예정입니다.

한 마디만 덧붙일게요. 아까 통합 진보 정당은 야권 연대의 전제 조건이라고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에 민주노총 관계자한테 이런 얘기를 했어요. "민주노총의 집단 결의를 통해서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이 통합할 때까지 당원 계좌 이체를 3개월 끊자!"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의 당원 중에는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이 많으니 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행동을 통해서 당원들의 통합 열망을 보여주고, 또 진보 정당이 행동하도록 압박하자는 것이죠. 너무 심한 발상인가요? (웃음) 아무튼 이런 극단적인 압박을 해서라도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은 꼭 통합해야 합니다. 한 번 더 강조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2012년에는 공멸입니다. 공멸!


ⓒ프레시안(손문상)

진보 세력, 정당인가? 도인인가?

프레시안 : 그런 주장을 놓고 다른 비판도 있습니다. 진보·개혁 세력의 통합·연대는 사실상 민주당으로 상징되는 개혁 세력의 집권에 진보 세력이 들러리를 서라는 주문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입니다. 과연 개혁 세력이었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노동자·농민·서민을 위한 정부였는가 또 지금의 민주당은 그런가, 이런 의문이 그런 주장에는 깔려 있습니다.

최근에 좌파 지식인 김규항 씨가 <한겨레>에 <진보 집권 플랜>의 제목을 놓고 "시민 집권 플랜" 혹은 "민주 집권 플랜"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바로 보기)

조국 : 네, 김규항 씨의 글은 잘 읽었습니다. 공식적으로 답을 할 생각은 없어요. <한겨레>에서도 반론을 쓸 생각이 있는지 물어왔었는데…. 나한테 이른바 '진보 참칭죄'를 적용했는데요. (웃음) 계급 정치를 강조하는 '정통 좌파'의 입장에서는 나와 같은 '연합 정치'를 주장하는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진보'라는 단어는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진보'라는 단어를 쓴 것이 양식 있고 없고의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그 글에서 김규항 씨가 지적한 문제의식의 핵심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진보·개혁 얘기를 하면서 권력 교체에만 몰두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사라지고 개혁 정부가 들어서기만 하면 과연 노동자·농민·서민의 삶이 나아질 것인가? 이 문제는 항상 염두에 둬야지요.

물론 김규항 씨와 나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좀 거칠게 요약하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 진보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답 자체가 다른 것 같아요. 김 씨가 강조하는 반자본주의적 실천이 중요하지만 그와 병행하여 해결해야 할 일은 아주 많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시다. 이제 한국의 진보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정당이냐 컬트 집단이냐, 정당이냐 도인 집단이냐?

컬트, 도인 집단은 자기의 컬트 문화나 도학 이론을 위해서 극소수파로 살아도 상관없어요. 그냥 자신의 문화, 이론을 지키면서 외롭게 살다가 죽으면 됩니다. 또 압니까? 사후에 그런 문화나 이론이 조명을 받아서 최종적으로는 승리할 수도 있지요? 그렇게 살려는 이들을 비판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하지만 정당은 다릅니다. 정당은 권력을 잡아서 세상을 바꾸려는 집단 아닙니까? 당연히 지금 가장 대중이 관심을 쏟는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입장을 내놓고 행동으로서 권력을 잡을 자격이 있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선거가 최대 쟁점이 되는 2012년에는, 지금 대중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포착해서 그에 책임 있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나는 그런 맥락에서 통합·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우리는 2022년쯤에 권력을 잡겠다', 이러면서 2012년에 아무 것도 안 하면 2022년은커녕 그 전에 대중에게 외면을 받고 사라질 것입니다. 진보 정당이 정권 교체에 한몫하고 보건복지부, 농림수산식품부,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정권 운영에 참여할 때, 마치 2004년에 그랬던 것처럼 대중의 주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기초로 의미 있는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습니다.

물론 DJP(김대중-김종필) 연합 정권이 깨졌던 것처럼 정권을 획득하고 나서 연정이 깨질 수도 있어요. 대통령제에서 그럴 가능성은 더욱더 커집니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 DJ도 JP(김종필)와 연합했을 때야 비로소 정권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야권이 정권을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1997년을 보면 명확하지 않나요?

노무현의 유언에 답할 때

프레시안 : 사실 야권 연대를 가로막는 아주 중요한 장애물 중 하나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입니다. 특히 유시민 씨와 국민참여당 지지자 등은 노무현 정부의 과(過)를 인정하지 않아요.

조국 : 답답한 부분입니다. 노무현 정부의 실정을 많이 비판하기도 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故 노무현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중에서 대중과의 공감 능력이 가장 탁월했던 지도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보였던 그런 공감 능력은 앞으로 진보, 보수를 떠나서 지도자가 꼭 갖춰야할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덧붙이자면 이명박 대통령에게 없고, 박근혜 대표에게 있는 것도 바로 이 공감 능력입니다. 그래서 박근혜 대표가 야권이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닌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에 대한 호감과는 별개로 노무현 대통령과 노무현 정부 정책의 문제점은 냉정히 평가하고 단호히 비판해야 진보·개혁 세력이 노무현 정부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런 반성을 가장 제대로 한 당사자가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었어요. 비극적인 서거로 사실상 유언이 되어버린 두 권의 책이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하고 나서 쓴 <진보의 미래>(동녘 펴냄)와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오연호 지음, 오마이뉴스 펴냄)가 그 책입니다. 퇴임 이후에 노 대통령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밟고 가라. 나는 노동, 복지에서 실패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대응을 잘못했다. 복지 정책도 좀 더 밀어붙여야 했다. 자유무역협정(FTA) 역시 잘못된 선택이었다!'

이게 바로 투신하기 전에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자에게 남긴 유언입니다. 자신의 지지자에게 메시지를 던진 것입니다. 친노(親盧) 세력이 민주노동당, 진보신당과 같은 진보 정당이 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이런 노무현 대통령의 유언에는 책임 있는 답을 해야 합니다. 추상적으로 얘기하자면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이 필요합니다.

바로 유시민 씨가 그런 유언을 받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유시민 씨가 안 하면 결코 정리가 안 될 테니까요. 친노 세력이 노무현 대통령의 유언에 책임 있게 답한다면, 야권 연대에도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것입니다.

386 세대의 시대적 소명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다른 주제로 넘어가기 전에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두 권의 책에서 '386 세대'의 시대적 소명을 유난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 <진보 집권 플랜>도 따지고 보면 그 세대의 특정한 네트워크 속에서 기획되고 만들어진 책입니다. 이런 점을 보면서, 혹시 '세대론의 함정'에 빠진 것은 아닌가, 하는 인상도 받습니다.

거칠게 말하면 이런 것입니다. 사실 386 세대라고 두루뭉술하게 말하지만 그 안에는 얼마나 큰 차이들이 있습니까? 당장 정치인만 놓고 보더라도 같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출신 386 정치인의 모습은 극과 극입니다. 현실이 이런 데도, 조국 교수가 연대·통합을 당연한 것처럼 말하는 배경에는 혹시 그것의 주체가 386 세대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조국 : 그러니까, 예전에는 다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같은 조직에서 운동을 했었던…. 또 다 친구고 선후배니까요? (웃음)

프레시안 : 네, 그렇습니다. (웃음)

조국 : 어떤 지적인줄 알겠습니다. '세대론의 함정'이라…. 나는 '386 세대'라는 말은 안 좋아합니다만 그냥 쓰기로 하지요. 386 세대는 아주 복잡하고 모순적인 집단입니다. 당장 정치적으로는 진보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보수지요. 30대 이하 세대들이 보기에는 분명히 극복해야 할 지점이 많을 것입니다.

다만 386 세대는 다른 세대와 달리 집단적 승리의 경험이 있습니다. <진보 집권 플랜>은 바로 그 386 세대의 '옆구리를 꾹 찔러서' 한 번 더 변화에 대한 열망을 자극해보려는 의도에서 쓰인 책입니다. 조국, 오연호가 386 세대로서의 자신의 경험과 한계를 분명히 드러낸 건 이런 집필 의도를 염두에 두면 당연한 것일 테고요.

<진보 집권 플랜>을 작업하면서 항상 염두에 둔 것은 분명한 주체입니다. '이제 40대 (후반)에 접어든 우리 386 세대는 지금 이런 고민을 하면서, 이렇게 하려고 한다', 말하면서 20대, 30대 후배 세대에게 '손을 내민' 책입니다. 내가 10대, 20대, 30대가 아닌데, 10대, 20대, 30대인 것처럼 얘기를 할 수는 없었어요.

더구나 아무래도 지금 386 세대가 후배 세대와 비교하면 사회적 영향력이 큽니다. 또 이 책에 실린 여러 가지 대안도 좀 더 성숙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후배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다른 386 세대를 자극해 보려고 한 것입니다. 이런 게 변화의 불씨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사실 386, 386 하지만 이제 386 세대도 금방 50대입니다. 55세가 되면 정치적, 사회적으로 은퇴를 준비하고 제2의 삶을 계획할 나이에요. 그런 점에서 보면 386 세대의 정치적 역할은 앞으로 10년 정도밖에 안 남았습니다. 최소한 그 기간 동안 386 세대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하자, 이런 생각이 깔린 책이 바로 <진보 집권 플랜>입니다.

그렇다고, 386 세대가 더 늦기 전에 후배들을 가르치자, 이런 생각을 가지는 것도 아니에요. 내 책들도 누군가를 가르치려는 의도와는 무관합니다. 지금 20대, 30대의 고민, 분노, 주장을 담은 책은 조국이 아닌 다른 필자가 써야지요. 이제 조만간 지금의 30대, 20대들이 지금의 386 세대가 했던 역할을 하지 않겠어요?

서울대학교 분할+지방 국립대학교 강화

프레시안 : <진보 집권 플랜>에서는 서울대학교 분할과 지방 국립대학교 강화를 얘기했습니다. 의미심장한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조국 : 나는 학벌주의의 해체와 지방 분권의 강화를 위해서 지방 국립대학교의 강화가 핵심 고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방 국립대학교의 경우 등록금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공무원 시험 및 공기업 취업 시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을 적용해 우수한 지방 고등학교 졸업생을 모아야 합니다.

사실 198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지방 국립대학교(학생)의 자부심은 아주 높았습니다. 이를 기초로 또는 이와 병행하여 서울대학교를 개혁해야 합니다. 현재 서울대학교에는 인적 물적 자원이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서울대 폐지론'의 문제의식을 잘 알고 있지만, 현실적 방안은 '서울대 분할'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 제안에는 기존의 서울대학교가 가진 역량을 청산하는 방식이 아니라 보전, 계승되는 방식이 옳다는 판단도 깔려 있지요. 문과와 이과로 나누든, 학부대학과 대학원으로 나누건 서울대를 두 개로 쪼개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두 개로 분할된 서울대는 '명문 사립대학교', 강화된 지방 국립대학교와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레시안 : 사실 지금 한국 고등 교육의 가장 중요한 현안은 ① 학력 인플레를 야기하는 지방의 난립하는 사립대학교를 어떻게 할 것인지와 ② 서울대학교 법인화로 상징되는 국립대학교 법인화입니다. 법인화와 관련해서는 '대학 상업화'라는 논쟁적인 문제도 끼어 있고요. 이런 현안에 대해서 평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조국 : 지방 사립대학교는 사립대학교라고 하지만 반쯤은 국립대학교입니다. 국가의 재정 지원이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방 사립대학교가 제공하는 교육의 질에 대한 비판도 많습니다. 정부가 개입하여 지방 사립대학교의 구조 조정을 유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국립대학교 법인화' 자체가 '악'은 아닙니다. 다만 최근 날치기 통과된 '서울대학교 법인화법'과 같은 국립대학교 법인화 방안은 '악'에 가깝다는 게 내 판단입니다. 대학 운영과 학문 연구 방향에 대한 정권의 개입, 기초학문의 고사 등을 막을 장치가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형사법 전공자' 조국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평소에 '형사법 전공자 조국'에 대한 자부심을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정체성에 대해서는 대중의 관심이 덜합니다. 학자로서 어떤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 어떤 전망이 있습니까?

조국 : 형법은 인류 역사의 시작과 함께 등장한 법입니다. 그리고 형법학은 어떠한 행위가 범죄이고 그에 대해서는 어떠한 제재가 가해져야 하는지, 그리고 국가 형벌권을 행사하는 데는 어떠한 절차와 요건이 필요한지를 분석하는 학문입니다. 민법과 함께 가장 근본적인 법학 분야이지요. 그 점에서 학자적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주요 형법 관련 학회에서 상임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현재 두 가지 법학 서적을 준비 중입니다. 첫째는 2005년 출간했던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의 전면 개정판입니다. 위법한 자백 획득, 위법한 압수, 수색 등을 가장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장치가 이 법칙이거든요. 둘째는 <헌법적 형법학>(가제)이란 신간으로, 한국 형법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과잉 범죄화'와 '과잉 도덕주의' 경향을 비판하는 책입니다. 올해는 이 두 책 준비에 매진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남은 질문들


▲ <진보 집권 플랜>(오연호·조국 지음, 오마이북 펴냄). ⓒ오마이북
프레시안 : 이 인터뷰는 '프레시안 books' 지면을 위한 것입니다. '프레시안 books'는 인터뷰이에게 항상 물어보는 질문이 있습니다. 국내외 사상가 중에서 가장 존경하거나 영향을 많이 받은 분은 누구입니까?

조국 : 외국 인물로는 존 스튜어트 밀, 버트런드 러셀, 안토니오 그람시, 존 롤스 등을 들고 싶습니다. 국내 인물로는 최인훈과 리영희를 꼽고 싶네요. 저의 사상적 지표가 사회(민주)주의와 진보적 자유주의의 교집합에 위치해 있기 때문입니다.

프레시안 : 평소 즐겨 읽는 책은 무엇입니까? 또 책이 나올 때마다 꼭 챙겨서 읽는 (국내외) 작가가 있습니까? <진보 집권 플랜>의 머리말에서는 공지영 씨의 <도가니>를 언급했습니다.

조국 : 김훈, 공지영, 박민규 등의 소설이나 에세이를 챙겨 봅니다. 그런데 실제로 저는 소설보다는 시를 많이 보는 편입니다. 정호승, 박노해, 백무산, 도종환, 이원규, 장석남, 함민복 등의 시를 좋아합니다. 법과 제도를 연구하고 그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이라 건조하고 딱딱해지기 쉽기에 시를 읽습니다. 시를 읽을 때 카타르시스를 느낄 때가 많습니다.

프레시안 : 가장 최근에 인상 깊게 읽은 책은 무엇입니까?

조국 : 최근 친한 벗으로부터 소설가 김연수 씨가 편집하고 해설한 <우리가 보낸 순간>(전2권, 마음산책 펴냄)을 선물 받았습니다. 인생과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시와 산문, 그리고 편집자의 해설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오랫동안 얼어있던 심장이 해동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프레시안 : 이 인터뷰를 읽는 독자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한 5권만 언급해 주십시오.

조국 : 제레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이원기 옮김, 민음사 펴냄), 사마천의 <사기열전>(김원중 옮김, 민음사 펴냄), <지식 e>(전6권, EBS <지식채널 e> 지음, 북하우스 펴냄), 정호승의 <밥값>(창비 펴냄), 박노해의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느린걸음 펴냄).


ⓒ프레시안(손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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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교사

퇴계 이황(1501∼1570년)은 외척권신이 온갖 권세를 부리며 국정을 요리하고 임금 또한 속수무책이었던 군약신강(君弱臣强)의 시대를 살았다.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므로 백성을 살리는 책임이 국가에 있다는 유학의 논리가 퇴색하던 때였다.

이러한 시기 퇴계는 공부를 통하여 시대의 어둠을 뚫고자 하였다. 우주와 인간을 관통하는 이치(理)를 통하여 도덕 문명과 학술 사회를 소망하는 평생이었던 것이다. 퇴계의 리(理)는 우주 자연의 원리에서 출발하지만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즉 인간다움을 향한 바른 길이었다. 추상과 이론을 넘어서 일상의 실천을 겨냥한 공부였던 것이다.

이러한 대학자 퇴계를 포근하고 가깝게 만날 수 있는 아담한 책 <퇴계, 인간의 도리를 말하다>(푸르메 펴냄)이 나왔다. 몇 년 전 퇴계와 고봉 기대승(奇大升, 1527∼1572년)이 주고받은 편지를 풀어낸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소나무 펴냄)를 통하여 새로운 시대를 향한 소통과 공부의 깊이를 드러낸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 김영두가 이번에는 독자를 퇴계 앞으로 다소곳 데려다 준다.

창계(滄溪) 임영(林泳, 1649∼1696년)이 편찬한 <퇴계어록(退溪語錄)>을 옮기고 풀었는데,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1538~1593년)의 <퇴계선생언행록(退溪先生言行錄)>과 하나하나 대조하며 원문의 오탈자를 바로 잡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간명하고 친절한 주해를 덧붙였다. 따라서 이 책 마지막 '퇴계어록에 대하여'부터 읽으면 좋다.

'지금-여기'에 살다


▲ <퇴계, 인간의 도리를 말하다>(김영두 지음, 푸르메 펴냄). ⓒ푸르메
퇴계는 옛 성인의 고례(古禮)를 회복하고 주자가례(朱子家禮)를 실천하고자 하였지만,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다. "내 생각에는 옛 법을 반드시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고 집안 형편에 따라 제사를 지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다만 지나치게 분수를 넘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서 주자를 인용하였다. "어찌 고례에 맞지 않는다고 조정에 건의하여 하나하나 잘못을 씻어내고서야 시원하다고 하겠느냐?"

이렇듯 퇴계의 시선은 '지금-여기'에 꽂혀 있었다. 역해자도 간명하게 안내하였다.

"퇴계는 주자가례의 정신을 존중하면서도 그가 발을 딛고 서 있던 16세기 조선에서 예를 실천하여야 한다는 현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의례에 대한 인식에서 보듯이 퇴계의 일생 사업은 진실의 추구이며 일상의 실천이었다. 이른바 덕성을 존숭하고 학문에 힘쓴다는 존덕성도문학(尊德性道問學)이었다. '존덕성'과 '도문학'은 어느 한편의 소홀함이나 우선함을 전제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이것은 퇴계에게 물러설 수 없는 신념이었다.

학문의 힘

그랬음인지 시대의 어둠을 바른 마음과 곧은 실천으로 돌파하려다가 아쉬운 희생을 치렀던 선현에 대한 회상은 그리움과 아쉬움으로 점철되어 있다.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이나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같은 유학자들은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는 가까운 시대인데도 (그 학문을) 연구할 자료가 없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혹은 "한훤당의 학문은 비록 실천이 돈독하기는 하였지만 학문을 연마한 도문학 공부는 미진하였던 것 같다. (…) 그만큼 남아 있는 저술이 없고 또한 밝힐 만한 문헌도 없어서 학문의 경지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다."

이렇듯 당대 선현 평가가 인색하리만치 원칙적이었다. 일세의 중망이었던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에도 냉정하였다. "타고난 자질이 정말로 아름다웠으나 학문의 힘이 갖추어지지 못하여 시행한 바가 너무 지나쳤다. 그렇기 때문에 사업이 끝내 실패하고야 말았다." 학문의 힘이야말로 도덕 정치와 문명사회를 이룩하는 바탕이라는 믿음이 컸다.

동아리(我同人) 키우기

학문의 힘은 홀로가 아니라 '다름과 사이'의 동아리가 키운다. 퇴계의 동아리는 자못 엄격하였다. "명예와 이익에만 빠지는 마음이 있나 준열하게 되돌아보면서 소인으로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한다." 그럼에도 동아리 넓히기는 지극정성이었다. 그래서 사람을 대할 때에는 '따뜻하고 편안하며 공손하며 조심스러웠다.' 또한 제자나 문인에게도 '너'라고 호칭하지 않고 존중하였으며, 누구와 논변할 적에는 친절하고 소상하고 기꺼워하였다.

다음은 이 부분을 위한 역자의 해설이다.

"평범한 교사는 말만 하고 좋은 교사는 설명을 하며 훌륭한 교사는 모범을 보이고 위대한 교사는 제자들의 가슴에 불을 지른다. (…) 퇴계의 유산이 오늘날까지 큰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은 그의 학문적 성취가 남달랐다기보다는 그가 끼친 삶의 향기가 제자들의 가슴에 일으킨 반향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렇다! 퇴계는 향기를 품어내는 교사였다.

회한의 깊이

이렇듯 퇴계는 공부하며 살아가는 모습과 성취는 더할 나위가 없었지만 곤혹스러움이 적지 않았다. 특히 조정의 여건은 나아갈 만하지 않는데 임금은 자주 불렀을 때였다. 그러나 이미 급제하고 벼슬에 들었던 터라 처음부터 벼슬할 생각을 접고 과거를 보지 않는 처사와 출처가 같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어렵게 나갔다가 쉽게 물러나왔다. 그래도 종내까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중종 9년(1514년) 별시를 통과한 이래 '청렴 근실함이 남쪽 선비 중에서 으뜸'으로 일컬어지던 박수량(朴守良, 1491∼1554년)은 천재지변이나 변방의 급보라도 들리면 두 아들에게 항상 일렀다. "내가 초야로부터 일어나 외람되이 정2품에 이르는 분수 넘친 광영을 입었으니 내가 죽거들랑 삼가 시호를 청하지 말고 비를 세우지 말라." 그러나 분묘를 표시하는 묘표마저 없을 수 없어서 글씨를 하나도 새기지 않는 백비(白碑)을 세웠다. 또한 속리산 아래에서 '허수아비'를 자칭하고 살았던 대곡(大谷) 성운(成運) 또한 유언하였다. "묘표(墓表)도 세우지 말라." 김인후(金麟厚)도 일렀다. "을사년 이후 벼슬은 적지 말라."

퇴계 또한 세상을 뜨기 직전 묘비가 아니라 묘석에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고만 적으라고 유언하였다. 굳이 푼다면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비록 물러났지만 본의 아니게 높은 벼슬을 받았다가 만년이 되어서야 숨었다는 곤혹스러웠던 평생 회환이 읽힌다. 이렇듯 적은 묘석과 조정에서 받은 관직조차 적지 않는 장묘 의식은 시대의 변화와 발전의 방향에 섰던 선비들의 삶과 앎의 차원을 전해주는 것이지만 퇴계 역시 그 일익을 감당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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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그림이 우리 앞에 놓여 있거나 눈에 띄게 될 때, 우리는 그림과 교감하거나 이해하려고 애를 쓴다. 가끔은 순식간에 그림과 소통해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떠오르기도 한다.

고연희의 <그림, 문학에 취하다>(아트북스 펴냄)는 조선 시대 옛 그림의 화제나 소재로 사용된 문학 작품을 찾아내 꼼꼼히 살피고, 그림과 문학과의 관계를 살핀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서 문학이 어떻게 그림과 어울렸는지 확인함으로써, 그림을 더욱더 깊은 소통을 할 수 있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서 살펴보자. 고연희는 주희, 율곡과 같은 학자들의 시를 그림으로 옮긴 작품에 시선을 둔다. 주희의 '무이도가'를 그림으로 그린 이성길의 <무이귀도>, 이이의 '고산구곡가'를 그림으로 그린 <고산구곡시화병>이 그 예이다. <무이귀도>는 정조가 모범적인 문체로 주희를 거론하자, 김홍도가 왕의 뜻을 알리고자 그린 그림이다.


▲ 이성길의 <무이귀도>(비단에 수묵담채(부분), 1592년).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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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문학에 취하다>(고연희 지음, 아트북스 펴냄). ⓒ아트북스
강세황의 <지상편도(池上篇圖)>, 이재관의 <오수도>, 박제가의 <어락도> 등에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같은 새로운 문체에 대한 당대 지식인의 열망이 깔려 있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이 그림들과 <무이국곡도>을 보면서 정조를 비롯한 당대의 지식인이 가졌던 두 가지 열망의 큰 간극을 확인할 수 있다.

<삼강행실도>가 그림을 국가의 통치 철학과 당시의 사회 사이를 제도적으로 매개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저자의 판단 역시 예리하다. 세종대왕이 백성들의 도덕적 교화의 목적으로 출간한 일종의 그림책인 <삼강행실도>는 충·효·열의 문화를 제도화하고 교육하기 위한 일종의 윤리 교과서와 같은 책이다.

저자는 판화, 찬문, 찬시로 이루어진 <삼강행실도>의 구조 자체가 교화에 적합한 것이었음을 지적한다. 특히 <삼강행실도>의 '루백포호'에 대한 저자의 해석은 흥미로웠다. 저자는 아버지를 잡아먹은 호랑이를 응징한 최루백의 이야기에 실린 그림(호랑이 앞에 서 있는 최루백)을 해설하면서, 사실은 절대 복중을 욕망하는 왕의 의도가 이음을 지적한다.

<구운몽(九雲夢)>은 또 다른 욕망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조선 말기 화려한 병풍으로 유행했던 <구운몽>은 연애 이야기와 불법의 득도라는 상반된 두 개의 차원이 얽혀 있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저자는 이 병풍도를 살피면서 '석교기연'이라는 장면을 강조하고 있는데 '석교기연'은 구운몽 판화나 병풍으로 그릴 때 빠지지 않는 장면이다.

저자는 <구운몽>을 그린 병풍의 유행을 선녀를 욕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관점과 연결한다. 즉 <구운몽> 병풍의 유행에는 미인 선녀/지상 미인을 원하는 남성들의 욕망 코드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해석에 다르면, 꿈속에서 미인들과 연애를 하면서 살아온 양소유의 쾌락이 주목받은 것도 당시 남녀 엘리트의 자유연애에 대한 갈망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렇게 문학과 그림이 상호 관계를 맺는 다양한 양상을 짚어보고자 한 저자의 의도는 나름대로 성공했다. 그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대부분 알고 있듯이 문학과 그림의 관계는 주종이나 시원의 앞뒤를 다투기 어려울 정도로 따질 것이 많은 영역이다. 저자 역시 이 책에서 문학과 그림의 선후를 짚으면서도 굳이 어느 것이 좋다거나 떨어진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는다.

역시 이 책의 면면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문학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와 문장들의 원래 의미를 살핀 후에 조선 시대의 문인이나, 선비 또는 화가들이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역사적· 지리적 거리와 단층들이 어떻게 해석되고 수용되었는가를 살펴 본 점들이다. '욕망과 인정' 부분을 제외하고 책 전반에 걸쳐있는 대부분의 그림과 화제들이 중국을 기원으로 하고 있고 시간적으로는 많게는 1000년, 짧게는 동시대의 거리를 가지고 있다.

이런 시·공간적인 거리를 뛰어넘는 재해석과 수용의 배경에는 역시 조선 시대의 그리고 조선이라는 나라의 정치·사회·경제적인 상황이 놓여 있다. 작가는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아끼고 있다. 그 틈으로 "중국의 문화를 우리 것인 양 마음껏 누리며 향유 하였던 문화적 스케일로, 문화적 수준의 고양을 위하여 옛 지식인들이 기울였던 문화 수용의 노력과 능력으로 존중하며 감상하기"를 권하는 저자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시문과 그림의 형상을 넘어서 독자들이 발견하거나 음미하게 되는 '그 시절의 무엇'은 저자의 의취를 따라 흘러갔던 '언제 어디'이다.

작가가 어렵게 이야기를 꺼낸 '그 시절의 무엇'이 애매하게 흐려지고 있다는 느낌은 한참 아쉬움으로 남는다. 문화라는 것이 인간이나 사회의 욕망이 충돌하는 때와 장소에서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드러냄이 갈등과 힘의 경쟁, 수용이나 정화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했을 때, 책과 만나서 이끌려진 미묘한 경계는 저자의 의취로만 남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책은 옛 그림에 대한 확장된 시선을 갖추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이 책이 옛 그림을 읽는 신선함과 속 깊은 성찰의 짬을 만들어 주고 있다는 점은 여러 번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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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보장을 받은 정교수이며 대학 강단에 선 지 30년이 가깝지만 나는 한국 대학의 역사에 밝지 못하고, 현재 재직하고 있는 서울대학교의 역사에 대해서도 그 전사(前史)인 경성제국대학의 역사를 포함하여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 이런 사정은 우선 나 개인의 문제이지만 한국 대학 교수들 다수에게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허점이기도 하다.

클라이드 바로우의 <대학과 자본주의 국가>(박거용 옮김, 문화과학사 펴냄)는 오랜 기간 한국 교육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천착해온 박거용의 번역으로 나왔다. 이 책을 통독하며 맨 먼저 드는 생각은 적어도 저자 바로우는 미국 대학의 특정 시기에 대한 역사를 탐구할 때 풍부한 역사적 기록에 접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 <대학과 자본주의 국가>(클라이드 바로우 지음, 박거용 옮김, 문학과학사 펴냄). ⓒ문학과학사
가령, 식민지 대학으로 출발한 서울대는 전쟁과 환란이라는 우여곡절의 역사 탓에 자신의 기록을 온전히 보관하기 어렵기도 했지만, 여전히 자신의 역사적 기록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활용하는 체제를 구축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몇 년 전 내가 소속된 단과 대학의 30년사 발간을 위해 영어영문학과의 지난 30년을 조사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그 점을 뼈저리게 실감한 경험이 있다.

지식의 생산, 보존, 전수를 담당하는 최고의 고등 교육 기관이 자신의 역사적 기록을 체계적으로 간수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대학으로서의 자기 역할에 어떤 심각한 맹점이 없는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일이어야 옳을 것이다. 엉뚱한 발언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2010년 12월 정부 예산안 등을 국회가 날치기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덤으로 얹어 서울대 법인화법이 통과된 어이없는 사태는 서울대 구성원들이 서울대의 과거에 대한 제대로 된 역사적 인식이 부족하고 국립대학의 '맏형'으로서 자신의 해온 역할과 책무에 대한 망각이 없고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서울대 측이 애초에 제시한 법인화 안도 아니고 정부가 내놓은 입법안에 대응해서 서울대 측이 다시 내놓은 수정안도 아닌 정부 원안이 그나마도 몰골사나운 절차를 통해 그대로 법으로 확정되었다. 이처럼 부실한 절차를 통해 서울대뿐만 아니라 전체 국립대학 체제를 뒤흔들 큰 변화가 생긴 마당에 내부 구성원 다수의 강력한 문제제기가 없다는 것은 자기 조직에 대한 역사의식의 실종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고 본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바로우의 저서는 국내외 대학의 역사에 대한 풍부한 인식과 논의를 위한 촉매로서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모두 9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19세기 후반부터 대공황이 터지기 직전까지 미국이 산업혁명을 완수하고 폭발적인 경제 성장을 통해 사실상 세계 최대의 제국으로 부상하던 시기에 미국 대학이 어떻게 '기업 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개조되었는가를 다루고 있다. 다루는 시기는 훨씬 앞서지만, 그 때의 대학 체제 개편이 오늘날 미국 대학의 골간을 이루고 있을 뿐 아니라 1980년대 이후 흔히 '신자유주의'라 부르는 시장 만능주의의 (더욱 철저해진) 대학 재편 방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어서 현재적 의미가 매우 크다.

읽어가노라면 대목대목마다 오늘날 우리의 정책 결정권자들이 당연시하는 미국 대학 제도들의 역사적 연원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들이 담겨 있다. 대학의 지배 구조, 운영 체제를 예로 들어보자. 기업의 관점에서 대학 개혁을 추구하던 프리체트(Henry Pritchett)가 1905년의 보고서에서 당시 미국과 유럽의 대학 6개씩을 비교한 후에 유럽이 미국보다 효율이 높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미국 대학의 행정을 이사회에 부여하는 대신에 유럽처럼 교수진에게 넘겨준다면 미국 대학이 더 나아지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남겼다는 사실(112~13쪽)은 오늘날 대학 법인화 추진의 핵심인 대학 지배 구조와 관련하여 의미심장하다. 물론 프리체트는 기업 자유주의에 충실하게 사업가들이 무조건 우수한 행정가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 방향으로 밀어붙이고 만다.

청교도가 헤게모니를 쥔 신생 국가답게 1861년 시점에 미국 대학 책임자의 대다수는 개신교 목사 출신이었고, 1890년까지 대학 총장의 절반은 교수 출신이었다. 그러나 세기가 바뀌면서 전문적인 행정가이지만 교수진과 긴밀한 관계가 없는 대학 책임자 집단이 출현해서 대학을 기업인이나 경영 간부의 입장에서 운영하게 된다. 심지어 교수 출신이라 하더라도 대학 경영진의 일원으로 편입되는 순간 그 집단의 논리에 흡수되면서 쉽게 변질되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총장이 CEO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교육자'로서의 총장의 역할을 아예 뒷전으로 밀어내지만 그것은 근대 대학의 역사에서 그렇게 오래된 일이거나 당연한 일이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은 7장과 8장에서 점차 자본의 요구에 의해 환골탈태한 대학들이 학문의 자유를 직간접적으로 제약하게 된 과정에 대한 연구이다. 우리 독서계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는 스콧 니어링(Scott Nearing)에 대한 해직과 탄압도 소상하게 나오며, 리처드 엘리(Richard Ely)나 존 커먼스(John Commons) 같은 정치경제학자들이 어떻게 기성 체제와 타협하면서 오늘날 미국의 비판적인 대학 교수들이 흔히 취하는 어정쩡한 모습의 선구적 모델이 되었는지도 명쾌하게 파헤쳐진다.

이 과정에서 미국식의 대학 정년 보장 제도인 테뉴어(tenure) 제도가 갈등과 타협의 산물로 다듬어졌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한국에서 국립대 법인화나 대학 개혁이 '경쟁력' 강화의 이름으로 목청높이 외쳐지지만, 이사회를 비롯한 지배 구조에서 교수진의 발언권이 사실상 소거됨으로써 대학의 연구자들이 자신의 학문과 양심의 명령에 따라 내놓는 소중한 비판적 목소리가 노골적으로 혹은 교묘하게 감시받고 통제되는 일은 더욱 심해질 것이기 때문에 이 대목들에서 쉽게 눈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끝으로 독자의 입장에서 작은 불만을 덧붙이자면, 해당 시기에 이루어진 대학 재편 과정에서 어떤 요소들이 현실의 변화에 따른 대학의 발전 과정에서 불가피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치밀한 설명이나 입장이 좀 아쉽다. 기업 자유주의의 물결이 닥치기 전에 성직자들이 다스리는 19세기 중엽의 엘리트적인 미국 대학이 저자의 시각에서 결코 이상적인 모델일 수 없을 터이고, 존 듀이나 소스타인 베블런 같은 만만찮은 학자나 사상가의 대학에 대한 성찰을 자주 언급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대 대학의 변화에서 타락하고 후퇴하는 측면과 불가결한 현실 적응의 측면이라는 변별하기 어려운 양면을 엄정하게 가려내는 노력이 좀더 있었더라면 더욱 입체적인 서술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그 점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학간사회주의협회'(ISS, Intercollegiate Socialist Soicety) 등의 대안적 활동을 내세우는 대목들이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면서 고정관념에 해당하는 진보적 시각이 관철되고 있다는 인상마저 든다. 조금 더 보완했더라면 그 당대로서 가능했던 최선의 현실적 대안이 좀 더 독자에게 뚜렷하게 다가오면서 오늘의 도전에 맞서는 실천적 의지를 북돋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바람이 남는다.

그러나 어쨌든 이 저서는 우리 대학이 현재 직면한 갖가지 엄중한 시련을 실감한 사람이라면, 또 그러한 시련과 도전을 진지하게 성찰하려는 대학 구성원이라면 한 번쯤 읽어봐야 할 소중한 문헌이다. 앞으로 오늘의 인류 사회에서 대학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느냐에 대한 더 진전된 논의를 가능하게 할 번역서들과 저서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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