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살해자 마르틴 베크 시리즈 9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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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설의 제목인 '경찰 살해자'는 중심 사건이 아닙니다. 주가 되는 사건 즉, 시작 부분에 소개되고 대부분 분량을 차지하면서 수사되고 마지막에 해결되는 사건과 결부되어 있는 다른 사건에서 온 제목입니다. 그래서 소설의 반이 지나도록 왜 이 작품의 제목이 '경찰 살해자'인가 의아하게 됩니다. 엘릭시르의 이 시리즈는 살짝 작은 판형으로 나왔는데 500페이지 분량의 소설 중에 290페이지 정도에 이르러서야 제목과 관련된 사건이 등장하거든요. 주사건을 마르틴 베크가 끈기 있게 수사하지만 두 사건에 다 관여했던 절친이자 소중한 동료인 콜베리의 '육감'이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분량의 면에선 주가 아니지만 '경찰 살해자' 사건은 이번 작품의 주제면에서는 중심이 됩니다. 그래서 제목이 되었겠고요.


콜베리가 사직서를 씁니다. 경찰 고위층에 대한 불신, 관료적이고 전시행적적인 행태, 경찰 동료들의 전반적 수준저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조직에 소속감을 잃어가다 결단을 냅니다. 마르틴 베크 비롯 시리즈의 중심 인물들이 다 나이들어 가면서 승진을 할 위치에 이르니 악화일로인 경찰 조직에서 고위직을 원치 않는 선택일 것입니다. 

이 시리즈를 시작하며 마이 셰발, 페르 발뢰 두 작가는 범죄수사 이야기로 스웨덴 사회의 부정적인 면과 위선을 드러내고 싶었을 겁니다. 자신들 사상이(마르크스주의자였다고 합니다) 작품에 녹아 들고, 역할하기를 바라는 면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 경찰이 나날이 시민과 적대적이 되며 믿을 수 없는 집단이 되어 가는데 경찰에 소속된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경찰 개인의 능력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 가는 것에 한계를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냥 제 짐작입니다. 이번 소설은 경찰들을 데리고 경찰 조직 문제를 비판하는 내용의 정점인 듯합니다.  

50년 전의 스웨덴인데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경찰 조직이라든가 미래가 없다고 느끼는 젊은 세대라든가를 묘사한 것을 보면 지금 우리 사회가 배경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겹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복지국가인 그들 나라에 대한 부러움을 표하지만 소설 속에서 당사자들은 암담한 사회라고 욕하고요. 

 

늘 느끼지만 김명남 씨의 번역이 좋습니다. 인물들의 특성이 잘 살아나는 것도 번역의 공이 있을 거 같습니다. 

'그녀'라는 지칭을 쓰지 않습니다. 시리즈의 이전 책도 그랬는지 확인하진 않았는데 이번에 읽으며 눈에 확연히 띄네요. 삼인칭으로 여성을 지칭할 경우에 이름을 쓰거나 '그 여자'라고 부르거나 '그'라고 씁니다. '그'는 서술상황에 다른 남성과 혼동의 우려가 없을 때 쓰는 것 같았습니다.

이 소설에 이전 사건의 범인들이 형기를 마치고 재등장하고 있었는데 앞선 시리즈 중에 특히 좋았던 '연기처럼 사라진 남자'의 인물이 나와서 재독하고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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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서머스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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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서머스는 책읽기를 좋아하는 청부살인업자입니다. 

의뢰받은 일 때문에 작가로 위장하게 되는데 작가 흉내도 내고 목표물을 기다리는 빈 시간도 메꿀 겸해서 자신의 지난 날을 재료로 수기 종류의 글쓰기를 하게 됩니다. 

소설은 암살자로서의 일과 수기를 쓰는 일이 병행되다가 뒤로 가면서 이 둘이 서로 간섭해 들어갑니다. 주인공 빌리의 글쓰기는 위장의 방편이었고 포크너 흉내로 시작되었는데 의뢰받은 일을 끝내고 잠수하는 시간에 이르며 점점 대체불가의 무엇이 되어 빌리의 중심을 차지합니다. 어릴 때를 돌아보고 청소년기와 해병대 입대 후 이라크 파병 경험을 더듬어 나가며 글을 쓰는 과정에서 현재의 자신을 갱신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작품이 어떤 이야기인지는 인터넷 서점 등에서 잘 소개하고 있어요. 저는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띄엄띄엄 느낀 점을 조금만 써보려고요. 스포일러는 피해가면서요.


1. 전체 24장으로 되어 있는데 디데이인 10장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26페이지 분량입니다. 두 전문가 '빌리'와 '스티븐 킹'의 뛰어남을 느낄 수 있었어요. 청부살인업자로서의 15년 경력의 프로패셔널함이 잘 드러납니다. 철저하고 꼼꼼한 준비로 새벽부터 진행된 디데이의 일정이 흥미진진합니다. 이동하고 숨기고 기다리고 저격하고 찾고 숨고...모든 것을 대비하여 짜여진 동선을 따라 움직이는데 - 문장들이 연결되는데 스티븐 킹은 이 부분을 쓸 때 자신의 손에서도 땀이 차며 하루 일과 중 글쓰기로 정해둔 시간이 지나는 줄 모르고 타자를 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혼자 잠수 중인 1권의 마지막인 11, 12장이 좋았습니다. 암살자는 역시 혼자라야...제맛입니다.


2.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라는 작법 책을 냈잖아요. 저도 오래 전에 읽었는데 이런 책 가운데서도 술술 읽히고 재미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빌리 서머스'는 어찌보면 소설로,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서 '초짜에게 글쓰기가 갖는 의미', '초짜가 글쓰기의 실전에서 마주치는 문제' 등을 얘기해 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소설의 내용 전체가 글쓰기를 통한 만족감이나 각성의 측면으로 빗대어 살펴볼 수 있겠습니다. 세부적으로도 이라크 일을 쓰다가 망원 조준기 종류에 따른 성능 같은 걸 더 설명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면서, 다시말해 예상되는 독자의 범위랄지 세부 내용의 분배랄지를 고민하기도 하고 윌리엄 워즈워스의 '평온한 상태에서 소환된 강렬한 감정이 담긴 글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글'이라며 심란한 마음일 때는 노트북을 덮습니다. 또 찰스 디킨슨이나 에밀 졸라의 법칙이라는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최소 두 번은 쓰여야 한다.' 같은 문장들을 머리속으로 웅얼거립니다. 


3. 스티븐 킹의 소설에서 아쉬운 점은, 좋은 사람들 사이의 신뢰와 우정은 거의 종교 수준으로 철썩같고 단순하다는 것입니다. 가끔은 이런 것을 표현하는 대목을 읽을 때 민망함을 느낍니다. 이 소설의 빌리 역시 암살자라기엔 너무 순정남입니다. 마지막 한 탕을 획책하며 하필이면 작가로 위장해서 글쓰기를 하는 바람에 생긴 각성의 효과도 있겠으나 원래 '좋은' 사람이었던 느낌이고 빌리와 한편 먹는 이들도 바탕이 선량해서 서로를 재까닥 알아보고 무한신뢰하네요. 사건 따라가는 소설에서 주인공이 걸핏하면 갈등에 빠지는 햄릿형이어서 심리 표현이 위주가 되는 것도 곤란하다 싶지만요, 이렇게 속이 투명하다니... 쬐금만 더 복잡한(회색의? 더러운?) 인간이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작가 자신의 선량함이나 인간에 대한 태도가 반영된 것일 수도 있겠지요. 


4. 초판 1쇄를 사면 오탈자와 이상한 문장을 흔히 만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정치인들이 발이 빼자 후퇴했다. 앨리스는 입술을 꾹 다물고 이를 보이지 낳은 채 엷은 미소를 짓는다. 자네가 여기서 지내는 동안 그 아저씨는 손님방을 쓰라고 해.' 등등)

'대존잘'은 무슨 뜻인지. 엄청 존나게 잘났다? 소설 속에서 노인이 젊은 사람들 말 흉내 상황이긴 하지만, 음...번역자가 너무 일시적 유행어는 안 썼으면 좋겠어요. 


5. 아쉬운 점을 3에서 썼으나 킹의 소설 중에 이 작품은 손꼽히는 만족감을 주었습니다.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는 눈물이 맺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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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9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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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본문에 나오는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부부'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부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남편은 아내만 아내는 남편만 존재하는 듯이 살고 있는 부부입니다. 남편이 천신만고 끝에 도쿄의 관공서에서 일하는 덕에 가난하지만 그럭저럭 하루하루 생계가 가능합니다. 구멍난 구두도 새 코트의 필요성도 무시하고 살 수 있는 부부였는데 작은집에 얹혀 살던 동생의 학비 문제가 대두되며 가진 경제력 이상의 수완이 필요해졌습니다. 그렇지만 이상하리만치 초연합니다. 주인공 소스케는 당사자 동생은 물론이고 독자가 보기에도 답답하리만치 차일피일 미루면서 현실 문제 해결에 소극적입니다. 소스케의 태도는 어떻게든 되겠지, 되는대로 될 것이야, 입니다. 자신이 나서서 일의 흐름을 트고 결정을 짓는 것을 하려 하지 않아요. 이런 일을 하려 하면 자신 뿐 아니라 바깥 세계 구성원들에게도 일련의 요구가 따르는데 그것을 회피하는 것 같습니다.


소스케와 아내 오요네가 가진 소극성이 특이하게 보일 즈음 이웃에 사는 집 주인 사카이와의 교제가 전개되고 그러면서 이 부부의 도쿄 생활 이전 사연이 서술됩니다. 이 사연이란 것이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에 조금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라 그냥 써버리자면 아내 오요네는 친구의 동거녀였는데 소스케와 서로 사랑하게(간통하게) 되었다는 사연입니다. 다니던 학교와 집에 그 일이 다 알려져 모든 사회적 관계가 끊어진 것입니다. 부부만 남은 것이죠. 그리고 부부는 일종의 죄의식 속에 움츠리고 서로 이외의 외부와는 단절되어 살아갑니다. 


이들에겐 희귀하달 수 있는 집 주인 사카이와의 교제는 소스케의 삶과 대비되는, 어쩌면 소스케도 그렇게 살 수 있었으나 이제는 완전히 불가능해진 삶의 형태를 보여 줍니다. 골목 끝 절벽 옆에 있는 해도 잘 안 드는 소스케의 셋집과 절벽 위에 여러 자녀들의 웃음 소리, 피아노 소리가 끊이지 않는 사카이의 집. 그 집의 귀여운 딸아이들, 윤기나는 마룻바닥과 다다미, 가스난방기, 무엇보다 사카이라는 사람의 사교적이고 배려심 있는 원만한 인품은 소스케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으로 비춰졌을 것입니다. 소설에서 소스케가 대놓고 이런 것을 절실해 하진 않지만 독자는 자연스럽게 견주어 생각해 보게 되어 있습니다. 


이 사카이네와의 인연 때문에 세월의 힘으로 어느정도 바래어 두고 견디던 과거의 사건이 눈 앞에 펼쳐질 위기가 닥쳤을 때 소스케는 고스란히 되살아난 고통을 견디지 못합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인내만으로 버티는 것은 언제든 자아가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마음의 실제 내용이 커지는 것이 아니면 안 되었다.'라고 표현되어 있어요. 저는 이 문장이 나오는 부분에 몰입했습니다. 마음의 실제 내용은 어떻게 커질 수 있을까. 소스케는 종교와 좌선을 떠올립니다. 종교와 좌선의 도움을 얻기 위해 산사로 갑니다. 이 시도 후에 본인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결론을 지으면서도 큰일의 절반쯤은 끝난 것처럼 느낍니다. 열흘 동안의 시도이지만 그런 몸부림 자체가 적어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아래와 같이 생각하고 받아들이게 하였으니까요. 


'자신은 문을 열어달라고 하기 위해 왔다. 하지만 문지기는 문 너머에 있으면서 아무리 두드려도 끝내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중략) 그 자신은 오랫동안 문 밖에 서 있어야 할 운명으로 태어난 사람 같았다. 그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지날 수 없는 문이라면 일부러 거기까지 가는 것은 모순이었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도저히 원래의 길로 다시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앞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는 견고한 문이 언제까지고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는 문을 지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또한 문을 지나지 않아도 되는 사람도 아니었다. 요컨대 그는 문 아래에 옴짝달싹 못하고 서서 해가 지는 것을 기다려야 하는 불행한 사람이었다.'


저는 위에 인용한 부분이 세상의 모든 작가의 정체성을 표현한 것으로도 읽혔습니다. 

제목 '문'은 이현우 서평가의 해설을 보니 연재하기 전에 아사히에 근무하는 제자에게 제목을 짓게 했다고 하네요. 소세키가 제목에 별 신경 안 썼고 남이 지어준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했다는 말이었습니다.


부부의 일상으로 시작하여 부부의 일상으로 끝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과연 나쓰메 소세키의 필력에 수긍하였습니다. 세세한 사소한 일상에 귀기울이게 하는 힘, 그 밑으로 흐르는 사건을 이어서 전체를 떠받치며 마무리하는 힘이 느껴졌습니다. 실시간으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소설을 이렇게 즐기면서 읽을 수 있게 하고 동시에, 불시에 따귀를 때리는 듯한 문장이 튀어나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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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1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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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로 된 이 소설은 1, 2부가 여행지에서의 일이고 3, 4부는 도쿄 집이 배경인데 4부 뒷 부분은 여행지에서 보낸 편지로 되어 있어 여행이 큰 비중을 차지해요. 

   

1부 '친구'

여행지인 오사카에서 친구가 갑자기 발병하여 입원을 하게 되고, '나'는 그 병원에서 오래 시간을 보냅니다. 친구는 중병이 아니라 병세에는 크게 신경쓰이지 않습니다. '나'는 설렁설렁 이것저것 살피면서 병원의 간호사나 미모의 다른 병실 환자를 관찰하고 그 결과를 친구의 정보와 주고받으며 잡담하는 중 그의 비밀스런 연애담 비슷한 것을 듣게 됩니다. 연애다운 연애는 아니지만 불행한 결혼 생활 후 이혼하고 머리가 이상해진 채 친구네 집에 잠시 머문, 지금은 죽어버린 친구 집안 지인의 딸과의 사연입니다. 

친구가 앓는 위장병과 사연 속의 아가씨가 가진 정신에 문제가 생기는 병은 소세키가 잘 아는 병이라 여러 작품에 등장하였죠. 그리고 '불행한 결혼'이라는 주제도. 

내가 아픈 것이 아님. 친구가 아픈데 심한 병은 아님. 나는 이 장소가 여행지라 일상의 의무에서 벗어나 있고 고독한 친구를 생각해 병원에 머무는 시간이 길 수 밖에 없음 - 이런 조건은 참 이상적인 것 같습니다. 멍하게 앉아서 남을 관찰하거나 창 밖 풍경을 살피면서 마음 속 생각에 잠기는 것 이외엔 할 일이 없어도 되는, 시공의 틈바구니에 위치한 화자를 내세우기에 말입니다. (이런 상황의 이런 화자라면 가장 유명한 소설이 바로 <마의 산> 아닐까요.)


2부 '형'

친구는 거의 나아져서 침대차로 도쿄로 가고 '나'는 어머니와 형 부부가 온다고 하여 남게 됩니다. 집에 살림을 돕던 친척 아가씨의 혼담 문제도 처리해야 하고, 겸사겸사 여행을 온 것이죠. 이제 본격적으로 여행지를 다니고 가족 구성원들의 성격과 관계, 갈등이 드러나게 됩니다. 형 부부는 서로에게 냉담한데 형은 그것을 못 견디며 괴로워하는 쪽이고 형수는 더 차분해 보입니다. 둘 다 남들 앞에서 상대로 인해 본인 마음을 괴롭히고 있다는 표현은 하지 않지만 형의 경우 오래 겪은 부모나 형제들에게 그 심사가 다 읽히는 것이죠. 여행이 진행되며 형 부부의 불화의 원인 중 하나가 화자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하여 형은 '나'에게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게 되고...

2부에서 인문 학자인 '형'은 역시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좋게 봐 주면 생각으로 생각을 쌓아올리는 학자적 성격, 사색의 외곬으로 인한 것이지만 제가 보기엔 집안의 장남으로 뭐든 마음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고 자기 기준에 못 미치고 의심이 생기면 그 의심과 집착에서 놓여나지 못하는 히스테리적 성격에 원인이 있는 것 같습니다. 원만한 사람들끼리도 여행지에선 서로에게 너무 밀착하게 되어 삐걱이기 쉽지만 2부의 이 가족의 눈치보기 말 조심하기는 살얼음 판이다 싶은 장면이 여럿 있더군요. 본격 등장하는 '불행한 결혼'


3부 '돌아오고 나서'

집에 돌아와서 새로이 보게 되는 형이라는 사람은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물에 기름처럼 겉돕니다. 이전에는 학자니까 자기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이 절대로 필요하겠지, 장남이니까 다들 어느정도 접고 대우하는(받는) 게 맞겠지, 하고 막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이러한 형과 나머지 가족 사이 서로 간의 양해가 견고한 틀로 고정되고 형은 자발적, 비자발적 고립 상태가 됩니다. 다른 가족들은 형의 서재에 들어서면 뿜어져 나오는 사색(思索)의 오라(aura) 달리 말하자면 불친절의 냉기로 오싹한 느낌까지 갖게 되어 들어가길 꺼립니다. 어느 날 '나'는 형과 격하게 부딪히는 중에 욕을 먹고, 이후 저녁 식사 때마다 지겨움과 불쾌함을 견디다 못해 방을 얻어 집을 나옵니다. 그리고 오사카 사람과 진행 중이던 친척 아가씨의 결혼식이 있고, 그리고 '나'는 형의 강의가 이상해졌다는 평을 건너건너 듣게 됩니다. 이 소설을 읽어 갈수록 형인 이치로에게서 나쓰메 소세키 본인의 반영을 보게 됩니다. 3부에서는 부부와 가족 같은 가장 가깝게 맺어진 사람을 너무나 멀게만 느끼고 다가갈 방법을 모르고 내면으로 심연으로 둥둥 떠내려가는 '형'의 문제가 점점 부각됩니다. 


4부 '번뇌'

'나'는 형수와 부모님께 각기 전해 들은 형의 근황이 너무 걱정이 됩니다. 결국 친구가 연결해 주어 형의 절친 'H'씨를 만나고, 형과 여행을 가달라고 부탁합니다. 여행으로 심신의 전환을 바라고요. 그리고 형을 관찰한 편지를 써달라고 부탁합니다. 무리한 요구지만 어찌저찌 받아들여지고 초조한 기다림 끝에 편지를 받습니다. 


' H씨는 촘촘하게 줄이 쳐진 서양 종이에 만년필로 가득 써서 보내왔다. 장수만 봐도 두세 시간에 쓸 수 있는 편지가 아니었다. 나는 책상에 묶인 인형 같은 자세로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내 눈에는 조그맣고 까만 글자의 한 점 한 획도 놓치지 않으려는 결심이 불꽃처럼 빛났다. 내 마음은 편지지 위에 못 박혔다. 게다가 눈 위를 달리는 썰매처럼 그 위를 미끄러져 갔다. 요컨대 나는 H씨의 편지 첫 장 첫 줄부터 읽기 시작하여 마지막 장 마지막 구절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전혀 느끼지 못했다. 

 편지는 아래와 같이 쓰여 있었다. '


이후 내용은 편지로 이어지다가 소설이 끝납니다. 58페이지 분량의 편지네요. 긴 편지가 인용된 경우가 이 소설 다음의 장편 <마음>에도 있었던(유서였고 분량은 훨씬 많았으나) 기억이 납니다. 편지라는 매체가 과거의 소설에선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었죠. 이제는 역사의 한 장이 된 거 같습니다. 이 소설에서 편지의 문장이 매우 좋습니다. <마음>에서도 편지 속의 문장이 좋았던 기억이 나네요. 'H'씨의 편지에 드러난 형은 친구의 눈으로 본 형이지만 도쿄를 떠나 먹고 자고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며 가족처럼 생활을 하면서 본 모습이라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의 내면이 행위와 대화로 깊고 솔직하게 드러납니다. 이 인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마음을 정하기가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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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팔기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3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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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완성을 본 작가의 마지막 소설입니다. 이듬해 1916년 <명암> 연재 중에 사망했으니까요.

첫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쓰던 즈음을 소설 속 현재 시간으로 해서 가족, 친척, 양부모와의 관계를 과거부터 현재까지 더듬는 내용입니다. 

시간과 사건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지만 나쓰메 소세키의 자전 소설입니다. 제목을 저렇게 정한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는 건 소설 업의 본격적인 목표가 아니고 길 가다 잠시 딴 짓 하는 것, 일종의 한눈팔기에 해당된다는 뜻이거나 동시에 본인의 개인사는 길가의 풀같이 흔하고 볼품없는 이야기라는 뜻이었을까요. 


주인공 겐조는 결혼 후 국비유학을 하고 돌아와 보니 처자를 의탁했던 처가는 몰락해 있습니다. 근근히 생계를 유지하던 형네와 누나네는 시간이 갈수록 형편이 더 어려워지고 건강도 나빠 쪼들리는 생활을 하고 있어요. 겐조는 교사 일을 하며 받는 돈을 쪼개서 누나에게 매달 조금의 용돈을 주고 돈이 필요하다는 장인에게 본인 지인에게 돈을 빌려 건네기도 하는 와중에 수십 년 인연을 끊었던 양부모까지 각자 찾아와 손을 벌립니다. 온 사방에서 돈, 돈 하는 것이죠. 머리가 좋아 서양 유학까지 다녀 왔으니 마음 먹으면 자신들이 필요한 돈 정도는 쉽게 벌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감정은 혐오감입니다. 특히 이 양부모라는 사람들에 대한 겐조의 혐오감은 참 처지 곤란한 감정입니다. 세 살부터 열 살까지 자신을 키워 주었는데 그때 그들이 겐조가 어리다고 아무 포장 없이 드러낸 추한 본성에 질려 있지만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안타까움과 현재 교육자로서의 체면으로 함부로 대할 수도 없는 입장입니다. 늙고 누추해졌으나 여전히 수치를 모르는 그들을 보며 조금만 착한 인간들이었으면 내가 슬플 수 있을 것인데, 라고 생각합니다. 깡마르고 쪼그라진 형이나 천식으로 헐떡이는 누나, 허영기 가득한 매형도 자신의 과거지만 불시에 현재의 문제가 될 수 있는 무언가 조잡함과 혐오스러움을 동반하며 배후에 존재하고 있는 이들입니다. 

겐조 자신이 이룬 가정은 어떤가. 아내와도 관계가 원만치 않습니다. 아내가 입안의 혀처럼 굴어주면 좋겠는데 아내는 뻣뻣하고 오만하게 구는 겐조에 대한 불만을 안고 있고 대화할 이도 없어 그런지 히스테리 증상을 보입니다. 겐조의 옹졸한 성격이 현실의 갑갑스러움을 견디기 어려워지면 그 화가 아내에게 퍼부어질 때가 많습니다. 소설 속에 겐조가 집에서 가족들에게 얼마나 냉정하고 때로 폭력적, 폭군적으로 구는지 몇몇 문장이 있습니다만 독자인 제가 보기엔 어린 자녀 둘과 임신한 아내가 느꼈을 공포에 맞먹는 상세하고 가차 없는 묘사는 아니었어요. 나쓰메 소세키 위상으로 볼 때 당시 관점에서 보자면 스스로를 충분히 추하게 표현했다고 만족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잘 쓴 자연주의 소설로 칭송받은 작품인지도요. 제가 보기엔 관념적인 면에서 본인의 성격이나 심리를 혐오스럽게 표현하는 것은 잘 되었지만 실질적으로 어떤 행위를 하였는지, 구체적으로 사용한 폭력의 표현에는 주저가 느껴졌어요.    

겐조는 자기 출신에서 탈출한 후에도 벗어나지지 않는 자기의 배경이 앞으로도 영영 벗어나질 수 없음을, 자신이 느끼는 스스로에 대한 혐오에서 확인합니다. 


나쓰메 소세키가 양자로 갔다가 다시 본가로 되돌아 왔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상세한 전후 사정은 이 소설로 알게 되었어요. 현암사의 이 책에 소세키 평전과 비교하는 주가 계속 나오는데 사실과 거의 부합하는 것 같았습니다. 소설에 보면 친가에는 위에 형들이 있어 겐조가 별 필요(?)가 없었고 양부모는 몸이 자라면 사환이든 뭐든 시켜서 자신들의 노후 대비를 할 심산입니다. 양부모 이혼과 재혼 등으로 다시 친가로 왔으나 아버지의 관심이나 애정은 받지 못하였고 사환 같은 것만은 안 되겠다고 되풀이 다짐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살 길을 공부에서 찾은 셈입니다. 세 살부터 열 살이면 참 중요한 시기인데, 순수하지 못한 목적을 가진 이들에게 양육되고 이후에는 친가의 무정함에 자신을 물건처럼 느꼈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20대부터 시작된 신경쇠약 증상과 중년 이후 늘 달고 살던 위염의 원인을 알 것 같았습니다. 이 위염은 결국 위궤양이 되고 질긴 고통을 주다가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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