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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을유세계문학전집 97
에밀 졸라 지음, 권유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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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묘사' 부분 좋아하시는지요. 

일단은 읽고 나서 가지는 생각이긴 한데 저는 필요했다는 동의가 충분히 되지 않으면 묘사를 위한 묘사가 길게 나오는 부분은 재미가 덜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느끼는 작품이 대부분 외국 소설인 것을 보면 감을 잡기 어려워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연 경관 묘사의 경우에 식물에 무지해서 식물 이름이 나오면서 생김새나 이미지를 상세하게 묘사하면 빨리 끝나기를 바라게 되거든요.

 

이 소설에 묘사가 꽤 길게 자주 나옵니다. 파리 사람들이 걷기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걷기 좋은 아름다운 도시라서 그렇겠죠. 여튼 백 오십여년 전의 이 소설 속 인물들도 자주 걷는데요, 중심 인물들이 걷기 시작하면 은근히 걱정이 됩니다. 혼자서 또는 여럿이서 걷기 시작하면 작가는 이들이 걸으며 보는 주변을 상세하게 묘사하거든요. 이들이 누구냐하면 인상주의 화가들 아니겠습니까. 해가 내리쬐거나 구름에 그늘지거나 석양에 물들거나 가로등에 반사되기도 하며 - 빛에 의해 변화하는 파리의 모습을 글로 그리고 있어요. 여러 건축물들과 센강 주변 부두의 노동자와 선박, 멀리 보이는 섬과 다리들과 기차와 마차와 인파들. 묘사가 길게 이어진 부분은 헤아려 보니 8페이지 분량도 있었습니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업을 다루고 있는 이 소설에서 화가의 시선으로 본 자연과 파리라는 도시의 세부 묘사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또한 작가가 문장들로 그림의 효과를 의도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이 부분은 읽는 중에 생각한 것인데 소설을 다 읽고 뒤의 해설을 보니 비슷한 이야기를 해설자가 하는 걸로 봐서 다들 그렇게 이해하는 듯합니다) 

제 경우에 좋았던 묘사 부분도 있었으나 실물 그림을 보지 않은 채 누군가 그림을 말로 설명하는 것을 들을 때의 파편화된 느낌과 지루한 느낌도 있었습니다. 소설에서 묘사가 사건과 연결되어 있지 않을 때 흔히 그런 느낌을 받아왔듯이요. 이 작품은 '묘사' 자체가 중요한 소설이니 이런 불평은 적절하지 않을 듯하지만 어쨌든 재미의 면에선 앞서 읽은 '집구석들'보다 못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클로드는 그가 그렸다는 그림 설명을 보면 마네, 개인사를 보면 세잔을 떠올리게 하며 불우한 천재의 전형성을 갖고 있는 인물입니다. 아쉬운 점은 이 인물의 내적 동기같은 것이 충분히 그려지지 않은 점입니다. 변덕스러움이야 누구나 다소 가졌으나 그 이외의 동기들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봤어요. 등장하는 예술가들이 모두 에밀 졸라 특유의 '냉정한 시선으로 해부' 되는데 그것은 인물들의 장점 보다 단점을 부각시킨다는 뜻일까요. 먼저 읽은 '집구석들' 역시 인물들이 거의 한결같이 저속하고 천박함을 휘둘렀는데 그 소설의 인물상은 그 작품의 주제면에서 충분히 설득력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 '작품'에선 클로드와 예술가 친구들이 이렇게 그려질 이유가 있을까, 아쉽게 여기는 마음이 살짝 들 정도로 부정적인 면이 두드러진 느낌입니다. 

단 예외가 클로드의 절친이며 소설 후반에 작가로 성공하는 상도즈입니다. 상도즈는 에밀 졸라 자신입니다. 소설 속에서 상도즈는 총서 시리즈에 대한 포부를 밝힐 뿐만 아니라 졸라의 비망록에 그렇게 쓰여 있다고 하니까요. 상도즈는 무리에서 유일하게 일상과 예술을 조화시킨 인물로 표현되어 있고 성실하고 다정합니다. 클로드를 끝까지 지지하고 곁에 남는 친구입니다. 

세잔이 이 소설을 읽고 어느 정도의 환멸을 느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틀림없이 환멸을 느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드네요.(졸라여, 그대의 해부의 칼끝은 그대만을 비켜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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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줌의 먼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7
에벌린 워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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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가 민음사판 책의 뒷표지에 왕창 다 적혀 있습니다. 중요 사건이 다 적혀 있어서 신경 쓰는 분들께선 뒷표지를 보지 마시고 바로 본문을 읽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저는 아래에 인물들의 갈등 배경을 조금, 뒷부분에는 이 소설의 특이했던 점을 조금 적으려고 합니다. 중요한 사건들을 직접 나열하진 않으려고요.


브랜다와 토니 라스트 부부는 상류층 사람들 치고는 경제적인 여유 없이 쪼들리며 삽니다. 이들의 소유이자 거주지인 헤턴 저택은 지역의 명소로 군 안내서에도 소개가 들어가 있는 고딕양식의 대저택인데 이 저택을 유지하고 끊임없이 요구되는 보수를 하기 위해 수입을 거의 쏟아 붓고 있어요. 저택을 유지하자면 집 안에서 일하는 하인들 15명, 그외 정원사 비롯 고용인이 6명 내외가 있어야 하고요, 상시 수리비도 많이 들거든요. 아침이면 하인이 가져다 주는 식사나 신문을 침대에 누워서 받아드는 일상이지만 어쩌다 브랜다가 런던에 갈 때는 기차표 할인하는 요일을 선택해 갈 정도이니 말하자면 우리집은 가난해, 우리집 정원사도 가난하고 가정부도 가난하고 보모도 가난하고 운전기사도 가난하거든, 이라는 말이 우스개가 아닌 상황입니다. 


여기서 자라고 이 집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남편 토니는 저택이 상징하는 전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저택이 요구하는 삶이 자연스러우며, 지역 목사를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드러나듯(이 목사는 수 년 전 식민지에 나가 있을 때 쓰던 강연문을 상황이 전혀 안 맞음에도 재탕삼탕 씁니다) 세상 변화에 무관심한 것도 당연하고, 외통수의 습관적 일상을 유지하면서 만족스러워 합니다. 저택을 관리한다기 보다 저택에 관리되는 인생 같습니다. 집 구석구석의 금이 간 부분들은 늘상 눈에 들어오지만 아내의 결혼생활에 대한 만족감이 어떤지에는 무딘 사람입니다. 젊디젊은 나이에 사교계와 멀어진 채 취향껏 대화도, 소비생활도 할 수 없는 브랜다의 정신에 균열이 조금씩 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보진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익히 보아 짐작하다시피 브랜다가 그리워하는 런던 사교계의 생활이라는 것도 얄팍한 것이지 않습니까. 여기저기서 열리는 파티에서 얄팍한 연애와 뜬소문으로 유지되는 거품같은 것인데 브랜다는 그런 게 필요한 가벼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택의 융통성 없는 무거움 때문에 더욱 그런 거품같은 생활이 그리웠는지 모르겠어요. 뭐 그리하여 브랜다는 한량에다 마마보이 모씨의 조악함을 애초에 알고 있었지만 그를 통해 런던 생활로 나가게 되고 남편과는 파국을 향해 갑니다. 


소설은 100페이지 정도를 남겨둔 삼분의 이를 지난 지점부터 분위기가 확 바뀝니다. 토니가 다른 환경에 가 있거든요. 워낙 분위기가 달라져서 브랜다 쪽 사정과 교차해 가면서 내용을 잇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작품을 읽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이 부분도 저는 나름 재미있었어요. 

자, 다 읽었거든요. 여기서 특이한 점을 알게 됩니다. 소설이 끝난 뒤에 작가인 에벌린 워가 쓴 글이 '서문'이란 뜬금없는 표현을 달고 또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결말'이 10페이지 붙어 있었습니다. 미국의 한 잡지사에서 연재를 원하면서 제가 위에서 분위기가 확 바뀐다고 했던 뒷 부분을 빼달라고 했다 합니다. 그래서 작가는 거기에 실을 다른 결말을 썼고 그 다른 결말 부분인 10페이지 분량도 수록하였다는 것이었어요. 저는 삼분의 이 지점부터도 나름 재미있게 봤다고 했으나 출판사의 요구도 이해가 되었어요. 삼분의 이 지점인 5장부터는 좋게 말하면 상당히 이색적이지만 냉정하게 보자면 전반부의 작품 흐름이나 기대감을 파괴하는 감도 있습니다. 출판사가 원한 제목은 '런던의 아파트'였다고 하니 더욱 그들이 원하는 내용의 방향을 잘 알 수 있었어요. 에벌린 워가 다시 쓴 '또 다른 결말' 10페이지는 급마무리의 느낌도 있고 냉소적인 결말이긴 하지만 출판사가 원하는 제목에 충실하게 정리됩니다. 

원작의 후반부 100페이지는 그 10페이지에 비해 멜랑콜리가 있으며 안타까움 가득한 기이한 마무리입니다.

저는 두 결말 부분을 연달아 읽으면서 소설의 세계를 창조하는 작가라는 신의 손을 새삼 느꼈습니다. 작가가 직접 한 권의 책 안에 인물의 전혀 다른 인생 행로 두 가지로 결말을 짓는 것을 보는 건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페이지도 잘 넘어가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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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짐승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9
모니카 마론 지음, 김미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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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이 책 크기도 좋고(민음사는 가로가 짧아서 저는 좀 불편하거든요) 표지 삼분의 이를 차지하는 검은 색 디자인은 처음 봤을 때 세련된 거 같기도 하고 새로운 거 같기도 한 듯, 이러며 좋게 봤어요. 그런데 각 작품마다 다르게 들어가는 윗 부분 삼분의 일이 가끔 취향에 넘 안 맞는 사진들이 있는데 이번 소설의 표지도 안 맞는 쪽이었어요. 책 내용과 연관된 무슨 의미가 딱히 있는 것 같지도 않고...누구 작품사진인가 싶어서 찾아봐도 적혀 있진 않네요.


자신의 나이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늙은 여성이 현재와 같은, 외부와 차단된 채 수십 년 삶을 살게 만든 이유가 되는 사랑을 이야기하는 소설입니다. 그 사랑의 시작 부분인 과거의 일을 기억해 내는 것이 이 소설의 내용입니다. 


모든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는 죽음과 결부되어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생물학적인 의미의 죽음이 대표적이지만 죽음과 버금가는 이별 상황도 끼워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사랑'이라고 짧게 표현하는 것일 뿐이지 남녀의 사랑이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 의미상 맞는 것이겠습니다. 


이 소설의 화자는 아마도 구십이나 백 살일 것이라고 본인 나이를 추측하고 있으며 사랑하는 이의 이름도 잊었기 때문에 그이의 이미지에 가장 가까운 '프란츠'라는 이름을 지어 부릅니다. 많은 기억들을 날마다 지어낸다고 얘기합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과 희망 사항과 꿈 같은 것이 마구 뒤섞여버린 상태라고 말합니다. 백 살에 이르기 직전 수십 년을 타인과 접촉없이 생각 속에서만 살았다면 가능한 일일 것 같아요. 화자는 연인이 떠난 후로 인생에 더 이상의 에피소드를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그래서 사람들과의 만남도 연락도 끊고 은행과 시장만 오가며 고립되어 살아왔어요. 본인은 '나의 인생을 끝나지 않는, 중단 없는 사랑 이야기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죽은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연인 '프란츠'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화자가 일하던 동독 박물관에 파견을 오게 되어 둘이 만나게 됩니다. 둘 다 기혼인데 화자만 가족들과 어느새 분리되고 오직 프란츠를 바라면서 만나는 시간을 이어갑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 이런 처지에 놓인 다른 이야기의 인물들처럼 화자는 질투, 의심, 소유욕의 고통으로 미치는 상황이 됩니다. 

비슷한 많은 이야기들과 변별되는 점은 회고의 주체가 어느 시점 이후로 사회와의 교류를 단절해 버린 백 세에 이른 노년 여성이라는 것과 동서독으로 분리되어 있다가 장벽 붕괴 후에 각각의 지역을 배경으로 한 남녀의 만남을 통해 그 시대의 변화와 혼란을 반영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시대의 영향을 받는 커플들이 화자의 지인들 비롯해서 몇 커플이 더 소개됩니다. 

사랑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만한 상황과 그에 대한 비유를 한 문장들이 빼곡하게 들어 있는 작품입니다. 사랑이라는 이 정신병적인 상태를 상황으로든 말로든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화자는 친구에게서 사랑이 믿음의 문제, 일종의 종교적 광기일 것이라는 말을 들은 후에 생각해 봅니다. 사랑은 우리 안에 남은 마지막 자연성이며 이것을 부정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내세울 것은 자신의 소망과 믿음밖에 없다고. 그러니까 사랑은 믿음의 문제고 결단의 문제라는 것이고 소설 속의 화자는 자신의 남은 삶을 그렇게 정리합니다.

참, 화자는 자연사박물관에서 브라키오사우루스라는 거대한 공룡의 뼈대를 관리하는 고생물학 전공자인데 멸종한 공룡에 대한 관심이 그 구조물 아래에서 만난 (군집생활을 하는)개미연구가인 한 남자에게로 옮겨갔다는 것도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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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살해자 마르틴 베크 시리즈 9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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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설의 제목인 '경찰 살해자'는 중심 사건이 아닙니다. 주가 되는 사건 즉, 시작 부분에 소개되고 대부분 분량을 차지하면서 수사되고 마지막에 해결되는 사건과 결부되어 있는 다른 사건에서 온 제목입니다. 그래서 소설의 반이 지나도록 왜 이 작품의 제목이 '경찰 살해자'인가 의아하게 됩니다. 엘릭시르의 이 시리즈는 살짝 작은 판형으로 나왔는데 500페이지 분량의 소설 중에 290페이지 정도에 이르러서야 제목과 관련된 사건이 등장하거든요. 주사건을 마르틴 베크가 끈기 있게 수사하지만 두 사건에 다 관여했던 절친이자 소중한 동료인 콜베리의 '육감'이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분량의 면에선 주가 아니지만 '경찰 살해자' 사건은 이번 작품의 주제면에서는 중심이 됩니다. 그래서 제목이 되었겠고요.


콜베리가 사직서를 씁니다. 경찰 고위층에 대한 불신, 관료적이고 전시행적적인 행태, 경찰 동료들의 전반적 수준저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조직에 소속감을 잃어가다 결단을 냅니다. 마르틴 베크 비롯 시리즈의 중심 인물들이 다 나이들어 가면서 승진을 할 위치에 이르니 악화일로인 경찰 조직에서 고위직을 원치 않는 선택일 것입니다. 

이 시리즈를 시작하며 마이 셰발, 페르 발뢰 두 작가는 범죄수사 이야기로 스웨덴 사회의 부정적인 면과 위선을 드러내고 싶었을 겁니다. 자신들 사상이(마르크스주의자였다고 합니다) 작품에 녹아 들고, 역할하기를 바라는 면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 경찰이 나날이 시민과 적대적이 되며 믿을 수 없는 집단이 되어 가는데 경찰에 소속된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경찰 개인의 능력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 가는 것에 한계를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냥 제 짐작입니다. 이번 소설은 경찰들을 데리고 경찰 조직 문제를 비판하는 내용의 정점인 듯합니다.  

50년 전의 스웨덴인데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경찰 조직이라든가 미래가 없다고 느끼는 젊은 세대라든가를 묘사한 것을 보면 지금 우리 사회가 배경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겹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복지국가인 그들 나라에 대한 부러움을 표하지만 소설 속에서 당사자들은 암담한 사회라고 욕하고요. 

 

늘 느끼지만 김명남 씨의 번역이 좋습니다. 인물들의 특성이 잘 살아나는 것도 번역의 공이 있을 거 같습니다. 

'그녀'라는 지칭을 쓰지 않습니다. 시리즈의 이전 책도 그랬는지 확인하진 않았는데 이번에 읽으며 눈에 확연히 띄네요. 삼인칭으로 여성을 지칭할 경우에 이름을 쓰거나 '그 여자'라고 부르거나 '그'라고 씁니다. '그'는 서술상황에 다른 남성과 혼동의 우려가 없을 때 쓰는 것 같았습니다.

이 소설에 이전 사건의 범인들이 형기를 마치고 재등장하고 있었는데 앞선 시리즈 중에 특히 좋았던 '연기처럼 사라진 남자'의 인물이 나와서 재독하고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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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서머스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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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서머스는 책읽기를 좋아하는 청부살인업자입니다. 

의뢰받은 일 때문에 작가로 위장하게 되는데 작가 흉내도 내고 목표물을 기다리는 빈 시간도 메꿀 겸해서 자신의 지난 날을 재료로 수기 종류의 글쓰기를 하게 됩니다. 

소설은 암살자로서의 일과 수기를 쓰는 일이 병행되다가 뒤로 가면서 이 둘이 서로 간섭해 들어갑니다. 주인공 빌리의 글쓰기는 위장의 방편이었고 포크너 흉내로 시작되었는데 의뢰받은 일을 끝내고 잠수하는 시간에 이르며 점점 대체불가의 무엇이 되어 빌리의 중심을 차지합니다. 어릴 때를 돌아보고 청소년기와 해병대 입대 후 이라크 파병 경험을 더듬어 나가며 글을 쓰는 과정에서 현재의 자신을 갱신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작품이 어떤 이야기인지는 인터넷 서점 등에서 잘 소개하고 있어요. 저는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띄엄띄엄 느낀 점을 조금만 써보려고요. 스포일러는 피해가면서요.


1. 전체 24장으로 되어 있는데 디데이인 10장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26페이지 분량입니다. 두 전문가 '빌리'와 '스티븐 킹'의 뛰어남을 느낄 수 있었어요. 청부살인업자로서의 15년 경력의 프로패셔널함이 잘 드러납니다. 철저하고 꼼꼼한 준비로 새벽부터 진행된 디데이의 일정이 흥미진진합니다. 이동하고 숨기고 기다리고 저격하고 찾고 숨고...모든 것을 대비하여 짜여진 동선을 따라 움직이는데 - 문장들이 연결되는데 스티븐 킹은 이 부분을 쓸 때 자신의 손에서도 땀이 차며 하루 일과 중 글쓰기로 정해둔 시간이 지나는 줄 모르고 타자를 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혼자 잠수 중인 1권의 마지막인 11, 12장이 좋았습니다. 암살자는 역시 혼자라야...제맛입니다.


2.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라는 작법 책을 냈잖아요. 저도 오래 전에 읽었는데 이런 책 가운데서도 술술 읽히고 재미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빌리 서머스'는 어찌보면 소설로,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서 '초짜에게 글쓰기가 갖는 의미', '초짜가 글쓰기의 실전에서 마주치는 문제' 등을 얘기해 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소설의 내용 전체가 글쓰기를 통한 만족감이나 각성의 측면으로 빗대어 살펴볼 수 있겠습니다. 세부적으로도 이라크 일을 쓰다가 망원 조준기 종류에 따른 성능 같은 걸 더 설명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면서, 다시말해 예상되는 독자의 범위랄지 세부 내용의 분배랄지를 고민하기도 하고 윌리엄 워즈워스의 '평온한 상태에서 소환된 강렬한 감정이 담긴 글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글'이라며 심란한 마음일 때는 노트북을 덮습니다. 또 찰스 디킨슨이나 에밀 졸라의 법칙이라는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최소 두 번은 쓰여야 한다.' 같은 문장들을 머리속으로 웅얼거립니다. 


3. 스티븐 킹의 소설에서 아쉬운 점은, 좋은 사람들 사이의 신뢰와 우정은 거의 종교 수준으로 철썩같고 단순하다는 것입니다. 가끔은 이런 것을 표현하는 대목을 읽을 때 민망함을 느낍니다. 이 소설의 빌리 역시 암살자라기엔 너무 순정남입니다. 마지막 한 탕을 획책하며 하필이면 작가로 위장해서 글쓰기를 하는 바람에 생긴 각성의 효과도 있겠으나 원래 '좋은' 사람이었던 느낌이고 빌리와 한편 먹는 이들도 바탕이 선량해서 서로를 재까닥 알아보고 무한신뢰하네요. 사건 따라가는 소설에서 주인공이 걸핏하면 갈등에 빠지는 햄릿형이어서 심리 표현이 위주가 되는 것도 곤란하다 싶지만요, 이렇게 속이 투명하다니... 쬐금만 더 복잡한(회색의? 더러운?) 인간이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작가 자신의 선량함이나 인간에 대한 태도가 반영된 것일 수도 있겠지요. 


4. 초판 1쇄를 사면 오탈자와 이상한 문장을 흔히 만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정치인들이 발이 빼자 후퇴했다. 앨리스는 입술을 꾹 다물고 이를 보이지 낳은 채 엷은 미소를 짓는다. 자네가 여기서 지내는 동안 그 아저씨는 손님방을 쓰라고 해.' 등등)

'대존잘'은 무슨 뜻인지. 엄청 존나게 잘났다? 소설 속에서 노인이 젊은 사람들 말 흉내 상황이긴 하지만, 음...번역자가 너무 일시적 유행어는 안 썼으면 좋겠어요. 


5. 아쉬운 점을 3에서 썼으나 킹의 소설 중에 이 작품은 손꼽히는 만족감을 주었습니다.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는 눈물이 맺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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