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부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6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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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암사의 나쓰메 소세키 전집 중 6권 '갱부'를 읽었어요. 

'갱부'에 대한 사전 정보는 없었기 때문에 이 작가가 광산을 배경으로 갱부 얘기를? 이런 소설도 썼다니 뜻밖이네, 라고 여겼고 어떤 이야기인지 궁금했습니다. 이전까지 읽었던 소세키의 주인공들은 도시에 사는 고학력자였거든요.  

이 소설은 광산의 작업 환경이나 그로 인한 갱부들의 고통을 문제삼거나 고발하는 작품이 아니었어요. 심지어 어떤 갱부의 개인적인 얘기도 아닙니다. 주인공이 '갱부'가 될 뻔하다가 만 이야기였습니다. 이 소설에서 실제로 채굴 현장 체험은 하룻동안의 오리엔테이션이 전부입니다.

 

300페이지 정도의 분량이며 내용은 단순합니다. 열아홉 살 주인공은 삼각 관계로 창피를 당하게 될 상황이 되자 죽어버리거나 자멸 상태가 되고 싶어 가출하는데 길을 걷는 중 어쩌다 만난 알선업자를 따라 광산까지 가게 됩니다. 갱부가 되면 여차하면 죽을 수도 있겠고 어두운 땅 속에서 사람들과 멀리하며 살 수 있으니 '자멸'의 상태에 가깝다는 생각으로 따라갑니다. 돈도 없고 뭐 될대로 되라는 마음이었으니까요. 처음에는요. 소설은 브로커를 따라 광산까지 가는 과정, 광산에서 다른 갱부들 틈에서 숙식하며 열악한 상황을 겪는 장면, 그 다음 날 탄광 속에서 하루를 보내며 고생 중에 어떤 사람과 만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인물의 마음이 차츰 침착해지며 정리되는 마무리 부분이 있고요. 


죽고 싶어하던 사람이 유사 죽음 체험을 통해 살아가기로 생각을 바꾸는 이야기라 할 수 있어요. 생각을 바꾸게 되는 데는 갱 속의 지옥같은 열악함 때문만이 아니고 그 괴로운 경험으로 인하여 조성된 마음 상태에서 만난 특별한 갱부의 역할이 매우 큽니다. 문학이나 영화에서 상징적으로 꽤 쓰이는 '굴'이라는, 삶도 죽음도 아닌 장소를 통과하는 중에 은인인지 현인인지를 만나며 삶에 대한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입니다. 일종의 성장 소설입니다. 읽다가 보면 푹 빠지게 되고 몇몇 장면은 작가의 역량을 확인하며 기껍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갱 내부를 헤메던 중에 그 특별한 갱부를 만난다는 설정은 작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소세키 소설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했어요. 

소설 마지막 문장이 이러합니다. '내가 갱부에 대해 경험한 것은 이것뿐이다. 그리고 모든 게 사실이다. 소설이 되지도 못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소설이 되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왜 이런 말을? 당연히 겸양에서 하는 소리가 아니겠죠. 소설 속에 자살 명소로 유명했다는 게곤 폭포가 몇 번 언급됩니다. 소설 초반부터 언급되더니 갱 내에서 사다리에 매달려 힘이 빠지자 주인공은 여기서 죽는 건 개죽음이니 밝은 세상에 나가서, 게곤 폭포로 가서 죽어야 한다고 힘을 내기도 합니다. 소세키의 제자였던 고등학생 후지무라 미사오가 게곤 폭포에서 글을 남기고 자살한 후로 모방자살이 많았다고 하네요. 해설을 쓴 장정일 작가에 의하면 이 작품 '갱부'는 후지무라 미사오가 자살로 외친 인생의 허무에 대한 일종의 대답이라고 합니다. 

절망 끝에 다다른 탄광의 갱 속에서 만난 갱부로부터 예사롭지 않은 가르침을 듣는다는 설정은 '현실'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지만 '소설'이라면 무리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작가는 포기할 수 없는 이야기를 제자 비롯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었나 봅니다. 쓸 당시에는 작가에게 절실했는지 모르겠지만 세월이 흐른 다음 읽는 독자의 눈에는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어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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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로주점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3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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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알고 있던 고전 소설에 대해 오해하고 지냈던 경우가 꽤 있습니다. 주인공이 주점을 운영하거나 종업원으로 일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 주점이 이야기의 배경이리라고 짐작해 왔습니다. 아니었어요. 주인공 제르베즈의 평생 직업은 세탁부입니다.   

원제인 assommoir 는 '도살용 도끼, 선술집'이라는 뜻을 가지는 요즘은 잘 안 쓰는 프랑스어인 모양입니다. 우리말로는 '목로주점'이라는 제목으로 자리잡아서 어쩐지 낭만적인 느낌이 더해져 있네요. '선술집'이나 그냥 '술집' 같은 제목이 낫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의미가 아닌 어감상으로요. 이제는 '목로주점'이라는 제목이 고유명사로 자리잡은 듯해 어렵겠지요. 원제를 보면 중의적인 의미가 있네요. 술집이 분량상으로는 많이 차지하는 배경이 아니지만 이야기 전개의 중요성 면에서는 절대적입니다.

졸라의 다른 소설 '집구석들'도 공간이 중요했습니다. 브루조아들이 모여 사는 건물이 배경이면서 유기물과 같은 하나의 세계를 이루며 계급의 전형을 보여 줍니다. '목로주점'도 공간이 중요합니다. 주인공의 흥망성쇠가 공간들로 표현되어 있었어요.  


에밀 졸라는 총서를 시작할 때 발자크와의 차이를 말하며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나는 현대사회가 아닌 한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타고난 유전적 기질이 환경에 의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역사적 배경과 직업, 거주 공간 등을 작품 환경으로 선택할 것이다. 나는 순수한 자연주의자이자 순수한 생리학자이고 싶다. 원칙(왕정, 종교)보다는 법칙(유전, 격세유전)에 근거한 글쓰기를 지향하고자 한다.' 

인간을 표현할 때 이념과 이상으로 된 가치관이 주는 영향(원칙)보다는 타고난 유전적 요인과 직업, 주거 공간 같은 환경적 요인만을 살펴 쓰겠다는 뜻이겠습니다. 이것은 졸라의 인간관일 수도 있고 그에 따른 소설작법에서의 선택이겠으나 논란이 따랐다는 건 당연하게 보입니다. '목로주점'이 발표되고 졸라는 양측에서 다 공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보수 진영에선 문학과 병리학을 구분 못한다, 공화파로부터는 민중에 대한 경멸로 그들을 깎아내리는 인물이다, 라고요. 빅토르 위고조차도 '노동자들이 처한 비참하고 비천한 상처를 드러내 보여 세인의 구경거리로 전락시켰음은 유감스럽다.'고 했다네요. '목로주점'만을 보면 민중들의 삶에 희망이나 전망이 안 보이니까요. 애초에 그들은 가난을 대물림하며 교육도 못받고 술 한 잔의 위로만이 의지가 되는 일상인데 이를 그대로 전시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생각을 했겠습니다. 

하지만 신문에 실리는 노동자들의 사건사고 조각 기사와 한 인물의 기복을 따라가는 긴 이야기는 역할과 파장이 다르지 않겠습니까. 당시에 이 소설을 읽은 노동자들이라면 제르베즈의 성실함과 어리석음에 이입하고 분노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반면교사삼는데 어떤 설교보다 낫지 않았을까, 단순하지만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그들을 들러리로 다루지 않았고 그들 중 하나가 주인공인 이야기가 귀했을 당시에 말입니다.

총 13장 중에 12장 후반 30페이지 정도는 제르베즈의 최악의 상태를 기술하는 부분인데 거리를 헤메다 가스등에 생긴 자신의 그림자를 보게 되는 장면은 잊히지 않습니다. 원래 다리를 살짝 절던 제르베즈는 나이들수록 몸이 불면서 다리를 심하게 절게 되는데 길바닥에 비친 그 그림자, 비대하고 땅딸막하고 흐느적거리며 텀블링이라도 하는 듯한 자신의 그림자를 보며 절망합니다. 굶주려서 눈오는 거리를 헤메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자기 그림자를 보게 한 작가가 새삼 대단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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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일족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5
모리 오가이 지음, 권태민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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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은 '아베 일족', '무희', '기러기', '다카세부네' 순으로 되어 있습니다. 중단편집 경우에 편집자들이 작품 순서를 무슨 기준으로 정하는지 문득 궁금한데, 저는 시간상 먼저 나온 작품부터 짧게 소개하겠습니다.


'무희'(1890)

국비로 독일 유학을 간 주인공이 그곳에서 만난 어린 여성과 살다가 본국에서 온 지인의 권고에 의지해서 그 여성을 버리고 귀국하는 내용입니다. 참으로 흔해빠지고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여성이 극단 소속으로 무대에서 춤을 추는 직업을 가졌긴 하지만 무희로서의 직업적인 특성이 소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없습니다. 아니 이 어린 여성 자체의 개성이 거의 없습니다. 그냥 홀어머니와 사는 가난하고 순진하고 어린 여자입니다. 저는 읽으면서, 읽고 난 후에도 이 인물을 떠올리면 독일 여성이 아니라 기모노를 입은 게이샤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무희'라는 제목은 이 여성을 고정 이미지에 가두고자 하는 의도만이 느껴집니다. 

화자는 주어진 길 안에서 기계적으로 안정을 도모하며 살아온 자신의 성격을 몇 번이나 탓합니다. 무희와의 관계가 소문나서 학업을 중단하게 되고 생계유지에 허겁지겁할 때는 친구의 도움에 난파선이 섬을 만난듯 의지했으면서 이야기의 마무리 부분에서는 자신의 성격뿐만 아니라 의지력 없는 자신을 옆에서 부추겨 여자를 버리고 떠나게 만든 친구를 원망합니다. 남 탓을 하기까지 하니 화자의 비겁과 의지박약을 두드러지게 하려는 의도인 것 같아요.   

작가의 첫 소설이라고 합니다. 연보를 보면 모리 오가이가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독일에서 뒤따라온 여자가 있었고 집안에서 돌려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소설이 화자에게 역겨움을 느끼게 마무리된 것은 작가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자 부끄러움을 글로 남겨놓겠다는 뜻이었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기러기'(1911)

화자가 대학 때 하숙을 함께하던 '오카다'라는 인물의 일을 이야기합니다. 화자가 곁에서 본 것과 오카다 본인에게 들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읽다 보면 오카다나 화자가 알 리 없는 상대 여성의 일상과 심리가 어떻게 서술이 가능한지 의아한데, 이야기의 끝에 가서 화자 자신도 사건의 시간이 지난 후에 상대 여성을 알게 되어 그때 일을 들었고 그래서 전부터 알던 것과 뒤늦게 알게 된 것을 조합하였다고 밝힙니다. 앞 문장에서 사건의 시간이라고 했으나 흔히 이런 이야기의 흐름에서 예상할만한 뚜렷한 사건이랄 게 없습니다. 오카다는 의대 재학생이고 그가 규칙적으로 산책하는 코스에 있는 길갓집에 외로이 사는 상대 여성은 고리대금업자의 아름다운 첩입니다. 

위에 모리 오가이의 첫 소설에 비하면 이 작품은 참 좋았습니다. 이야기를 짜나가는 솜씨가 훌륭하고 인물들의 속내를 헤아려 보게 하는 여백의 힘이 있으면서 인간사의 덧없음도 아울러 담고 있어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사건이라 할만한 것은 길갓집 새장에 있는 새를 노린 뱀을 둘러싼 소동 정도가 있는데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그 생생하고 무서운 묘사로 긴장이 되었어요. 소설을 읽으며 놀랄 지경이 된 장면을 만난 것은 오랜만이었습니다. 

110페이지 정도 분량의 이 소설은 연재소설이었다고 하는데 작가가 창간한 문예잡지 '스바루'를 통해 연재했을까요. 육군 고위직에 있으면서 문예지를 운영하고 이런 작품까지 썼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아베 일족'(1913)

1641년 영주 호소카와 다다토시가 병으로 죽습니다. 주군이 죽으면 가신들이 따라 죽는 순사의 전통에 따라 열여덟 명이 허락을 받아 할복을 합니다. 소설의 앞부분에 이 가신들이 어떤 인연으로 영주를 모시게 되었고 무슨 일을 했는지가 열거됩니다. 이들이 영주가 위독하자 순사를 허락 받는 과정과 영주가 죽은 후 순사를 어디서 했고 누가 뒷처리를 했는지가 줄줄이 이어서 나옵니다. 

맛보기로 한 명만 그대로 옮겨 볼게요. 

<데라모토 하치자에몬나오쓰구의 선조는 오와리 지방의 데라모토에 살았던 데라모토 다로라는 사람이다. 다로의 아들이었던 나이젠노쇼는 이마카와 가문에 봉사했다. 나이젠노쇼의 아들이 사헤에이고 사헤에의 아들이 우에몬 노스케이다. 또 우에몬노스케의 아들이 요자에몬인데 그는 조선 정벌 때 가토 요시아키 부대에 속해 공을 세웠다. 요자에몬의 아들이 하치자에몬인데 그는 오사카 전투 때 고토 모토쓰구 밑에서 일한 적이 있다. 호소카와 가문의 부름을 받고 녹봉 1000석에, 철포 부대 50정의 조장을 맡고 있었다. 4월 29일 안요사에서 할복했다. 53세였다. 후지모토 이자에몬이 뒷마무리를 담당했다.> 

이름도 길고 복잡한데 누가 누구 아들이고 무슨 공을 세워 녹봉은 얼마고 등등의 계통이 나오면 좀 어쩌라고 싶은 마음이 되긴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열여덟 명의 열거 이후에 순사를 허락받지 못한 아베 야이치에몬이라는 인물이 드디어 등장합니다. 그리고 어찌저찌하여 아베 일족 전체가 본가에서 농성을 하게 되고 토벌이 됩니다. 


이 작품은 거의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네요. 오가이의 역사 소설은 사료를 충실히 조사해서 그 안에 있는 '자연스러움'을 존중하는 역사관에 의해 쓰여졌답니다. 변경하는 것은 싫었다고 본인이 수필에서 밝혔답니다.

이 작품이 소설이라는 것은 실제 일어난 일을 드러내는 과정에 어떤 결정을 내리는 장면에서 인물의 심리가 조금 얹어진다는 것, 실제 일어난 일에 대해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가 조금의 상상이 발휘되어 제공된다는 것, 정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독자에게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창작 부분을 뚜렷하게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작품이지 싶습니다. 작가의 말을 근거로 보면 일단 일어난 일들, 사건들과 인물들은 모두 사료에 있는 역사적 사실인 모양입니다.


소설 독자로서 이 작품은 내용보다 문장과 서술 방식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무인이 쓴 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난중일기를 김훈의 소설에서 조금 맛보았을 때 가졌던 느낌이 떠올랐는데 김훈의 소설은 문체가 두드러지게 앞장선 면이 있습니다만 이 소설은 문체상의 '기교' 같은 것이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그냥 기름기 없는 정확한 문장에다가 갑자기 싹둑자르듯 서술되는 사건의 전개가 단도직입입니다. 앞서의 '무희', '기러기' 와는 다른 산뜻하면서도 섬뜩하게 다가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다카세부네'(1916)

제목 '다카세부네'는 교토에서 오사카로 죄인을 호송해 가는 배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호송하는 관리가 하루는 특이한 죄인을 만나게 되는데 이 죄인으로 인해 자기 삶을 돌아본다는 내용의 14페이지 짜리 짧은 소설입니다.



@ 모리 오가이의 '기러기'와 '아베 일족'은 무척 인상적이었고 좋았습니다. 그런데 나쓰메 소세키와 견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견주기에는 작품 수가 적고 단편 위주니까요. 모리 오가이가 1862년 생으로 소세키보다 5년 일찍 출생했다고 하는데 훨씬 더 예전 사람 느낌이 듭니다. 장남이라서 대접 받았지만 부담도 크게 지고 성장하였고 의대도 최연소 졸업생이라 칭찬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육군에 지원한 것은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공직이 좋다는 주위의 권유 때문이라 하고요. 여튼 나쓰메 소세키에 비해서 성장 환경이나 진로 선택을 봤을 때 전통의 압박과 영향을 더 많이 받지 않았나 짐작해 봅니다. 미시마 유키오가 모리 오가이를 높게 평가 언급한 것을 봤는데 미시마 유키오가 좋아할 만한 요소가 있다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앞으로 작품들이 더 번역되어 나오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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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을유세계문학전집 97
에밀 졸라 지음, 권유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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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묘사' 부분 좋아하시는지요. 

일단은 읽고 나서 가지는 생각이긴 한데 저는 필요했다는 동의가 충분히 되지 않으면 묘사를 위한 묘사가 길게 나오는 부분은 재미가 덜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느끼는 작품이 대부분 외국 소설인 것을 보면 감을 잡기 어려워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연 경관 묘사의 경우에 식물에 무지해서 식물 이름이 나오면서 생김새나 이미지를 상세하게 묘사하면 빨리 끝나기를 바라게 되거든요.

 

이 소설에 묘사가 꽤 길게 자주 나옵니다. 파리 사람들이 걷기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걷기 좋은 아름다운 도시라서 그렇겠죠. 여튼 백 오십여년 전의 이 소설 속 인물들도 자주 걷는데요, 중심 인물들이 걷기 시작하면 은근히 걱정이 됩니다. 혼자서 또는 여럿이서 걷기 시작하면 작가는 이들이 걸으며 보는 주변을 상세하게 묘사하거든요. 이들이 누구냐하면 인상주의 화가들 아니겠습니까. 해가 내리쬐거나 구름에 그늘지거나 석양에 물들거나 가로등에 반사되기도 하며 - 빛에 의해 변화하는 파리의 모습을 글로 그리고 있어요. 여러 건축물들과 센강 주변 부두의 노동자와 선박, 멀리 보이는 섬과 다리들과 기차와 마차와 인파들. 묘사가 길게 이어진 부분은 헤아려 보니 8페이지 분량도 있었습니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업을 다루고 있는 이 소설에서 화가의 시선으로 본 자연과 파리라는 도시의 세부 묘사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또한 작가가 문장들로 그림의 효과를 의도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이 부분은 읽는 중에 생각한 것인데 소설을 다 읽고 뒤의 해설을 보니 비슷한 이야기를 해설자가 하는 걸로 봐서 다들 그렇게 이해하는 듯합니다) 

제 경우에 좋았던 묘사 부분도 있었으나 실물 그림을 보지 않은 채 누군가 그림을 말로 설명하는 것을 들을 때의 파편화된 느낌과 지루한 느낌도 있었습니다. 소설에서 묘사가 사건과 연결되어 있지 않을 때 흔히 그런 느낌을 받아왔듯이요. 이 작품은 '묘사' 자체가 중요한 소설이니 이런 불평은 적절하지 않을 듯하지만 어쨌든 재미의 면에선 앞서 읽은 '집구석들'보다 못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클로드는 그가 그렸다는 그림 설명을 보면 마네, 개인사를 보면 세잔을 떠올리게 하며 불우한 천재의 전형성을 갖고 있는 인물입니다. 아쉬운 점은 이 인물의 내적 동기같은 것이 충분히 그려지지 않은 점입니다. 변덕스러움이야 누구나 다소 가졌으나 그 이외의 동기들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봤어요. 등장하는 예술가들이 모두 에밀 졸라 특유의 '냉정한 시선으로 해부' 되는데 그것은 인물들의 장점 보다 단점을 부각시킨다는 뜻일까요. 먼저 읽은 '집구석들' 역시 인물들이 거의 한결같이 저속하고 천박함을 휘둘렀는데 그 소설의 인물상은 그 작품의 주제면에서 충분히 설득력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 '작품'에선 클로드와 예술가 친구들이 이렇게 그려질 이유가 있을까, 아쉽게 여기는 마음이 살짝 들 정도로 부정적인 면이 두드러진 느낌입니다. 

단 예외가 클로드의 절친이며 소설 후반에 작가로 성공하는 상도즈입니다. 상도즈는 에밀 졸라 자신입니다. 소설 속에서 상도즈는 총서 시리즈에 대한 포부를 밝힐 뿐만 아니라 졸라의 비망록에 그렇게 쓰여 있다고 하니까요. 상도즈는 무리에서 유일하게 일상과 예술을 조화시킨 인물로 표현되어 있고 성실하고 다정합니다. 클로드를 끝까지 지지하고 곁에 남는 친구입니다. 

세잔이 이 소설을 읽고 어느 정도의 환멸을 느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틀림없이 환멸을 느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드네요.(졸라여, 그대의 해부의 칼끝은 그대만을 비켜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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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줌의 먼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7
에벌린 워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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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가 민음사판 책의 뒷표지에 왕창 다 적혀 있습니다. 중요 사건이 다 적혀 있어서 신경 쓰는 분들께선 뒷표지를 보지 마시고 바로 본문을 읽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저는 아래에 인물들의 갈등 배경을 조금, 뒷부분에는 이 소설의 특이했던 점을 조금 적으려고 합니다. 중요한 사건들을 직접 나열하진 않으려고요.


브랜다와 토니 라스트 부부는 상류층 사람들 치고는 경제적인 여유 없이 쪼들리며 삽니다. 이들의 소유이자 거주지인 헤턴 저택은 지역의 명소로 군 안내서에도 소개가 들어가 있는 고딕양식의 대저택인데 이 저택을 유지하고 끊임없이 요구되는 보수를 하기 위해 수입을 거의 쏟아 붓고 있어요. 저택을 유지하자면 집 안에서 일하는 하인들 15명, 그외 정원사 비롯 고용인이 6명 내외가 있어야 하고요, 상시 수리비도 많이 들거든요. 아침이면 하인이 가져다 주는 식사나 신문을 침대에 누워서 받아드는 일상이지만 어쩌다 브랜다가 런던에 갈 때는 기차표 할인하는 요일을 선택해 갈 정도이니 말하자면 우리집은 가난해, 우리집 정원사도 가난하고 가정부도 가난하고 보모도 가난하고 운전기사도 가난하거든, 이라는 말이 우스개가 아닌 상황입니다. 


여기서 자라고 이 집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남편 토니는 저택이 상징하는 전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저택이 요구하는 삶이 자연스러우며, 지역 목사를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드러나듯(이 목사는 수 년 전 식민지에 나가 있을 때 쓰던 강연문을 상황이 전혀 안 맞음에도 재탕삼탕 씁니다) 세상 변화에 무관심한 것도 당연하고, 외통수의 습관적 일상을 유지하면서 만족스러워 합니다. 저택을 관리한다기 보다 저택에 관리되는 인생 같습니다. 집 구석구석의 금이 간 부분들은 늘상 눈에 들어오지만 아내의 결혼생활에 대한 만족감이 어떤지에는 무딘 사람입니다. 젊디젊은 나이에 사교계와 멀어진 채 취향껏 대화도, 소비생활도 할 수 없는 브랜다의 정신에 균열이 조금씩 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보진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익히 보아 짐작하다시피 브랜다가 그리워하는 런던 사교계의 생활이라는 것도 얄팍한 것이지 않습니까. 여기저기서 열리는 파티에서 얄팍한 연애와 뜬소문으로 유지되는 거품같은 것인데 브랜다는 그런 게 필요한 가벼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택의 융통성 없는 무거움 때문에 더욱 그런 거품같은 생활이 그리웠는지 모르겠어요. 뭐 그리하여 브랜다는 한량에다 마마보이 모씨의 조악함을 애초에 알고 있었지만 그를 통해 런던 생활로 나가게 되고 남편과는 파국을 향해 갑니다. 


소설은 100페이지 정도를 남겨둔 삼분의 이를 지난 지점부터 분위기가 확 바뀝니다. 토니가 다른 환경에 가 있거든요. 워낙 분위기가 달라져서 브랜다 쪽 사정과 교차해 가면서 내용을 잇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작품을 읽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이 부분도 저는 나름 재미있었어요. 

자, 다 읽었거든요. 여기서 특이한 점을 알게 됩니다. 소설이 끝난 뒤에 작가인 에벌린 워가 쓴 글이 '서문'이란 뜬금없는 표현을 달고 또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결말'이 10페이지 붙어 있었습니다. 미국의 한 잡지사에서 연재를 원하면서 제가 위에서 분위기가 확 바뀐다고 했던 뒷 부분을 빼달라고 했다 합니다. 그래서 작가는 거기에 실을 다른 결말을 썼고 그 다른 결말 부분인 10페이지 분량도 수록하였다는 것이었어요. 저는 삼분의 이 지점부터도 나름 재미있게 봤다고 했으나 출판사의 요구도 이해가 되었어요. 삼분의 이 지점인 5장부터는 좋게 말하면 상당히 이색적이지만 냉정하게 보자면 전반부의 작품 흐름이나 기대감을 파괴하는 감도 있습니다. 출판사가 원한 제목은 '런던의 아파트'였다고 하니 더욱 그들이 원하는 내용의 방향을 잘 알 수 있었어요. 에벌린 워가 다시 쓴 '또 다른 결말' 10페이지는 급마무리의 느낌도 있고 냉소적인 결말이긴 하지만 출판사가 원하는 제목에 충실하게 정리됩니다. 

원작의 후반부 100페이지는 그 10페이지에 비해 멜랑콜리가 있으며 안타까움 가득한 기이한 마무리입니다.

저는 두 결말 부분을 연달아 읽으면서 소설의 세계를 창조하는 작가라는 신의 손을 새삼 느꼈습니다. 작가가 직접 한 권의 책 안에 인물의 전혀 다른 인생 행로 두 가지로 결말을 짓는 것을 보는 건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페이지도 잘 넘어가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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