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로주점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3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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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알고 있던 고전 소설에 대해 오해하고 지냈던 경우가 꽤 있습니다. 주인공이 주점을 운영하거나 종업원으로 일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 주점이 이야기의 배경이리라고 짐작해 왔습니다. 아니었어요. 주인공 제르베즈의 평생 직업은 세탁부입니다.   

원제인 assommoir 는 '도살용 도끼, 선술집'이라는 뜻을 가지는 요즘은 잘 안 쓰는 프랑스어인 모양입니다. 우리말로는 '목로주점'이라는 제목으로 자리잡아서 어쩐지 낭만적인 느낌이 더해져 있네요. '선술집'이나 그냥 '술집' 같은 제목이 낫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의미가 아닌 어감상으로요. 이제는 '목로주점'이라는 제목이 고유명사로 자리잡은 듯해 어렵겠지요. 원제를 보면 중의적인 의미가 있네요. 술집이 분량상으로는 많이 차지하는 배경이 아니지만 이야기 전개의 중요성 면에서는 절대적입니다.

졸라의 다른 소설 '집구석들'도 공간이 중요했습니다. 브루조아들이 모여 사는 건물이 배경이면서 유기물과 같은 하나의 세계를 이루며 계급의 전형을 보여 줍니다. '목로주점'도 공간이 중요합니다. 주인공의 흥망성쇠가 공간들로 표현되어 있었어요.  


에밀 졸라는 총서를 시작할 때 발자크와의 차이를 말하며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나는 현대사회가 아닌 한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타고난 유전적 기질이 환경에 의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역사적 배경과 직업, 거주 공간 등을 작품 환경으로 선택할 것이다. 나는 순수한 자연주의자이자 순수한 생리학자이고 싶다. 원칙(왕정, 종교)보다는 법칙(유전, 격세유전)에 근거한 글쓰기를 지향하고자 한다.' 

인간을 표현할 때 이념과 이상으로 된 가치관이 주는 영향(원칙)보다는 타고난 유전적 요인과 직업, 주거 공간 같은 환경적 요인만을 살펴 쓰겠다는 뜻이겠습니다. 이것은 졸라의 인간관일 수도 있고 그에 따른 소설작법에서의 선택이겠으나 논란이 따랐다는 건 당연하게 보입니다. '목로주점'이 발표되고 졸라는 양측에서 다 공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보수 진영에선 문학과 병리학을 구분 못한다, 공화파로부터는 민중에 대한 경멸로 그들을 깎아내리는 인물이다, 라고요. 빅토르 위고조차도 '노동자들이 처한 비참하고 비천한 상처를 드러내 보여 세인의 구경거리로 전락시켰음은 유감스럽다.'고 했다네요. '목로주점'만을 보면 민중들의 삶에 희망이나 전망이 안 보이니까요. 애초에 그들은 가난을 대물림하며 교육도 못받고 술 한 잔의 위로만이 의지가 되는 일상인데 이를 그대로 전시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생각을 했겠습니다. 

하지만 신문에 실리는 노동자들의 사건사고 조각 기사와 한 인물의 기복을 따라가는 긴 이야기는 역할과 파장이 다르지 않겠습니까. 당시에 이 소설을 읽은 노동자들이라면 제르베즈의 성실함과 어리석음에 이입하고 분노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반면교사삼는데 어떤 설교보다 낫지 않았을까, 단순하지만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그들을 들러리로 다루지 않았고 그들 중 하나가 주인공인 이야기가 귀했을 당시에 말입니다.

총 13장 중에 12장 후반 30페이지 정도는 제르베즈의 최악의 상태를 기술하는 부분인데 거리를 헤메다 가스등에 생긴 자신의 그림자를 보게 되는 장면은 잊히지 않습니다. 원래 다리를 살짝 절던 제르베즈는 나이들수록 몸이 불면서 다리를 심하게 절게 되는데 길바닥에 비친 그 그림자, 비대하고 땅딸막하고 흐느적거리며 텀블링이라도 하는 듯한 자신의 그림자를 보며 절망합니다. 굶주려서 눈오는 거리를 헤메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자기 그림자를 보게 한 작가가 새삼 대단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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