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아니에요! 책임감을 느껴야죠! 엄청난 책임감이요! 연민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면, 그건 엄청난 책임이 따르는 일이라고요! 성인이라면 어떤 일에 관여하기 전에 자신이 어디까지 함께 갈 건지부터 먼저 생각해봐야 합니다." - P236

연민에는 두 종류가있습니다. 그중 하나인 나약하고 감상적인 연민은 그저 남의 불행에서 느끼는 충격과 부끄러움으로부터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하는 초조한 마음에 불과합니다. 함께 고통을 나누는 것이 아닌 남의 고통으로부터본능적으로 자신의 영혼을 방어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연민이란 감상적이지 않은 창조적인 연민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원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힘이 닿는 한 그리고 그 이상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함께 견디며 모든 것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갖는 연민을 말합니다. 마지막까지 함께 갈 수 있는 사람만이, 비참한 최후까지 함께 갈 수 있는 끈기 있는 사람만이 남을 도울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 P236

나는 이 세상에 나쁜 일이 발생하는 까닭은 사악함이나 잔인함이 아닌 나약함 때문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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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8-25 1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 제가 이 책을 참 좋아합니다. 서투른 연민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

달자 2024-08-25 23:39   좋아요 1 | URL
이 책 너무 좋아요 하 세상에 좋은 책은 왜이리 많은가요?
 

사실,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언제나 기이한 우연 아니던가! 사소한 외적 요소라도 우리에게 용기를 줄수도, 빼앗을 수도 있는 법이다.
까지에요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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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이 마을에서
사노 히로미 지음, 김지연 옮김 / 문예춘추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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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작년에 이 책을 한국에 오는 비행기 안에서 읽으려고 ebook으로 살까 말까 하다가 결국 사지 않고 장바구니에만 넣어두고 다른 책을 샀었더랬다. 그렇게 새로 차곡차곡 쌓인 책들에 파묻혀 저 뒤편으로 사라진 책이었는데 며칠전 다락방님께서 읽는 걸 보시고 '아 맞다 이 책 나도 읽고 싶었지!!' 하고 동네 알라딘 매장에서 찾아봤는데 있어서 바로 샀다. 그리고 그 날 홀라당 다 읽어버렸다.


책은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동네'와 '이웃'을 소재로 다루는 일본 현대 추리소설/스릴러물답게 역시 하고픈 이야기는 단체생활의 폐쇄성, 그런 집단이기주의가 가져오는 패악. 이런 거고 그거 플러스, 이 세상의 악은 절대악인 한 사람만이 가해자인게 아니라, 그 악한 시스템에 '어쩔 수 없다', '원래 그런거다', '이게 다 모두를 위한 것이다' 라는 각자의 자기 합리화를 하며 정신을 차리고 보면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추동자들, 방관자들, 간접 가해자들, 2차 가해자가 되어 있는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그런 교훈적 스릴러물이다, 라고 소개할 수 있겠다.


다만 별을 하나 깎은 이유는주인공이 자신의 딸과 마키를 자꾸만 동일시하는지, 그리고 그 부분이 이야기의 꽤 중요한 축을 차지한다는 점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대부분의 등장인물처럼 마사키의 딸 에리도 '애초에 잘못한 폭력의 근원'은 아니지만 2차가해자 혹은 간접 가해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유일하게 가해자가 아닌 사람은 모치즈키 모녀, 모치즈키 료코와 모치즈키 마키 아닌가?

(근데 자꾸 모치즈키라는 이름을 볼 때 마다 모차렐라 치즈가 생각이 났다...........)

아 맞다, 그리고 조력자로 등장하는 곤도씨도 제외하고. 

그럼 에리와 마키는 나이대가 비슷한 여성이라는 점 말고는 비슷한 점이 없는데 자꾸 마사키가 마키를 자신의 죽은 딸과 동일시하는 점이 서사를 끌고 가기 위해 조금 억지스런 부분이 없지 않았나..하는 마음에 별은 하나 빼기로 했다.

아무튼 재미와 더불어 시사할 점도 상기시켜주는 그런 스릴러 추리 소설을 몰입해서 하룻밤사이 후루룩 읽고 싶다? 이 책을 읽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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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8-22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리도 2차 가해자, 간접 가해자이긴 하지만 이 책의 전체적인 맥락처럼 그 시스템에서 살아남기를 선택해 가해자가 된거잖아요. 그런 지점에서 자꾸 언급이 됐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집단이기주의, 시스템에 동조하는 건 주인공도 그랬고 주인공의 딸도 그랬고, 변호사(이름 기억 안남)도 그랬고, 여하튼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곳 어디에서도 그런 입장이 될 수 있다, 뭐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했고 그걸 드러내려다 보니 자꾸 (가해자로서의)에리와 (피해자로서의) 마키 를 함께 보인거 아닐까... 합니다.

저도 최근 읽은 일본 추리 소설 중에 이게 제일 나았어요.
저는 어제 또 새로운 추리물을 집어들었습니다. 사회물이랍니다. 다 읽고 백자평 쓰겠습니다. 으흐흐흐흐
 
사랑과 결함
예소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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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한국소설을 발견했다.


여수에서 여행했을 때 들렸던 서점 <거기 책방 다섯>에서 구입했던 책 중 하나, 예소연 작가의 <사랑과 결함>. 

딱 한 권의 책만 구비해 놓는 작은 서점이라 진열대에 소개된 책을 집었다. 예소연 작가의 사인이 있는 초본이었다...!


총 10편의 단편이 들어있는 소설 모음집이다. 첫번째 수록집은 얼마전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에서 영화로도 제작되어 상영된 <철봉하자 우리>이고 이에 이어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 수록집은 차례로 주인공의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에 이어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시기의 이야기를 쓴 성장 삼부작이라 할 수 있겠다. (차례로 <아주 사소한 시절>, <우리는 계절마다>, <그 얼굴을 마주하고>). 이 세편을 읽고 이 소설집이 나에게 올해의 한국소설책이 되리라 확신했다. 일단 나는 주인공이 커가면서 써내려가는 성장서사이야기를 굉장히 좋아하는 것도 있다. 와... 뭐라고 해야하지? 읽으면서 조금 소름이 돋는다고 해야하나. 아주 오랜만에 짜릿한 한국문학 독서 체험을 했다.


고모의 장례식 이후에 주인공이 알았던 고모의 삶, 그리고 주인공의 애인이 들려주는 주인공이 알지 못했던 죽기 전의 비교적 최근의 고모의 이야기인 표지작 <사랑과 결함>. 그리고 외할머니의 죽음 이후 그녀의 집과 짐을 정리하기 위한 손녀딸의 이야기와 그 외할머니의 죽기 직전까지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분재>.


<팜>과 <그 개와 혁명>은 각 소설의 등장인물은 다르지만 마치 하나의 동일 가족인 것만 같은 여지를 주는 비슷한 테마를 가지고 이어지는 소설이다. 운동권이었던 부모의 밑에서 태어난 딸과, 당신이 바꾸고 싶었던 세상의 부조리에 가부장제와 남존여비 사상은 없었던 딸의 아빠의 이야기. 


<철봉하자 우리>, <도블>, 그리고 <내가 머문 자리>는 성인이 된 후 사회에 나와서 혈연도, 지연도, 학연도 아닌 어떤 계기와 우연으로 쌓인 우정 (그리고 점점 달라지는 각자의 삶에 멀어지기도, 뒤섞이기도, 엉키기도 하는) 에 관한 이야기이다.


최근, 이라고 하기엔 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한국의 젊은 소설가들의 책을 아우르는 비슷한 톤앤매너가 나는 조금은 실증이 나버리고 말았는데 이럴 때 예소연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어서 정말 기쁘다. 


죽음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 인간 관계의 끊어짐에 관한 이야기. 그런데 그 결별이 각자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깔끔하지 않고 구질구질하며 다층적인지를 보여주는 이야기. 나는 심플함을 추구하는, 마치 그게 가능할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나에게는 그런 이야기가 진정한 판타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이 좋다. 이 책의 주인공들을 사랑하고 응원하지 않을 수 밖에 없다. 등장인물 모두가 구질구질하고 내로남불이지만, 설사 그런 마음이 들었다 하더라도 자신과 타인의 상황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나의 감정과 이미 일어나버린 관계의 변화를 분리할 수 있는 정도의 성숙함을 조금은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성숙함을 갖고는 있지만 그래도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고 그 화를 꼭 풀어야 하며 망가뜨려야 직성이 풀리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여성들이기 때문이다. 가해와 피해가 뒤섞여서 어떤 사안에 따라서 그들은 공범이 되기도, 피해자가 되기도, 주동자가 되기도 하고, 그 교차성을 본능적으로 알고있는 오늘날의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고 다음날 아침, 여행의 마지막 아침날에 남해의 민박집 사장님께서 어제 딴 커다란 복숭아를 접시에 담아 주고 가셨다. 아삭아삭한 복숭아를 깨물며 체크아웃 시간까지 LP판을 틀어놓고 거실 바닥에 누워 읽은 이 책은 지긋지긋하게도 더운 올여름에 딱이었고 그 순간은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맹지와 친해지게 된 계기는 닮은 외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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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4-08-21 20: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오 올해의 한국소설!! 이 책 요즘 알라딘에 많이 떠 있던데~ 기억해두겠습니다!!

달자 2024-08-21 20:37   좋아요 4 | URL
아 정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한국‘단편‘소설 !ㅋㅋㅋㅋ 보통 단편집을 사면 안에 서너편 정도는 좋고 나머지는 그저 그런 적이 많은데 이 책은 모든 수록편이 다 맘에 들고 재밌고 기억에 남더라구요. 추천합니다!!!

공쟝쟝 2024-08-22 08: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싶었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땡김!! 그래서 달달한 달자님 추천한다는 말에 두근 ❤️

부천판타스틱 국제영화제라는 게 있군요.. 어렴풋이 작년 여성영화제 티저로 철봉 본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이맘때 여성영화제 시즌인데…

달자 2024-08-22 08:13   좋아요 2 | URL
표지도 복숭아느낌 나지 않습니까? 상큼해서 여름에 어울린다기보단 징글징글하기 때문에 여름에 어울리는 소설같습니다 ㅋㅋㅋ

공쟝쟝 2024-08-22 08:18   좋아요 1 | URL
아니나 다를까 ㅋㅋ (검색) 여성영화제 시즌인 것입니다!!! …ㅋㅋㅋ
표지는 저래놓고 치열하기 이를데 없을 거 같은 문장들일 거 같아서!!! 기대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두 무지 덥네요~ 체온 잘 챙겨요

다락방 2024-08-22 10:1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땡투는 달자 님께 드립니다.
저 역시도 요즘 한국소설에 비슷비슷하게 흐르는 ‘어쨌든 페미니즘을 기어코 담아내자‘ 가 좀 별로거든요.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다보면 거기에서 페미니즘과 만나게 되는 지점이 잇을텐데 일단 페미니즘 쓰자,고 작정하고 쓴것 같아서요. 아무튼 이 책 읽어보겠습니다.

복숭아 엘피판 여름 책.. 그 모든게 함께한 풍경은, 저라도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아요.

잠자냥 2024-08-22 10:56   좋아요 3 | URL
다락방이 읽고 나서 뭐라고 하는지 보고 좀 보기로.....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4-08-22 11:02   좋아요 4 | URL
그럼 좀 기다려요. 이 책 저 책 바쁘네 아주 그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설명할수록 내가 깎이는 기분이라 그랬어." 나는 그 말이 사무치도록 이해가 되어서 더 슬펐다. - 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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