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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스로 되돌아가다
디디에 에리봉 지음, 이상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월
평점 :
책<랭스로 되돌아가다...>를 읽었다.
이 책은 어언 작년 겨울에 한국에 갔었을 때,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사는 친한 한국인 친구가 한 권 사달라고 부탁해서 구입 후 프랑스에 가져왔던 책이다. 이 친구가 다니는 미대에 한국인 교수님 한 분이 계셨는데 친구의 논문을 읽고, 이 책을 읽으면 조금 더 도움이 될 거라며 추천을 해 준 책이라고 했다. 그렇게 책을 사고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되서 나는 이사를 갔는데 문제는 이사 후에 이 책을 도저히 못찾겠다는 것이다. 분명히 이 책을 이삿짐 상자에 정리를 한 건, 정말 분명히 기억이 나는데 짐을 다 풀어도 도무지 이 책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 친구가 파리에 놀러왔을 때도 함께 책을 찾았지만 찾지 못하고...
결국 스트라스부르로 돌아간 친구는 알라딘으로 이 책을 무려 해외배송으로 해서!! 구매를 하고 말았다. 그리고 출퇴근 길에 이 책을 읽던 친구는....책을 읽어 버렸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당최 읽기 어려운 책 <랭스로 되돌아가다>.....
그랬던 이 책을!! 계절 바뀌면서 옷 정리하면서!!! 겨울옷이 들어있는 상자 밑바닥에 깔려있는 <랭스로 되돌아가다>를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뭐... 이 친구 파리 다시 놀러오기 전까지 내가 홀라당 먼저 읽었다.
그런데 정말이지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게, 이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여기저기서 디디에 에리봉이 엄청 많이 보이는 것이다. 이 사람은 원래 유명했고 이 책은 원래 유명했는데 (심지어 프랑스 사람이고 나는 프랑스 사는데...) 평소에도 관련된 글이 많이 들리고 보였을 터인데 예전 그저 내가 누군지 몰랐기 때문에 들어본 적이 없다고 느꼈던 것일테지. 아무튼.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게 힘이다.
디디에 에리봉은 랭스 (Reims) 근교의 어떤 마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될 때 까지 그곳에서 가족과 살았다. 랭스라는 도시는 TGV 고속철도로 파리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북동쪽에 있는 도시이며 샴페인으로 유명한 곳이다. 물론 에리봉은 랭스의 도시에 산 것은 아니고 근교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란 것으로 보인다. 전형적인 노동자 계층인 가족 안에서 게이로 태어나 계층 밖을 접해볼 기회도, 아니, 계층 밖을 접할 이유도 찾기 어려운 곳에서 자랐던 에리봉이 철학 공부를 시작하고 파리에 오면서 사회학 공부와 관련 커리어를 쌓아가며 느꼈던 자신의 정체성, 그리고 거기서 비롯된 깊은 수치심(플러스 알파)에 대해 쓴 에세이이다.
에세이라고 하면 마치 일기처럼 술술 읽힐 것도 같지만 사실 에세이라고 하기엔 학문적인 성격이 짙고, 자신에게 영향을 주고 (또 받은) 학자들의 이야기, 관련 서적들이 많이 나와서 각주를 꼼꼼하게 읽지 않으면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지 놓치게 된다. 물론 이 책에서는 푸코, 주디스 버틀러, 프란츠 파농, 사르트르 등 사회학자들의 이름이 자주 등장하지만 어떤 사상을 이야기할 때 작가와 그 작가의 문학을 예로 들어서 설명하는 부분이 많았고, 에리봉도 이 점을 강조한다. 자주 언급되는 작가로는 장 주네와 아니 에르노.
사회적 계층과 퀴어. 두가지의 소수성을 가진 사람의 안에서 그리고 그가 걸어가는 인생에서 그 두가지가 어떻게 서로 교차하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에리봉은 퀴어에 관해 자신이 쓴 책은 여태까지 많이 있었지만 자신의 노동자 계층 정체성에 관한 성찰은 비교적 늦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 책은 에리봉의 아버지가 죽은 후에 자신이 '태어난 곳(랭스)' 으로 '돌아가'면서 쓴 성찰에 대한 이야기다 보니 자신이 속한 사회적 계층에 대한 이야기와 이 소수자성을 가지고 센터(파리)로 갔을 때 어떻게 상충되는지에 대해 작가의 철학적, 사회학적 통찰이 들어있다.
책을 읽고 나서, 물론 100퍼센트 대응될 순 없지만, 나에게 '랭스'는 어디일까 생각해 보았다.
끈끈이주걱에 달라 붙은 파리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아픈 사람 그리고 여성의 정체성을 갖고선 나고 자란 서울?
아니면 그 서울에서의 정체성을 아시아인 외국인 유색인종이라는 새로운 색깔로 덮어버린 파리?
여성과 이민자 그리고 비백인이라는 이 소수성은 어떻게 또 교차하고 갈라섰다 합쳤다가 또 꼬이는지 생각하다보면... 이제 또 점점 책의 주제와 같으면서도 멀어지는 나의 생각...
아아.. 파리... 서울... 어디로 가야하죠..아저씨...
사실 원래 쓰려고 했던 글은 이 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 책을 읽고난 직후 보았던 영화 <마빈> (원제 : Marvin, ou la belle éducation) 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역시 글을 쓰다보니 주저리주저리...
이 책을 읽고 난 소감을 파트너와 나누었는데, 이 책을 처음 듣는 파트너가 '어, 나 이 내용이랑 비슷한 영화 예전에 봤었는데!' 하며 보여준 영화가 이거였는데, 알고보니 작가가 <랭스로 되돌아가다>에서 영감을 받아서 만든 영화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파트너와 이 영화를 같이 보고! 파트너는 이 책을 읽는 것으로!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독서 생활을 했다고 한다 끝~
글이 너무 길어져서 이 영화에 관한 글은 나중에... 쓰는 걸로... 해 보겠다...이만 총총
(한국어 제목이 뭔지 몰라서 이것 저것 키워드를 넣고 검색을 하다가, 네이버에 '마빈' 이라고 치니까 나오긴 나오는데 영화 포스터만 한 장 뜨고 그 외에 관련된 기사같은 건 하나도 안보여서 한국에 개봉이 된 건 지는 모르겠다. )
https://youtu.be/fm6133Xkbkk?si=JApiPy1Y2XC7e8f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