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 O.S.T.
Various Artists 노래 / 티엔터테인먼트/코너스톤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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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불꽃놀이다. 창문을 열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셔터 속도가 느린지 눈으로 본 찰나의 아름다움은 좀처럼 포착되지 않는다. 나한테는 사랑도 이런 것 같다. 내가 셔터를 눌렀을 때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이미 지나 있었다.

하루키의 소설 한 대목, 밑줄 긋는 남자의 모티프, 클래식한 화집들로 단장한 영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는 놓쳐버리기 쉬운 아름다운 사랑의 한 시기를 판타지로 채색해 주는 귀여운 영화다. 거기에, OST도 한몫 했다. 다정한 선율, 다정한 가사. 다정한 목소리. 무엇보다도 솔직한 고백. 게다가 20대 대한민국 여성의 구미에 가장 맞을 라인 업. 유희열, 하림, 김연우, 조원선, 윤종신의 목소리.

이 음악, 뻔하네. 하고 얘기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얘기는 사실 하나마나다. 사실, 애당초 사랑이라는게, 사랑의 시작이라는게 뻔한 것 아닌가. 그래도 할 때마다 새롭고, 놀라운 게 사랑이고 보니 누군가에게는 이 OST가 힘이 되겠다. 그 누군가들은 좋겠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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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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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대간에 지리산도 들어가냐?
- 그럼, 들어가지. 그건 왜?
- 어, 백두대간 한 번 걸어볼까 했지. 근데 지리산도 올라야 한다고?
- 갑자기 백두대간은 왜 걷냐?
- 아니, <나를 부르는 숲>을 읽었는데 갑자기 나도 숲을 걷고 싶더라고. 근데 솔직히 계룡산은 숲길보다 자갈길이 더 많잖아. 애팔레치아도 걷는다는데 백두대간쯤은 걸어야…--;
- 도대체 뭐를 읽어서 애가 이렇게 된 거냐.

그리고 친구도 <나를 부르는 숲>을 읽었다.

- 어젯밤에 나도 읽었다. <나를 부르는 숲>.
- 재밌지?
- 응, 우리도 가을에 지리산 한 번 갈래?
- 갈 시간이 없는데, 다음 주말에는 학회지, 그 다음 주말에는 아르바이트지…
- 그럼 다음 봄에라도 꼭 가자.
- 그래. 나는 카츠 아저씨처럼 느릿느릿 걸으면서 무거운 거 다 버려야지.
- 흠. 구례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가야 되니까 느릿느릿 걸으면 안돼. 반나절에 노고단까지 가야 되거든.
- 헛. 그럼 그 전날 가면 안돼? 나는 꼭 느릿느릿 걷고 싶은데…

그러면서 생각해 보니 마지막으로 산에 간 것이 대학교 1학년때 설악산 대청봉을 밟은 것이다. 그 시절 다른 일들은 거의 생각나지 않는데 어쨌든 이 기억만은 또렷하다. 거의 밤이 내려서야 소청산장에 들어섰고 그 다음 아침, 대청봉에 올라 기념메달 뒤에 나는 “다시는 안와” 라고 글을 새겼다. 새끼발톱도 대청봉에 기증했다. 그리고는 모든 산과 안녕.

그런데 다시 가고 싶어진 것이다. 땀이 흘렀다 마르고 흙이 묻어 지저분해지고 벌레들이 달려들고 종아리 근육이 천근만근처럼 느껴졌던 그 모든 기억이 책을 읽으면서 다 생각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만 더 덧붙이고 싶다. 이 책의 가장 아름다운 점은 빌과 카츠 아저씨가 완주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다른 사람 이목 때문에 의지를 불태우며 한계를 극복하는 것보다 내가 즐거울 만큼만 하고 마는 게 더 용기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 용기는 아무나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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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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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기억은 거짓말이다. 아니, 이보다는 ‘불완전한 기억은 거짓말을 불러낸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이건 집단적인 기억에도 해당된다. 누군가에게 지난 일을 이야기하다 보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상상인지 헛갈리곤 한다. 왼손잡이인 내가 오른 손 쓰는 법을 익혀야 했을 때 정말 그렇게 고집을 부리며 왼손을 고수했었는지,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지금과는 다르게 다시 없는 얌전한 아이였는지, 그 때 그 사람은 정말 나를 좋아했었던 건지 이제는 모두 가물가물하다.

그리고 이 가물가물한 기억들이 나에게 거짓말을 시킨다. 말을 하면 할수록 내가 하는 말들은 하나의 빈틈없는 세계를 만든다. 거기에는 지금의 내가 원하는 작은 아이가 살고 있다. 한 남자가 자기의 행적을 쫓는다. 기억이 없는 남자는 남들의 거짓말에 기댄다. 초콜릿 상자 속의 사진, 오래된 잡지의 표지 같은 것들이 그들의 거짓말에 힘을 실어준다. 거짓말의 교집합으로부터 남자는 ‘페드로’, 옛 이름이었을 단어를 찾는다. 프레디와 드니즈, 게이라는 이름들이 페드로와 함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기억의 거품.

이 모든 거짓말 중 진실이라고는 단 하나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기억이 없는 남자는 그리하여 정직해지고 나는 세계의 본질이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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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가지 철학 체험 거리의 인문학 1
로제 폴 드르와 지음, 이기언 옮김 / 샘터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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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차례를 본다. 조금 웃기고 조금 황당한 일들, 그러나 몇몇은 경험한 적도 있는 일들이 101가지나 적혀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자기 이름 부르기, 햇살 속의 먼지 관찰하기, 눈 감고 샤워하기, 아무에게나 미소 짓기, 머리카락 하나 뽑기, 파란 음식물 찾기…… 이 중 몇 가지를 실제로 해 보았다. 101가지나 되는 것들 중 몇 가지를 선택한 기준은 오직 하나. 준비물이 없거나 간단할 것.--;

빈 기숙사 방에 홀로 앉아 불러도 대답 없는 (대답이 있으면 큰일이다!) 내 이름을 소리쳐 외쳐보기도 하고, 모르는 사람에게 슬며시 웃어도 보고, 숱이 없어서 평소 애지중지 여기는 머리카락 한 올을 큰맘 먹고 뽑아보기도 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갑자기 들어온 룸메이트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어야 했고, 모르는 사람들은 ‘혹시 내가 저 여자를 아는 게 아닌가’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으며 머리 숱은 한 올만큼 적어졌겠지.

하지만 그 때 스물스물 이상한 생각들이 기어 나왔다. 내 이름이 언제부터 ‘나’였을까? 부르고 있는 목소리와 그걸 들어 감지하는 귀는 서로가 하나인 걸 알고 있나? 정말 하나이긴 한 걸까? 머리카락 한 올만큼 달라진 나는 계속 ‘나’인 걸까? 내가 ‘안다’ 라는 건 또 뭘까? 누가 나를 정말로 알 수 있을까? 이게 정말 ‘내’ 머리 속에서 나온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계속되는 의심, 의심.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지 말고 아무데나 펼쳐 읽자. 이야기들을 밀어붙이는 힘은 독자를 그저 웃으며 따라가게 만드는 재주를 보여준다. 가끔 ‘조금 더 부드러운 번역이 필요하다’ 고 생각되는 꼭지들도 있지만 이야기꺼리들이 이를 덮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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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책일기
고종석 / 문학동네 / 199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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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다는 행위에는 언제나 위험의 감수가 전제돼 있다. 그 위험은 혹 텍스트를 아예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르는 위험, 또는 자기 방식으로 이해했더라도 결국 잘못 이해한 것이 될지도 모르는 위험, 요컨대 기호학적 위험들이다.’ (305 페이지, 책읽기 책일기) 나의 <책읽기 책일기> 읽기는 한동안 진척이 없었다. 내가 읽지 않은 비평가들에 대한 고종석의 이차 텍스트가 단박에 이해될 리 없었고 어찌어찌 글발을 부여잡고 넘어가 만난 ‘부르디외와의 대담’에 나는 급기야 책갈피를 꽂고 책을 덮었다. 오랫동안 책장에 꽂아두던 책을 다시 뽑아 든 것은 아마 스스로를 한번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겨레’가 진보의 색채를 가장 뚜렷이 했을 무렵 고종석이 쓴 기사들은 10여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말하려는 바를 충실히 전하고 있다. 신간의 서평에서 비평가 연작에 이르는 모든 글들은 대상의 ‘주의’를 파악하고 우리 문학에서의 자리를 매긴다. 특히 프랑스 문학에 대한 그의 이해와 소개는 그 폭과 깊이로 읽는 사람을 압도한다. 아직도 유효하게 읽힐 많은 책들의 이름에 밑줄을 그었다. 그가 적확하게 사용한, 내가 모르는 우리 말들에 밑줄을 그었다. 백낙청, 김현, 고은, 그르니에. 아직 바라보고만 있는 이름들을 옮겨 적었다.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끝까지 읽은 보람이 생긴다. 이로부터 내 세계의 외연이 조금 넓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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