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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가지 철학 체험 ㅣ 거리의 인문학 1
로제 폴 드르와 지음, 이기언 옮김 / 샘터사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우선 차례를 본다. 조금 웃기고 조금 황당한 일들, 그러나 몇몇은 경험한 적도 있는 일들이 101가지나 적혀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자기 이름 부르기, 햇살 속의 먼지 관찰하기, 눈 감고 샤워하기, 아무에게나 미소 짓기, 머리카락 하나 뽑기, 파란 음식물 찾기…… 이 중 몇 가지를 실제로 해 보았다. 101가지나 되는 것들 중 몇 가지를 선택한 기준은 오직 하나. 준비물이 없거나 간단할 것.--;
빈 기숙사 방에 홀로 앉아 불러도 대답 없는 (대답이 있으면 큰일이다!) 내 이름을 소리쳐 외쳐보기도 하고, 모르는 사람에게 슬며시 웃어도 보고, 숱이 없어서 평소 애지중지 여기는 머리카락 한 올을 큰맘 먹고 뽑아보기도 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갑자기 들어온 룸메이트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어야 했고, 모르는 사람들은 ‘혹시 내가 저 여자를 아는 게 아닌가’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으며 머리 숱은 한 올만큼 적어졌겠지.
하지만 그 때 스물스물 이상한 생각들이 기어 나왔다. 내 이름이 언제부터 ‘나’였을까? 부르고 있는 목소리와 그걸 들어 감지하는 귀는 서로가 하나인 걸 알고 있나? 정말 하나이긴 한 걸까? 머리카락 한 올만큼 달라진 나는 계속 ‘나’인 걸까? 내가 ‘안다’ 라는 건 또 뭘까? 누가 나를 정말로 알 수 있을까? 이게 정말 ‘내’ 머리 속에서 나온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계속되는 의심, 의심.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지 말고 아무데나 펼쳐 읽자. 이야기들을 밀어붙이는 힘은 독자를 그저 웃으며 따라가게 만드는 재주를 보여준다. 가끔 ‘조금 더 부드러운 번역이 필요하다’ 고 생각되는 꼭지들도 있지만 이야기꺼리들이 이를 덮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