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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199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불완전한 기억은 거짓말이다. 아니, 이보다는 ‘불완전한 기억은 거짓말을 불러낸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이건 집단적인 기억에도 해당된다. 누군가에게 지난 일을 이야기하다 보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상상인지 헛갈리곤 한다. 왼손잡이인 내가 오른 손 쓰는 법을 익혀야 했을 때 정말 그렇게 고집을 부리며 왼손을 고수했었는지,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지금과는 다르게 다시 없는 얌전한 아이였는지, 그 때 그 사람은 정말 나를 좋아했었던 건지 이제는 모두 가물가물하다.
그리고 이 가물가물한 기억들이 나에게 거짓말을 시킨다. 말을 하면 할수록 내가 하는 말들은 하나의 빈틈없는 세계를 만든다. 거기에는 지금의 내가 원하는 작은 아이가 살고 있다. 한 남자가 자기의 행적을 쫓는다. 기억이 없는 남자는 남들의 거짓말에 기댄다. 초콜릿 상자 속의 사진, 오래된 잡지의 표지 같은 것들이 그들의 거짓말에 힘을 실어준다. 거짓말의 교집합으로부터 남자는 ‘페드로’, 옛 이름이었을 단어를 찾는다. 프레디와 드니즈, 게이라는 이름들이 페드로와 함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기억의 거품.
이 모든 거짓말 중 진실이라고는 단 하나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기억이 없는 남자는 그리하여 정직해지고 나는 세계의 본질이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