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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 백두대간에 지리산도 들어가냐?
- 그럼, 들어가지. 그건 왜?
- 어, 백두대간 한 번 걸어볼까 했지. 근데 지리산도 올라야 한다고?
- 갑자기 백두대간은 왜 걷냐?
- 아니, <나를 부르는 숲>을 읽었는데 갑자기 나도 숲을 걷고 싶더라고. 근데 솔직히 계룡산은 숲길보다 자갈길이 더 많잖아. 애팔레치아도 걷는다는데 백두대간쯤은 걸어야…--;
- 도대체 뭐를 읽어서 애가 이렇게 된 거냐.
그리고 친구도 <나를 부르는 숲>을 읽었다.
- 어젯밤에 나도 읽었다. <나를 부르는 숲>.
- 재밌지?
- 응, 우리도 가을에 지리산 한 번 갈래?
- 갈 시간이 없는데, 다음 주말에는 학회지, 그 다음 주말에는 아르바이트지…
- 그럼 다음 봄에라도 꼭 가자.
- 그래. 나는 카츠 아저씨처럼 느릿느릿 걸으면서 무거운 거 다 버려야지.
- 흠. 구례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가야 되니까 느릿느릿 걸으면 안돼. 반나절에 노고단까지 가야 되거든.
- 헛. 그럼 그 전날 가면 안돼? 나는 꼭 느릿느릿 걷고 싶은데…
그러면서 생각해 보니 마지막으로 산에 간 것이 대학교 1학년때 설악산 대청봉을 밟은 것이다. 그 시절 다른 일들은 거의 생각나지 않는데 어쨌든 이 기억만은 또렷하다. 거의 밤이 내려서야 소청산장에 들어섰고 그 다음 아침, 대청봉에 올라 기념메달 뒤에 나는 “다시는 안와” 라고 글을 새겼다. 새끼발톱도 대청봉에 기증했다. 그리고는 모든 산과 안녕.
그런데 다시 가고 싶어진 것이다. 땀이 흘렀다 마르고 흙이 묻어 지저분해지고 벌레들이 달려들고 종아리 근육이 천근만근처럼 느껴졌던 그 모든 기억이 책을 읽으면서 다 생각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만 더 덧붙이고 싶다. 이 책의 가장 아름다운 점은 빌과 카츠 아저씨가 완주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다른 사람 이목 때문에 의지를 불태우며 한계를 극복하는 것보다 내가 즐거울 만큼만 하고 마는 게 더 용기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 용기는 아무나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니다.